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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홀로 죽는다
한스 팔라다 지음, 이수연 옮김 / 씨네21북스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물론이에요. 카를. 우리는 뭔가 해야 해요. 스스로에게 창피해지지 않기 위해” -p587
나에게도 삶에 있어 소심하지만 강력한 저항이 있었던가.
오토 크방엘은 근검절약을 실천하는 사람이었고 될 수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안 주는 쪽으로 살고자 했다. 그의 삶의 방식은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말은 했지만 피해를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강했는지도 모른다. 그가 게슈타포를 위한 세금을 내지 않은 것은 순전히 돈이 아까워서였다. 그는 검소했지만 그건 다른 말로 하면 짠돌이였다. 그는 세금을 그렇게 많이 내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독일은 점점 독일인 사이에서도 서로를 밀고하면서 반역으로 몰아가고 세금을 내지 않은 사람을 수상하게 여겼음에도 오토 크방엘은 전혀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날아든 전보에는 아들의 사망이 쓰여 있었다. 아들과 약혼한 딸 같은 아이를 보냈고 부부은 침울하게 지냈다. 그는 아들에게 있어 큰 애정이 없었지만 아내 안나가 침울해하면서 자신을 아들이 죽었음에도 변화 없는 그에게 당신의 총독각하 때문에 아들이 이렇게 되었다는 말이 화근이 되었다. 그는 그만큼 총독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냥 편하게 살고 싶었고 신념을 져버리기 보다는 검소한 면을 택했지만 그의 신념이 상처를 입자 그는 아내가 원망스럽고 화가 났다. 이때의 일을 계기로 그는 엽서를 쓰기로 한다. 반히틀러구호를 쓰기 시작한다. “어머님, 총통이 당신의 아들들도 죽일 겁니다!”
이를 계기로 그들 부부의 관계는 회복되고 이렇게 죽음을 각오한 자신의 소리를 냄으로써 그들은 비밀을 공유하고 더 끈끈한 비밀동료가 된다.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들은 이 엽서를 사람이 많이 다니는 광장에 놓아 두어 이를 보고 투쟁의 목소리를 함께 내자는 호소를 전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엽서를 보자마자 게슈타포(비밀경찰)에게 넘겼고 그들은 이제 오토와 안나를 추적하기 위해 암호명 도깨비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한다.
분명 게슈타포들은 무기를 소유하고 있었지만 독일인, 유대인, 아리아인등 무기를 소지하지 않은 평민들의 수가 더 많았다. 그들은 저항할 수 있음에도 시도하지도 않고 두려움에 앉아 있었다. 같은 독일임에도 밀고를 당할까봐 노심초사했고 어떻게든 자신이 죽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을 어떻게 밀고할까 고민했다.
그 가운데 소리를 높인 오토가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하는 이렇게 몰래 엽서를 써서 뿌리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잘 알고 있다. 들킨다면 반역죄에 사형을 당할 것이다. 하지만 엽서를 쓰는 재미에 빠지기 시작한다. 문구를 같이 생각했고 옮겨 적으며 부부 사이에는 어느 때보다 끈끈한 사랑이 묻어났다. 그들은 자신의 정당한 소리를 높이자 객관적으로 그들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알게 된다. 그들이 스스로 옳다고 하는 일에 있어서 하나도 옳은 게 없었다. 엉뚱한 사람을 잡아들이고 때리고 모욕을 주었다. 그때마다 엽서를 쓸 때, 그들은 희열을 느꼈다. 그리고 이 엽서를 읽고 사람들은 변화되기 시작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폭력 앞에서는 두려움에 몸을 떠는 강아지마냥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이럴 때 우리는 우리의 일제치하의 시대가 떠오른다. 저항은 소수의 일인 양 하지 않았을 까.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괴로워했는가.
