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순간 - 느린 걸음으로 나선 먼 산책
윤경희 지음 / 앨리스 / 200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행의 순간>은 우연히 집어든 책이었다. 다른 여행 책보다 글이나 사진과는 달리 색감이 톡톡 튀어나오는 책이었다. 역시 디자이너의 여행 책이었다. 그녀는 NHN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직업이 디자이너인 만큼 다양한 것을 보고자 한다. 그녀에게 여행은 공부이자 체험이었던 것이다. 책은 그녀가 여행한 도쿄, 런던, 브라이튼, 파리, 니스, 뉴욕, 방콕으로 안내한다.

 

카페 가운데를 차지한 큰 테이블에 앉은 내게 얼음물을 갖다 준 젊은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조용히 쉬고 싶어서 들어왔다고 하자, 그는 내게 호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좋은 재료를 구해, 매일 조금의 쿠키와 빵을 구워 차와 함께 내놓고 있다고. 메뉴도 계절이나 재료 수급 상황을 고려해 거의 매달 바뀐다. 디저트 세트를 주문하자, 고소한 스콘과 크림, , , 푸딩, 잼이 담긴 민무늬 접시를 내왔다. 향이 신선한 차 한 잔, 기교 없이 정직한 솜씨로 만든 스콘 한 조각은 지친 나를 순하고 따뜻하게 녹여주었다. -P29

 

변두리에 살아서 그런 가 정직한 솜씨로 만든 빵 만드는 빵집을 주변에서 본 적이 없다. 마치 텔레비전에서만 나오는 소수의 빵집을 소개하는 것만 같다. 가끔은 질릴 정도로 먹은 B사나 T사보다 자신만의 색깔로 빵을 만들어내는 집을 보고 싶다. 이런데 웰빙까지 바라는 것은 왠지 사치스런 기분까지 든다. 그래서 나는 꿈꾼다. 천편일률적인 공장에서 찍어내는 빵이 아닌 자신의 솜씨로 발휘한 그곳에서만 맛볼 수 없는 그런 빵집이 우리 동네에도 들어오기를 그리고 그 빵맛만큼이나 정직한 주인이 나타나기를 말이다. 이런 마음이니 작가의 만남이 반가웠다. 따뜻하고 포근한 빵에 잼을 발라 달달한 빵맛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도시 여행의 묘미 중 하나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취향이 생활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구경하는 것이다. 하물며 돌을 뒤집기만 하면 뭔가 나타나는 손쉬운 보물찾기 놀이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독특한 상점들의 대행진은 놓치기 아까운 기회이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엔 가끔 정답이 있다. -p87

 

런던 노팅힐에 도착한 저자는 그곳에 디자인과 색감에 감탄한다. 문 색깔이 파란색에 벽은 분홍색인 건물을 바라본다. , 등을 감싸는 형태의 의자는 이전에 보지 못한 독특한 디자인이다. 앤틱하면서도 엘레강스하다. 그리고 그것들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그들의 삶에 녹아들어 있다. 빈티지 마켓과 리버티백화점을 거닐다보면 패션의 경계선이 없는 그곳에서 자신의 마음에 쏘옥 드는 물건을 발견하게 된다.  

 

그녀는 여행지에서 세심한 포장을 해주는 가게주인과 새로운 친구가 되기로 마음먹기도 하고 추억하기 위해 좋아하는 곳곳의 주방사진을 필름카메라 콘탁스 아리아로 찍는다. 그리고 디자이너가 설계한 호텔을 머무르기도 하면서 그들의 손길을 느껴본다. 그리고 우리나라보다 좀 더 다양한 곳곳의 예술적 거리에, 영수증과 같은 생활 속 예술에 넋을 잃고 바라본다. 그렇게 7년 동안 여행한 기록이다. 추억은 겨겨히 쌓여 한 권의 책이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그녀는 또 여행을 떠나리라 여겨진다. 아직 그녀가 알지 못하는 세계가 많음을 알았으므로, 더 멀리 더 다양한 곳을 다니고 싶을 것이다.

