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흑인이었던 남자의 자서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8
제임스 웰든 존슨 지음, 천승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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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나는 외국인만 봐도 도망쳤다. 어릴 때, 심지어 어른이 되어서까지도 슬금슬금 피하는 모습은 언제나 공포에 휩싸인 얼굴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아무런 상해를 끼치지 않았다. 물론, 어릴 때 트라우마가 된 기억은 낯선 외국인이 친근하게 다가오면서 어깨동무를 해서 크게 소리지르고 도망간 기억은 있다. 하지만 그 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것을 예방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매번 시선, 우연히 마주친 어깨까지도 용납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그는 백인속에서 흑인이었다. 스스로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그의 어머니는 유별나게 검지도 않은 것 같다. 어느 날 초등학교에서 그만이 제외되는 경우가 생긴 것이다. 그것은 말하지 않아도 모든 아이들에게 그 애는 너와는 달라, 그러니까 남아있어라는 인상을 남긴다. 그것은 딱 봐도 흑인처럼 생긴 빛나와 그가 같다는 이야기였다. 그의 어머니는 흑인이었고 아버지는 백인이었다. 그는 겉모습으로 봤을 때 아무도 흑인이라고 말할 수 없는 외모를 지녔다. 그래서 그가 인정하지 않는 한 백인인 채로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초등학교에서 선생님이 이를 문제 삼으면서 그는 어머니가 알려주기 전에 스스로 알 수 있었다. 백인친구와 그는 다르다는 것을.

 

이후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그는 대학에 들어가려고 하지만 대학에 가는 길에 가진 돈 모두를 잊어버린다. 그때 그의 삶은 학교에서 뒤돌아섰을 때 바뀌고 만다. 하루아침에 대학생에서 시가공장에서 일하는 인부로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삶을 산다. 그 안에서도 더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고전음악을 재해석하여 싱커페이션(당김음)이 있는 래그타임음악을 연주해 예전에 그가 피아노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것처럼 감동을 주고 그 실력을 인정하는 후원자까지 만나 세계를 유람하게 된다. 후원자는 아버지일까?’ 의심하고 싶을 정도로 그를 아꼈고 정말 필요할 때만 그의 실력을 발휘하게 해 그의 값어치는 점차 올라가는 듯 했다.

 

하지만 멀리 나아갈수록 그보다 더 실력 있는 사람이 나타나고 이제는 그의 값어치는 점점 낮아진다. 이제는 새로운 길을 가야 할 때라면서 자신을 후원자 없는 무한경쟁시장으로 내몰고 또 다시 새로운 여행을 시작한다. 자신의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 남부는 그와 닮은 사람이 많지만 그만큼 차별도 거침없이 보여준다. 흑인이 린치당하는 것을 본 후 그는 백인으로 살기로 작정한다. 스스로 흑인임을 밝히지 않기로 한 것이다.

 

프로그램이 다 끝나고 나면 그녀에게 나를 소개하리라 마음먹었다. 지만 그 순간 나는 느긋한 사교적인 남자가 아니라 다시 열 네 살 난 수줍은 소년이 되어 있었고 그래서 용기를 잃고 말았다. -p186

 

그녀에게 똑똑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썼던 사실, 하지만 스스로를 더욱 더 바보처럼 만들고 있다는 확신이 점점 더 굳어감을 경험했던 사실이 기억날 따름이다. 또한 이탈리아 사람 같은 내 피부색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던 것도 틀림없었다. -p187

 

경영대학을 다니고 여행 다닐 때 스페인어를 배워둔 덕에 그는 돈을 많이 벌게 된다. 그러면서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게 되고 그녀와의 삶을 계획한다. 이만하면 잊을 만도 한 것 같은데 그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평생토록 백인인척 살아왔으면서도 흑인임을 한시도 잊지 않는다. 그녀에게만은 속이고 싶지 않아 고백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고는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녀의 손이 싸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를 올려보았을 때 그녀는 마치 처음 보는 물건이기라도 하듯 황량한 시선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이상한 눈빛 아래서 나는 내 피부가 검어지고 얼굴이 두툼해지고 머리가 곱슬머리로 변하는 것을 느꼈다.-p192

 

읽으면서 그가 처음으로 위로가 되었던 성경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는 성경 속 예수님이 고난가운데 인내심으로 참으시면서 정말 필요할 때만 능력을 쓰는 정의로운 사람으로 묘사되어있다. 그 점에서 그가 많은 위로를 받았다는 것을 느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만이 그가 보기에 흑백을 나누지 않고 오로지 평등해 보였던 것이다.

 

그가 처음 친구들 사이에서 거부당하면서 알게 모르게 깨닫게 되는 초등학교시절. 그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별명이 빛나였던 친구처럼 똑똑하고 빈틈없는 흑인이야 말로 친구로 지낼 수는 있지만 그렇지 않은 흑인은 백인과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그 보이지 않는 벽의 세계에서 그는 견딜 수밖에 없었다. 다른 길을 어린 그에게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같이 함께 해주는 빛나빨강머리덕분에 그는 견딜 수 있었다. 그는 남부에서 북부로 가면서 자신이 흑인이라는 사실을 숨길 수 있었으나 어머니 때문에 또 숨길 수가 없었다.

