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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얼룩진 교과서 2
모모세 시노부 지음, 한성례 옮김, 사카모토 유지 극본 / 느낌이있는책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 출판사를 통해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간서치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몸이 편찮은 선생님을 대신 해 가지 고헤이선생님이 교실에 오셨다. 그는 아무것도 몰랐다. 텔레비전에 비춘 선생님의 형상, 아이들을 인도하는 멋진 선생님, 밝은 아이들 그것만이 그의 이상이었고 또 그럴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만난 아이들의 맥빠지게도 너무나 조용했다. 처음으로 출석을 불렀다. “아이자와”하고 이름을 불렀는데 대답하지 않는 아이. 그 아이는 모두에게 있는 듯 없는 듯한 아이였다. 창가에 고개를 숙이고 앉은 아이. 다가가 물었을 때 다자고짜 아이는 세상을 바꿀 수 있냐고 물어본다. 가지는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스럽지만 그것보다 ‘정말 고차원적인 생각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뿌듯해하며 ‘대답을 준비해야겠다’라고 생각한다.
아이자와는 붕어빵을 사들고 변호사사무실로 쓰미키를 찾아간다. 쓰미키는 그런 아이자와를 모른척한다. 변호사인 그녀는 지금 집단따돌림을 당한 학생의 사건을 승산이 없기에 거절하고 나오는 길이다. 사무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이자와를 스쳐 지나간다. 그런데도 따라가는 아이자와.
이렇게 소설은 쓰미키의 영상, 가지의 영상을 번갈아 보여준다. 쓰미키와 가지의 교집합인 아이자와는 다음날 학교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다. 창문에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아무도 그 순간을 보지 못했다. 홀로 남은 교실에서 일어난 일이었던 것이다. 전날 자신에게 관심을 보인 가지 선생님이 좋았던지 다행이라면서 손에 쥐어주었던 아이자와의 열쇠. 그것은 물품보관함 열쇠였다. 달려가서 열어본 열쇠에는 아이자와의 가방. 그 안에는 욕설이 가득 쓰인 교과서등이 발견된다. 누가 봐도 집단따돌림의 흔적이다. 아이자와는 왕따였던 것이다. 쓰미키에게 그 사실을 알리니 쓰미키는 아이자와 아빠와 결혼했고 3개월정도 함께 살았었다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자신이 낳은 아이는 아니었지만 아이자와의 엄마였다고.
한편, 믿었던 교감선생님은 가지선생님 손에 들린 아이자와 가방을 숨기고 학교는 이 사실을 은폐하려고 한다. 아이자와의 죽음은 사고였고, 가해자는 없었다고. 하지만 쓰미키는 아이자와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학교가 집단따돌림을 은폐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하기 위해 홀로 외로운 싸움을 시작한다.
곧 학교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빈자리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한사람이 죽어도 세상은 변함없이 돌아간다는 것을 입증하듯 집단따돌림 당하는 아이가 없어져서 다른 아이가 또 그 자리를 대신해 따돌림을 당하기 시작한다. 다음 대상자인 포에게 길 잃은 고양이를 부탁하는 등 처치 곤란한 부탁을 해댄다. 그럴때마다 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홀로 길을 헤맨다. 가지선생님은 쓰미키와 함께 의기투합해서 진실을 파헤치겠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를 모두 나쁜 사람으로 보시는 거냐면서 울먹거리는 반 아이를 보니 가지는 학교를 지켜야겠다는 방향으로 뜻을 돌린다. 소수를 버리고 다수를 택한 것이다. 시간이 가면서 다들 그 사실을 잊어가지만, 쓰미키만이 법원에 소장을 내고 조사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하나씩 퍼즐 한 조각 한 조각에 다가간다. 점차 놀라운 사실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교실안의 이야기 모두를 안다. 드라마 <2013 학교>에서처럼 가출한 아이가 어디 있는지 선생님은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은 모두가 알고 있다. 집단따돌림이 있었는지 누가 누구를 따돌림하고 있는지. 교실의 상황은 학생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선생님만이 모르고 있다. 그 사실을 알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교실뿐만 아니라 교무실까지도 여실히 몰래카메라처럼 보여준다. 가지가 아이자와에 대해 알고자 하면 할수록 교무실 분위기는 어두워지고 임시교사인 가지의 입지는 더욱더 좁아진다. 게다가 가지도 왕따를 당한다. 아무도 자신이 왔음에도 가지란 사람은 없다는 듯이 대꾸도 안하고 일만 많이 시킨다. 곧 그는 존재감 없는 사람으로 살다 몸과 마음이 지쳐버린다.
