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하는 책읽기 - 나를 다독여주고 보듬어주세요
서유경 지음 / 리더북스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 저자를 통해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간서치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친구에게도 말 못하는 고민이 있다. 하느님만 아시는 아주 내면적인 고민들 말이다. 그런데 책에서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실제로 만나면 이렇게 진솔한 이야기를 듣지 못할 지도 몰라라고 생각하는 책 속 사람들을 만나면 내 문제는 아주 사소한 것이 되어버린다. 그러면 어른임에도 한 뼘 더 자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저자는 윤대령의 단편소설 <보리>에서 부적절한 관계로 시작된 수경의 사랑이 커져가 7년까지 이어졌지만 결국, 수경은 유방암에 걸리고 이별을 말한다. 그는 수경을 보리라 부르며 그녀에게 혼자 살 수 있는 생활비를 보내고 자신이 만나고 싶을 때만 그녀를 찾아왔지만 이젠 수경이 병들어 이 관계를 끝낼 수밖에 없다. 유방암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이별을 말할 때 화를 내면서 보리, 보리!”를 외치는 그 때문에 혼자 살아갈 결심을 하게 된다.

 

사랑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게 우리네 생은 아닐까. 사랑이 지나간 후에야 비로소 그게 사랑이었음을 알게 되는 게 우리네 생은 아닐까. -p50

 

소설에는 다양한 사랑이 나온다. 연상연하커플, 소심한 커플, 인터넷채팅으로 만나 사랑하게 된 사람들 그런데 결국, 사랑하는 모습, 이별하는 모습은 모두가 같은 모습이 아닐까. 사랑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결국, 사랑했고, 이별했지만 아직 내 마음은 끝나지 않았고 그게 사랑이 아닐까. 게다가 내가 사랑이라 말하지 않았지만 곧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될 때도 있다. 안타깝게도 특히, 이별 후에는 내 삶에 당신이 얼마나 많은 부분을 차지했는지를 떠나고 나서야 알게 된다. 후회해봤자 당신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저 먼 곳에 간 후였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 내 이별이 나만의 특별한 이별도 아니었고, 오직 나만이 이별 후를 후회하고 있지 않을 것임을, 외롭지 않음을 알게 되어 위로가 되는 것이 아닐까.

 

 

정미경의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라는 소설이 있다. 위층 남자와 아래층 여자가 서로의 외로움을 알아보고는 깊이 알려고 하지 않고 상처를 보듬어 주는 관계에만 치중한다. 제약회사에 다니는 남자는 다국적 기업에서 일하지만 외국출장을 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외국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인터넷에서 본 외국이야기를 말한다. , 발칸의 장미라며 장미꽃을 건넨다.

 

일상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어디론가 떠나는 일만이 여행은 아닐 것이다. 이렇듯 소설을 읽으며 경험하지 못한 삶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 여행은 아닐까. 누구도 알지 못하는 무궁무진한 인생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인지도 모른다.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이는 날, 나를 아는 이가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나고 싶은 날, 책으로의 여행은 또 다른 즐거움을 안겨줄 것이다. -p200

 

그냥 장미일지 알면서도 멋진 외국이름이 앞에 붙으면 좀 더 세련된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외국에서 나를 위해 사온 선물이라면 어떨까. 그리고 여행이라는 게 비단 비행기를 타고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듣는 것도 상대방의 인생여행을 하는 것이다. 책도 그러하지 않을까. 청정지역의 오지를 다녀온 사람들이 쓴 글을 읽으면 숨조차 쉴 수 없는 꽉 막힌 전철에서도 마치 그곳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내게 <눈의 아이, 몽텐>이라는 책이 그러했다.

