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초월을 찾아서 - 한국유교의 종교적 성찰과 여성주의
이은선 지음 / 모시는사람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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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하면 공자왈 맹자왈이라는 단어 부터 떠오르는 내게, 유교를 하나의 종교로 보는 관점은 매우 생소하였다. 인(仁)을 최고 이념으로 삼아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國), 평천하(下)의 실현을 목표삼는 하나의 윤리 정도로만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우기, 유교사상에 대해 솔직히 나는, 대한민국 여성의 한 사람으로서, 막연한 피해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과거 조선 시대 여성들의 삶은 유교 전통 아래, 그야말로 "인고의 세월" 그 자체로 인식되었다. 오죽하면, 시집가면 벙어리 삼년, 귀머거리 삼년, 장님 삼년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 있겠는가! 유교 가부장주의 아래 우리 여성의 삶, 그 중에서도 특히 며느리/아내/아녀자로서의 삶은 그야 말로 '문서 없는 종'에 다름 아니라는게 나의 오랜 고정 관념이었다.

이 책은, 제일 먼저 위와 같은 나의 고정 관념들에 물음표를 던지고, 새로운 시각과 상상력을 통해, 그리고 종교라는 다소 생소한 틀을 통해 한국 여성의 삶을 돌아 보게 한다. 이 과정에서 아주 멀게는, 원시 샤머니즘의 무(巫)교에서 부터, 삼국 시대 불교, 그리고 가깝게는 조선 시대 유교에 이르는 긴 시간과 공간의 광대한 역사적 스펙트럼 속에서,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난 듯 흥미롭게 이야기가 펼쳐 진다. 

특히 조선 시대 유교의 종교성과 그것이 여성의 삶에 미친 영향을 다루는 부분에서는, 구체적으로 18세기 여성 성리학자 임윤지당과 강정일당의 삶을 통해, 마치 한 편의 사극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그림 처럼 생생하게 여인의 삶을 반추 한다. 한 시대의 고통과 성과를 보다 장구한 시간과 포괄적인 공간에서 살피고 있는 점에 나도 모르게 감탄하게 된다. 한마디로 스케일이 불록버스터 영화 같다.

어느 부분에서는 저자의 상상과 비약이 조금 지나친게 아닌가 하는 막연한 기분이 들 때도 있었지만,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고, 또 결국에는 생각대로 발전하고 이루어 지므로, 저자의 이와 같은 시도는 매우 의미 있는 성과물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역사는 항상 어떻게 의미 부여를 하기느냐에 따라 180도 새롭게 재조명될 수 있으며, 역사에 기대어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 내는 것 역시 후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 처럼 한계를 약간 넘은 듯한 저자의 새로운 역사유추, 그리고 생각과 발상의 전환은 신선한 충격과 재미를 준다. 또한 부정 보다는 긍적적인 삶의 요소를 보려는 저자의 시각과 가치관 역시 매우 마음에 들었다. 저자의 말 대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자의 삶은 서로 다르긴 하지만, 나름대로 모두가 어쩔 수 없는 삶의 제약과 조건들 아래서 시작'되는데, 과도하게 한계와 제약 조건들 자체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정말이지 그 속에서 나름대로 한계를 극복하고 활동했던 소수의 사람들의 업적과 교훈은 간과 되기 쉬울 것 같다.

무엇보다 종교과 여성을 결부시켜 우리 역사를 볼 수 있었던 점이 흥미로웠다. 우리 현 시대 대한민국에서 여성과 종교가 연관지어져 이슈가 되었던 사건은 다름 아닌 국민 여배우이자 인기 톱탤런트 였던 최진실씨의 급작스런 죽음이었다. 신앙인으로서 그녀가 죽음을 스스로 택했다는 사실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무력감 내지는 실망감을 느꼈던 것 이다. 나 역시 이를 계기로 종교가 한 개인의 삶에 어느 정도 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이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종교가 인간 개인의 삶에 어느 정도의 깊이 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은 각 개인별 편차가 매우 심한 듯 하다. 한편 역으로 인간 개개인의 삶이 종교를 뛰어 넘어 어떻게 역사와 문화를 변화 시켜 나아가고 주도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내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많은 의문이 남는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느 시대에나 인간 지각의 한계를 뛰어넘어, 이상적이고 영적인 세계의 가치를 믿고 성숙된 삶을 사는 초월자 적인 인간이 존재한다는 점 이다. 

저자의 참신한 역사유추와 긍정의 힘, 그리고 완벽하다 싶을 정도로 고급스럽고 깔끔한 책의 편집과 구성이 돋보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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