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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 김열규 교수의 열정적 책 읽기
김열규 지음 / 비아북 / 2008년 9월
평점 :
표지부터 심상치 않다. 어지럽게 쌓여있는 책의 모습이 붓으로 그려져 있다. 언젠가 면담을 위해 들어갔던 대학 교수실에서 봤던 책무더기가 떠오른다. <독서>라는 제목이 표지를 한결 그럴듯 해 보이게 한다.
언제부턴가 독서, 책읽기, 그런 제목을 달고 있는 책을 보면 심란해졌다. 어렸을 때도 책을 읽었고 다 자라서도 책을 읽는다. 하지만 '당신은 제대로 책을 읽고 있는가'라고 물으면 쉽게 대답을 못하겠다. 나름 최선을 다해서 읽는다고 읽는데 어딘지 부족하다고 느끼는 탓이다. 어떻게 하면 더 책을 잘 읽게 될 수 있을까?
<독서>에 손이 간 것은 그 때문이다. 책을 읽는 방법을 구구절절 써 놓은 책을 한 권 읽는다고 해서, 이십 년 간 자리잡은 책 읽는 버릇이 대번에 고쳐지지도 않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읽어둔다고 해 될 것은 없다. 일단 마음에 위안이라도 생기지 않겠는가.
<독서>는 "날 따라 해봐라, 그럼 책 무진장 잘 읽을 수 있다!"라고 뻐기는 책이 아니다. 김열규 교수의 책과 얽힌 인생을 풀어낸 자서전에 가깝다. 김열규 교수는 자신의 책읽기, 자신이 책을 읽는 방법, 온전히 자신에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낸다. 나와는 오십 년 넘게 나이차가 나는 분이다. 하지만 요렇게조렇게 풀어내는 책에 관련된 이야기는 적잖이 '나의 책읽기 역사'를 떠올리게 했다. 김열규 교수의 책읽기 자서전을 읽으며 동시에 나의 책읽기 자서전을 머릿속으로 써 나가는 느낌이었다. 책과 관련된 오밀조밀한 이야기들을 엮어내는 느낌이 얼마나 좋은지 책장을 돌려보고 또 돌려보고 했다. 그러다 보면 질곡의 근현대를 겪어낸 분이라 흠칫흠칫 놀라게 되는 순간들과 마주쳐 흠칫 하고 어깨가 떨리기도 했다. (일제시대는 너무나 옛날 이야기고 6.25는 아주 먼 이야기로 느껴진다) 그 순간을 보면 내가 살아가는 시간은 '책읽는 사람'에게는 참 축복받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동네 서점은 수십개고 차를 타고 조금만 나가면 으리번쩍한 대형서점이 있다. 나갈 시간이 없다면 인터넷으로 책을 구할 수 있고, 책을 살 돈이 없다면야 구석구석에 도서관에 가면 된다.
빨리 읽는 책, 꼼꼼히 읽는 책, 건너 뛰어가며 읽는 책. <독서>에는 여러가지 책 읽는 법이 나온다. 하지만 그 중에서 내 머리를 당당 두들겨 댄 책읽는 방법은 '외워 읽기'였다. 여기저기 책 읽는 법 주워 들은 적은 많지만, 책을 통째로 외우듯이 샅샅이 훑어내서 읽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책을 외우는 독서법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외워 읽기에 대한 부분이 나에게는 '네가 책을 빠르게 읽어대는 버릇이 있어서 좀처럼 숙독이 되지 않는다면 그냥 그 책을 외워라. 글자 하나 하나를 머리에 박아넣듯 새기는 버릇이 들면 니도 모르는 새 숙독에도 익숙해 지겠지.'라는 소리로 들렸다. 어찌보면 무식하지만 달리 보면 완벽한 방법이라 머리를 긁적이고 말았다.
즐기면서 읽고, 음미하면서 읽고. <독서>는 책에 대해 여러가지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고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하나다. 일단 책을 좋아해야 비로소 독서가 시작된다. 책을 이잡듯 뒤지며 심각하게 보는 것은 책에서 잔뜩 재미를 본 뒤에 시작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직 책을 즐기는 단계이지만 언젠가는 책을 샅샅이 파헤치며 더 깊은 곳에 숨어있는 금맥과도 같은 의미들을 캐낼 수 있는 사람이 되리라 믿는다.
p.s. 김열규 교수가 사랑하는 '애장서'들의 태반이 읽어보지 못한 것이라서 아쉬웠다.
2008.11.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