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보우의 성
와다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들녘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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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를 통해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간서치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나리타 나가치카는 농민들에게 노보우, 속어로 얼간이, 바보라고 불린다. “노보우님!”하고 농부가 부르면 그는 그런 것에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 농사를 돕겠다고 한다. 그러면 농민들은 긴장한다. 그가 농사를 돕다가는 모내기를 다시 할 정도로 일을 제대로 못해 가만히 있기만을 바라는데, 자꾸만 그는 돕겠다고 한다. 덩치만 크고 운동도 못하고 말도 제대로 못하는 그가 1590년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시대에 뜻하지 않게 나리타가문의 오시성의 운명을 책임지는 총사령관이 된다.

 

하지만 얼간이는 사무라이도 아니고, 나리타 가문의 구성원도 아닌, 그저 한 사내로서 대답한 것이었다. 강한 자가 모욕하는데도 아양 떠는 표정을 짓는다면 그건 사내가 아니다. 강한 자의 모욕과 부당한 요구에 단호하게 아니라고 외칠 수 있는 남자를 용감한 사내라고 한다면 나가치카는 이 방 안에서 유일한 용사였다.

뭐라고?”

전쟁터에서 만나자고 했소이다.”

나가치카가 쏘아붙였다.

(156)

 

평소 결단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나가치카였다. 가문의 당주인 사촌 우지나가는 일찍이 히데요시에게 비밀리에 항복을 하였다. 그것을 마사이에는 몰랐지만 2만 명이 넘는 군사력을 보고는 겁에 질려 그들이 당연히 항복할 줄 알았다. 항복을 받으러 가는 것이 목적이지만 그러한 상황에서도 진정한 장부는 겸손하게 여의를 차려야 한다. 그러나 마사이에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자였기에 거드름을 피우며 그 자리에 갔다. 이는 마사이에의 행동을 예상한 같은 편 총사령관 미쓰나리의 전략이었다. 미쓰나리는 그러한 마사이에를 보고도 항복한다면 오시성은 장부가 없다고 생각했고 싸울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단바, 유키에, 이즈미등 가신들과 나가치카가 함께한 회의에서 상대편이 사람 수가 차이가 많아 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농민을 위해서도 항복하고 농민의 생사를 약속받기로 회의로 결정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결정을 뒤집고 나가치카만 유일하게 싸우겠다고 한 것이다. 이런 나카치카를 탓하던 무사들은 점차 나가치카의 자긍심에 감명받아 전략을 세우고 싸우기로 한다.

 

(우리가 도와주지 않으면 노보우 님은 아무것도 못해) (180)

 

수적으로 불리한 오시성은 농민들에게 병사로 함께 싸울 것을 권유한다. 그러나 2만 군사 앞에 오시성은 아주 작아 보이고 어차피 질 것 뻔한 싸움같아서 농민들은 싸우고 싶지 않아 한다. 그런데 노보우, 나가치카님이 싸우겠다고 했다니!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 어린 아기 같은 노보우님이 싸우겠다니. 그보다 나은 우리가 나서는 수밖에.’ 이러한 측은한 마음으로 농민들은 마음을 돌리고 무사로 싸우겠다고 전의를 불태운다.

 

성 밖 백성들도 모두 우리 편일세. 당연한 거 아니겠나?”

나가치카가 조용히 자신의 술책을 털어놓았다.

(이런 사나이가 바로.)

단바가 전율했다. 나가치카를 지켜보며 예감해왔던 장수로서의 그릇이 바로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사나이가 바로 명장이라는 건가?)

돌이켜보면 명장이란 사람이 좋고, 어수룩해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편안하게 대하지만, 평범한 이들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계략을 지닌 자를 일컫는 말이 아니었던가. 단바는 어린 시절부터 나가치카를 계속 지켜보았지만, 오늘처럼 이 사내가 두려웠던 적은 없었다.

(303)

 