날카로운 눈빛이, 크방엘이 가지고 있던 본래의 강하고 의기양양 한 그 새를 닮은 눈빛이 변호사에게 가서 꽂혔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켰어요. 나는 저들의 미친 짓에 가담하지 않았습니다.”-p716
그는 자신이 이제 엽서를 놓는 데에 달인이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잡혀 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에 갇힌 동포들을 만난다. 같은 나라에서 태어난 독일인들이 서로를 체포하고 신문하고 죽였다. 그곳에 갇힌 이들은 박사님처럼 그냥 자신의 신념을 다른 나라에 이야기 했을 뿐임에도 잡혀 들어온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달리 보면 오토처럼 저항하는 이들이 모두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는 죽음앞에서 무력해지는 느낌이지만 재판을 받을 때도 게슈타포를 따르지 않고 그들을 욕하며 자신을 지킨다.
목사는 크방엘을 보지도 않고 문으로 향했다. 그러더니 다시 한 번 뒤돌아 크방엘을 힐끗 쳐다보더니 말했다. “마지막 가는 길에 이 말씀을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빌립보서 1장 21절 말씀입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p742
그리고 그곳에서도 도움의 손길이 임한다. 신실한 목사님은 갇힌 그들에게 한줄기 빛을 비추어 사람을 죽이러 들어온 허수아비같은 의사에게 사람을 살려줄 것을 강권한다. 그는 교도소를 관리하는 소장에게도 요구를 했고 이 모든 것이 관철되기 위해 머리를 썼다. 안나와 오토의 근황을 서로 전해주기도 했다. 그는 결국, 본인의 질병으로 인해 각혈을 했고 순교했다. 그리고 인간적인 간수로 인해 감옥생활이 편했던 안나의 간수도 바뀌고 그들은 죽음만을 기다리게 된다.
이 책에는 오토와 같이 살았던 보르크하우젠, 에노같은 돈만 있으면 신념과 사상을 버릴 수 있는 이들도 나온다. 그들은 얻고자 하는 것을 얻지도 못했고 그 시대에 발에 차이는 짱돌처럼 되었다. 하지만 보르크하우젠의 아들은 그러한 시대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 새 삶을 살게 된다. 시대가 아무리 암흑스러워도 한줄기 빛은 언제나 있는 것처럼 그는 그 시대에 자라나는 새싹이 된다. 희망이 된다.
읽으면서 시대가, 사람이 얼마나 잔인한가 생각해본다. 자신이 아닌 일에 모두가 둔감해질 수 있다지만 누군가를 향한 칼이 내게도 돌아올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대에서도 유대인 뿐 만아니라 독일인의 저항이 있었다. 이처럼 독일인 모두가 그것을 환영하고 바랬던 일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이것은 실화다. 한스 팔라다가 1945년 게슈타포의 서류를 통해 베를린에 산 한 부부가 반히틀러적인 구호를 엽서에 적어 배포하는 방식으로 외롭고 가망 없는 저항을 하다가 1943년 처형되었다. 이 작품은 영화와 TV드라마로도 만들어졌으며 한스팔라다의 가장 인상적이고 인기 있는 소설로 꼽힌다. 게다가 실화라는 사실이 요즘도 그와 같은 비슷한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준다.
“아니, 그래! 너는 그들의 행복을 빼앗고 있는 거야. 매일 수천 명이 총에 맞아 죽어가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으면, 사람들이 그렇게 죽어가는데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그것으로 너는 어머니에게서 아들을, 아내들에게서 남편을, 젊은 여자들에게서 애인을 빼앗고 있는거나 마찬가지야. 너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잖아. 그리고 나는 갈색 제복을 입고 설치는 나치들보다 어쩌면 네가 더 나쁘다고 생각해. 그놈들은 멍청해서 자기들이 얼마나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지 모른다고 쳐. 하지만 너는 히틀러가 아니라 내가 전쟁을 일으켰다고 했을거야.” - p426
그런데 이제 나무 조각들을 이리저리 옮기는 것이 행복 같은 것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체스를 하면 머리도 맑아졌고, 현명한 수를 놓고 나면 깊은 정직한 기쁨도 느껴졌다. 이기느냐 지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박사의 실수로 이긴 판에서 느끼는 기쁨보다는, 잘했지만 진판에서 느끼는 기쁨이 훨씬 더 크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p6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