 

 

저자는 책을 읽으면서 내면의 치유를 얻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치유의 능력보다는 상처의 본질을 알게 해주는 지식적인 측면이 더 강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상처를 깨닫게 해주지만 내면의 치유는 책보다는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을 통해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하나의 수단으로서 책은 그 역할을 톡톡히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이 소중한 까닭은 전체가 우리나라의 소설로만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내가 접하지 않은 많은 우리나라 소설의 재발견 같았다. 그러므로 한국소설의 길잡이가 될 책을 찾고 있다면 <치유하는 책읽기>를 읽을 것을 권하고 싶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옷의 세계 - 조금 다른 시선, 조금 다른 생활
김소연 지음 / 마음산책 / 201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파랑을 좋아한다. 파아란 하늘, 짙은 파랑의 바다, 군청색에 가까운 비오기전 후의 탁한 하늘, 싱그러웠던 너의 파란 모자, 심지어 파란색의 간판까지. <시옷의 세계>는 그런 파란 책이었다. 그리고 왠지 짙은 파랑을 간직한 것 같았다. 그것은 비밀, 나에게만 속삭여줄 것 같은 비밀을 간직한 것처럼 다양한 시옷으로 가득 찬 책표지는 다양한 파랑처럼 느껴졌다. <시옷의 세계>는 대체 내게 어떤 파랑을 보여줄까.

 

집에는 혼자 걸어 돌아왔다. 다른 길로 더 멀리 돌아서. 보이지 않는 빼곡한 별들을 생각하며 걸었다. 물고기가 그물을 찢고 달아나듯 별자리 이야기가 그물 같은 별자리를 찢고 밤하늘로부터 빠져나와, 이 지상으로 후두둑 떨어져 내리는 장면을 상상하며 걸었다. 나의 촘촘한 그물에 걸린 물고기들을 생각했다. 물고기의 힘찬 지느러미가 내 그물을 스스로 찢고 달아나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걸었지만, 날고 있다는 생각은 굴뚝같았다. 항상 다니던 길을 다르게 지나가보는 건 새 길을 걷는 것과 같았다. 칠기같던 밤하늘은 사기그릇처럼 푸르게 변해 있었다. 비는 더 내렸고, 나는 허름한 신발에서 발을 꺼내 찬물에 담갔다. 오늘 치의 길들이 다 담겨 있어선지 두 발은 배부른 모양을 하고 있었다. 처마 아래 화분을 하나하나 옮겼다. 비를 실컷 맞을 수 있는 곳으로, 쪼그리고 앉아, 소원이 도착하듯 화분에 내려앉는 빗방울 들을 골똘히 쳐다보았다. -p32

 

혼자 걷는 길, 지름길을 나두고 더 멀리 돌아돌아 걷는 길, 내게는 그 길은 언제나 무엇을 잊어야 할 때 택한 길이었다. 어머니의 한숨을 잊기 위해서, 그와 내가 이제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잊기 위해 또, 지난 일을 없었던 일로 하고 싶은 마음을 품고 나는 무작정 걸었다. 저자처럼 걷고 걸으면서 잊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간직하고 싶은 것인지 슬픈 것인지 두려웠던 것인지 골똘히 생각해보게 되었다. 지금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 당신을 붙잡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고, 내게 왜 그랬냐면서. 그런데 그 말은 혼잣말이라도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모든 것을 품고 걷고 걸어서 다 내버려질 때까지 그래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집에 돌아가고 싶을 때까지 걷고 또 걸었다.

 

힐난의 말은 현재진행형일 때 더욱더 고통이고, 사랑 가득한 말은 과거완료형일 때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이다. -p163

 

사랑을 알기 전에는 사랑에 가슴 아프다는 말이 이해가지 않았다. 가슴이 아파본 적이 없었다. 그 사람을 알기 전까지. 어느 날 그는 소리 없이 내 안에 들어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의 일방통행에 나는 조금씩 내 자신을 내어주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만나기도 전에 헤어졌다. 그것은 그와 나만이 아는 비밀. 주변사람은 아무도 몰랐다. 왜냐하면 내 마음속 그의 자리를 알았을 때는 이미 떠난 후였으니까. “사랑이 떠났다.” 그 말에 서글퍼졌다. 예전에는 알기 못했던 언어들이 내게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랑했었다.” 이 말은 붙이지도 못한 편지가 되어버렸다.