위치적으로 오시성은 물과 논을 둘러싼 섬처럼 되어 있어 이 지형을 잘 아는 무사 단바, 유키에, 이즈미가 싸워 첫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다. 그러나 미쓰나리가 돈으로 농부들을 매수해 댐을 쌓아 오시성을 잠기게 하는데, 갑자기 나가치카는 상대편에 가서 논두렁 춤을 추겠다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나가치카는 춤을 추다 총을 맞아 쓰러진다. 목숨을 걸고 상대편 진영에 가서 왜 이러한 일을 벌이는지 알고 보니, 그는 상대편에 돌아선 농부의 마음을 얻고자 한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일본 역사를 바탕으로 한 역사소설로 다른 성은 일찍이 항복했지만 유일하게 끝까지 투쟁한 오시성의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역사에서도 가장 기이한 전투로 기록되어있다고 한다. 특히, 나가치카라는 인물은 외유내강형으로 겉으로 보기에는 어리숙한 바보 같지만 내면에는 치밀한 전략을 세워 적으로부터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수 있는 강함이 내포되어있었다. 그렇기에 유키에, 이즈미, 단바와 같은 자존심이 강한 무사들 사이에서도 겸손하게 자신을 낮춰 그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었고 농부들과도 친해 그들의 마음까지도 얻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들을 사랑했기에 이러한 전투를 할 결단을 한 것이다. 요즘 이러한 리더를 찾기가 어렵다. 리더십 부재된 이 시대에 나가치카의 리더십은 그만큼 귀감이 되는 것 같다.

 

미쓰나리는 나리타 나가치카라는 사내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어리석은 모습이 허풍 심한 가신들과 고집스러운 백성들 사이에서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만은 알 수 있었다.

이 오시 성은 무사와 백성들이 하나가 되어 있어.”

미쓰나리는 고개를 돌려 성을 돌아보았다.

애당초 이해득실로 맺어진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던 거지.” (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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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의 점심
엘리자베스 바드 지음, 오정아 옮김 / 노블마인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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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를 통해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간서치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반면 그웬달이 무슨 생각을 하는 지는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우리들은 나이는 비슷해도 완전히 다른 문화 속에서 살아왔다. 나는 세르주 갱스부르가 누군지 몰랐고, 그는 <조찬클럽>을 본 적도, 트윙키를 먹어본 적도 없었다. 레스토랑으로 오는 길에 지나친 스탈린그라드 역만 해도 그랬다. 역 앞을 지나면서 내가 물었다. “왜 파리의 지하철역에 공산주의국가 시절의 러시아 도시 이름을 붙인 거지?” (41)

 

저자 엘리자베스 바드는 저널리스트로 런던 학회에서 만난 프랑스 남자 그웬달과 만나 파리에서 점심이후로 그와의 사랑을 키워온다. 런던과 파리를 오가며 데이트를 하다 결국 결혼까지 이르게 된다. 그녀는 그 과정 모두를 맛있는 레시피와 함께 그려냈다.

 

우리는 길 한가운데 멈춰 서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이제 뭐 하고 싶어?” 근처 신문 가판대에 꽂힌 <파리스 매치>지 표지를 힐끗 보며 내가 물었다. 너하고 결혼하고 싶어.”평소와 다름없는 차분한 목소리로 그웬달이 대답했다. 영화를 보고 싶다거나 커피를 마시러 가자고 할 때와 똑같은 목소리로. (143)

 

매섭게 추웠던 아침, 가까운 곳으로 둘은 산책을 나갔다. 멋 부리기에는 너무나 추웠던 그 날, 그는 닳아빠진 스웨터와 청바지에 나이스 운동화를 신고 그녀에게 말했다. 결혼하자고. 그녀는 그의 눈 속에서 자신의 대한 마음과 확신을 보았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다가올 걱정보다는 그와의 함께할 날들에 대한 기대가 컸다. , 친구는 그웬달이 운동화를 신은 이야기를 전해 듣고 말했다. 그가 널 정말 사랑하는 것 같다고.

 

국제 연애의 큰 장점 가운데 하나는 두 사람이 다투게 되었을 때 본인이 과연 상대방에게 화가 난 것인지 그가 속한 문화에 화가 난 것인지 확실히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저 남자가 월요일 저녁 8시가 되도록 밴드에 다시 연락하는 일을 미룬 것이, 구제 불능인 게으름뱅이라서 그런 건가, 아니면 그냥 프랑스인이라서 그런 건가? 저 여자가 손님 명단과 일정표, 초대장을 봉할 왁스 색깔 등에 관해 질문을 퍼부어대며 나를 괴롭히는 것이, 광적인 완벽주의자라서 그런 건가, 아니면 그냥 미국인이라서 그런 건가? (175)

 

그녀는 빠르고 진취적이고 미국에서 살다 와서 많이 먹었고 그만큼 그를 사랑했다. 그런데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시어머니는 이를 보고 놀라워한다. 프랑스는 느리고 행복을 추구하고 적게 먹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서 그들이 사랑에 빠진 것도 놀랍지만 점차 사랑의 결실을 맺어 가기 위해 이렇게 서로의 부모님을 대면하는 것 또한 재밌었다.

