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 - 행복은 삶의 최소주의에 있다
함성호 지음 / 보랏빛소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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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를 통해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간서치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내 주변인들은 내게 어떻게 그렇게 고요하게 가만히 있을 수 있냐고 물어본다. 방안에 있는 나를 보고 어머니도 방에 사람이 없는 줄 알았다고 하면서 놀랬던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멍 때리기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많이 생각하다보면 생각이 생각을 꼬리를 물다보면 그 끝에 갈 때도 있지만 무한히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저자도 이와 같이 않을 까 한다. 그는 그림도 그리고 건축도 하고 시를 쓰고 평도 하고 해서 스스로를 오지래퍼 (Ozirapper)라 한다.

 

진학 제도에 대해 무지하여 그림을 그리면서 이과 공부를 한 탓도 있었지만, 나는 고심 끝에 미대 진학을 포기했다. 그러나 그 구멍은 내가 시를 쓰게 된 가장 원초적인 시발점이 되어주었다. 나는 그 구멍 때문에 그림을 포기하게 된 것이 아니라 다른 표현의 도구 하나를 더 얻게 된 셈이다. 결국 아주 어릴 때부터 내 삶의 일부처럼 여기던 그림을 버리게 되었지만, 인생에서 낭비하는 시간이란 없다. 낭비든 아니든 지금의 나를 만든 건 바로 그 시간들이니까. -p25

 

내게도 구멍 같은 시간이 있었다. 진학제도에 무지해 원서를 제대로 못 써 본의 아니게 재수를 했다. 그런데 그때 여행도 가고 또, 적성에 맞지 않는 과로 진학해 힘든 시기에 편지를 준 친구덕분에 이후 내가 좋아하는 과로 선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시기는 자신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매여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에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생활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진짜 좋아하는 게 눈에 보인다. 그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이니까. 그 덕분에 고등학교 때부터 좋아하는 경제 관련과에 진학하게 되었고 재수 생활 때 읽었던 경제경영서적덕분에 학교에 들어 가 학교공부도 수월했다. 그리고 지나보니 그 시기에 진정으로 삶에 있어 쉼을 누렸다고 생각한다.

 

백수처럼 재수생처럼 보일 수 있는 시기를 갖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그 시기가 안 좋은 것만은 아니다. 백수생활이 있기에 취업에 있어서 겸손해질 수 있고 재수생활이 있기에 대학생활이 소중함을 아는 것처럼 말이다. , 그 시기를 어떻게 지내느냐는 자신의 선택인 것이다. 나는 이력서를 잔뜩 써놓고 가고 싶은 곳에 많이 다녔다. 환경영화제도 가고 2호선 합정역에 있는 선유도공원에도 갔다. 그 기다림을 재미있게 기다리니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그는 또 재미나게도 예전에는 부엌이 따로 떨어져있었고 냉장고란 것이 밥솥이라는 것이 이제는 안방을 점령하는 것을 말한다. 정말 거실에는 부엌과 경계선이 없어졌고 방마다 텔레비전 선풍기, 에어컨까지 전자제품들이 점령하고 있다. 어찌 보면 내 방에도 노트북이 너무나 소중하게 모셔(?)지고 있다. 그런데 이 방의 주인은 나다. 전자제품의 방이 아니다.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그것들은 소음을 내고 있다. 우리가 자는 순간에도 소음을 내고 있다. 그것이 과연 좋을까? 진정한 고요를 느낀 적이 있었는지 되짚어본다. 지금 나는 노트북 앞에 앉아 있고 옆에는 텔레비전이, 선풍이가, 더 옆에는 보일러가 있다. 이제 내 방이 아니라 그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자신의 방 행세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리고 물건들이 많은 것도 그것들에게 나의 공간을 내어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방에 들어 올 때에 평안한가? 밟히는 물건들이 있지 아니한가? 그것은 은연중에 당신을 속박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수업을 거의 전폐하다시피 하며 나는 대학 도서관의 참고 열람실에 파묻혔다. 거기서 닥치는 대로 읽어댔다. 방학 때도 집에 가지 않았다. 그렇게 6개월이 흘렀다. 그러고 나서 우연히 잡은 책이(디자인이 좋아서였다) 칼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었다. 나는 거기서 플라톤을 다시 만났다. 그때의 기쁨, 그리고 헤겔과의 만남, 좋은 인연은 사람과 사람사이에 국한된 게 아니었다. 나는 항상 책과 나 사이에도, 사물과 사물 사이에도 인연이 있다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손은 시장경제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누가, 도대체 왜, 나를, 이렇게 어딘가로, 책을 통해 이끄는 것인가?(알 수 없다) -p118