학교와 마찬가지로 어른들 사이에도 왕따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학교의 경우에는 학교를 안다닐 수도 있다. 그 방안을 우리는 도대체 왜 생각해보지 않는가? 전학을 가서 새롭게 시작할 수도 있고 가정학습으로 검정고시를 보고 중고등학교 과정을 통과해도 된다. 그것이 죽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길을 간다고 해도 견딜 수 없는 학교생활이라면 포기하는 편이 낫다.
아이들은 말할 수 없는 비밀들을 안고 산다. 그것은 좋은 것일 수도 있고 안 좋은 것일 수도 있다. 아이들의 세상은 학교라는 테두리에서 아주 작디작다. 어른이 된 나는 ‘학교생활은 정말 껌이었어.’ 할 정도로 사회생활은 더 봐주는 것 없이 차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그 속에서 죽어가고 있다. 그것은 누군가 괴롭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소수일수도 있고 다수일 수도 있다. 그리고 가정사일 수도 있다. 괴롭힘을 하는 아이들 대다수가 가정사일 경우가 많다. 그 아이들을 우리가 보듬어야 한다. 가정을 치료해야 한다. 괴롭힘으로 아파하는 아이들을 알아봐야 한다. 아이들이 보내는 신호를 우리를 알아봐야 한다. 하지만 예상도 못한 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부모들은, 바쁜 부모들은 그 신호를 알아차리기가 힘들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우리의 자식이고 동생이고 학생이고 미래이지 않는가.
아이자와의 죽음의 진실에 다가갈수록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내게도 학교가 가기 싫었던 시기가 있었다. 나는 전학생이었고 그러기에 왕따가 되기도 쉬웠다. 그 시간들을 견뎠던 것은 언젠가 끝날 것이라는 희망과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그런 희망과 미래는 보이지 않고 당장에 내일 학교 갈 걱정으로 밤을 지샜을 가능성이 높다. 괴롭힘을 당하기도 하고 당하는 사람을 지켜보기도 했었다. 내 마음에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과 함께 ‘내 일이 아니었기에 모른척했던 순간들이 없었을까?’하고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래, 있었다. 고개 숙이고 다니던 아이. 아이들이 냄새가 난다면서 슬슬 피하던 아이. 좋은 물건을 가지고 와도 한 번도 화제가 되지 못했던 아이. 그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에게는 따돌림은 마치 당연한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같이 이야기 하면 나도 똑같이 될까봐 두려웠던 적이 있었다. 그녀가 내게 손을 내밀었던가. 말을 걸어왔던가. 기억은 희미하지만 또렷한 건 나도 두려워했던 것이다.