 

 

<시옷의세계>는 저자의 일상, 사랑, 친구, 투쟁, , 문장 그 모든 것이 담겨져 있었다. 처음에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에는 힘이 들었던 것인지 몸살을 앓아야 했다. 그럼에도 머리맡에 두고 고요한 겨울밤 한문장 한문장 읽으며 내안의 것들을 되새겨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몸살앓이를 했지만 이는 곧 사랑앓이임을 깨닫게 되었다. 문장, , 친구, 투쟁, 사랑하는 이와 함께 했던 순간들을 모두 사랑했다. 사랑했다라고 쓰고 마침표를 찍는 순간, 그 모든 감정은 잠그지 않은 수도꼭지처럼 새어나오고 터져 나왔다. 이제야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모든 순간들을 사랑했음을, 사랑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음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시락의 시간 - 도시락으로 만나는 가슴 따뜻한 인생 이야기
아베 나오미.아베 사토루 지음, 이은정 옮김 / 인디고(글담)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뷔페에 가면 다른 사람의 접시를 힐끔힐끔 보게 된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은 무엇을 펐는지, 내가 못 본 음식이 있는지, 저게 맛있나 하는 호기심을 가지고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람의 성향을 짐작해보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에 더 재미있는 책이 있다. <도시락의 시간>은 급식의 시대에 도시락적 아날로그감성을 지닌 사람들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지난번 유치원에 다니는 딸아이 도시락을 싸는 날 있었던 일이에요. 그냥 내 마음을 알아줄까 싶어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계란말이를 하트 모양으로 만들어서 딸 도시락에 넣었어요. 그랬더니 집에 돌아온 딸아이가 엄마!”도시락에 행복 모양이 들어 있었어요!“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 이후로는 딸아이 도시락에 꼭 하트 모양 계란말이를 넣어주고 있죠. -p39

 

이시이하루미씨는 말의 간호사이면서 체중을 측정하고 있다. 하지만 말의 체중을 측정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말은 동물이기에 가만히 있지 않는다. 움직이지 않는 순간을 포착해 체중을 재어야 한다. 이 일을 한지 3년이 된 그녀는 이제 도시락을 먹으며 그 일을 하고 있다. 그녀가 어릴 적 아버지는 농사꾼이었다. 휴농기가 되면 그녀의 아버지는 사슴을 잡으러 다녔다. 그때 싸가신 도시락을 남겨 오시면 동생과 함께 기다려서 먹곤 했다. , 그녀가 초등학교때 학교에서는 급식을 했지만 밥의 날이라고 해서 밥만 싸와야 하는 날도 있었다. 이런 날은 내게도 있었다. 그런데 밥만 싸오라고 했는데도 그녀의 밥에는 언제나 핑크색이었다. 어머니가 밥 위에 소시지를 잘게 썰어 올려놓으신 것이다. 선생님은 밥만 싸와야 한다면서 전화를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도 그 뒤로도 계속해서 그녀의 밥의 날의 밥은 언제나 핑크색이었다. 그건 아마도 소시지를 좋아하는 그녀를 사랑한 어머니처럼, 그녀도 자신이 딸의 계란을 비스듬히 잘라 하트로 만들 듯 딸에 대한 사랑이 아니었을 까. 아주 단순하지만 몰랐던 사실이기도 하다. 계란말이가 하트로 변신할 수도 있다는 사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도시락을 열었는데, 머리하고 꼬리가 달린 커다란 새우튀김이 떡 하니 들어 있는 거예요. 그걸 본 친구들이 ! 끝내준다!”하고 난리가 났었죠. 저희 아버지는 서프라이즈한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도시락이야 어머니가 싸주셨지만 아이디어 제공자는 아마 아버지였을 거예요. 아버지는 배 만드는 일 그만두고 어머니와 둘이서 조그만 민박을 시작했는데, 덕분에 도시락 반찬을 만들 식재료도 꽤 다양했습니다. -p56

 

수타면 장인 기타하라다카노리씨는 어릴적에 도시락에 있던 머리와 꼬리가 분리되지 않은 완전한 새우, 엄청나게 큰 소시지 반찬으로 반에서 영웅이 된다. 부모님은 도시락 하나로도 반아이들 사이에서 화제가 될 수 있음을 알고 일부러 마음을 쓴 것이다. 이를 배운 다카노씨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도시락을 싸줄 때 요즘식으로 신경을 쓴다. 재료를 점토처럼 빚어 키티인형을 보고 그대로 만든 키티도시락으로 아이들의 인기를 얻는다. 한편, 새벽4시에 일하는 사람이라 출근시간이 빨라 시간에 맞춰 도시락이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는 아내가 아이들과 함께 회사로 찾아와 도시락을 건네준다고 한다. 그러면 도시락은 한층 더 맛있다고 한다. 그건 어떤 맛일까. 궁금하기도 하지만 나도 훗날 그렇게 도시락을 싸들고 함께 회사근처에서 나들이 하듯 같이 밥 먹자고 하고 싶어진다. 그것은 가족이란 맛이 아닐까.

