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큐에게 물어라
야마모토 겐이치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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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티백 차가 아닌 찻잎으로 우려낸 차를 우연히 마신 적이 있다. 그 순간 왜 다도를 말하는 지 알 것 같았다. 시중에 나온 차가 아닌 잎으로 우려내어 시간을 둔 차의 맛은 정말 달았다. 시간을 들여 찻잎을 우려낸다는 것에서 이렇게 차이가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그때부터였을까. 다도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다. 한편, 영화<리큐에게 물어라>는 클라라가 출연한 것으로도 유명세를 탔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개봉되지 않았다. 내용을 알면 알수록 원작 소설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무엇보다 언젠가 배우고 싶었던 다도를 다루고 있지 아니한가.

 

그 사내는 특히 아름다운 것에 관해서는 실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괘씸했다. 도구를 보는 안목을 비롯해, 그 사내의 장식은 그저 훌륭하다 할 수밖에 없었다. 천하제일의 다인茶人이었다. 그 사내가 물항아리나 차통을 놓는 위치를 다다미의 눈금 하나만큼 바꾸기만 해도 행다行茶의 자리에 의연한 정취가 생겨났다. 공기가 긴장되고 대단히 기분 좋았다. 얄밉게도 그러면서 긴장의 도가 지나치는 일은 결코 없었고 답답하지도 않았다. 절묘한 안배를 아는 것은 틀림없었다. 다른 다두들은 그렇게 못했다. (32)

 

센 리큐는 다구상인이자 다도명인으로 천하의 통치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옆에서 차를 따르는 다두였다. 그의 다도는 다실을 맞은편 사람의 무릎이 닿을 정도로 좁게 만들만큼 청빈하지만 아름다움에 있어 돈을 아끼지 않았다. 다구는 놀랄 만큼 비쌌고 그는 다실을 꾸미기 위해 족자와 꽃 한 송이나 가지를 꺾어 놓았는데 누가 봐도 탄성을 지를 정도로 창의적이고 전략적이며 멋지게 꾸며 놓았다. 게다가 사람의 마음까지 읽어, 만나는 사람에 맞춰 차와 함께 먹을 음식, 다실에 맞는 장식, 다실 장소까지도 다르게 해 리큐를 만나는 사람마다 그의 편안함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이렇게 똑똑하며 아름다운 것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올곧은 마음까지 겸비해 주변에서 존경하는 이가 넘쳐나는 리큐는 히데요시의 마음에 거슬렸다.

 

히데요시가 리큐를 보았다.

너는 뭐라 보았느냐. 그저 차를 마시는 것뿐인데 왜 이리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느냐. 사람은 어찌하여 차에 푹 빠지는 것이냐.”

리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리큐를 주시했다.

차가 사람을 죽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색하고 중얼거렸다. (287)

 

솔밭에 차를 좋아하면 신분을 떠나 누구나 다구를 들고 차를 마시러 올 수 있게 했다. 그러자 가난한 자는 가난한 대로 부유한 자는 그대로 다구를 들고 나와 차를 만들어 오는 이마다 신분을 초월해 차를 나누어 마셨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차에 열광하며 이들이 한 자리에 온 이유를 묻자 리큐는 차가 사람을 죽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자 내 안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차 끊이는 소리를 들으면 그 소리에 마음이 놓인다. 따뜻한 차를 두 손에 들고 호호 불어가며 마시면 속이 데워진다. 모르는 사람과도 차 한 잔에 웃음이 날 수 있다. 화가 나도 차를 마시면 내 안의 화가 죽어간다. 죽는다는 의미는 여러 가지겠지만 지금도 사람들이 녹차와 홍차, 커피에 휴식을 느낀다는 것만큼은 이때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책은 리큐가 죽기 전부터 시대를 거슬러 젊었던 그에게 영향을 주었던 여인에게 이르기까지 보여준다. 게다가 리큐의 다도뿐만 아니라 히데요시의 황금다실, 주변 인물들의 다도 등 다양한 형태의 다도의 향연을 보는 것만 같아 즐겁기도 하다. 그의 내면을 알아본 히데요시는 그를 매번 시기하고 시험하려 들지만 그때마다 그는 겸손히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언제나 충심을 다한다. 그랬던 그가 히데요시한테 양보하지 못한 녹색 향합, 그것을 빌미로 그를 사로잡는 히데요시 앞에 그 존재조차 부정하는 리큐의 마음이, 끝으로 갈수록 두 번 우린 녹차처럼 잊지 못한 이에 대한 그리움이 진하게 느껴졌다.

 

네 차는 관능적이고, 화려하고, 뭐랄까······· 그래, 미칠 듯한 사랑이라도 감추고 있는 것 같거든. 어떠냐. 내 눈은 못 속인다. 너는 그 나이가 되어서도 웬 계집에 대한 사랑 때문에 미쳐 죽을 것처럼 애태우고 있지? 그렇지 않으면 이리도 수명이 줄어들 정도의 다도는 하지 못할 것이야.”

리큐는 침묵했다. 히데요시의 눈이 리큐를 꼼짝 않고 내려다보았다. (292)

 

 

 

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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