 

어려서부터 시집을 좋아했고 계속 이어진 책에 대한 내 사랑은 책값이 없을 때는 빌려봤고 돈이 있을 때는 책을 사서 봤다. 월급의 10%를 책에 투자할 정도로 나는 책에 빠져있었다. 책뿐만이 아니라 보이는 것은 죄다 읽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읽을거리가 없으면 전철은 내게 고난이었고 누군가의 기다림은 내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유발하게 했다. 대학 도서관에서도 나는 유별나게 책을 좋아한 탓인지 대학도서관 근로장학생을 했고, 지금은 책을 꽤 많이 빌린 탓인지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나를 친근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혼자서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이 나오면 예약 판매 때부터 두근두근 거린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러가는 설렘처럼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얼마 전 <창밖 뉴욕>의 책을 번역한 이가 <일상의 지나가다>의 저자 이용재라는 사실을 알고 반가웠다. , 카페 제리코의 추억을 쓴 <>을 보고 <카페 제리코>가 책으로 나온 것을 보고는 반가웠다. 이렇게 책도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책은 끝이 없는 것 같다. 이 책에서 저 책으로 책이 서로를 이어주는 끈이 있는 것 같다.

 

읽으며 비슷한 생각에 저자가 반가웠다. 책에 대한 생각도 구멍 같은, 달의 이면 같은 시간에 대한 생각도 현대적인 삶의 비판까지도 반가웠다. 그리고 건축가이자 시인이자 평론가이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저씨의 면모가 보여서 반가웠다. 그리고 사람은 다양성을 모두가 지녔듯 모두가 오지래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하게 잘하는 사람보고 멀티플레이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없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멀티플레이어인데 아직 자신이 멀티플레이어라고 인식하지 못했고 아직 잘하는 것을 찾지 못했고 아니면 아직 좋아하는 것을 알지 못한 것이 아닐까.

 

저 들판에 피어나는 꽃과 구름과 물········. 진정한 독서란 그것을 읽고 또 듣는 행위이다. 듣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독서의 행위이다. 기계가 읽어주고 있는 미지의 세계. 그것은 우리의 미래에 관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저 바람이 읽고 가는 무심한 소리도 그렇다. 저 바람의 독서를 들으라.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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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와 거기 - GQ 에디터 장우철이 하필 그날 마주친 계절과 생각과 이름들
장우철 지음 / 난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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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라는 잡지가 있다. 아직 나도 잘은 모른다. 하지만 남자들의 잡지라는 것은 안다. 이 책의 저자는 GQ의 에디터이다. 그가 여행을 하면서 끄적거린 내용이다.

 

마우스 옆에 단단한 돌 하나를 두고 거기에 손을 올리고 쉬면 얼마나 호젓한지, 모르는 사람은 영원히 모를 것이다.

-p89 수석 에서

 