 

 

 

사진을 찍는다면 이쪽 옷이 좋을 것 같은데, 난 늘 같은 옷을 입어. 겨울에는 스웨터를 다섯 장씩이나 겹쳐서 입지. 전부 다 50년쯤 전에 산 옷들이야. 딸애들은 그만 입으라고 하지만 구멍이 난 것도 아니니까. 뭐든지 챙겨 두게 되더라고. 골동품 가게 같지? 벽에 붙어 있는 달력도 말이야. 그거 1993년도 달력이야. 남편이 죽은 해지. 사실 바꾸려고 해도 손도 안 닿고 은행이 주는 달력은 매년 그림이 비슷해서 딱히 새로울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잖아. 그래서 그냥 저대로 두는 거야.

이 나이가 되면 특별히 먹고 싶은 것도 없고 가지고 싶은 것도 없어. 딸들이 사주는 옷 역시 안 입고 싶은 건 안 입어. 사실 사는 게 그런 거지. -p209

 

어쩌면 남편이 죽은 해부터는 다음 해를 셀 필요가 없어진 건지도 모른다. 그게 그날 같고 전과 다를 것이 없는 나날들. 그렇지만 세월은 우리를 버려두고 간다. 그렇지만 어떻게 보면 달력은 특별하고 특이하게 디자인 된 것만 빼면 그게 다 그게 그거 같다. 그런데 이제는 인심이 사라졌는지 달력들은 얻어서 많이 집에 걸곤 했는데 이제는 그 달력들을 그냥 주지 않는다. 달력도 돈의 가치로 환산한 것인지 주는 사람은 없고 받고자 하는 사람만 많아졌다. 일부러 은행까지 와서 달력을 달라고 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굳이 달라고 해서 주는 것이지만 그리 달가워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인심이 없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할머니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 같다. 달력하나에도 욕심이 내지 않는 마음, 어차피 달력의 배경사진은 거기서 거기이다. 특별할 것이 없다. 인생이 그렇다. 그렇게 특별할 것이 없다. 사람 사는 것은 매 한가지다. 고민 없는 사람 없고 도시락을 안 싸본 사람도 없을 것이다.

 

누구나가 도시락의 추억이 있다. 우리 어머니는 김밥을 싫어하는 언니를 위해 김밥대신 참치김치볶음밥을 싸시곤 했다. 김밥처럼 밥의 형태가 있는 것이 아니기에 더욱더 싸기 어려웠을 텐데도 항상 호일로 꽁꽁 싸서 꼭 주먹밥처럼 싸주셨다. 내 초등학교 때는 급식이 처음 시작하는 시기였다. 한창 급식시설 건립을 위해서 학부모비를 모금하기도 했다. 지금의 초등학교 아이들은 거의 도시락이라는 것은 소풍갈 때만 하는 걸로 알겠지만 고학년에 되어서 급식을 먹기 전까지는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었다. 그때 당시 모든 어머니들의 고민은 내일 도시락 반찬은 무얼하지? 매일매일의 밥반찬을 고민하듯이 모든 어머니의 고민거리였다. 그래서 좀 더 맛있는 반찬이 있으면 도시락에 넣어달라고 조르기도 했고 반찬이 마음에 안 들면 집에 와서 투덜거리곤 했던 기억이 난다.

 

