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마모에 - 혼이여 타올라라!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은은한 핑크 빛으로 만들어진 묵직한 양장본 책의 첫 인상은 너무나도 고왔다. 마치 일본 화과자를 뜯는 듯, 설레는 기분을 던져주는 책 이다. 지나치게 화려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절제되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디자인된 책이 세련미와 고급스러움을 보여준다. 하지만, 책의 표지가 주는 핑크 빛 설레임은 그 내용과는 크게 괴리감이 있었다. 그래서 인지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는 다소 고독하고 슬픈 책의 내용과 달리 표지라도 화사한 느낌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은 홀로 늙어간다는 것, 그리고 아내로, 여자로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의 가치와 의미 등등,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환갑을 앞둔 59세의 주인공 도시코는, 갑작스레 심장마비로 죽은 남편의 장례를 치르게 된다.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만으로도 충분히 힘겹고 버거운 주인공 도시코는 설상가상으로 장례를 치르면서, 뜻 밖에도 아주 놀라운 남편의 오랜 비밀을 하나씩 알아 가게 된다. 남편 다카유키는, 아내 도시코 몰래 10년 넘게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으며, 검소한 아내 몰래 불륜녀와 함께 골프회원권 까지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인지 주인공 도시코는, 오히려 남편의 죽음을 더 빨리 극복해 낼 수 있었다는 생각도 해 본다. 남편의 죽음으로 인한 고독과 상실감을 구구절절 뼈져리게 느끼는 대신, 뜻 밖에도 우선 당장은 남편에 대한 배신감  및 복수심과 먼저 싸워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 이다. 그런 한편, 주인공은 내면에서 여러 가지 자기모순된 감정의 충돌을 겪는다. 혼자 늙는 다는 것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다가도, 어느새 혼자라는 것이 주는 평화와 잔잔함, 그리고 쾌적함에 행복해 하기도 한다. 인간이란 참으로 변화 무쌍하고, 오묘한 존재인가 보다. 하나의 가슴에 여러 가지 마음과 생각들을 품고, 때로는 어떤게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인지 몰라 괴로워 하기도 한다.    

시대가 아무리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새로운 문화와 가치를 창출해 냈다고 한들, 여전히 우리 각자의 삶은 온전히 자기애로만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는 완벽한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 듯 하다. 늘상 우리 자아는 지금 자신의 역할에 자족하는 듯 하면서도 때로는 뜻 모를 불만과 자기모순적인 자아의 충돌에 고민하고 괴로워 한다. 

주인공 도시코 역시 '늘 누군가를 배려하고, 비록 그것이 빗나간 것이어도 걱정을 끊지 못하고, 매일 매일 긍지를 갖고 가족을 돌보는 것이 삶의 유일한 목표이자 존재의 이유' 였던 전형적인 아내이자 어머니 였다. 하지만, 남편의 죽음 이후 뒤 늦게 남편의 불륜을 알게 되고, 차차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나 아닌 다른 많은 것들'을 잃어가는 경험을 하면서 아이러니 하게도 자신을 되찾아 간다.   

"어차피 이제 부터는 상실과의 싸움이다. 친구, 인간관계, 체력, 지력, 돈, 존엄, 헤아리기 시작하면 한이 없을 정도로 나는 많은 것을 잃을 것이다. 늙어서 얻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대체 무엇인지 부디 알고 싶었다."   

늙어서 얻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대체 무얼까? 나 역시 도시코의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무척이나 궁금했었다. 언뜻 이 책을 보면 이에 대한 구체적인 해답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나는 도시코의 모습 속에서 어느새 해답을 찾게 되었다. 그건 바로 잃어 버린 자아와 내면과의 만남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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