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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예술작품이었을 때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 지음, 김민정 옮김 / 밝은세상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책을 다 읽은 지금의 느낌은, 책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의 느낌과는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책 읽기를 마친 지금, 뜻 밖에 동화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나게 된게 큰 행복 처럼 여겨 진다. 마음이 깨끗해지고, 가슴이 훈훈하게 데워진 기분이 든다. 인간다운 온기가 살아 있는 책 이다. 특히나 결말도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고, 작가가 담고 있는 메시지에도 100% 공감하게 되었다. 또한 우리가 점점 망각해 가고 있는 인간 존엄과 그 참된 가치를, 넌지시, 그러나 분명하게 각인 시켜 주는 작가만의 독특한 방식과 재치, 그리고 기발함에 놀랐다.
처음에는 '이 무슨 해괴망측한 이야기 인가?'하는 섣부른 판단도 했었다. 뜻 밖에도 한 남자의 자살 시도를 필두로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어, 시작 부터 당혹 스러웠다. 주목 받지 못하는 외모 때문에, 늘상 사는데 실패했다고 느끼는 주인공은, 하다 못해 자살 시도 까지 늘상 실패 한다. 무려 육층 높이에서 뛰어 내렸는데도 하필이면 푹신한 방수포를 씌운 트럭 위에 떨어지는 바람에 멀쩡히 살아 난다. 그래서 주인공은 마침내 수천년 동안 자살에 실패한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는, 자살 성공율 100%를 자랑하며, 자살자들로 부터 사랑받는, 가파르고 험한 백구십 미터 짜리 팔롬바솔 절벽을 찾게 된다. 하지만, 주인공은 이 곳에서도 결국 자살에 실패 한다. 뛰어 내리기 전 4분 이상 지체하면 영영 뛰어 내리기 어렵다는데, 주인공은 벌써 그 제한 시간을 넘긴지 오래다. 이 와중에 주인공은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 인물을 만나게 되는데, 여기서 부터 또 다른 흥미 진진한 이야기가 새롭게 이어진다. 작가의 기상천외한 상상력과 위트에 나도 모르게 감탄과 웃음을 반복하게 되며, 묘한 이야기의 매력에 점점 더 깊게 빠져 들게 되었던 장면이다.
첨단 미디어의 등장으로, 우리는 그 어느 때 보다, 외모지상주의가 부추겨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외모 지상주의는 사람들로 하여금, 비록 눈에 보이진 않지만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자신의 내면을 가다듬기 보다는, 겉으로 보이는 외모를 가꾸는데 더욱더 열을 올리고 인생을 허비하게 만든다. 알맹이는 사라지고, 껍데기만 화려한 거짓 삶에 많은 사람들이 현혹되기 쉽상인게 바로 요즘 세상이다. 외모지상주의의 가혹한 잣대는 심지어 아이 어른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휘둘러 진다. 예쁜아기는 그렇지 못한 아기 보다, 대중의 주목과 시선을 받기 쉽고, 그로 인해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어릴 때 부터 받고 자란다. 우리 모두 정도와 횟수의 차이는 있지만, 외모와 같이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을 통해 사람을 쉽사리 판단하고 부당하게 차별을 가한 경험이 적어도 한 두번은 있는게 사실이다. 이로 인해 어쩌면 우리 모두가 공범인 동시에, 또 한 편 우리 스스로가 이 시대의 희생양인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외모에 민감한 사춘기 청소년 시절을 거쳤고, 이 과정에서 때때로 스스로의 자아 정체성을 타인의 말이나 평가를 통해 왜곡하거나 변질시킴으로써, 자아정체성의 혼동을 겪는 과오를 범한적이 있었다. 주인공 타지오, 즉 아담도 이 같은 오류로 인해 괴로워하고, 결국에는 영혼의 영원한 자유 까지도, 유한하고 속절없는 한 낮 물거품에 지나지 않는 아름다운 외모와 바꾸는 큰 실수를 범하게 된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주인공 타지오가 마침내 겉으로 보이는 외모가 아닌, 마음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봐 주고, 사랑해 주는 한 여인과 화가를 만남으로써,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되찾게 된다는 점 이다.
"젊은 시절 세상의 아름다움이 오직 내게 깃들기만을 원했다. 지금 나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내 주변 곳곳에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안다."
책 속에서 작가는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요즘의 인간 세상을 신랄하게 풍자 한다. 물질적 존재, 정신적 존재, 그리고 마지막으로 언어적 존재, 이렇게 인간은 세 가지 존재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 가게 되는데, 이 중 유일하게 인간의 운명을 바꿔 줄 수 있는 것은 언어적 존재라는 착각 속에 우리는 시종일관 말로써 타인의 생각을 도발하고 반박하고 창조하고 조종하려 든다는 것 이다. 그래서 때로는 말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무대와 배경과 관객을 제공하고, 우리는 또 그것에 현혹되어,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잃어가고, 오로지 타인에 둘러 쌓인 무대에서만 무의미한 빛을 발하고, 스스로의 자아 독립의 무대에서는 아무런 빛도 발하지 못하는 껍데기와 같은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 이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표현이 아닐 수 없었다.
인간은 점점 스스로의 가치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경시하고, 인위적인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간다. 그래서 현재 자신의 모습에 끊임없이 불만을 품고, 끊임없는 변화를 시도 한다. 타인과의 끝 없는 비교를 통해 "우쭐해 하기"와 "움츠러들기"의 왕복 운동을 반복하면서 ... 이제 그 덧 없는 집단행동을 멈출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