무언가 손으로 쥐길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다. 모든지 잡고 만지고 느끼려고 했다. 그 탓인지 지금은 손에 잔주름(?)이 남보다 많다. 한마디로 손바닥에 그어진 잘잘한 선들이 남보다 훨씬 많다. 그런데도 책을 손으로 쥐고 대여점에 가곤 했다. 대여점이라고 하면 만화책을 많이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환타지책이나 김하인님의 절절한 멜로 소설 또한 대여점에서 빌릴 수 있었다. 그렇게 책도 손에 쥐길 좋아했고, 강가나 산에 가면 차가운 돌에 손바닥을 대어보기도 했다. 그 시원한 편안함. 저자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마치 평상에 앉아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쐬는 듯한 느낌을. 그리고 돌에 마음을 두시는 것인지, 어머니가 개울가나 산이나 돌을 주울 수 있는 곳이면 마음에 드는 돌을 골라 하나 둘씩 가져오곤 했는데 지금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나의 맛집을 여기에 적어둔다. 정읍 충남집의 쑥국, 공주 진흥각의 짬뽕밥, 대전 소나무집의 오징어 국수, 이태원 봄봄의 블랙 올리브 파스타, 구룡포 철규분식의 찐빵, 제주 포도호텔의 튀김우동, 신이문동 로지스시의 모듬초밥, 화순 양지식당의 돼지고기 두루치기, 왜관 약목식육식당의 갈빗살구이, 안동 물고기 식당의 은어찜, 진주 천황식당의 비빔밥, 제주 남춘식당의 김밥, 포천 미미향의 짜장면·······사시사철 가던 길 멈추고 돌아가고 싶은 집, 그야말로 집이려니 하는 집. 시간이 흐르고 목록은 변할지도 모르나, 그 어쩔 수 없음을 또한 맛있게 반기려 한다.

-p115 나의 맛집 에서

 

그는 맛이나 몇 첩 반상인가 따지지 않고 단순한 기준을 정했다. ‘이 집에 또 오고 싶은 가?’ 그야말로 정답이다. 또 오고 싶은 이유는 맛뿐만 아니라 그 집 서비스도 한 몫 할 것이다. 그 외의 것까지 포함한 답변이라서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언젠가 그가 말한 집에 한번 가보고 싶다. 특히, 우동을 좋아하는 나는 제주 포도호텔의 튀김우동이 강하게 당긴다. 그의 목록을 적어보면서 잡지에서 일하는 에디터로서도 많이 여행을 떠났겠지만 감각을 키우기 위해, 사진을 찍기 위해, 그리고 그냥 많이 떠나서 먹어본 음식들이 그의 맛 지도를 만들었구나 싶다. 그리고 이 목록을 적으면서 왜 이리도 키득키득 웃음이 나는지 모르겠다. 그는 이렇게 감각적인 언어로 오감을 자극하는 맛이 있는 것 같다.

 

농약 대신 천연제재를 쓰시죠. 그건 어떻게 시작하셨어요?

그놈의 농약에 지쳐가지고요. 농약값만 1년 평균 들어간 것이 2천만 원 3천만 원이여, 죽어라 농사지어갖고 수매하면 뭐이 남는 것이 있어야지. 하다보면 맨 마이너스 같아. , 이거 아니다. 그러다 진주 쪽에서 농약 대신 천연재료로 제재를 만들어 쓰고 있다는 얘길 들었지요. 농약보다 낫다, 한번 써봐라, 인체에도 해롭지 않고 괜찮다 그러기에 그 뜻을 받고 준대로 갖다 써보고, 결과는 이렇더라 어떻더라 얘기하고 그랬지요.

 

-p200 구례에 사는 농부 홍순영

 

농부를 인터뷰한 것이 재미났다. 농부아저씨의 사진을 찍는 데서 뭐 볼 것 있다고. 이런 말까지 공감이 가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농약을 안 쓰고 농사를 하시는 농부아저씨의 인터뷰이다. 이 잡지 아니면 어디서 이런 인터뷰를 볼 수 있을까 한다.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일지도 모른다. 안정된 먹거리 또는 차후에 농사를 짓겠다는 사람들이 봐도 좋을 인터뷰. 그가 인터뷰한 사람들은 권부문, 이상은, 이소라, 빅뱅의 태양 등등이 등장하는데 우리가 알던 그런 틀에 박힌 인터뷰 내용보다 재미나다. 그것은 어쩌면 그냥 그들과 대화를 하고 온 듯한 느낌에서 그럴 지도 모른다. 편하게 이야기 하다보면 가슴속 이야기를 하게 되고 상대방이 나에게 진지한 관심이 있다면 진지하게 대답해주는 게 정석이기도 하다.

 

에치고유자와 역

 

국경의 터널을 빠져나오니 설국이었다는 말,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는 말,

밤에 그 말을 보았다.

틀림없는 그 말이 거기 있었다.

