빨간 클립 한 개
카일 맥도널드 지음, 안진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빨간 클립 한 개>는 빨간색 클립 한 개가 집 한 채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담고 있는 책이다. 누가 믿을까? 교환이라는 것은 대개 비슷한 가치를 가진 물건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이고, 클립 한 개와 집 한 채는 애초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 세계만국의 공통 가치책정기준인 '돈'으로 환산해서 생각해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만 번을 바꿔도 집 한 채가 나올까 하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나 저자인 카일 맥도널드는 14번의 교환으로 클립 한 개를 집 한 채로 만들었다. "야, 뭐 이런 운 좋은 자식이 있어?" 내가 <빨간 클립 한 개>를 읽은 것은, 이 사람처럼 되어서 클립을 집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서가 아니라, 도대체 어떤 과정으로 클립이 집이 되었는지 궁금해서였다. 암만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일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복권이라면 사면 되고 당첨에는 운 밖에 이유가 없다. 카일 맥도널드가 집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로또만한 운 때문이었을까?

  책을 읽기 시작하자, 나는 내 '가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음을 깨달았다. 이것은 사업이 아니라 일종의 놀이였다. 카일은 진지하긴 했지만 심각하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이 놀이를 지켜보고 또 제안하고 참여하면서 재미를 얻었다. 이 사람이 어디까지 갈까? 정말로 집을 얻을 수 있을까? 사람들의 관심이 카일의 놀이가 계속될 수 있게 했다. 만약 이것이 재미를 주는 놀이가 아니라 수익을 추구하는 사업이었다면 카일의 '비거 앤드 베터' 게임은 문손잡이에서 끝났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카일이 놀이를 위해 선택한 공간 - 인터넷은 최적의 장소였다. 만약 카일이 전화로 혹은 방문해서 비거 앤드 베터 게임을 제안했다면 게임은 별 소득없이 끝났을 것이다. 카일은 인터넷에 글을 올림으로써 잠재적 참가자들을 많이 모을 수 있었다. 개중에는 물물교환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 또한 카일의 광고를 보고 '재미있겠다'라고 생각했음이 틀림없다. 모름지기 재미가 없는 것은 방송에 나오지 않는 법이다. 언론의 관심은 사람들의 참여를 부추겼고, 그 때부터 카일의 물물교환은 기존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급물살을 탔다. 인터넷은 기존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을 이루어낸다. 그래서일까, 카일의 물물교환을 읽는 내내 웹 시대의 변한 패러다임을 말하는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가 생각났다.

  카일 맥도널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일단 일을 쳤다". 책이니까 쉽게 말을 하지만, 수많은 스팸전화와 스팸메일이 왔을 것이다. 그 중에는 카일이 진심이라는 것을 모르고 장난치듯 보낸 제안들도 있었다. 카일은 그런 메일들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남의 눈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울 자신이 없다면 카일 말마따나 재미없고 완벽한 이력서나 쓰고 앉아야 한다. 비거 앤드 베터 게임을 시작하지는 않을 것이다. "멋진 일이네요!" "재밌겠는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이건 뭐 미친 놈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훨씬 많을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카일은 비거 앤드 베터의 원래 룰에 얽매이지 않았다. 그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시점에서 자신의 블로그를 정비하고 게임의 룰을 바꾸었다. 굳이 더 크고 더 좋은 것만이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재미있고 상대적 가치가 있는 것과도 바꾸겠다는 것이다. 룰을 바꿈으로써 게임은 더 풍부한 재미를 얻었다. 일단 일을 시작하니 점점 가속도가 붙었고, 마지막에는 아주 빠르게 달리게 되었다. 헉헉헉. 그리고 마지막으로 집을 얻었다.

  카일이 가만히 앉아서 클립 하나와 집 한 채를 바꾼 것은 아니다. 그는 여러가지 무형적인 가치를 '더해서 지불했다'. 그래서 나는 그가 단순히 운으로 집을 얻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이상적이었지만 꽤 현실적이기도 했다. 두려움 없고 자신만만한 청년도 아니었고, 그냥 흔히 볼 수 있는 청년이었다. 그에게 있었던 것은 시작할 수 있는 용기와 지속할 수 있는 끈기였다. 카일의 여정은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게 했다. 빨간 클립 한 개가 어떻게 집이 될 수 있을까? 그런데 빨간 클립 한 개는 집 한 채가 되었다. 그러니까 뭐든 마음을 정하고 계속 해 보라고, 이 이야기는 등을 떠밀어주었다.
 

2008.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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