이유 없이 누군가를 욕하고 괴롭힐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그저 무언가를 트집 잡고 괴롭히기 시작한 아이들의 병이 있을 뿐이다. 고로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나 괴롭힘으로 자신을 헤치는 아이나 모두가 불쌍한 것이다. 그 아이들을 안아줄 선생님이 필요하다. 지금 세상에서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아이들은 반대항으로 피구에서 이기면, 문학과목에서 반경쟁에서 일등을 하면, 다른 선생님에게 억울하게 혼나면. 떠오르는 건, 선생님, 특히 담임선생님이다. 담탱이라고 부르면서 낮출지라도 아이들에게는 담임선생님의 마음의 자리가 생긴다. 좋은 안 좋든 부대끼며 같이 지낸 1년은 그 시간 속에서 아로새겨지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아이들과 선생님 모두가 소통이 필요하다. 초등학교때 선생님은 일부러 단체로 할 수 있는 놀이로 아이들과 어울려 놀면서 파악하셨다. 놀면서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날려보내기도 하였다. 그리고 같은 팀이 되기도 해서 응원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같이 닉네임을 나누고 그것으로 이름보다 자신의 성격을 대변하기도 한다. 그 시간들을 떠올리면 치유의 시간이 아니었을까. 지금도 죽어가는 아이들은 많다. 학업, 가정사, 괴롭힘으로 쓰러져 가는 아이들을 살리는 것은 친구, 선생님, 부모님이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네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작은 관심이 아닐까.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들은 그 사실을 숨깁니다. 끝까지 마음속에 감춰두고 있죠. 하지만 그게 쌓이고 쌓여서 결국 특정한 증상으로 몸에 나타나지요. 두통, 복통, 구역질, 설사, 권태감, 현기증, 불면증, 악몽, 흔히 이런 증상을 겪습니다.” - 1권 p13
“당사자는 말하지 못해요. 옆에서 알아채줘야 합니다.”- 1권 p14
내가 왜.......쓰미키는 투덜거리면서 화장실 문을 열었다. 아이자와는 세면대에서 손을 닦고 있었다. 뭐야. 별일 없잖아. 손에 들고 있던 코트에 팔을 끼우며 계산을 마치고 돌아선 순간 쓰미키는 아이자와가 매우 집요하게 손을 씻고 있음을 알아챘다. 손이 새빨개졌는데도 계속 북북 문질러대고 있었다. - 1권 p37
“방과 후 활동을 선택하지 못해서 의기소침해진 저를 챙겨주신 분이 그 선생님이셨어요. 아버지가 병으로 쓰러지셨을 때도 가장 먼저 신경써주셨죠. 졸업할 때 저희들과 함께 울어준 분도 그 선생님뿐이었단 말입니다. 수업 내용이 기억에 남는 게 아닙니다. 칠판에 판서하느라 분필가루로 범벅이 된 선생님의 등을 잊지 못해요. 바로 그게 배움이라고 전 믿고 있습니다.”-1권 p129
“사람이 죽었는데 아무도 상처를 받지 않았습니다. 학생이 죽었는데도 교사나 학생 누구 하나 상처받은 사람이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1권 p197
“내 신발을 갖다버린 스도는 슈크림 빵만 보면 토하는 버릇이 있어요. 어릴 적에 엄마가 집에 안 들어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슈크림 빵이 식탁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래요. 내 책상에 쓰레기를 넣는 야마니시는 여자아이들 중에서 제일 공부를 잘하는데 가끔 컴퍼스로 자기 허벅지를 찌르는 버릇이 있어요.”
“누군가를 괴롭히지 않고는 하루도 살아가지 못해요. 불쌍하죠. 그런데 말예요. 지쳐버렸어요. 이제 겨우 열네 살인데 나 벌써 너무 지치는 거 있죠.” -2권 p134
“아이자와가 1학년 때였습니다. 3월이 끝나갈 무렵이었죠. 수업을 마치고 하굣길에 우연히 아이자와와 마주쳤습니다. 아이자와는 당시 신발을 신고 있지 않았습니다.”- 2권 p174
“질문 자체가 틀렸습니다. 사람은 세상을 바꿉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것만으로 세상은 계속 바뀐다고 생각합니다.”-2권 p269
여기에 와서 비로소 깨달았어. 난 외톨이가 아니라는 걸. 여기에는 여덟 살 적 내가 있어. 나에게는 여덟 살이었던 내가 있고, 열 세 살 이었던 내가 있어. 언젠가는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되고 여든 살이 될 내가 있어. 내가 여기서 멈춘다면 내일의 내가 슬퍼할 거야. 어제의 내가 슬퍼할 거야. 내가 살아야 할 날은 오늘만이 아니야. 어제와 오늘. 내일을 사는 거야. 그러니까 아이자와, 죽으면 안 돼. 살아야 해. - 2권 p2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