본 것만 말해도 돼.

그것 말고는 아무 소용이 없을지도 몰라.

길이 멀다 느낀 나는

돌아가는 기차로 급행을 택했다.

도쿄에 첫눈이 온다는 뉴스를 들었다.

수요일

 

- p253

 

담담하게 쓰인 글은 무엇보다도 더 절제된 감성으로 가슴을 파고드는 지도 모른다. 돌아가는 길을 급행을 택한 것은 과연 눈 때문이었을까. 가끔 무엇에 도망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묻어버리고 싶은 기억에 도망치는 것일까. 너무나 빛났던 기억이라 다시는 그 순간 같은 순간이 못 올거라 생각한 기억일까. 버리고 싶은 물건들인가. 이제는 설레지 않는 나 자신일까.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는 글을 쓰는 그가 부러워졌다. 담담하게 써내려간 글들이 뭉클하게 다가 올 때마다 잠들지 못하고 헤매였다. 순간순간마다 책속에서 헤매였다. 그러다 잠이 들고 또 잠들기 전에 펼쳤다. 그의 책은 그런 재미가 있었다. 펼치면 펼칠수록 어떤 재미가 나올지 몰랐다.

 

글로 돈을 벌 수 있는 것부터가 부러운 그가 30대에 쓴 글이라 한다. 30대에 느낀 양상들. 에디터로 바라본 시선들. 그 모든 것이 여기에 담겨 있었다.

 

깨보니 아침. 창밖의 빗소리가 알림인 날. ‘고맙습니다중얼거리며 화분 다섯 개를 창가에 내놓고, 어제의 편지들에 고무밴드를 튕겨 묶었다. 이 편지를 여기 싱크대 맨 위 선반에 로젠탈 접시 밑에 놓아두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내가 여기 있다면, 너는 거기 있어야 하니까.

 

-p354~355 마지막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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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도 있다 - 누구에게나 한번쯤 뜨거운 시절
김현정 지음 / 소모(SOMO)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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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를 통해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간서치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유학을 준비하진 않았지만 유학에 대한 열망은 있다. 한국의 주입식, 외우기식의 교육이 아닌 자유로운 토론과 함께 자신의 의사를 나타낼 수 있는 수업을 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회만 된다면 나갈 생각이 있어 꾸준히 관련 서적을 뒤적거리게 된다. 나이랑 상관없이 공부하러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나이제한도 있을 수 있다고 하니 한 해가 갈수록 더 조바심이 난다. 그래서 늦었거나 또는 떠날 용기가 필요했던 이들에 있어서 응원을 보내면서도 그들의 모습에서 나를 찾는 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청각장애인으로 국내 대학교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영국에서는 사진을 전공하게 되었다. 예술에 대해 관심은 있지만 문외한인 나는 사진도 전공으로 택할 수 있다는 것에 꽤 충격을 받았다. , 그녀는 사진을 찍기 위해 많은 것을 눈에 담기 위해 영국뿐만이 아닌 다른 나라로도 여행을 떠난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띈 것은 영화 <콰트로페니>를 보고 그 배경지를 찾아 떠난 것이다. 배경지 세븐 시스터즈라는 곳을 찾아 떠나서 그녀는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 눈 앞 풍경을 보고 겸허해진다. 그리고 진정으로 깨닫는다. 자연만큼 아름다운 것이 없음을. 그리고 그 절벽과 푸른 바다의 조화는 그녀의 타향살이의 서러움, 청각장애인이라는 어려움을 다 씻겨버린다. 그리고 사진보다 중요한 것은 눈, 눈보다 중요한 가슴으로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떠올린다. 힘들 때 마다 평안을 주었던 그곳의 모습을.