읽으면서 여러 직종의 사람들의 도시락이야기, 직장이야기등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한편으로는 모든 일본사람들이 도시락을 싸고 다니나 하고 생각하고서 여기는 급식을 안하나봐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이곳에서도 보통 급식을 하지만 저자는 도시락을 먹는 사람을 찾아 취재를 했던 것이다. 요즘 회사에서도 사내급식이 당연히 여겨지고 있는데 도시락이라니. 게다가 도시락도 사적인 영역이라 취재를 거절하는 이가 많아서 힘들었다고도 책에 쓰여 있다. 하지만 그래도 흔쾌히 동의해준 사람들이 여기에 적혀있다. 이 책은 그들의 책이다. 그들이 쓰여 졌기 때문이다. 나도 책에 실릴 영광이 있다면 내 스타일의 도시락을 공개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도시락을 촬영하고 싶다는 귀찮고 수상쩍은 부탁을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들어주었을까? 참 신기하다. 물론 거절도 많이 당했지만 좋아요. 오세요.”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꼭 있었다. 우리는 그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여전히 전국 방방곡곡을 돌고 있다. -p6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의 요리
하시모토 쓰무구 지음, 권남희 외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 출판사를 통해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간서치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낯선 사람과는 무언가를 먹는 다는 것에 긴장하기 쉽다. 못하는 젓가락질이 신경 쓰이고 마주한 식탁의 거리는 생각보다 가까워 밥 먹는 사이라고 하면 남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같이 만나 밥먹는 것이 익숙한 사이는 어느 정도 친하고 가까운 사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물일곱 알의 콩. 이만큼의 세월을 살고 세상 사람들이 성인이라고 여기는 입장이 되었는데도 생각하는 것은 고등학교때와 달라진 게 없지 않은 가. 마사코는 컵을 움직였다. 스물일곱 알의 콩이 흔들렸다.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냈다. -p38

 

스물일곱살의 시마자키는 동경하던 아카네 선배에게 나이만큼 콩을 받는다. 그것은 아직 볶지 않은 생콩이었다. 볶아서 먹으라는 말을 들었지만 해보지 않은 요리이기에 당황스럽기만 하다. 그런데 선배는 콩을 나누어주고는 가던 길도 돌아서서 요리방법을 모르면 연락하라고 말한다. 재차 확인했지만 선배는 모르면 전화하라며 신신당부를 한다. 그녀는 능력 있는 멋진 여성으로 대시하기에는 큰 산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먼저 콩으로 신호를 보내 준 것인지도 모른다. 시마자키는 고민하고 있다. 전화를 걸을까 말까. 그러다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면서 사랑일까.’하는 생각에 두근거리면서 전화연결음을 듣는다.

 

 

치즈루는 소리를 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입으로 가져갔다. 대충 만든 요리인데 맛있다. 그를 만날 일은 이제 없겠지만, 얼렁뚱땅 까르보나라는 계속 만들 것이다. 그때마다 생각날지도 모르겠다. 왠지 안타깝다. -p57

 

치즈루와 그의 연애를 모두가 반대했었다. 그만큼 모두의 염려를 사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런데 그가 만들어주었던 알려주었던 그의 레시피가 남아있다. 추억때문인지 맛때문인지 까르보나라를 그의 방식대로 만들고 있다. 그것은 몸으로 체득된 것이기에 머리로 잊는 것보다 더 오래 걸릴 것이다. 어쩌면 평생 치즈루와 함께 할 지도 모른다. 같이 식사했던 식당을 지날 때면 함께 했던 그때로 돌아가듯이 말이다.

 

 

 

처음 만들었는데 경단 만들기 꽤 재미있더라. 밀가루는 물에 넣으면 질척해지는데 찹쌀가루는 바슬바슬해져. 하지만 그걸 열심히 치대다 보니 부드러워지더라고.” 마치 가족.......아니, 사람과 사람의 관계 같지 않은가. 계속 치대는 동안 부드러워지는 것. -p260

 

회사의 남녀동기. 그 중 둘이 사귀더니 깨지고 나서는 셋이 서먹서먹해져버렸다. 그리고 회의때마다 반기를 드는 여자동기 때문에 화가 나지만 그들의 이별을 생각하면 그녀가 안쓰럽다. 그런데 오늘은 특별히 일찍 오라고 했었는데, 집에서는 어린 딸과 자신만을 기다리는 아내에게 미안해서 마음이 힘들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회의 때 그렇게 떽떽 거리더니 대신 야근을 해주겠다던 동기. 그녀가 있기에 힘든 사회생활에서 힘을 낼 수가 있다. 이 경단처럼 처음 만난 사람들은 친해지기 어렵지만 의견이 안 맞아 서로 다투기도 하고 서로의 습관을 알게 되고 즐거운 함께 한 시간들이 쌓이면서 서로에 대해 이해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비로소 이제야 서로가 서로를 이해했음을 깨닫게 된다.

