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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센트 1 ㅣ Medusa Collection 7
제프 롱 지음, 최필원 옮김 / 시작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1, 2편 합하면 도합 천(1,0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묵직한 두께의 책 이다. 처음에는 책의 두께에 압도 되었었다. 하지만, 책의 두께가 부담이 아니라, 오히려 되도록 오래도록 아끼면서 즐길 수 있는 행복 처럼 느껴지는 책 이다. 강하게 몰입되는 재밌는 책들은,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줄어들고 얇아지는 남은 책장의 두께에 절로 아쉬움이 느껴지는 법인데, 이 책도 그랬다.
'역사적으로 그리스도가 존재 한다면, 당연히 사탄도 존재하지 않을까?'라는 의문에서 이 책은 만들어 졌다고 한다. 어찌보면 지극히 단순한 의문이지만, 그 물음 만큼 해답은 간단 명료하지 않다. 그래서, 이 같은 어려운 물음에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하나의 답을 던지고자 했던 작가의 노력이 존경 스럽게 여겨 진다.
작가는 1992년 에베레스트 산의 북면을 등정하는 미국 원정대의 이야기를 담은 <어센트>를 발표한 바 있었는데, 이번에는 산악 풍경을 완전히 거꾸로 뒤집어 엎어 놓고 지상이 아닌, 땅 속에서 가장 깊은 곳을 향해 나아가는 원정대 베어울프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이 책을 집필하기 시작 하면서, 저자는 무려 2년 동안 매일 새벽 서너시에 일어나 밤 일곱시까지 집필에만 매달렸다고 한다. 지질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동굴 탐험을 자주 나섯던 작가의 어린시절 경험을 비롯해, 자신이 자주 꾸었던 악몽에서 지하세계의 모습을 그려냈다고 하는데, 책을 통해 작가가 그려낸 지하세계의 모습은 섬뜩하지만 묘하게 매혹적인 신세계였다.
마치 양파껍질을 벗겨나가듯, 지상에서 지하로, 그것도 가장 낮은 지점을 찾아 탐험의 여정을 떠난다는 발상이 매우 신선했다. 특히 남아메리카에서 출발해 태평양을 건너 중국에 이르는 11,000 킬로미터에 달하는 지하 동굴이라는 새로운 루트를 통해 이동할 수 있다는 발상 또한 충격적이었다. '핸젤과 그레텔이 빵 부스러기를 뿌려가며' 자신들의 행적의 기록을 남기며 이동을 하지만, '결국 그 빵 부스러기는 새들이 먹어버렸다'는 섬뜩한 설정이 그대로 녹아 있는 위험 천만한 여정 역시 흥미로웠다. 어쩌면 작가가 책의 어느 한 부분에서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지적하고 있는 것 처럼, 우리 인류는 너무나 오래 도록 '지적 선입견'과 '학구적 오만함'에 사로 잡혀, '시간의 탄생과 함께 엄연히 인류와 함께 공존해 온 지옥과 사탄의 세계를, 문명의 첨단 시대라 자칭하는 지금 까지도 발견해 내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점점 확신이 들 정도로, 책에서 보여지는 저자의 상상력을 뒷받침하는 방대한 지적 장치들은 탄탄하고 정교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어쩌면 우리 인류는 너무나 오랫동안 눈에 보여지는 것, 그 이면의 '진실을 보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되었다.
두 권의 책을 다 읽은 지금, 가장 가슴에 남는 이야기는, 책 속에도 인용 되어 있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선악의 저편] 속의 어느 한 부분이이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 볼 때, 심연도 우리를 들여다 본다."
아이크와 앨리로 압축되는 두 주인공의 여정은 그야말로 박진감 넘치고, 숨 막힐 정도로 시종일관 위태 위태 하다. 마치 영화의 장면 장면들이 눈 앞에 펼쳐지 듯, 이야기의 묘사가 세밀하다. 이야기 전개 역시 지루함 없이 매우 빠르다. 각 이야기의 전환 속도 역시 숨가뿔 정도로 역동적이다. 극한의 악과 맞서 싸우는 와중에도 아이크와 앨리 두 주인공은 스스로 악에 물들지 않고, 선과 사랑을 지켜낸다. 이 점이 특히 가슴에 남는다. 작가의 모티브를 다시 거꾸로 뒤집어 본다면, '악이 존재 한다면, 반드시 그것을 이길 선과 사랑도 존재 한다'는 역설이 결말로 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