 

비오는 우울한 런던을 바라보며 같이 우울해질 수 있지만 그녀의 렌즈 같은 눈으로 거리를 바라보며 수채화가 된 런던 거리의 아름다움을 그 속에서 찾는다. 그리고 카페에서 비 내리는 거리를 바라보며 커피 한 잔 하는 여유를 갖게 된다. 그는 진정으로 런던인이 되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소개한 영국의 교육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터치를 하지 않고 잘못된 방향으로만 가지 않도록 조언을 해주는 식의 교육. 학생 한사람 한사람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고 또, 결과보다는 과정을 위한 스케치가 중요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스케치를 통해 그 사진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나왔고 그 이미지에 담긴 자신의 생각이 중요했다는 점이 좋았다. 사진이 그냥 찍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형태로 표현된다는 것도 이때 알았다. 사진은 보이는 것을 찍는 것만이 아닌 그 이미지의 표현이었다. 해서 그녀가 단절을 나타낼 때는 모델에게 박스를 씌워서 단절을 나타냈다. 스스로 박스를 쓴 사람, 타의적으로 박스를 쓰게 된 사람모두가 단절이 된다. 박스는 자신의 손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손일수도 있고 그리고 사람과의 거리일 수도 있다. 그 사진을 보고 나도 모르게 무릎을 딱 치게 되었다. 이것이다! 하는 기분.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모두 사진이었다. 찍는 것만이 사진이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학생과 회사를 연결해 화장품을 직접 받아서 사진촬영을 해서 잘 나오는 사진은 잡지에 싣는 이러한 실제적인 경험을 보면서 우리나라는 왜 이러한 교육이 시행되지 못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타전공자이만 내게도 실무적인 경험은 대학교육에서 전혀 받지 못했다. 실무자를 만나 이야기를 1:1로 한다든가, 같이 프로젝트를 해본다는 것의 기회는 학생이 직접 발로 뛰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학교 내에 과정이 있다면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지 않을 까? 참여의 기회가 더 있지 않을까? 더 직접적으로 배웠다는 자신감이 들어 사회에 나가서도 어느 정도의 감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너무나 부러웠기도 했지만 우리나라 교육에 있어 많이 아쉬움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었다.

 

마지막으로 공부는 평생 해야 한다고 말하는 저자의 겸손한 자세가 좋았던 책이었다. 세상에 많이 부딪치면서 강해지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저자는 많이 도전했고 실패도 경험하면서 자신이 좀 더 더 적극적이지 못했다는 것에 일찍이 후회를 갖게 되었다. 해서 좀 더 지금은 자신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도전하게 된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저자가 청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많은 불편함을 느꼈다는 것이 아직도 우리나라가 풀어야 할 문제라고도 생각되었고 내면에 저자가 더욱더 자신의 테두리를 벗어나길 소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선입견을 넘어서는 저자가 멋졌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못할 일을 없어 보인다. 그녀를 보면. 그러한 그녀와 지금도 유학을 꿈꾸며 고군분투하는 모든 청춘이 이 책을 읽고 좀 더 힘낼 수 있기를 바래본다.

 

 

친구들이 아무리 친절해도 잘 못 알아듣는 나를 끝까지 배려하기는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68)

 

눈부신 햇살 아래에 빛나는 새하얀 절벽과 푸른 바다와의 조화는 내 마음을 뻥 뚫리게 해주었다. 언덕에 걸터앉아서 저 멀리 바다의 지평선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속 가득 찼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없어진다. 자연이란 것은 이렇게 장엄하고 아름답다. 영화에서 본 아름다운 하얀 절벽과 바다의 장면은 솔직함 그대로의 풍경이었다는 점이 굉장히 감동스러웠다.

카메라 렌즈로 담는 것보다 최고의 방법은 두 눈에 가득히 담아두는 것이다. (69)

 

비오는 날은 여전히 썩 좋아하지 않지만, 젖어가는 거리를 바라보며, 커피 한잔 즐길 수 있는 감성을 런던은 내게 알려주었다. (120)

 

리서치 북에는 내가 어떻게 연상을 해서 어떠한 방식으로 자료를 준비했으며, 어떠한 방식으로 이미지를 이끌어낸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고 사진 이미지만 제출한다면 그것은 바로 ‘COPY’가 되는 것이다. 과정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124~125)

 

끊임없이 무언가를 보고 또 보는 것이 나의 공부였는데, 막상 표현을 할라치면 어렵고 쉽게 풀리지 않으니 나는 아직도 갈 길이 멀었고 계속 공부를 해야 하는 구나 싶었다.