 

문득 어머니의 요리가 떠오른다. 어머니 요리 중 두부두루치기를 좋아하는데 별것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조리는 시간도 있고 고춧가루를 아낌없이 써야 하는 일도 있다. 그래서 자주는 못해주시지만 내가 기분이 나쁠 때마다 기분을 풀어주시기 위해서 두부두루치기를 해주시곤 한다. 이제는 내가 두부두루치기를 만들 나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엄마의 음식이 언제나 그립다. 그 그립고도 음식안에서 만났던 추억들을 요리안에서 풀어내서 그런지 공감가는 면이 많았다. 읽으며 하루쯤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특별한 요리를 준비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들의 얼룩진 교과서 2
모모세 시노부 지음, 한성례 옮김, 사카모토 유지 극본 / 느낌이있는책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 출판사를 통해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간서치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몸이 편찮은 선생님을 대신 해 가지 고헤이선생님이 교실에 오셨다. 그는 아무것도 몰랐다. 텔레비전에 비춘 선생님의 형상, 아이들을 인도하는 멋진 선생님, 밝은 아이들 그것만이 그의 이상이었고 또 그럴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만난 아이들의 맥빠지게도 너무나 조용했다. 처음으로 출석을 불렀다. “아이자와하고 이름을 불렀는데 대답하지 않는 아이. 그 아이는 모두에게 있는 듯 없는 듯한 아이였다. 창가에 고개를 숙이고 앉은 아이. 다가가 물었을 때 다자고짜 아이는 세상을 바꿀 수 있냐고 물어본다. 가지는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스럽지만 그것보다 정말 고차원적인 생각을 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에 뿌듯해하며 대답을 준비해야겠다라고 생각한다.

 

아이자와는 붕어빵을 사들고 변호사사무실로 쓰미키를 찾아간다. 쓰미키는 그런 아이자와를 모른척한다. 변호사인 그녀는 지금 집단따돌림을 당한 학생의 사건을 승산이 없기에 거절하고 나오는 길이다. 사무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이자와를 스쳐 지나간다. 그런데도 따라가는 아이자와.

 

이렇게 소설은 쓰미키의 영상, 가지의 영상을 번갈아 보여준다. 쓰미키와 가지의 교집합인 아이자와는 다음날 학교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다. 창문에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아무도 그 순간을 보지 못했다. 홀로 남은 교실에서 일어난 일이었던 것이다. 전날 자신에게 관심을 보인 가지 선생님이 좋았던지 다행이라면서 손에 쥐어주었던 아이자와의 열쇠. 그것은 물품보관함 열쇠였다. 달려가서 열어본 열쇠에는 아이자와의 가방. 그 안에는 욕설이 가득 쓰인 교과서등이 발견된다. 누가 봐도 집단따돌림의 흔적이다. 아이자와는 왕따였던 것이다. 쓰미키에게 그 사실을 알리니 쓰미키는 아이자와 아빠와 결혼했고 3개월정도 함께 살았었다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자신이 낳은 아이는 아니었지만 아이자와의 엄마였다고.

 

한편, 믿었던 교감선생님은 가지선생님 손에 들린 아이자와 가방을 숨기고 학교는 이 사실을 은폐하려고 한다. 아이자와의 죽음은 사고였고, 가해자는 없었다고. 하지만 쓰미키는 아이자와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학교가 집단따돌림을 은폐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하기 위해 홀로 외로운 싸움을 시작한다.

 