 

그녀에게 부러웠던 것은 그녀가 여행을 다닌 시간이었다. 그녀는 어느 날은 3월말 비수기에 방을 얻어 니스에서는 무료로 업그레이드되어 스위트룸에 묵었다는 기록이 있다. 다른 사람은 출근하고 회사에서 한숨을 쉴 시간에 그녀는 반대로 걸었던 것이다. 그들을 바라보고 또 유유자적하게 거닐었을 생각을 하니 그녀의 시간이 조금은 부러워졌다. 비수기이므로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고 조용히 모든 것을 내 것인 양 감상하기에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사람의 빈자리가 더 커보였을 것이다. 그 시간 속에서 자신을 더 많이 들여다봤을 것이다. 온전한 자신을 발견했을 것이다. 문득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랬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는 것을 몸소 체험했을 것이다. 느리게 밥을 먹었을 것이다. 좀 더 많이 잘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앓기도 했었을 것이다. 여행은 그런 것이다. 반대로 걸어가는 것, 그것을 할 수 있으면 그녀처럼 바라볼 수 있지 않을 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름이 없는 너를 부를 수 없는 나는 - 나에게서 가장 멀리 뒤돌아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
김태형 지음 / 마음의숲 / 201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를 통해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간서치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문득 창가를 바라보고 전철 풍경 밖으로 시선을 내밀어 본다. 저자도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자신을 등지고 두 번째로 떠나는 고비사막여행.

 

젖은 머리에서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를 따라 눈을 떴다. 밤하늘에 별이 가득했다. 천 년이 흘러가 버리기를, 황무지의 그늘 한 점 없는 바람이기를 나는 기다렸을 것이다. 여전히 한 점 붉은 먼지로 돌아가지 못하고 불길한 침묵으로 남을 것이겠지만,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무엇을 바라고 있었는지조차 잊을 테지만, 그러는 동안 별들이 게르를 치고 다른 초원으로 이동하는 것을 따라가지 못했다. 밤의 지평선이 사라지는 곳으로 나는 가지 못했다.

- 연두색 나의 텐트p49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감탄하며 내가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기억을 못할 때가 있다. 그리고 고비사막이라는 인터넷, 휴대폰같이 문명과 단절된 그 곳에서 그 또는 그녀를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는 하나도 없는 그 곳에서 를 느끼며 돌아보는 순간순간들. 그리고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고 닮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나에 대한 안타까움, 회한, 물 흘러가듯 살면 되는데 흘러가지 못하는 마음까지도. 혼자이기에 다른 사람의 시선 없이 한숨에 내버릴 수 있는 공간인 그곳에서 보내온 그의 일기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같은 곳을 바라 보는듯한 착각마저 든다. 나는 차창 끝 어디까지 바라보는 것일까. 어디까지 가야 마음이 흐를 수 있는 것인지, 일기를 보면서 나의 담담한 심정을 내려놓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라지는 것은 죽음과는 다르다. 자기 파괴가 아니다. 다른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래도 다른 삶을 선택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삶의 기반이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는 삶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길을 벗어나면서 사라짐의 매혹에 잠시 사로잡힐 뿐이다. 그러니까 그 매혹은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전제를 필요로 한다. 나에게는 아직 저 멀리 산 정상이 보이고 있았다.