 

무엇보다도 사랑이 있기에 그들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웬달과 함께 요리하는 엘리자베스는 프랑스요리의 맛에 푹 빠졌고 그와의 일상은 그녀를 프랑스와 결혼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결혼은 결혼뿐만이 아닌 프랑스문화와의 결혼이었고 유엔평화협정과도 같았다. 하지만 사랑은 세대와 나이와 문화를 초월하듯이 그들의 사랑은 미국와 프랑스의 결합이었다. 서로를 이해하는 시도의 고리였다.

 

그리고 파리도 있었다. 아름답지만 선뜻 곁을 내어주지 않는 도시. 나풀거리는 주름 장식과 그윽한 향기로 상대를 실컷 유혹하고는 작별의 키스도 없이 홀연히 사라지는 소녀와도 같은 도시다. 나는 한 문화의 굳건히 닫힌 문 앞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나를 들여보내 줄지 어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니 그웬달만 받아들인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파리라는 도시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다. (1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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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큐에게 물어라
야마모토 겐이치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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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티백 차가 아닌 찻잎으로 우려낸 차를 우연히 마신 적이 있다. 그 순간 왜 다도를 말하는 지 알 것 같았다. 시중에 나온 차가 아닌 잎으로 우려내어 시간을 둔 차의 맛은 정말 달았다. 시간을 들여 찻잎을 우려낸다는 것에서 이렇게 차이가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그때부터였을까. 다도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다. 한편, 영화<리큐에게 물어라>는 클라라가 출연한 것으로도 유명세를 탔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개봉되지 않았다. 내용을 알면 알수록 원작 소설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무엇보다 언젠가 배우고 싶었던 다도를 다루고 있지 아니한가.

 

그 사내는 특히 아름다운 것에 관해서는 실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괘씸했다. 도구를 보는 안목을 비롯해, 그 사내의 장식은 그저 훌륭하다 할 수밖에 없었다. 천하제일의 다인茶人이었다. 그 사내가 물항아리나 차통을 놓는 위치를 다다미의 눈금 하나만큼 바꾸기만 해도 행다行茶의 자리에 의연한 정취가 생겨났다. 공기가 긴장되고 대단히 기분 좋았다. 얄밉게도 그러면서 긴장의 도가 지나치는 일은 결코 없었고 답답하지도 않았다. 절묘한 안배를 아는 것은 틀림없었다. 다른 다두들은 그렇게 못했다. (32)

 

센 리큐는 다구상인이자 다도명인으로 천하의 통치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옆에서 차를 따르는 다두였다. 그의 다도는 다실을 맞은편 사람의 무릎이 닿을 정도로 좁게 만들만큼 청빈하지만 아름다움에 있어 돈을 아끼지 않았다. 다구는 놀랄 만큼 비쌌고 그는 다실을 꾸미기 위해 족자와 꽃 한 송이나 가지를 꺾어 놓았는데 누가 봐도 탄성을 지를 정도로 창의적이고 전략적이며 멋지게 꾸며 놓았다. 게다가 사람의 마음까지 읽어, 만나는 사람에 맞춰 차와 함께 먹을 음식, 다실에 맞는 장식, 다실 장소까지도 다르게 해 리큐를 만나는 사람마다 그의 편안함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이렇게 똑똑하며 아름다운 것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올곧은 마음까지 겸비해 주변에서 존경하는 이가 넘쳐나는 리큐는 히데요시의 마음에 거슬렸다.

 

히데요시가 리큐를 보았다.

너는 뭐라 보았느냐. 그저 차를 마시는 것뿐인데 왜 이리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느냐. 사람은 어찌하여 차에 푹 빠지는 것이냐.”

리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리큐를 주시했다.

차가 사람을 죽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색하고 중얼거렸다. (287)

 

솔밭에 차를 좋아하면 신분을 떠나 누구나 다구를 들고 차를 마시러 올 수 있게 했다. 그러자 가난한 자는 가난한 대로 부유한 자는 그대로 다구를 들고 나와 차를 만들어 오는 이마다 신분을 초월해 차를 나누어 마셨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차에 열광하며 이들이 한 자리에 온 이유를 묻자 리큐는 차가 사람을 죽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자 내 안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차 끊이는 소리를 들으면 그 소리에 마음이 놓인다. 따뜻한 차를 두 손에 들고 호호 불어가며 마시면 속이 데워진다. 모르는 사람과도 차 한 잔에 웃음이 날 수 있다. 화가 나도 차를 마시면 내 안의 화가 죽어간다. 죽는다는 의미는 여러 가지겠지만 지금도 사람들이 녹차와 홍차, 커피에 휴식을 느낀다는 것만큼은 이때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책은 리큐가 죽기 전부터 시대를 거슬러 젊었던 그에게 영향을 주었던 여인에게 이르기까지 보여준다. 게다가 리큐의 다도뿐만 아니라 히데요시의 황금다실, 주변 인물들의 다도 등 다양한 형태의 다도의 향연을 보는 것만 같아 즐겁기도 하다. 그의 내면을 알아본 히데요시는 그를 매번 시기하고 시험하려 들지만 그때마다 그는 겸손히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언제나 충심을 다한다. 그랬던 그가 히데요시한테 양보하지 못한 녹색 향합, 그것을 빌미로 그를 사로잡는 히데요시 앞에 그 존재조차 부정하는 리큐의 마음이, 끝으로 갈수록 두 번 우린 녹차처럼 잊지 못한 이에 대한 그리움이 진하게 느껴졌다.

