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na's Kitchen 요나의 키친
고정연 지음 / 나비장책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처음에 만난 일본식 돈까스의 빠삭함을 기억한다. 먼저는 깨를 작은 절구에 으깨어 소스와 같이 섞어, 썰어 나온 따끈한 돈까스를 소스에 찍어 입에 넣고 우물우물 거리며 빠삭함과 함께 고소한 소스맛을 느껴보곤 했다. 된장국도 좋았지만 세트에 같이 나온 미니우동을 후루룩 넘기면서 진한 가쓰오부시 간장국물에 마음을 빼앗기곤 했다.

 

이와는 반대로 저자 요나는 음식을 좋아하기는커녕 왜 먹어야 하지?’라는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섭식장애를 겪는다. 보다 못한 어머니께서 쥐어준 호두로 음식을 먹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호두는 음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호두에 관한 음식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일본으로 유학을 가면서 점차 장애를 극복하게 된다.

 

햄버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녀는 음식을 만드는 것에 흥미를 가지게 되고 집에서도 만들어보기도 한다. 친구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함께 먹고 축제 때는 친구와 함께 크레페를 100장을 구워보기도 하면서 음식은 그녀에게 추억이 되고 소통이 되어 하고 싶은 일이 되었다. 그래서 미술을 전공한 그녀는 요리의 세계에 뛰어들 결심을 하게 된다.

 

일본 지브리사의 애니메이션 중 <귀를 기울이면>의 주인공 소녀 시즈쿠는 책을 좋아하는 중학생이다. 매번 책을 빌릴 때마다 도서카드에 먼저 적힌 세이지라는 이름의 아이에게 호기심이 들기 시작한다. 점차 알게 된 그는 바이올린 장인을 꿈꾸면서 바이올린 장인 말고는 다른 곳은 보지도 않고, 그 곧은길을 향해 나아간다. 그런데 시즈쿠는 자신의 꿈은 생각해본 적이 없고 책 읽는 것만 열중했는데, 하는 생각에 세이지처럼 꿈을 위해서 소설가가 되기로 하고 시험준비도 안하고 가족들의 염려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시즈쿠처럼 그녀가 처음으로 연 요나의 키친. 자신이 초대장에서부터 메뉴, 테이블세팅, 디저트까지 준비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긴장을 많이 해서인지, 그릇을 깨끗이 비워 준 친구들 덕분인지 눈물부터 나기 시작한다. 게다가 나중에 생각해보니 레몬 생강티, 콩을 넣은 흰 살 생선찜, 주키니와 가지 오믈렛, 당근 옥수수수프, 배 샤베트, 시금치 소스를 곁들인 떡갈비, 단호박 리소토, 바나나 초콜릿 찜 케이크 등은 배가 버거울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일을 계기로 한계를 알게 된 그녀는 요리학교에 입학원서를 내게 된다. 섭식장애를 겪었지만 감기를 물리쳐준 비타민C가 가득한 콜리플라워 크림스프, 어머니가 쥐어주신 호두, 행복을 전해주는 호박리소토. 그 모든 것이 그녀였고 결국, 요리는 그녀의 삶이 되었다. 이제는 사람들과 소통으로 요리를 선택한 그녀, 그녀의 레시피와 함께, 먹어 보지 못한 음식들이지만 그녀의 레시피처럼 만들고 위로를 받고 행복을 느끼며, 혹은 추억을 떠올리면서 이 모든 것을 함께 나눈다면 그녀와 나도 소통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은 단지 다른 사람과 구별해 부르기 위함이 아니다. 이름을 소리 내 읊는 순간 내 마음에는 그 사람의 작은 방이 생긴다. 타인에서 내 사람이 되는 순간이다. -p30

 

나는 매일 요리를 만들며 내 요리를 먹는 사람들을 상상한다. 혹시 이 요리를 맛본 당신도 나처럼 인도를 추억하고 있지는 않을까? 인도 여행을 가서 내 요리를 떠올리지는 않을까? 부디 내 요리로 인해 당신이 조금 더 풍요로워지기를 꿈꿔 본다. -p70

 

운동으로 뭉친 근육은 운동으로 풀고 술 마신 다음 날 해장은 술로 한다는 말이 있는데, 어린 나를 돌아올 수 없는 미로의 입구로 등 떠민 것은 음식이었지만, 기적의 출구로 인도해 준 것 또한 음식이었다. 인생을 살면서 음식으로 인해 고통을 받았던 나는 의식주衣食住의 하나인 식이 갖는 의미와 역할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간다. 하지만 요즘 우리들은 먹는다는 행위의 참된 의미를 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울 때가 있다. 인간은 따스한 햇볕과 비옥한 토양, 대지를 적시는 빗줄기 없이는 살 수 없는 자연의 일부임을 잊지 말자고, 열여덟 살의 나와 지금의 나, 그리고 소중한 당신에게 속삭이고 싶다. -p31

 

친구들을 위해 준비했던 요리 중 단호박 리소토는 이후에도 특별한 날이면 종종 만드는 메뉴다. 조금 손이 가는 요리지만 정성이 깃든 만큼 선물을 받아든 이의 얼굴에 기쁨이 넘치는 것을 확인하면 내 마음에도 뿌듯함이 차오른다. 커다란 리본이 달린 선물상자를 열 듯이 반짝이는 눈으로 호박 뚜껑을 여는 모습을 보면 그동안의 고생이 한순간에 사르르 녹아버린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려면 나부터 행복해야 한다는데, 그러기 위해서라도 나는 요리를 계속해야겠다. -p255

 

나는 주로 아침 식사로 키슈를 즐겨 먹고는 한다. 빵이나 떡으로 아침을 때우는 데 싫증이 나면 키슈를 만들어 색다른 아침을 맞이하고는 하는 것이다. 마치 매일 아침 익숙한 풍경을 달리는 조깅코스에 변화를 주어 활력을 찾듯이 말이다. 반복되는 일상에 주는 작은 변화는 우리네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한다.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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