- 사라진다는 것, 그 매혹 p72~73

 

여행은 돌아올 수 있기에 매혹적인 거라고 저자는 이야기 한다. 그렇다. 여행을 나가자마자 행복도 잠시, 불편함에 짜증도 나고 집이 벌써부터 그립기도 하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순간은 낯설기에 집이라는 목적지로 다시 여행이 시작된 느낌도 든다. 저자는 고비사막으로 여행을 갔지만 그의 여행은 단순한 풍경을 보는 여행이 아니었다. 자신을 돌아보는 어쩌면 자신을 더 깊게 들여다보는 치유의 여행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무리로부터 벗어나서 안식을 얻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어제 보았던 초원의 말들을 자꾸만 떠올리고 있었다. 언어라는 것은 사실 나누는 것이 아닌가. 비록 새로운 언어가 기존 사회의 규율을 가르치는 암묵적인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어느 고독한 이에게서 탄생하는 것이지만 자칫 그 언어는 소통 부재의 벽을 쌓기도 한다. 그러나 진정 새로운 언어는 저 초원의 말처럼 서로에게 기대는 것이다.

- 길을 벗어나다 p75~76

 

처음 <이름이 없는 너를 부를 수 없는 나는>을 읽었을 때 시인의 함축적인 문체에 골머리를 앓았었다. 내 안에서 언어는 자꾸만 엉키고 엉키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을 때 조금은 알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읽으면 읽을수록 언어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떠남에 있어서 슬퍼하는 저자를 느낄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어서 떠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간절히 돌아오고 싶어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여행은 풍경을 소개하는 것보다 여행에서 느끼는 감정에 대한 일기 같아 답답한 가슴에 문득 바라보는 밤하늘 같은 느낌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헤르만 헤세 시집 문예 세계 시 선집
헤르만 헤세 지음, 송영택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를 통해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간서치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작품을 유독히 좋아해 <데미안>, <수레바퀴 밑에서>, <환상동화집> 등을 읽었다. 특히, 좋아하는 작품 환상동화집에서 신부에게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가 말하는 그 음성은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볼 만한, 상상할 만한 이야기였다. 다시 돌아가면 착한 아이가 되고 싶다는 어른이 된 나의 바램처럼. 그래서 헤르만 헤세의 시집이라고 명명된 이 책을 보자마자 두근거렸다. 오랜만에 그와의 조우였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의 어깨에

괴로운 머리를 얹으십시오.

말없이 눈물의 달고 서럽게 지친 앙금을

남김없이 맛보십시오.

 

이 눈물을

목말라 안타깝게

보람도 없이

그리워할 날이 올 것입니다.

 

나의 머리에

그 손을 얹으십시오. 나의 머리는 무겁습니다.

나의 청춘이었던 것을

당신은 나에게서 앗아 갔습니다.

 

한없이 아름답게만 여겨지던

화사한 청춘과 기쁨의 샘은

되찾을 수 없이 사라져 가고

슬픔과 노여움이 남았습니다.

 

거칠게 열을 띠며

지나간 사랑의 갖가지 기쁨이 잠자지 않는 나의 꿈을 스치다가

상처 입은 그 끝없는 밤들.

 

드물게 휴식할 때만은, 나의 청춘이

수줍은 창백한 손님처럼

나에게로 다가와서 신음해

나의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나의 머리에

그 손을 얹으십시오, 나의 머리는 무겁습니다.

나의 청춘이었던 것을

당신은 나에게서 앗아 갔습니다. (52~54)

 

지금 나는 청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정확한 것은 청춘이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게 황금기 같은 시절이 있었다고 추억하는 것만큼이나 청춘에 대해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순 없다. 이제는 다가올 미래는 청춘이라기보다 결혼생활에 가까운 것들이고 그때가 좋았지라는 회상은 아주 가끔 생각이 날 때마다 찾아오는 감정들이다. 나는 그의 시에서 청춘의 회상을 보았다. 지나가는 것을 알지만 걷잡을 수 없는 속도는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그나마 위안인 것은 지금이 청춘이라는 것을 알고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수시로 뒤를 보게 될 것이다.

 

 

예술가

 

몇 년 동안이나 정열을 기울여 내가 만든 것이

소란한 시장에 진열되어 있다.