 

곧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자신에게 남아있지도 않은 흑인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는 꼭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면 백인행세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는 반반의 미가 흐르니 백인이라고도 흑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흑인과 어울리면서 스스로 흑인임을 인정하곤 했다. 그 린치당한 일을 보기 전까지는.

 

사람들은 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그들의 중얼거림 속에서 우리는 뭔가 끔찍한 범죄행위가 일어났다는 소문이 도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나는 코트를 입고 모자를 썼다. 내 친구는 밖에 나가지 못하도록 나를 만류하느라 애썼다. 하지만 그처럼 예민한 흥분 상태에서 집에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의 온 신경이 그것을 견뎌낼 수 없을 터였다. 내가 용감하게도 밖으로 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유색인이라는 내 정체가 아직 마음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확신 때문이었을 것이다. -p174~175

 

그는 그 일 이후로는 스스로 흑인임을 밝히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겪어보았던 암묵적이고 또는 드러난 차별 속에서 더욱더 위로 올라가고 성공하고자한다면 흑인이라는 제약을 가지고 갈 수 없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어버린 것인지 묻고 싶어진다. 어느 민족이 우수하고 하지 못하고를 내세울 수 없다. 왜냐하면 내가 영어를 못하는 만큼 그들도 한국어를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로의 우월함을 내세우면서 차별화 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오만하게 만드는 일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인의 편견이 깨어진 것은 직장에서 원어민 동료를 만나고 부터이다. 그에게 영어를 배울 기회가 생겼고 그가 캐나다 토론토에서 온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친구는 미국에서 왔다고 했다. 그들과 만나면서 내가 외국인을 어려워했듯이 그들도 한국인의 관계에 대해서 무척이나 어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로가 외국인이었고 그들에게 한국은 타향살이였다. 그러니 쉬울 리 만무했다. 낯선 곳에 떨어진 그들은 어린아이처럼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니 어렵게 생각할 것이 없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어려워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도 차츰 선입견, 편견 등이 깨어지는 것을 느꼈다. 영어로 꼭 말해야 하고 어순에 맞게 말해야 하는 영어의 압박감을 벗어나 바디랭귀지로 그들과 소통하고 듣고자 집중하면 아무리 어려운 영어라도 뉘앙스로 어느 정도 알게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어느 날은 교회에 가는 길에 전철에서 한 흑인을 만났다. 그의 옆자리는 유일하게 앉을 수 있는 자리임에도 아무도 앉으려고 하지 않았다. 외국인이었고 흑인이었다. 우리에게 흑인이라는 이미지는 힙합가수와 무서운 이미지가 강했기에 연세 많은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거리낌 없이 앉으셨지만 나와 같은 미혼여성은 마음 편히 자리에 앉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내가 다가가 그 옆자리에 자연스레 앉았다. 나보다 상대방이 더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나를 관찰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와 같이 앉은 사람이 드물었다는 것을 알게 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여유롭게도 그 자리에 졸기도 했고 느긋하게 책을 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아직은 어색해 하는 자신과 조금은 떨림을 느낄 수 있었지만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상상하던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책의 배경이었던 100년전의 1905년에 출간된 이 책은 어떤 반향을 일으켰을까? 또 얼마나 차별이 심할 때였던가 린치가 있을 시절이었으니, 상상만해도 소름이 끼친다. 눈에 보는 데서 흑인이 폭행당한 모습을 본 그가 할 수밖에 없는 선택이 아니었던 가하는 생각에 아무리 시대가 변했어도 오바마가 대통령을 하기까지도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라 여겨졌다.

 

이 책을 읽으면 그들이 차별받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 이런 생각도 든다. ‘무시하고 자신의 삶을 영위하면 안 되는 걸까?’그런데 눈앞에 보이는 차별의 실체를 매일매일 접하고 있다면, 그럴 수 있을까?

 

나는 누군가를 차별하지 않았던 것일까? 성별로, 학벌로, 외모로, 피부색깔로, 그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것이 인간의 됨됨이를 판단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면서 내안에 거울이 금이 간 것을 본 것만 같았다.

 

나는 자신의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자신의 인종을 버리는 것은, 같은 목적으로 자신의 조국을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치 있는 일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마침내 나는 흑인종임도 부인하지 않고 백인종임도 주장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이름을 바꾸고 콧수염을 기르고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대로 생각하게 하기로, 스스로 내 이마에 열등의 딱지를 붙이고 돌아다닐 필요는 없는 것이라고 마음을 정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내내 나를 흑인종으로부터 몰아내고 있는 무엇이 낙담이나 두려움이나 더 큰 행동범위와 기회에 대한 추구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수치심, 견딜 수 없는 수치심 때문이었다. 동물보다 더 심하게 다루어도 아무런 벌을 받지 않는 그런 인종과 동일시되는 수치심, 분명 법은 동물을 산 채로 잔학하게 태워 죽이는 것은 제지하고 처벌할 테니까 - p179~180

 

그러나 때로 내 사라진 꿈과 죽어버린 야망과 희생당한 재능의 유일한 가시적 잔존물인, 이제는 빠른 속도로 노랗게 변색해가는 내 원고를 아직도 보관하고 있는 조그만 상자를 열어볼 때면, 나는 결국 하찮은 부분을 선택한 것이라는, 한 그릇의 죽을 위해 나의 출생권을 팔아버린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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