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경제학이 온다
진노 나오히코 지음, 정광민 옮김 / 푸른지식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 출판사를 통해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간서치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1억 모으기에 열풍이 있었다. 그런데 더 잘살게 되었다고 하는데 점차 사회적 범죄는 늘어나고 길거리에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종이를 줍는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젊은이까지도 볼 수 있다. 이번 설날에도 청년들은 고향을 찾아가기보다는 학비를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하겠다는 뉴스도 볼 수 있었다. 명절이 짧은 것을 떠나서 대학생이 공부할 나이에 공부에 전념하기 보다는 경제적인 것에 눈을 맞추고 살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씁쓸하게 와 닿았다.

 

지금 우리나라는 1인당 GDP23679달러이고 이는 IMF기준 세계34위라고 한다. 그런데 정말 한 사람당 소득이 이 만큼 일까? 왜 가면 갈수록 학력은 높아지고 있다는데 대체 왜 이렇게 비정규직은 더 많아지고 살기가 힘들다고 난리인걸까. 그 해답이 도교대학 명예교수인 진노 나오히코의 책<나눔의 경제학이 온다>에 있었다.

 

새로운 밀레니엄에 들어서 세계적으로 경기가 호전했다. 일본도 2002년부터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오랫동안 이자나기를 능가하는 경기를 경험한다. 그런데도 이 경기상승 과정에서 오히려 노동임금은 계속 떨어지고 생활이 힘들다라고 답하는 국민이 증가했다.

경기상승 국면에 노동임금이 떨어진 데는 앞서 말한 바처럼 노동시장에 대한 규제완화가 영향을 준 것이 틀림없다. 1990년대부터 증가한 비정규직 종사자는 경기가 상승하는 동안에도 계속 늘어났다. 규제 완화 탓에 기업이 경기상승에 따른 고용 인원 증가를 파견종업원 등 해고가 용이한 종업원으로 채용하여 대응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일본의 사회보장급부 제도는 정규직을 대상으로 해서 구축된 것이다. 즉 비정규직은 사회보장급부 제도에서 사실상 배제되어 있다. 고용보험은 원래 후생연금이든 건강보험이든 일정한 노동시간이나 노동일수를 채우지 못하는 파트 노동자는 가입할 수 없는 것이다. -p29

 

일본은 거품경제를 겪고 아직도 회복하지 못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우리보다 앞서 경기불황을 겪고 있다. 그들과 우리나라가 양상이 닮아 있는 것은 어쩌면 모든 국가가 상승과 하강을 반복되는 경제적 곡선아래 있어서 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호황이 되면서 물건을 더 생산하기 보다는 수요가 많아져 가격을 올리고 있다. 기업은 배부른데도 더 먹고 싶어 하는 돼지처럼 더 먹고자 겉보기에는 과자 한 봉지 같지만 반봉지의 분량을 담는다. , 경제학에서는 규제로 인해 기업이 성장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는 애덤스미스 보이지 않는 손처럼 기업을 자유자제로 나두면 저절로 경제는 돌아가고 모든 사람이 더 효율적으로 분배될 것이라고 말하지만 대기업만 덩치를 키우고 나머지는 굶게 되는 형국을 맞고 있다. 기업은 저자의 말처럼 호황이면 더 생산을 하고 일자리를 창출해야 하지만 일자리 창출보다는 기계를 사고 3교대처럼 밤낮으로 일을 시킨다. 게다가 3교대로 일하는 인원대부분이 정규직이 아닌 파견근로자들이다. 이들은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거나 더 많이 일함에도 불구하고 고용이 안정적이지도 못하며 근로조건도 정규직에 비해 많이 빈약하다. 일례로 얼마 전 설날 선물까지도 정규직은 홍삼세트를 비정규직은 식용유세트를 받았다고 하여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게다가 여기에 정부도 합세해 눈 가리고 아웅을 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에서는 분명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무기계약직은 분명 비정규직임에도 비정규직에서 무기계약직으로의 전환을 정규직 전환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분명 비정규직에 대우를 받고 있는 데도 말이다. 게다가 무기계약직으로 2년 이상을 근무하면 이들은 계약직임에도 노동부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교육을 받지 못한다. 왜냐하면 계약직으로 2년 이상 근무를 하면 노동부에서는 정규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부와 기업이 겉으로는 2년 근무하면 정규직화 하겠다고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2년 된 근로자를 바로바로 짜르기도 하고 새 계약서로 이중계약을 하고 있다. 이는 규제에 문제가 있어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규제라는 테두리안에서 자유롭게 기업이 조종을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규제를 바로 잡을 방법을 간구해야 한다.

