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순간 - 느린 걸음으로 나선 먼 산책
윤경희 지음 / 앨리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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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순간>은 우연히 집어든 책이었다. 다른 여행 책보다 글이나 사진과는 달리 색감이 톡톡 튀어나오는 책이었다. 역시 디자이너의 여행 책이었다. 그녀는 NHN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직업이 디자이너인 만큼 다양한 것을 보고자 한다. 그녀에게 여행은 공부이자 체험이었던 것이다. 책은 그녀가 여행한 도쿄, 런던, 브라이튼, 파리, 니스, 뉴욕, 방콕으로 안내한다.

 

카페 가운데를 차지한 큰 테이블에 앉은 내게 얼음물을 갖다 준 젊은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조용히 쉬고 싶어서 들어왔다고 하자, 그는 내게 호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좋은 재료를 구해, 매일 조금의 쿠키와 빵을 구워 차와 함께 내놓고 있다고. 메뉴도 계절이나 재료 수급 상황을 고려해 거의 매달 바뀐다. 디저트 세트를 주문하자, 고소한 스콘과 크림, , , 푸딩, 잼이 담긴 민무늬 접시를 내왔다. 향이 신선한 차 한 잔, 기교 없이 정직한 솜씨로 만든 스콘 한 조각은 지친 나를 순하고 따뜻하게 녹여주었다. -P29

 

변두리에 살아서 그런 가 정직한 솜씨로 만든 빵 만드는 빵집을 주변에서 본 적이 없다. 마치 텔레비전에서만 나오는 소수의 빵집을 소개하는 것만 같다. 가끔은 질릴 정도로 먹은 B사나 T사보다 자신만의 색깔로 빵을 만들어내는 집을 보고 싶다. 이런데 웰빙까지 바라는 것은 왠지 사치스런 기분까지 든다. 그래서 나는 꿈꾼다. 천편일률적인 공장에서 찍어내는 빵이 아닌 자신의 솜씨로 발휘한 그곳에서만 맛볼 수 없는 그런 빵집이 우리 동네에도 들어오기를 그리고 그 빵맛만큼이나 정직한 주인이 나타나기를 말이다. 이런 마음이니 작가의 만남이 반가웠다. 따뜻하고 포근한 빵에 잼을 발라 달달한 빵맛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도시 여행의 묘미 중 하나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취향이 생활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구경하는 것이다. 하물며 돌을 뒤집기만 하면 뭔가 나타나는 손쉬운 보물찾기 놀이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독특한 상점들의 대행진은 놓치기 아까운 기회이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엔 가끔 정답이 있다. -p87

 

런던 노팅힐에 도착한 저자는 그곳에 디자인과 색감에 감탄한다. 문 색깔이 파란색에 벽은 분홍색인 건물을 바라본다. , 등을 감싸는 형태의 의자는 이전에 보지 못한 독특한 디자인이다. 앤틱하면서도 엘레강스하다. 그리고 그것들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그들의 삶에 녹아들어 있다. 빈티지 마켓과 리버티백화점을 거닐다보면 패션의 경계선이 없는 그곳에서 자신의 마음에 쏘옥 드는 물건을 발견하게 된다.  

 

그녀는 여행지에서 세심한 포장을 해주는 가게주인과 새로운 친구가 되기로 마음먹기도 하고 추억하기 위해 좋아하는 곳곳의 주방사진을 필름카메라 콘탁스 아리아로 찍는다. 그리고 디자이너가 설계한 호텔을 머무르기도 하면서 그들의 손길을 느껴본다. 그리고 우리나라보다 좀 더 다양한 곳곳의 예술적 거리에, 영수증과 같은 생활 속 예술에 넋을 잃고 바라본다. 그렇게 7년 동안 여행한 기록이다. 추억은 겨겨히 쌓여 한 권의 책이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그녀는 또 여행을 떠나리라 여겨진다. 아직 그녀가 알지 못하는 세계가 많음을 알았으므로, 더 멀리 더 다양한 곳을 다니고 싶을 것이다.

 

그녀에게 부러웠던 것은 그녀가 여행을 다닌 시간이었다. 그녀는 어느 날은 3월말 비수기에 방을 얻어 니스에서는 무료로 업그레이드되어 스위트룸에 묵었다는 기록이 있다. 다른 사람은 출근하고 회사에서 한숨을 쉴 시간에 그녀는 반대로 걸었던 것이다. 그들을 바라보고 또 유유자적하게 거닐었을 생각을 하니 그녀의 시간이 조금은 부러워졌다. 비수기이므로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고 조용히 모든 것을 내 것인 양 감상하기에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사람의 빈자리가 더 커보였을 것이다. 그 시간 속에서 자신을 더 많이 들여다봤을 것이다. 온전한 자신을 발견했을 것이다. 문득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랬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는 것을 몸소 체험했을 것이다. 느리게 밥을 먹었을 것이다. 좀 더 많이 잘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앓기도 했었을 것이다. 여행은 그런 것이다. 반대로 걸어가는 것, 그것을 할 수 있으면 그녀처럼 바라볼 수 있지 않을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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