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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트
나이젤 슬레이터 지음, 안진이 옮김 / 디자인이음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어느 요리사의 어린 시절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해서 구미가 당겼다. 영국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은 우리나라와는 다른 문화양상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경우 직접 케이크이나 파이를 만들어 먹지 않아 재료 같은 것이 이제야 발달되기 시작했지만 영국은 때에 따라 직접 만든 파이가 있어야 했다. 그런데 소설 속 어머니는 일이 바빠 요리에 흥미가 없었고 토스트를 언제나 태울 정도로 요리를 힘들어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른 집처럼 파이나 케이크가 있는 집의 모습을 소망했고 엄마인 그녀는 반조리 식품을 사서라도 그 욕구를 채우고자 노력했다. 식욕을 채워주던 어머니는 호흡기질환으로 주인공이 어릴 때 사망하고 만다.
케이크는 가족을 하나로 만든다. 내가 보기엔 정말로 그랬다. 집에 케이크가 있을 때 우리 아빠는 딴 사람 같았다. 다정한 사람. 서먹하게 피하기보다는 끌어안고 싶은 사람. 아빠가 손에 케이크 접시를 들고 있으면 내가 아빠 무릎 위로 기어 올라가도 괜찮았다. 엄마가 식탁에 케이크를 올려놓을 때면 왠지 모르게 잘 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안정된 느낌. 안도감.
- p11 크리스마스 케이크
이후 아버지가 만나는 여성은 어머니와는 전혀 다른 큼지막한 파이도 스스로 만들 줄 아는, 따뜻한 집에 바비큐를 구워 배불리 먹일 줄 아는 여성이었다. 하지만 어머니와 반대로 그녀는 너무나 많은 음식을 해서 그를 괴롭게 하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여자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새어머니가 되어가면서 점차 자신도 모르게 맛있는 파이, 그녀만의 레시피를 알고 싶어진다.
누군가를 알아주는 일에는 냄새가 없다. 누군가를 어루만져주는 일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만에 하나 그런 게 있다면, 따뜻한 브레드 앤 버터 푸딩의 냄새와 소리와 같은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 p16 브레드 앤 버터 푸딩
하지만 용돈의 대부분은 과자를 사먹는 데 썼다. 과자, 초콜릿, 그리고 아이스크림의 세계에는 여덟 살짜리 아이가 감당하기 힘들 만큼 복잡한 정치학이 침투해 있었다. 어떤 신문을 선택하느냐가 어른들에게 중요한 것처럼 과자는 아이들의 목에 꼬리표를 두를 수 있었다. 어떤 과자는 남자아이가 넘볼 수 없었다. 프라이 사의 초콜릿 크림이나 올드 잉글리시 스팽글스는 어른의 영역이었고, 하트가 그려진 러브하츠 사탕이나 패브 아이스캔디는 여자애들이 먹는 간식이었다. 파마 바이올레츠 캔디는 할머니들 차지였고, 갱엿은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할 때 부모님이 사주는 간식이었다. 마시멜로로 속을 채우고 초콜릿으로 코팅한 원뿔 모양 과자는 다들 질 나쁜 간식으로 취급했지만 나는 남몰래 그걸 좋아했다. 그리고 여섯 살이 넘은 누군가가 비행접시 모양의 캔디를 손에 들고 있는 건 못 봐줄 일이었다. 튜브에 담긴 셔벗파운틴은 여자들만 먹는 걸로 여겨졌는데, 나는 어릴 때보차 그런 통념에 찬성하지 않았다. 밀키웨이 초코바는 제이콥스 오렌지클럽과 마찬가지로 부모가 아이에게 선심을 쓰면서 사주는 간식이었다. 갖가지 과자가 담긴 셀렉션 박스는 실제 친척은 아니지만 평소에 이모라고 부르던 사람들이 크리스마스에 주는 선물이었다. - p49 과자, 빙과, 록음악, 정치
소설은 토스트, 잼 타르트, 브레드 앤 버터 푸딩처럼 이국적이고 맛있는 이름의 빵의 카테로리로 각각의 이야기로 나누어져 있다. 카테고리에 얽혀있는 어린 시절 추억의 함께한 맛과 성장을 담고 있다. 주인공은 친구가 놀자고 해도 맛있는 타르트에 잼이 흐르는 모습을 보면서 아프다고 친구에게 거짓말을 하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타르트의 맛을 즐기는 그런 아이였다. 그는 점차 성장하여 자신의 맛을 찾아 다양한 일을 하면서 요리의 세계로 뛰어들게 된다.
어른이 되어서도 맛보는 것을 게을리 하지도 않았고 요리를 만드는 것은 더더욱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하지만 불편한 진실처럼 더러운 주방의 뒷모습과 함께 성(性)을 음식에 묘사한 모습은 책 후반부로 갈수록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책은 음식의 맛과 결부되어 어린 시절을 돌아보는 추억과 함께 요리사의 회고록처럼 솔직한 모습이 보여주었다는 것과 모든 감정이 음식으로 표현되어 있어, 달달한 초콜릿에서 알싸한 민트향이 퍼지는 민트초콜릿처럼 색다르고 신선하게 느껴졌다.
다음 2년 동안 밤마다 침대 옆 탁자 위에 두 개, 때로는 세 개의 설탕 맛이 나는 보들보들한 마시멜로가 놓여 있었다. 내가 무엇보다 그리워했던 건 엄마의 키스였다. 엄마가 안아주고 쓰다듬어주고, “잘 자라, 우리 아가.”라고 속삭여주는 것. 호두 아이스크림도, 캐드베리 사의 플레이크도, 설탕 뿌린 아몬드도 그 키스를 대신하진 못했다. 마시멜로가 정말로 키스에 아주 가까운 음식이었는지도 확실할 수 없었다.
- p166 마시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