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엽감는 여자
박경화 지음 / 책나무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작가의 표현력에 경탄하게 된다. 작가와 똑 같은 사물, 똑 같은 현상을 보았다고 한들, 이 처럼 세밀하게, 인간 삶의 모순과 슬픔 내지는 소소한 삶의 단상들을 구구절절 담아 내고 표현해 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책 속 어느 한 부분의 표현에서 처럼, 이 책의 작가는 바로 [고흐의 붓꽃]이라는 단순한 그림에도 깊은 시선을 던지고, 그 속에서 가슴 뭉클하거나, 혹은 소박한 감동과 위트를 찾아낼 수 있는 그런 예술가적 작가정신을 가진 존재인 듯 하다. 

 

책 속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예술가란 하고픈 이야기가 많아 어떻게든, 그것이 시가 되었든, 그림이나 재즈, 발레 또는 그저 사랑이 되었든 .. 가능한 방법을 찾아 묘사 해 내야 하는 사람들로, 예술은 본질적으로 유혹을 필요로 한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내게 단순히 한 권의 책이기 보다는, 작가 박경화의 거대한 예술적 표현이자 하나의 퍼포먼스로, 그리고 마치 판도라의 상자 처럼 거부하기 힘든 유혹으로 다가온다. 마치 헤세의 [데미안]에서 처럼, 늘상 우리 주변에 공존하는 밝음과 어두움이라는 두 가지 극단의 세계 중, 꽁꽁 바리게이트 쳐져 있어 접근이 어렵거나, 아니면 애써 거부하고 외면했던 어두움의 세계에 나도 모르게 유혹당한 듯 한 다소 찜찜한 기분이 든다. 그렇다고 책을 쉽게 덮을 수 없었다.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다. 또한 마냥 찜찜해만 하기에는 작가의 필체가 너무도 매혹적이고 표현력도 참신하다. 다만 한 가지 유감인 것은 이토록 아름답고 세밀한 작가의 감수성이 향하고 있는 곳이 삶의 희열과 기쁨 내지는 희극이 아니라, 다름아닌 삶의 비극에 있다는 것이다.     

 

너무 맛 있어서 사람의 마음을 건드린다는 '딤섬'이나, 축구공 만한 미니 '어항', 왠지 로맨틱한 느낌의 '가을'이라는 계절, 그리고 생각만 해도 달콤한 '비스킷' 등등의 단어들은, 이 책을 읽기 전, 내게는 삶의 유희와 낭만, 그리고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무지개 빛깔의 단어들 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이 같은 단어들에 대해 내가 그 동안 품고 있었던 낭만적 환상들이 산산히 부서져 버린 듯한 느낌이다. 조금은 우울하고 서글퍼 진다. 작가의 탁월한 표현력 내지는 지독한 현실감이 이 같은 안타까움을 더욱 부추긴 듯 하다. 이 책을 통해 작가 박경화를 처음 알 게 되었는데, 내심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기도 한다. 부디 다음 작품은 좀 더 밝고 긍적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길 바래본다. 만약 이 책의 작가가 다음 소설을 낸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면, 나는 그 유혹에 나도 모르게 또 다시 넘어 갈 듯 하다.

 

소녀 취향적 로맨스 소설들이, 마치 초콜렛 상자 속에서 예쁘게 포장된 초콜렛들을 하나 하나 뜯어 보며 다음에 다가 올 새로운 희망에 설레게 하며, 핑크빛 환상을 품게 하는 것 과는 대조적으로, 이 책에는 여성의 삶에 대한 그 어떤 화려한 포장이나 환상 그리고 일말의 가식 조차 존재 하지 않는다. 총 8개의 단편들이 담겨 있는 이 책에서, 다음 이야기는 좀 더 밝아 지지 않을까? 하고 기대한다면, 오히려 전 편 보다 더 강도있는 절망만을 만나게 된다. 철저히 예술적인 작가적 실험정신이(내게는 이렇게 느껴졌다) 얄굿게 느껴지기도 한다.  

 

삶이란 어쩌면 ... 그것이 끝내 알고 보면 지극히 미미한 크기의 희망이었다고 하여도, 그 희망과 그에 대한 환상으로 인해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극단의 비극도, 극단의 희극도 나는 진정한 현실이 될 수 없다고 믿는다.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고, 때로는 어느 한 가지가 삶 속에서 오래도록 사라져 버리기도 하고, 또 때로는 오래도록 머물기도 하고, 공존하기도 하는 것이 삶이라 생각한다. 내가 지나치게 밝은 반면, 이 책은 지나치게 어두운 듯 하다. 바라 보고 추구하는 세계관이 다른 극과 극의 만남이어서 인지, 더 강렬한 인상을 남겨 준 책 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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