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두고 읽는 그리스신화 - 내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준 그리스신화의 지혜
김태관 지음 / 홍익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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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책을 받고는 조금 놀랬다
그리스신화 이야기라고 해서 책이 다소 두꺼울 줄 알았는데, 상당히 얇았다.
300페이지도 되지 않는 250여 페이지의 분량이다.

이 책을 통해 그리스신화와 로마신화의 이름들이 다르다는 사실을 첨 알게 되었다.
어릴 때 이후로는 읽지 않은 이야기라 내가 잘못 알고 있는 부분들이 많았다.

12신의 출생배경, 그들의 성격과 행동들을 통해 인간, 즉 나 자신을 돌아보는 이야기다.
다소 자기계발 서적 같으면서도 논어, 맹자, 장자의 책을 읽는 듯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갠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전자책으로도 출간이 되었느냐인데, 다행히 구매가 가능한 상태이다.
그런데 전자책은 가격을 조금 더 낮춰 대여 방식으로 진행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신화 이야기가 나에게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중 하나가 일단 이름이 대체로 길다.
게다가 발음도 쉽지 않다.
신화 이름 읽고 있으면 마치 공룡이름 외우는 것 같은 느낌이 많이 든다.
거기에 결정적으로 제우스의 바람끼로 인해 족보가 넘 복잡해.
이 양반 정말이지 인간이었으면 벌써 화형 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이 결코 그들의 모습만이 아니라는 것.
모든 이야기가 그렇듯 신화들의 이야기도 기본적으로 인간의 모습을 많이 담고 있다.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이렇게 은유적이고 의인화법들을 통해 우리 인간세계를 들여다보는 관찰자 시점들이 오히려 표현하기에도 좋고 더 강력한 메시지를 던져 줄 수 있어 그런가 보다.

신들의 이름이 하나씩 거론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아니 화두를 던져 준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단편적인 이야기들의 묶음을 통해 자꾸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 생각의 방향은 유리창 건너편의 상대가 아닌 거울속에 비친 내 자신을 향하고 있다.
자기 성찰의 목소리를 더 강하게 요구한다.

비극의 신, 오이디푸스를 시작으로 인간에 대한 관찰, 비판들이 시작된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의 결혼이라는 비인권적이고 비윤리적인 행태들이 벌어진다.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의 수수께기로 유명한 아침엔 네 발, 점심엔 두 발, 저녁에 세 발로 걷는 것의 답을 맞추는 영리함을 가진 그이지만, 실질적인 정답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은 깨닫지 못한 것이다.

여기서 신들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그들의 생각과 행동들을 통해, 나를 관찰하고 깨닫자는 것이다.
부모를 통해 생명을 얻어 태어나, 어린 시절을 거쳐 학교라는 집단으로 들어가 타인과의 관계 맺음에서 부모 품에 있을 때와는 다른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게 된다.
그 시행착오에는 올바름과 그름이라는 판단기준이 내재되어 있는데, 그 판단이라는 것이 정당하였느냐가 항상 화두가 된다.
나의 행동이 나에게는 정당하였으나 그 상대에게는 불합리함으로 비쳐지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전에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방송을 봤을 때의 혼란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시청하는 순간내내 나의 짧은 지식과 소견으로는 무어라 딱히 결정지어서 말을 할 수 없는 상태가 계속되었었다.
제우스, 하데스, 포세이돈, 헤라, 헤스티아, 데메테르,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등등 이름만 들어도 충분히 알만한 그들을 통해 나에게 계속 질문을 한다.
그리고 생각하게 한다.

첨엔 내가 좀 더 나이가 어렸을 때 이러한 책들을 읽었으면 어떤 판단을 했을까.
지금보다는 다른 모습을 한 내가 존재하고 있을까.
어린 시절 책을 읽는, 지식을 쌓는 일을 넘 등한시 한 게 아닌가 하는 반성 아닌 반성이 들려고 하는 찰나, 나를 다시 잘 살펴보니, 시간, 시기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어린 시절 읽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진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지금이 더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중학교 시절 학교 재단이 천주교여서 매주 성경시간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주변 친구들이 대부분 기독교라 토일요일이 되면 교회로의 발길이 잦았다.
그리고 집안 자체가 불교라 불경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다.

그 덕분으로 인해, 어떠한 교리나 법리를 잘 안다기 보다는 이러한 말씀들을 받아들이는데 전혀 거부감이 없게 되었다.
거기에 하나를 더 얻게 되었는데, 나를 주시하는 눈이 하나 더 생겼다는 것이다.
물론 이 눈은 나이가 들어서야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눈은 나의 시간과 행적들을 파고 들어가 순간순간 놀라게, 부끄럽게 만들어 지금의 행동을 제어하는 역할을 해 주고 있다.
그렇다고 지금의 행동들이 모두 다 올바른 행동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같은 실수는 하지 않도록 도와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그런데도 잘 실현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만큼 나라는 놈을 통제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것 같다.

머리속이 복잡해지고 가슴이 갑갑해지는 것 같지만,
결코 싫지 않은 감정이다.
이런 과정을 매일 매순간 거쳐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일어난다.
완벽한 인간이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죽기 전에 내 자신을 똑바로 세워야 한다는 간절함이 더해져서 그런 것 같다.
생명의 유한성으로 인해 이러한 절차들이 즐겁게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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