곧 학교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빈자리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한사람이 죽어도 세상은 변함없이 돌아간다는 것을 입증하듯 집단따돌림 당하는 아이가 없어져서 다른 아이가 또 그 자리를 대신해 따돌림을 당하기 시작한다. 다음 대상자인 포에게 길 잃은 고양이를 부탁하는 등 처치 곤란한 부탁을 해댄다. 그럴때마다 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홀로 길을 헤맨다. 가지선생님은 쓰미키와 함께 의기투합해서 진실을 파헤치겠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를 모두 나쁜 사람으로 보시는 거냐면서 울먹거리는 반 아이를 보니 가지는 학교를 지켜야겠다는 방향으로 뜻을 돌린다. 소수를 버리고 다수를 택한 것이다. 시간이 가면서 다들 그 사실을 잊어가지만, 쓰미키만이 법원에 소장을 내고 조사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하나씩 퍼즐 한 조각 한 조각에 다가간다. 점차 놀라운 사실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교실안의 이야기 모두를 안다. 드라마 <2013 학교>에서처럼 가출한 아이가 어디 있는지 선생님은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은 모두가 알고 있다. 집단따돌림이 있었는지 누가 누구를 따돌림하고 있는지. 교실의 상황은 학생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선생님만이 모르고 있다. 그 사실을 알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교실뿐만 아니라 교무실까지도 여실히 몰래카메라처럼 보여준다. 가지가 아이자와에 대해 알고자 하면 할수록 교무실 분위기는 어두워지고 임시교사인 가지의 입지는 더욱더 좁아진다. 게다가 가지도 왕따를 당한다. 아무도 자신이 왔음에도 가지란 사람은 없다는 듯이 대꾸도 안하고 일만 많이 시킨다. 곧 그는 존재감 없는 사람으로 살다 몸과 마음이 지쳐버린다.

 

학교와 마찬가지로 어른들 사이에도 왕따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학교의 경우에는 학교를 안다닐 수도 있다. 그 방안을 우리는 도대체 왜 생각해보지 않는가? 전학을 가서 새롭게 시작할 수도 있고 가정학습으로 검정고시를 보고 중고등학교 과정을 통과해도 된다. 그것이 죽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길을 간다고 해도 견딜 수 없는 학교생활이라면 포기하는 편이 낫다.

 

아이들은 말할 수 없는 비밀들을 안고 산다. 그것은 좋은 것일 수도 있고 안 좋은 것일 수도 있다. 아이들의 세상은 학교라는 테두리에서 아주 작디작다. 어른이 된 나는 학교생활은 정말 껌이었어.’ 할 정도로 사회생활은 더 봐주는 것 없이 차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그 속에서 죽어가고 있다. 그것은 누군가 괴롭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소수일수도 있고 다수일 수도 있다. 그리고 가정사일 수도 있다. 괴롭힘을 하는 아이들 대다수가 가정사일 경우가 많다. 그 아이들을 우리가 보듬어야 한다. 가정을 치료해야 한다. 괴롭힘으로 아파하는 아이들을 알아봐야 한다. 아이들이 보내는 신호를 우리를 알아봐야 한다. 하지만 예상도 못한 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부모들은, 바쁜 부모들은 그 신호를 알아차리기가 힘들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우리의 자식이고 동생이고 학생이고 미래이지 않는가.

 

아이자와의 죽음의 진실에 다가갈수록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내게도 학교가 가기 싫었던 시기가 있었다. 나는 전학생이었고 그러기에 왕따가 되기도 쉬웠다. 그 시간들을 견뎠던 것은 언젠가 끝날 것이라는 희망과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그런 희망과 미래는 보이지 않고 당장에 내일 학교 갈 걱정으로 밤을 지샜을 가능성이 높다. 괴롭힘을 당하기도 하고 당하는 사람을 지켜보기도 했었다. 내 마음에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과 함께 내 일이 아니었기에 모른척했던 순간들이 없었을까?’하고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래, 있었다. 고개 숙이고 다니던 아이. 아이들이 냄새가 난다면서 슬슬 피하던 아이. 좋은 물건을 가지고 와도 한 번도 화제가 되지 못했던 아이. 그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에게는 따돌림은 마치 당연한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같이 이야기 하면 나도 똑같이 될까봐 두려웠던 적이 있었다. 그녀가 내게 손을 내밀었던가. 말을 걸어왔던가. 기억은 희미하지만 또렷한 건 나도 두려워했던 것이다.