흥겨운 사람들은 그냥 스쳐가면서

웃고, 칭찬하고, 좋다고 한다.

 

그들이 웃으며 머리에 씌워 주는

이 흥겨운 월계관이

내 생명의 힘과 빛을 다 삼켜 버린 것을

나의 희생이 헛되었음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90)

 

남보다 특이한 것을 좋아해, 길거리의 상점을 좋아한다. 그리고 악세사리의 경우에는 만드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띤다. 나는 그들이 얼마나 그것을 만들기 위해 시름했는지 생각해 보았는가, 그저 가격으로 판단하지 않았던가, 생각해보게 된다. 판단에 있어서 좋다라는 그 한 마디듣기 위해 모두가 잠든 시간에도 혼자 시름하고 있었을 것이다. 좋다한마디를 듣기 위해.

 

그리고 예술가로 산다는 것 자체가 남과 다름을, 그렇기에 더 위험하고 더 힘든 삶일 것이다. 고단하고 슬프고 사람을 상대하는 것처럼 힘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값을 매긴다. 그리고는 비싸다고만 한다. 그 모습이 선하다.

 

내게도 좋다는 것 이상으로 생각해본 적이 있었는가하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안 보이는 과정까지도 생각해보았는가. 그리고 그것을 안 다면 예술품에 가격을 매길 수 있는가. 비싸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의 성찰과도 같은 시집은 그의 시를 쓴 연대로 나열되어 있다. 책 끝으로 갈수록 그의 성숙미를 느끼게 한다. 무엇보다 인생의 회한을 느끼게 한다. 나는 아직 나이가 많이 들진 않았다. 그리고 나이든 그의 회한을 들었다. 이제 나의 삶은 그 회한을 알기 전과 후로 많이 달라질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지라도 나이든 사람에게는 언제나 회한이 있음을, 찬란한 때를 간직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나간 나의 황금기와도 조우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다시 또 그러한 황금기를 볼 수 있기를 소망하게 된다.

 

사라진 소리

 

언제였던가 어린시절에

나는 목장을 따라 걷고 있었다.

그때, 아침 바람에 노래 하나가

조용히 실려 왔다.

푸른 공기의 소리였든가

또는 무슨 향기, 꽃향기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달콤히 향기를 풍기며

어린 시절을 영원토록

울리고 있었다.

그 후 나는 그 노래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것이 지금 요 며칠 사이에

비로소 가슴속 깊은 곳에서

살며시 다시 울리는 것이다.

지금 나에게는 모든 세상 일이 아무렇든 좋고

행복한 사람들과 처지를 바꾸고 싶지도 않다.

귀를 기울이고 싶을 뿐.

향긋한 소리가 흐르는 것을

마치 그때의 소리인 양

귀를 기울이고 조용히 서 있고 싶을 뿐.

 

(128~12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울 시 서울 시 1
하상욱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를 통해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간서치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PAPER에서 만났던 하상욱님의 시를 보고서 빵 터져버렸다. 이것도 시냐 이런 질문보다는 지금 시대에 걸맞는 이야기이면서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빨리 빨리 너도 나도 살고자 아등바등하는데 가끔은 자신을 돌아보고 싶을 때 하상욱의 서울시를 읽으면 너만 그렇지 않구나, 나도 그랬었어. 라는 공감이 들기 시작한다. 공감이 즉 위로가 아닐까.

 

알콩달콩

좋아보여

 

재밌게도

사는구나

 

- P104 옆사람카톡 -

 

카톡을 보면 우리는 웃으면 이야기 한다. 특히, 카카오스토리에는 우울함을 표출하는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 맛집에 간 이야기, 영화 본 이야기, 처음으로 한 요리, 처음으로 간 곳, 유명한 공연, 연극 등등 보여지기 위해서 하듯이, 나는 잘 지낸다고 말하듯이, 보여진다는 것에 염두하고 이야기 하는 것들이라 밝고 긍정적이기만 하다. 그런데 과연....... 우리의 삶은 밝을까? 밝지 않을 때가 더 많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밝은 것처럼 보이고 싶을 때가 많다. 그 마음을 지적한 것 같아. 키득 웃다가 씁쓸하게 웃기도 하였다.

