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백의 칼 미네르바 시선 6
문효치 지음 / 연인(연인M&B)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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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을 만나기 전에는 미처 문효치 라는 이름을 알지 못했고, 더욱이 그가 ‘백제시’의 대가라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 초등학생도 다 알 정도로 그 이름을 모르면 몰상식한 사람 취급을 당할 만큼 극히 유명한 시인들의 시만을 겨우 읽을까 말까하던 내게 이 처럼 시인의 백그라운드를 전혀 모른채 시를 읽어 가는 것은 전혀 생소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이 시집은 시인에 대한 백그라운드를 전혀 모르채 읽더라도, 그가 얼마나 백제를 사랑하는지, 또 얼마나 우리 것을 사랑하는 상상력이 풍부한 시인인지 단박에 느낄 수 있다. '백제시'라는 제목으로만 무려 십여편의 시들이 책을 여는 순간 차례 차례 쏜아져 나왔다. 

이 시집을 통해 평소에 미처 내 생각과 관심이 미치지 못했던 백제 계백 장군과 황산벌, 그리고 꽃수의 꽃물로 가득한 계백장군의 칼날을 시인이 만들어낸 환상 속 시의 세상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시인의 심장에서 데워진 진한 피와 와글거리는 독백으로 새겨진 편지가 천이백년 전 고이왕 무렵으로 날아가는 듯한 장면에 대한 이미지가 환상처럼 떠올랐다. 그리고 실눈으로 천년을 내려다 보며 침묵의 가부좌를 틀고 있는 불상아래 허물어지고 또 세워지기를 반복하며 천년의 시간을 흘러온 이 세상도, 그리고 스이고 천황을 비추는 달빛의 미소와 고풍(古風)의 한 줄기 바람도 내 곁을 스쳐 지나감을 느꼈다. 마치 선 잠 속에 만난 꿈 처럼 몽환적이고 아득한 느낌을 자아내는 시들이다. 

또한 내가 이름도 알지 못했던 패랭이 꽃, 갈참나무, 동백꽃, 갈대밭, 미루나무, 국화, 싸리, 돌단풍과 같이 고운 이름들을 가진 내 주변의 식물들과 함께 시인이 버무려낸 번민 한 접시, 육신 속에서 덜어낸 모든 생각들, 세월 속에 녹슬고 붉어지다 50년 쯤 익으니 반질 반질 빛이나는, 그러나 한 때 가슴을 찢고 살을 찢던 6/25 전쟁의 아픔과 잔상들, 그리고 시인의 유년 시절의 기억들이 무척이나 새롭고 가슴 져몄다.

마치 잠시 낮잠을 자다 한편의 꿈속을 거닌 듯 한 느낌이 드는 시집이다. 솔직히 처음에는 일본식 낯선 지명과 이름들 그리고 시 속에 등장하는 미국 동양사학자 페놀로사라는 엉뚱한 이름에 당혹감도 들어 웃음이 나기도 했다. "그래, 역시 시는 내겐 무리야!"라는 마음에 끝 까지 읽기를 포기 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한 구절 한 구절 음미하며 시를 익어 나가자, 무언가 진하고 깊은 여운들이 가슴 속을 파고 들며, 머릿속에 영상으로 싯 구절들을 펼쳐 보이는 환상을 경험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엔 "이래서 시를 짓고 또 사람들은 시인의 시를 읽는 구나!" 싶었다. 제목 처럼 운치 있고 고풍스런 멋이 느껴지는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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