 

아니 공부는 평생 하는 것 같았다.

세상은 자꾸 변화하기 때문에.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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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으면 - 낮의 이별과 밤의 사랑 혹은 그림이 숨겨둔 33개의 이야기
황경신 지음 / 아트북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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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를 통해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간서치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

 

명화를 보면 그 섬세함에 넋을 잃을 때가 많다. 나폴레옹의 사진 같은 그림, 잡힐 듯한 옷깃. 그가 바로 튀어나올 것만 같다. 그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정교하게 빛을 감지해낸 것인지 그때의 그림만큼 더 실체와 같은 모습은 한 것은 없는 것 같다. 마치 더 나은 그림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다. 그리고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내게 무언가 이야기를 전해줄 것 같다. 그 시대에는 이러했노라고. 그때에도 사랑은 아프고 아렸고, 내가 이별을 말하기도 전에 이별이 왔었다고. 이런 말을 해줄 것만 같다. 그리고 상상한다. 그때 시절의 나와 나의 연인을.

 

이 책은 그러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그림을 보고 저자가 이야기를 찾아낸 것이다.

 

왜 울고 있었어요?”

내가 물었습니다.

나의 일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지.”

그가 대답했어요.

그렇다면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내 말에, 그는 슬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재능이 없어. 사람들을 웃게 만들 수가 없는 걸.” -p95~96

 

사랑하는 그는 사람들을 웃음 짓게 하는 어릿광대였고 그녀는 꽃을 파는 소녀였다. 그는 사람들을 웃기게 하고 싶었지만 사람을 웃게 하는 재능은 없었다. 하지만 그가 하고 싶은 일은 어릿광대였고 웃기지 못해 돈을 벌 수 없었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과의 간극, 하고 싶은 일과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에 대한 간극, 그 무수한 간극 속에서 얼마나 신음하고 있는가. 공부를 더하고 싶었지만 그만큼 치러야 할 대가를 눈앞에 두고 신음했던 순간, 영어를 공부해야 한다고 해서 공부했지만 잘 할 수 없는 영어, 그 앞에 좌절하는 나. 하고 싶지만 아직 인정받지 못한 내 글. 그 속에서 두통과 함께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내가 보였다.

 

그리고 이제 아내의 정원에 앉아, 후회에 몸을 묻고 나날을 보내고 있다네. 그런 나를 위로해주는 것은 그녀가 남긴 식물들이라네. 사람이 아니라 식물에 의지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차츰 깨달아가고 있어. 그렇다네. 애초에 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식물 같은 것이었어야 했네. 그랬다면,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며, 사소한 행복에 몸을 떨고 스스로 빛나는 것이 사랑이라고, 믿을 수도 있었을 텐데. -p110

 

정원에서라는 그림을 보고 저자는 이러한 이야기를 찾아냈다. 너무나 사랑했던 여인을 아내로 맞았지만 그녀의 사랑이 의심스러웠던 그는 자꾸만 그녀를 자신의 친구와 내통하고 있다 여긴다. 마침내 그녀는 울음을 터트렸고 집을 나갔다. 그리고 친구도 그녀를 따라 갔다. 그가 아내와 친구를 연인으로 만든 것이다. 그 후 남겨진 아내의 식물들에게서 위로를 받는다. 아내에게 어떻게 식물에게 위로를 받을 수 있냐며 그녀의 말을 하나도 믿지 않았던 그가 이제야 식물에게도 위로를 받을 수 있음을 자신이 이렇게 만든 일임을 알게 된 것이다.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천일야화가 생각이 난다. 죽임을 당하는 대신 하루에 한 가지씩 이야기를 꺼낸 그녀, 그녀처럼 저자는 그림을 보면서 이야기를 꺼낸다. 그녀의 이야기 속에서 그림은 다시 재탄생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여운을 가져다준다. , 한 가지 재미는 책속 그림에 대한 이름과 저자의 약력이다. 많은 이들이 그 시대에 제대로 그림이 대우받지 못한 것도 안타깝지만 법학이나 미술에 관련되지 않은 일에 종사하다가 그림의 길로 들어선 작가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들 중 한 명은 에드가르 드가이다. 그는 은행원의 장남으로 태어나 법률을 공부했었다. 이들도 우리처럼 꿈을 찾아 헤매서 그림이라는 꿈의 종착지에 왔음을 느낄 때 시대를 떠나서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마지막으로 그림을 보면서 내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 쓰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내가 그림을 보면서 이야기를 만들어 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가 될 것이다.