 

 

예전엔 아프면

못 놀까봐 걱정

 

이제는 아프면

일 놀까봐 걱정

 

- 250~251 -

 

직장에 다니지 않을 나이에는 아프면 친구를 못만나고 집에만 있는 외로움에 어서 나아서 학교가고 친구를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아프면 그것도 회사에서 안좋게 보고 인사고과에 문제 생길까봐 뻘뻘 거린다. 그래서 아픈 것도 감추는 주변사람들을 많이 봤다. 결국, 젊어도 늙어도 걱정이 많다.

 

 

서로가

소홀했는데

 

덕분에

소식듣게 돼

 

제목 애니팡

 

ㅋㅋㅋㅋㅋㅋㅋ

친하지도 않은데도 초대하는 카카오톡이 온다. 그리고 카카오톡에 등록되어 있으면 모두가 순위에 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뜸한 사람임에도 하트를 보내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정말 서로가 이야기 하는 것보다 애니팡으로 수시로 만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작가의 유머는 작가소개에서도 볼 수 있다. 그야말로 작가 + 소 + 개 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 유머를 간직하고 있으면 물가상승, 취업난 가득한 세상속에서 웃을 일도 하나 없는데 모처럼 크게 웃게 되는 것 같다. 앞으로 작가의 시가 기대가 된다. facebook에서 작가에게 친구추가를 하면 2초만에 승낙을 해준다고 한다. 그리고 시를 업로드하기 전, 여자친구의 심사를 거쳐서 올려진다고 한다. 본업이 시인이 아니라고 하는데 본업을 시인으로 가져도 되지 않을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토스트
나이젤 슬레이터 지음, 안진이 옮김 / 디자인이음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어느 요리사의 어린 시절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해서 구미가 당겼다. 영국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은 우리나라와는 다른 문화양상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경우 직접 케이크이나 파이를 만들어 먹지 않아 재료 같은 것이 이제야 발달되기 시작했지만 영국은 때에 따라 직접 만든 파이가 있어야 했다. 그런데 소설 속 어머니는 일이 바빠 요리에 흥미가 없었고 토스트를 언제나 태울 정도로 요리를 힘들어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른 집처럼 파이나 케이크가 있는 집의 모습을 소망했고 엄마인 그녀는 반조리 식품을 사서라도 그 욕구를 채우고자 노력했다. 식욕을 채워주던 어머니는 호흡기질환으로 주인공이 어릴 때 사망하고 만다.

 

케이크는 가족을 하나로 만든다. 내가 보기엔 정말로 그랬다. 집에 케이크가 있을 때 우리 아빠는 딴 사람 같았다. 다정한 사람. 서먹하게 피하기보다는 끌어안고 싶은 사람. 아빠가 손에 케이크 접시를 들고 있으면 내가 아빠 무릎 위로 기어 올라가도 괜찮았다. 엄마가 식탁에 케이크를 올려놓을 때면 왠지 모르게 잘 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안정된 느낌. 안도감.

- p11 크리스마스 케이크

 

이후 아버지가 만나는 여성은 어머니와는 전혀 다른 큼지막한 파이도 스스로 만들 줄 아는, 따뜻한 집에 바비큐를 구워 배불리 먹일 줄 아는 여성이었다. 하지만 어머니와 반대로 그녀는 너무나 많은 음식을 해서 그를 괴롭게 하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여자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새어머니가 되어가면서 점차 자신도 모르게 맛있는 파이, 그녀만의 레시피를 알고 싶어진다.