 

이유 없이 누군가를 욕하고 괴롭힐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그저 무언가를 트집 잡고 괴롭히기 시작한 아이들의 병이 있을 뿐이다. 고로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나 괴롭힘으로 자신을 헤치는 아이나 모두가 불쌍한 것이다. 그 아이들을 안아줄 선생님이 필요하다. 지금 세상에서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아이들은 반대항으로 피구에서 이기면, 문학과목에서 반경쟁에서 일등을 하면, 다른 선생님에게 억울하게 혼나면. 떠오르는 건, 선생님, 특히 담임선생님이다. 담탱이라고 부르면서 낮출지라도 아이들에게는 담임선생님의 마음의 자리가 생긴다. 좋은 안 좋든 부대끼며 같이 지낸 1년은 그 시간 속에서 아로새겨지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아이들과 선생님 모두가 소통이 필요하다. 초등학교때 선생님은 일부러 단체로 할 수 있는 놀이로 아이들과 어울려 놀면서 파악하셨다. 놀면서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날려보내기도 하였다. 그리고 같은 팀이 되기도 해서 응원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같이 닉네임을 나누고 그것으로 이름보다 자신의 성격을 대변하기도 한다. 그 시간들을 떠올리면 치유의 시간이 아니었을까. 지금도 죽어가는 아이들은 많다. 학업, 가정사, 괴롭힘으로 쓰러져 가는 아이들을 살리는 것은 친구, 선생님, 부모님이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네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작은 관심이 아닐까.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들은 그 사실을 숨깁니다. 끝까지 마음속에 감춰두고 있죠. 하지만 그게 쌓이고 쌓여서 결국 특정한 증상으로 몸에 나타나지요. 두통, 복통, 구역질, 설사, 권태감, 현기증, 불면증, 악몽, 흔히 이런 증상을 겪습니다.” - 1p13

 

당사자는 말하지 못해요. 옆에서 알아채줘야 합니다.”- 1p14

 

내가 왜.......쓰미키는 투덜거리면서 화장실 문을 열었다. 아이자와는 세면대에서 손을 닦고 있었다. 뭐야. 별일 없잖아. 손에 들고 있던 코트에 팔을 끼우며 계산을 마치고 돌아선 순간 쓰미키는 아이자와가 매우 집요하게 손을 씻고 있음을 알아챘다. 손이 새빨개졌는데도 계속 북북 문질러대고 있었다. - 1p37

 

방과 후 활동을 선택하지 못해서 의기소침해진 저를 챙겨주신 분이 그 선생님이셨어요. 아버지가 병으로 쓰러지셨을 때도 가장 먼저 신경써주셨죠. 졸업할 때 저희들과 함께 울어준 분도 그 선생님뿐이었단 말입니다. 수업 내용이 기억에 남는 게 아닙니다. 칠판에 판서하느라 분필가루로 범벅이 된 선생님의 등을 잊지 못해요. 바로 그게 배움이라고 전 믿고 있습니다.”-1p129

 

사람이 죽었는데 아무도 상처를 받지 않았습니다. 학생이 죽었는데도 교사나 학생 누구 하나 상처받은 사람이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1p197

 

내 신발을 갖다버린 스도는 슈크림 빵만 보면 토하는 버릇이 있어요. 어릴 적에 엄마가 집에 안 들어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슈크림 빵이 식탁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래요. 내 책상에 쓰레기를 넣는 야마니시는 여자아이들 중에서 제일 공부를 잘하는데 가끔 컴퍼스로 자기 허벅지를 찌르는 버릇이 있어요.”

 

누군가를 괴롭히지 않고는 하루도 살아가지 못해요. 불쌍하죠. 그런데 말예요. 지쳐버렸어요. 이제 겨우 열네 살인데 나 벌써 너무 지치는 거 있죠.” -2p134

 

아이자와가 1학년 때였습니다. 3월이 끝나갈 무렵이었죠. 수업을 마치고 하굣길에 우연히 아이자와와 마주쳤습니다. 아이자와는 당시 신발을 신고 있지 않았습니다.”- 2p174

 

질문 자체가 틀렸습니다. 사람은 세상을 바꿉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것만으로 세상은 계속 바뀐다고 생각합니다.”-2p269

 

여기에 와서 비로소 깨달았어. 난 외톨이가 아니라는 걸. 여기에는 여덟 살 적 내가 있어. 나에게는 여덟 살이었던 내가 있고, 열 세 살 이었던 내가 있어. 언젠가는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되고 여든 살이 될 내가 있어. 내가 여기서 멈춘다면 내일의 내가 슬퍼할 거야. 어제의 내가 슬퍼할 거야. 내가 살아야 할 날은 오늘만이 아니야. 어제와 오늘. 내일을 사는 거야. 그러니까 아이자와, 죽으면 안 돼. 살아야 해. - 2p27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