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 - 어느 여행자의 기억
변종모 글.사진 / 허밍버드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변종모 작가의 책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음식으로 여행 속에서 사람을 기억하는 것만큼 뚜렷한 것도 없지 않을까. 여행자에게 음식은 기억을 이끌어 내는 하나의 소재와도 같게 느껴졌다.

 

뜻하지 않게 떠난 여행일지도 모른다. 여행은 그렇게 느닷없다. 그러한 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우연 속에서 계산할 수 없는 확률을 가지고 만난 것일까. 그러한 사람들에게 생일 축하파티를 받을 줄은 그도 몰랐을 것이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풍경도 환타지스러운데 같이 생일을 챙겨주는 이들과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다면 얼마나 황홀할까 싶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일은 더 큰 행복으로 다가오는 법이다.

 

지구의 끝, 우수아이아로 가는 길에 만난 후지여관 아주머니. 그녀는 한국 사람이었다. 그녀는 그곳에 호수를 보고 남편과 함께 정착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도 모른 곳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그와 같은 이가 여관을 맡게 된다면 떠날 수 있을 것 같다는 그녀의 마음은 진심이 아닐까. 알지 못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지만 그만큼 비슷한 그를 알아본 것 같았다. 비슷한 사람끼리는 흐르는 공기부터가 다르니까. 알아볼 수 있으니까. 그녀가 떠나는 그에게 건네준 커피. 그것은 여행자와의 이별을 향한 그녀의 마음이었다. 작지만 정성이 들어간, 떠날 때에 타이밍을 딱 맞춘 커피. 그것이야말로 타국에서도 간직한 한국의 정은 아닐까.

 

볼리비아의 수크레, 그곳 사진관에 한국 라면이 있는 것을 보고 침을 꿀꺽 삼키고 들어갔는데 직원은 난데없이 기다리라고만 한다. 사장님을 불러야 한다면서. 사장님은 역시 한국인이었다. 수크레에는 한국인 가정이 딱 2집이라서 사장님은 같은 나라 사람만 봐도 좋았던 것이다. 그는 한국인의 정을 수크레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그곳에서 대접받은 감자탕 맛은 어떠했을까.

 

꼭 여행이 아니라도 회사밖에 나가서 낯선 곳에서 만나는 회사사람조차도 반갑다. 낯선 곳에 나가면 아는 사람만 봐도 그 주변 환경이 조금은 다른, 조금은 안도된듯한 느낌에 쌓인다. 그런데 타국에서 만나는 한국인이란 그런 만남이 아니었을까.

 

여행은 아름다운 환경보다도 어쩌면 내면을 들여다볼 시간을 마련해주는 것 같다. 평소처럼 집에 있다면 친구를 만나고 텔레비전을 보고 책도 읽고 하면서 나름 시간을 보낼 방법이 있다. 하지만 여행지에서는 책도 멀리하게 되고 주변 풍경과 곁에 있는 사람에 집중하게 된다. 나의 신변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나와 만나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리고 돌아보게 된다. 사람은 홀로 사는 것이고 또, 원래 외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저자의 책은 이병률시인의 여행 책과도 닮아 있었다. 그와 저자는 여행 책이라기보다는 에세이에 가깝다. 그 점이 더욱더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지도 모른다. 글을 읽고 있으면 외롭다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그러다 현지인이나 자신과 같이 여행길에 오른 사람과 친구가 되어 서로의 외로움을 덮어주고 있다. 그리고 돌아갈 곳을 찾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어쩌면 새 힘을 얻는지도 모른다. 쉼은 다시 달릴 힘을 주는 것처럼.

 

오후의 태양 사이로 흩날리던 장미꽃 비와 밤의 불꽃놀이, 그리고 무엇보다 낯선 생일 파티. 그 낯선 순간이 나는 이상하지 않아서 이상했다. 여행이란 이렇게 또 낯선 순간과 낯선 장소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내 것으로 경험하는 일, 그것을 감사히 받아들이는 일, 그 속에서 가까워지는 일일 것이다. 어쩌면 내게 익숙하지 않은 모든 것이 여행이다. (210)

 

하마터면 못 건넬 뻔했네요. 여행자들이 떠날 때마다 커피를 타서 넣어줘요. 사람들이 맛있다고들 하니까 그런 줄 알고 작별인사는 늘 이것으로 해요. 그냥 찬물에 커피랑 설탕 듬뿍 넣고 신나게 흔들면 끝인데·······.”(235)

 

가끔, 아주 드물게 한국인 여행자들이 이곳에 온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사진관 앞에 이렇게 라면도 진열하고 한국인의 분위기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을 걸어두기도 하지요. 궁금한 여행자가 사진관에 들르면 직원들에게 꼭 기다리게 하라고 부탁을 해놨죠.”(246)

 

낯선 이에게 그리 따뜻한 마음이 될 수 있다는 것. 나는 세상을 많이 돌아다니면서도 내 것을 나누는 일이 서툴렀고, 그는 움직이지 않고도 세상에 마음을 내는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많은 것을 본다고 마음이 달라지겠는가. 아무것도 보지 않고서도 모든 것을 다 안을 그 마음에 비한다면. 누군가 초대하겠다는 것은 나의 많은 것을 나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따뜻함을 보았다. 얼큰한 국물을 뜨는 순간에도, 반찬들을 당겨 앞으로 밀어주는 손끝에도 나는 황송하고 고마운 마음뿐이었다. 진심으로 따뜻했으므로.(247)

 

그는 스스로 자신의 체온을 올리는 방법을 알고 있다. 아마도 자신의 체온을 올리는 가장 쉬운 방법은 누군가에게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것이 아닐까. 수크레, 그곳은 분명 천사의 도시다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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