 

나는 어떻게 살았나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누구를 만나고, 무슨 일을 하며, 내게 주어진 시간을 흘려보냈나. 어떤 사랑을 했나. 사랑을 하긴 했나. 그 증거는 어디에 있나. 그렇다네. 모든 것이 허상이라네. 글이란 것도 누군가의 마음과 부딪히면서 모양이 변하고 색이 변하는 것이지. 애초의 이미지란 어디에도 남아 있질 않아. 나한테서 무슨 답을 원하나? 그래도 인생이란 살 만한 것이다? 모르겠네. 내가 아는 건, 인생이란 견디면서 기다리는 거라는 거야. 기다리는 게 온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지. 그래 이전에 나는 잊기 위해 글을 썼네. 무언가를 끝내려고. 아니면 기억하기 위해 글을 썼지. 무언가를 붙잡으려고.”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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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똥별 - 가장 낮은 곳에서 별이 된 사람, 권정생 이야기
김택근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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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를 통해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간서치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그를 처음 본 건 어느 다큐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다. 왜소하고 초라해보였지만 눈웃음만은 여전히 그가 어른이 아닌 어른 아이임을 짐작하게 했다. 그리고 그의 생활은 보통 글을 쓰고 교회에 종을 울렸다. 이러한 삶에 그는 행복해했다. 세간은 모두 새 것처럼 보이는 것이 하나도 없었고 방은 전체적으로 있어야할 것만 있어 보였다. 그의 검소함은 그렇게 딱 봐도 보일 정도였다. 그가 바로 권정생이었다.

 

그는 1937년에 태어났고 그의 시대는 전쟁 중이었다. 일본은 전쟁 중이었고 폭탄이 떨어져 죽는 사람들이 많았다. 정생은 그 일본에서 살았다. 그래도 살아보려 애를 썼고 전쟁이 끝나자 한국으로 돌아갔지만 한국에서는 일본이랑 전쟁이 끝난 후 동족끼리 싸움이 시작되었다. 전쟁 중에도 끝난 후에도 먹을거리가 없어서 돈을 벌어야 했다. 그래서 정생은 집을 떠나 고구마를 팔았다. 그런데 주인은 눈속임으로 저울을 조작해 정량보다 적게 사람들에게 주라고 했다. 처음에는 손이 떨렸지만 점차 아무렇지도 않게 손가락으로 살짝 눌러 정량처럼 보이게 하는 법을 터득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오셔서 고구마를 사 가시는 뒷모습을 보고 그 때에 정신을 차렸다. 그가 하는 일에 죄 값이 얼마일까 생각하게 되자 고구마를 사 가는 사람들이 자신이 누이였고 어머니였고 동생과 같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울면서 일을 그만두었다. 그는 그렇게 여렸다. 어쩌면 전쟁과 같은 잔혹한 세상을 살기에는 더없이 여리고 순수했는지도 모른다. 전쟁 중에도 핀 한줄기 들꽃처럼 말이다.

 

1953년부터 3년 동안 정생은 부산에 있었다. 돈을 벌어 학교에 가기 위해서였다. 전쟁 직후라 부산에 사람은 넘쳐 났다. 그때에 정생에게 오기훈과 최명자라는 친구가 생겼다. 둘 다 6.25로 인해 부모님을 잃은 고아였다. 오기훈은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했고 최명자는 남의 집 식모살이를 했다. 정생은 기훈을 형제와 같이 대했고 용돈이 생기면 같이 계몽서적이란 헌책방에 가서 책을 빌려 봤다. 많은 책을 읽은 정생은 글도 썼고 이를 본 기훈이 헌종이에 쓰기에는 아깝다며 그의 글을 칭찬했다. 그때 당시는 종이가 귀했던 시절이었다. 기훈은 어느 날 와서 멍키스패너 하나를 정생에게 주고는 그 뒤로 그를 볼 수 없었다. 그 몽키스패너는 그때 당시 잡지 한 권 값이었다. 기훈의 죽음에 대해 쉬쉬하지만 그는 알 수 있었다. 자살일 것이라는 사실을. 명자는 교회에도 다니고 정생을 전도하기도 했지만 명자는 결국 몸을 파는 여인이 되었다.