 

영국의 경제학자 조앤로빈슨의 말을 빌리면, 파국에 이른 것은 근린궁핍화정책의 결과다. 즉 자국에게만 이로우면 타국의 경제 상황을 악화시키는 정책을 서슴없이 채용한 탓이다. 이 교훈은 현재 세계공황에서 탈출할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도 곱씹지 않으면 안 된다.

공황만이 아니라 불행을 극복하는 열쇠는 불행을 나눌 수 있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기만 좋으면”, “생존을 건 경쟁에서 이기지 않으면이라는 강박적인 논리에 따라 움직이면 위기를 극복하기는커녕 파국으로 몰고 가게 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p59

 

저자는 현재 일본의 경제적 어려움이 이기적인 일본인의 마음에 있어서도 온다고 말하고 있다. 기업의 이기주의, 개인적 이기주의가 점차 타인과 어려운 이들을 신경쓰지 않기 때문에 점차 사회는 더욱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제는 세계적으로도 WTOFTA로 서로의 교역은 활발해져 우리나라에서도 중국, 유럽, 일본의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점차 다양한 나라의 책을 읽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마트에서 체리를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세계화를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단단한 고리를 연결되어있어서 공황의 피해도 함께 겪는 데도 자국의 이익만을 생각해 탄소배출권협약에도 함께 하지 않는 국가들이 있고, 같이 회의를 해야 할 때도 참석하지 않는 나라가 있다. 나눔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 사는 사회를 생각한다면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서 다국적기업은 납성분이 나오는 화장품을 만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우리가 나눔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모두가 파국으로 나아갈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

 

자본통제를 해제하자 고액 소득을 형성한 자본소득에 대해 법인세나 누진적 소득세로 중과하는 것이 곤란해졌다. 법인세나 누진적 소득세로 자본소득에 중과하려고 하면 자본도피가 신속히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러면 소득재분배가 곤란해진다. 신자유주의자의 주장에 따라 노동시장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면 시장에서의 소득재분배는 불평등해진다. 이에 더하여 재정을 통한 소득재분배를 약화시키면 당연히 불평등은 심해진다. 물론 불평등이 심해지면 사회에 균열이 발생하고 사회통합이 곤란해진다. 그래서 신자유주의는 원래 작은 정부를 지향하지만 민주주의를 탄압하는 강한 정부를 수반하게 된다.

-p74~75

 

이론에서는 신자유주의를 지향해야 기업이 자유롭게 되어 더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고 다 함께 잘살게 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았다. 신자유주의로 인해 정부의 간섭은 적어졌고 그로인해 기업의 폐해는 심해졌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하고 생산하는 제품에서는 하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화장품에서 납이 나오고 유통기한이 표기되지도 않았다. 과자에서는 먹지 못할 것들이 나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렇다 할 규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납은 우리나라의 기준치가 다른 나라의 기준에 비해 현저히 높았다. 규제가 규제답지 못했고 아예 규제가 없는 것도 많았다. 그래서 뉴스를 보면서 이런 문제는 예상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에 아쉬움보다는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규제를 만들어 화장품은 유통기한을 표기하지만 한편 또 샘플에는 표기하지 않았다. , 문제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런데도 정부의 행동은 문제가 생기기전에 움직이기 보다는 여론과 문제가 터졌을 때만이 규제를 만드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았다. 이처럼 저자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면 할수록 규제가 필요한 때가 많음을 역설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알던 경제적 이론은 산산히 부서졌다. 특히, 신자유주의, 애덤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지금 이 시대에 작용하면 할수록 더욱더 복지적으로 부족하여 더 못살고 굶어서 죽는 사람이 생기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부는 복지사업에는 예산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예산은 누군가에게는 밥 한끼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그것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예산이 줄이는 것은 지향하는 산업보다는 지양되는 복지사업에서 줄어들 때가 많았다. 새로운 건물, 외향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짓는 것보다는 내면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할 때가 아닌가. 이제는 이론이 깨어져야 한다. 내가 이제껏 알고 있던 자본주의의 장점은 허물뿐인 것을, 모두가 허물을 걷어버리고 진실을 알아야 한다. 이제는 교과서도 달라져야 한다. 자본주의, 신자유주의를 예찬할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문제성을 적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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