 

네 차는 관능적이고, 화려하고, 뭐랄까······· 그래, 미칠 듯한 사랑이라도 감추고 있는 것 같거든. 어떠냐. 내 눈은 못 속인다. 너는 그 나이가 되어서도 웬 계집에 대한 사랑 때문에 미쳐 죽을 것처럼 애태우고 있지? 그렇지 않으면 이리도 수명이 줄어들 정도의 다도는 하지 못할 것이야.”

리큐는 침묵했다. 히데요시의 눈이 리큐를 꼼짝 않고 내려다보았다. (292)

 

 

 

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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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주인
레지 드 사 모레이라 지음, 이희정 옮김 / 예담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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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를 통해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간서치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책에 관련된 일을 한번쯤 꿈꿔봤을 것이다. 특히, 책방 주인을 소원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책을 파는 책방 주인이라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그런데 책 속 책방 주인은 자신이 읽어 본 책만 파는 사람으로 평소 알던 책방 주인들과는 전혀 다른 책방 주인이었다.

 

책방 주인은 쓰레기 같은 책은 절대 팔지 않았다.

쓰레기 같다는 건 누가 결정하죠?”

가끔 이렇게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었고 개중에는 대뜸 자신을 납득시켜보라고 고집을 부리는 이들도 있었다. (21)

 

책이라는 형태를 갖추었다고 해서 다 같은 책이 아니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모호해지고 독창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다시 펴보고 싶지도 않을 것 같은 책들이 넘쳐나는 시대에서 진정한 책 한권을 갖기는 너무나 어려워 보인다. 책방주인은 자신의 기준에 따라 쓰레기를 책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시비를 거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분명 내면에 쓰레기라는 것을 상대방도 아는 눈치였다. 쓰레기 같은 책을 팔지 않는 것이 그의 신념과도 같아 보여 이러한 책방 주인이 있다면 그의 취향을 신뢰하고 그 책방의 책을 모두 읽어볼 수 있기를 바랄 것만 같았다.

 

그는 책을 읽다가 형제나 누이 중 누구라도 봤으면 하는 페이지가 있으면 주저 없이 뜯어서 당사자에게 보냈다.

아무런 설명 없이.

그런 다음 페이지를 뜯어낸 책을 가지고 달팽이 계단을 올라가 서가 없이 책만 쌓아둔 방에 두었다. (27)

 

책을 읽다 좋은 문장이 나오면 소유하고 싶어진다. 그럴 때 띠지로 표시를 해두고 나중에 노트에 옮겨 적곤 한다. 그런데 기록하는 속도보다 읽는 속도가 빨라 띠지를 여기저기 붙인 책들이 쌓여있다. 책방 주인은 이렇게 하지 않았다. 자신의 책의 그 문장이 있는 부분을 뜯어냈다. (이렇게 쉬운 방법이 있다니!) 뜯어낸 책은 팔지 않고 따로 모아 소장하였다. 그만큼 그에게는 뜯어낸 문장과 책이 가치가 있었으리라. 그는 언젠가 자신이 죽으면 형제들에게 보낸 뜯어낸 페이지를 모아 자신의 책으로 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문장을 소유하고 싶을 만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이라 여겨져 무한히 공감되었다.

 

책방 주인은 닫힌 책방 앞에 서 있는 손님을 상상하면 마음이 울적해지고 왠지 모를 책임감이 들어 책방 주인이 되었다. 책방 주인이 될 정도로 책을 좋아해 친구들 사이에서 이러한 점이 이야기 거리가 되자 친구들과 멀어졌다. 가족들도 독립과 결혼으로 멀어졌고 어쩌면 그에게 오로지 남은 것은 책이었다. 책이 위안이자 그에게 가장 행복한 상상을 부르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의 책방은 36524시간 열려 있다. 그것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이자 자신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 아니었을까.

