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
보리스 비앙 지음, 이재형 옮김 / 뿔(웅진)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프랑스 소설에 대해서는 영화와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예술적이어서 고상한 반면 지루고 재미가 없다거나, 혹은 대부분 번역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편견이 있었는데, 이 책은 나의 프랑스 소설에 대한 이와 같은 편견을 확 없애 주기에 충분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책이 1946년에 쓰여진 책이라는 점이다. 지금 읽어도 다소 파격적으로 느껴지는데, 1940년 당대 프랑스 사회에서는 얼마나 충격이었을까?

미국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백인 프랑스 작가인 보리스 비앙이 미국을 배경으로 썼다는 점도 흥미로운데, 발간 당시 미국 작가 버넌 설리반이 쓴 소설을 보리스 비앙이 번역한 것 처럼 출간하였다고 하니, 이와 같은 아이디어나 발상 자체 부터 파격적이고 신선했다.

무엇 보다 스토리 라인이 탄탄하고, 번역이 매끄러운점도 마음에 들었다. 홍콩 느와르라는 장르에 이미 익숙하지만, 막상 글로 표현된 거침 없는 섹스에 대한 묘사라든가, 복수심의 표현이나, 폭력 등은 지나치게 솔직하여 다소 거부감이 생길 정도 였다. 무의미하게 선정적이고 무의미하게 자극적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차차 주인공의 심정이 되어 이야기를 읽다보니, 타당성의 문제를 떠나 모두 이유있는 항변이요, 저항의 한 방편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은 일단 책을 손에 집으면, 마치 홍콩 느와르 영화를 보는 듯 한 속도감에 빨려 들어 금새 끝 까지 내달리게 된다. 광속으로 내달리는 속도 제어 불가의 열차를 탄 듯한 불안한 느낌이 계속된다. 불쾌해서 열차에서 뛰어 내리고 싶은데, 막상 뛰어 내리자니, 가속이 점점 심해져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좌불안석의 느낌이다. 그러면서도 또한 시종일관 뒷 이야기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올해 11월 미국 대선에서 흑인 대통령 오바마가 승리를 거두고 대통령에 당선 되었다. 어찌보면 미국이라는 나라가 과거의 인종 차별이나 흑인에 대한 부당한 편견 등을 거의 없애버린 듯한 착각이 들게 하는 역사적인 장면이었다. 하지만, 정작 오바마를 흑인으로 여기는 미국인은 극히 드물다는 견해도 많다. 또한 여전히 흑인이 대통령이 된 것이 국가적 이슈가 되는 것도 오늘날 미국이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뿌리 깊은 계급의식을 대변한다. 비단 미국사회 뿐만 아니라, 내 개인적인 관념의 밑바닥을 들여다 보더라도, 여전히 흑인 대통령이나, 흑인 공주, 흑인 왕자, 흑인 백만장자는 낮설기만 하다. 특히 흑인과 백인 커플이나 부부를 만나게 되면 아주 생소하게 느끼곤 한다.

나와 다른 것에 대한 이질감에서 비롯된 이유 없는 반감과 부당한 대우는 비단 흑백인종의 문제를 떠나 여러 가지 다양한 형태와 모습으로 생성, 소멸, 전이되곤 한다.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은 어느 시대에나, 어느 장소에나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대우의 부당함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로 항상 공존하지 못하는데서, 이 책과 같은 슬픈 이야기들이 만들어 지게되는 듯 하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재밌게 읽은 책이지만, 한동안은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문구들이 주는 여운에 마음이 심난해 지기도 하는 책 이다. 만약 내가 이 책의 주인공이었다면, 과연 어떠한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자문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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