 

그 시대는 너무나 우울했고 그만큼 청춘들은 그의 말처럼 회색빛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허구도 동화도 아니었다. 오로지 사실이었다. 그는 사실을 썼다고 말한다. 그래서 슬프다고. 하지만 그에게도 병마가 찾아왔지만 그가 믿음으로 병마와 싸워 2007년도 까지 산 것은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병이 심하므로 집에 있을 수 없어서 걸인 생활을 할 때 배를 타고 싶어 할 때는 뱃사공아저씨가 무료로 그를 태워주었고 식당아주머니는 공짜로 밥을 주었다. 그와 같이 살림살이가 더 나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정생에게 모두 선을 베푼 천사들이었다. 그는 주님의 말씀중 주님은 가장 낮은 자로 오신다는 말씀을 믿었고 그 또한 겸손하게 낮게 살고자 노력했다.

 

, 그가 많은 아동문학상을 탔음에도 오두막 집 하나를 집으로 삼아 쥐와 함께 동거 동락한 모습을 보면 우리는 어쩌면 많이 가졌음에도 그처럼 마음의 부자가 되지 못했기에 끝임 없이 소비해도 만족이 없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지금은 이생에 없지만 아이들을 위해 쓴 동화 <강아지똥>은 평생 남아 그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 그의 마지막 바램 이었던 그의 책 인세는 모든 아이들을 위해 쓰일 것이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도 오래토록 남아 우리에게 작은 것에도 만족함을 배우게 할 것이고 또, 그의 모든 글을 읽고 싶어질 것이다. 그의 책은 읽은 우리도 그와 같은 겸손한 삶을 꿈꾸게 할 것이다.

 

고구마를 사 가는 아주머니, 아저씨는 정생의 어머니, 아버지와 다름없었습니다. 공사장에서 일하는 어린 소년,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오는 소녀도 정생의 형제와 같았습니다. 그들에게 계속 양심을 팔아먹었다는 생각이 들자 정생은 가슴이 무너졌습니다. 세상이 두려웠습니다. 새삼 미처 고구마값을 주지 못했다며 꼬깃꼬깃 접힌 돈을 내놓던 시골 아주머니가 떠올랐습니다. 그는 천사였습니다. (75)

 

정생과 명자는 별로 할 말이 없었습니다. 정생은 명자가 묻는 말에만 대답할 뿐이었습니다. 그런 정생을 보면 명자는 가슴이 아팠습니다. 새파란 청춘들이었지만 현실은 온통 회색빛이었습니다. (89)

 

공짜로 강을 건네준 뱃사공 할아버지도 있었습니다. 백삯이 없어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다가와 손목을 끌었습니다. 사람들 눈을 피해 구석 자리에 가만히 앉혔습니다. 곳곳에서 고마운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또 다른 예수님이었습니다. (123)

 

우리들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모두가 나눠서 먹고 입고 즐기며 살아야 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답니다. 그래서 하루 먹을 것만 먹고, 입을 것만 입으면 되는 거지요. 하니까 우리들은 가난하지 않아요. 모두가 부자예요.”(147)

 

평생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살았던 정호경 신부도 정생과 절친했습니다. 생명농업과 민주화 운동에 생을 바친 정호경은 경북 봉화군 비나리라는 작은 마을에 살고 있었습니다. 직접 오두막을 짓고 밭을 갈며 나무를 돌봤습니다. 정호경 신부는 하느님, 거룩함, 좋은 것은 저 낮은 곳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오신 것처럼 거룩함은 보잘 것 없는 이들 속에서 발견된다고 믿었습니다. 그것은 정생의 생각과 일치했습니다.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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