 

책방 주인의 책방은 밤낮으로, 1365, 일주일 내내, 24시간 동안, 쉼 없이 열려 있었다. 책방 주인은 문 앞에 아예 열려 있음이라는 문구를 페인트로 지워지지 않게 적어놓았다.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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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오스트레일리아
하워드 앤더슨 지음, 정해영 옮김 / 민음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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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를 통해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간서치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지금의 삶에 얼마나 만족할까? 오리너구리 앨버트는 애들레이드 동물원에서 탈출했다. 어떻게 보면 익숙한 일상에 대한 안녕이었다. 사막어딘가에 올드 오스트레일리아가 아직도 존재하는 곳, 북쪽으로 계속 가다 보면 나오는 곳, 약속의 땅, 그곳을 앨버트는 꿈꾸게 되었다. 그리고 탈출을 기다렸고 빈 음료수병 하나 들고 떠난 것이다. 거기서 가져온 빈 음료병이 앨버트의 수통이 되어 사막에서 겨우 물을 마실 수 있었다. 점차 배고픔으로 그의 시야를 흐려지고 물은 거의 바닥이 난다. 그런데 어디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일주일 전 앨버트는 그 많은 목적과 계획에도 불구하고 그저 무기력한 오리너구리일 뿐이었다. 이제 동물원은 그에게서 한참 멀어졌다. 그는 친구를 사귀었다. 그리고 애들레이드를 떠날 때보다 더 많은 물과 먹을 것이 수중에 있었다. 게다가 그는 아직 살아 있었다. 그 모든 것이 그가 기대한 것 이상이었고, 그것은 하나의 작은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76)

 

앨버트는 노랫소리를 통해 웜뱃 잭을 만났다. 잭은 정어리 통조림과 차도 가득 주었다. 게다가 함께 길을 떠나게 되었다. 폰스비 광업소에서 앨버트는 게임에서 연이어 운이 좋아 많은 돈을 따게 되자 다른 동물들에게 표적이 되고 만다. 잭은 폰스비 광업소에 불을 지르고 앨버트는 사막의 무법자로 오해 받아 추적을 당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물도 넉넉했고 잭이라는 웜뱃 친구도 생겼고 잭을 통해 사막을 배우며 진정한 자유를 느끼게 된다.

 

어떤 면에서 그는 다른 동물을 살상하는 행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스스로도 누군가를 죽인 적이 있지만, 좋건 나쁘건 그렇게 한 것에 대한 이유를 댈 수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이용하는 물을 죽이는 행위에서는 어떤 이유도 찾을 수 없었다. 샘은 중립적이고, 물을 마시러 오는 누구에게나, 심지어 물을 오염시킨 자에게도 생명을 제공한다. 샘을 죽이는 행위에는 어떤 분노도 격정도 없고, 미래를 죽이려는 욕망만 있을 뿐이다. (224)

 

잭과 헤어져 길을 떠나는 도중 사기꾼 왈라비 시어도어와 주머니쥐 버트럼을 만나 가진 것을 다 빼앗긴다. 하지만 앨버트의 감추어진 무기로 그들을 제압하고 그곳에서 너구리 TJ 만나 친구가 되고 또다시 길을 같이 떠난다. 시어도어와 버트럼에 폰즈비의 주인 오할린까지 합세해 앨버트를 아주 못된 사람으로 소문을 내고 그들은 보안관이 되어 그를 죽이기로 하고 물까지 오염시킨다.

 

앨버트는 동물원을 탈출해 그의 이상향인 올드 오스트레일리아를 찾아 떠나 세상과 부딪치면서 삶을 개척하게 되고 자유와 함께 책임져야 하는 일들이 생겼다. 하지만 그 유명한 태즈메이니아 데빌 멀둔까지 올드 오스트레일리아에 대해 들어는 봤지 보지는 못했다고 했다. 책을 끝까지 읽으면서 결국, 올드 오스트레일리아를 찾아 떠나 만나는 모든 사건과 친구들을 통해 앨버트가 성장하면서 그가 있는 곳 어디든지 올드 오스트레일리아가 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앨버트는 잭이 웜뱃들에 대해 들려준 말을 떠올렸다. 그들은 똑같은 날이 끝없이 반복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동물원에서의 삶은 똑같은 날들의 끝없는 반복이었다. 앨버트는 자신의 탈출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진정으로 자신이 속한 땅을 찾으려는 시도일 뿐 아니라 변화를 향한 욕구의 발로였음을 깨달아 가고 있었다.(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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