 

누군가를 알아주는 일에는 냄새가 없다. 누군가를 어루만져주는 일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만에 하나 그런 게 있다면, 따뜻한 브레드 앤 버터 푸딩의 냄새와 소리와 같은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 p16 브레드 앤 버터 푸딩

 

하지만 용돈의 대부분은 과자를 사먹는 데 썼다. 과자, 초콜릿, 그리고 아이스크림의 세계에는 여덟 살짜리 아이가 감당하기 힘들 만큼 복잡한 정치학이 침투해 있었다. 어떤 신문을 선택하느냐가 어른들에게 중요한 것처럼 과자는 아이들의 목에 꼬리표를 두를 수 있었다. 어떤 과자는 남자아이가 넘볼 수 없었다. 프라이 사의 초콜릿 크림이나 올드 잉글리시 스팽글스는 어른의 영역이었고, 하트가 그려진 러브하츠 사탕이나 패브 아이스캔디는 여자애들이 먹는 간식이었다. 파마 바이올레츠 캔디는 할머니들 차지였고, 갱엿은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할 때 부모님이 사주는 간식이었다. 마시멜로로 속을 채우고 초콜릿으로 코팅한 원뿔 모양 과자는 다들 질 나쁜 간식으로 취급했지만 나는 남몰래 그걸 좋아했다. 그리고 여섯 살이 넘은 누군가가 비행접시 모양의 캔디를 손에 들고 있는 건 못 봐줄 일이었다. 튜브에 담긴 셔벗파운틴은 여자들만 먹는 걸로 여겨졌는데, 나는 어릴 때보차 그런 통념에 찬성하지 않았다. 밀키웨이 초코바는 제이콥스 오렌지클럽과 마찬가지로 부모가 아이에게 선심을 쓰면서 사주는 간식이었다. 갖가지 과자가 담긴 셀렉션 박스는 실제 친척은 아니지만 평소에 이모라고 부르던 사람들이 크리스마스에 주는 선물이었다. - p49 과자, 빙과, 록음악, 정치

 

소설은 토스트, 잼 타르트, 브레드 앤 버터 푸딩처럼 이국적이고 맛있는 이름의 빵의 카테로리로 각각의 이야기로 나누어져 있다. 카테고리에 얽혀있는 어린 시절 추억의 함께한 맛과 성장을 담고 있다. 주인공은 친구가 놀자고 해도 맛있는 타르트에 잼이 흐르는 모습을 보면서 아프다고 친구에게 거짓말을 하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타르트의 맛을 즐기는 그런 아이였다. 그는 점차 성장하여 자신의 맛을 찾아 다양한 일을 하면서 요리의 세계로 뛰어들게 된다.

 

어른이 되어서도 맛보는 것을 게을리 하지도 않았고 요리를 만드는 것은 더더욱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하지만 불편한 진실처럼 더러운 주방의 뒷모습과 함께 성()을 음식에 묘사한 모습은 책 후반부로 갈수록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책은 음식의 맛과 결부되어 어린 시절을 돌아보는 추억과 함께 요리사의 회고록처럼 솔직한 모습이 보여주었다는 것과 모든 감정이 음식으로 표현되어 있어, 달달한 초콜릿에서 알싸한 민트향이 퍼지는 민트초콜릿처럼 색다르고 신선하게 느껴졌다.

 

다음 2년 동안 밤마다 침대 옆 탁자 위에 두 개, 때로는 세 개의 설탕 맛이 나는 보들보들한 마시멜로가 놓여 있었다. 내가 무엇보다 그리워했던 건 엄마의 키스였다. 엄마가 안아주고 쓰다듬어주고, “잘 자라, 우리 아가.”라고 속삭여주는 것. 호두 아이스크림도, 캐드베리 사의 플레이크도, 설탕 뿌린 아몬드도 그 키스를 대신하진 못했다. 마시멜로가 정말로 키스에 아주 가까운 음식이었는지도 확실할 수 없었다.

- p166 마시멜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