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 정태남의 유럽 문화 기행
정태남 글.사진 / 마로니에북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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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를 보고 나면 다른 도시들이 너무 싱거워지기 때문에 유럽을 여행할 때 로마는 가장 나중에 보는게 좋다는게 여행의 정설 중 하나다. 그만 큼 볼 것 많고, 보고서도 또 보고싶은 곳이 바로 로마 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 말에 절대적으로 공감 한다. 유럽 여행 중 여러 나라를 다녀 봤지만, 로마 만큼 강력하게 영혼을 사로 잡고 오래도록 가슴속에 여운을 남겨 주는 나라는 드물었던 듯 하다.

이 책의 정태남 작가님은 서울대 자연대를 졸업한 후 이탈리아 정부 장학생으로 선발 되어 로마대학 건축학부에서 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저자는 로마를 "보면 볼수록 보고 싶은 것이 더 많아지고 알면 알수록 알고 싶은 것이 더 많아지는 곳"이라 소개 한다. 그는 로마의 이와 같은 매력과 마력에 이끌리어 자그만치 25년 이상 로마에 살고 있으며, 최근에는 이탈리아 정부로 부터 기사 훈장 까지 받았다고 하니, 2800년 이라는 장구한 역사가 중첩되어 형성된 결코 만만치 않은 여행지 로마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소개해 줄 만한 든든한 가이드를 만났다는 안도감이 먼저 들었다. 저자의 말 처럼 이 책은 로마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을 위해 쓰여졌지만, 나 처럼 이미 로마를 여행한 사람들을 위해서도 정말 좋은 책 이라 확신한다. 나 역시 로마를 보고 나서도 로마에 대해 좀 더 깊게 알고 싶은 목마름과 꼭 한 번 다시 보고 싶은 열망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로마를 딱 한 번 보고서 첫 눈에 반해버려 보는 순간 바로 사랑에 빠지고, 오래도록 그 매력과 환상을 잊지 못하고 있던 내게 다시금 로마에 대한 열병을 도지게 하였다. 당장이라도 로마행 비행기를 타고 겹겹이 쌓여 있는 역사의 흔적들을 마주 대하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이 책의 가장 눈에 띄는 첫 번째 매력은 바로 로마에 대해 우리가 막연하게 알고 있던 '~카더라'식의 부정확한 구전 지식이나, 거짓 루머들을 바로 잡고 있다는 점 이다. 일례로 우리가 맨홀 뚜껑으로 알고 있던 진실의 입이 사실은 분수용 조각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이나, 로마 대 전차 경기 중 사고로 죽은 사람들 보다 경기장 붕괴로 인해 관중석이 무너져버려 죽은 사람이 더 많았다는 점, 그리고 기독교 성지로 손꼽히는 콜로세움에서 실제로 기독교 신자가 박해를 받아 죽었다는 근거는 전무하며, 실제로 콜로세움은 기독교 박해와는 무관한 장소라는 점, 그리고 우리가 사이코 황제로 알고 있던 네로의 진면목과 억울하게 왜곡된 진실 등이 바로 그것이다. 

다음 으로 이 책의 두 번 째 매력은, 흥미를 자극하고 신선한 재미를 줄 만한 이야기 들이 가득하다는 점이다. 가장 먼저 기억에 남는 것은 르네상스의 열풍으로 인해 포로 로마노나 콜로세움이 채석장으로 전락되었고, 아이러니 하게도 로마의 르네상스가 고대 유산을 파괴하는 엄청난 희생 위에 꽃을 피웠다는 사실이다. 이 책을 만나지 않았다면 오래도록 모르고 있었을 흥미로운 사실이었다. 또한 로마유적들 중 유난히도 나체로된 동상들이 많은 이유는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바로 인간의 몸이라는 당대 사람들의 생각 때문이었다는 것도, 예나 지금이나 로마 사람들이 공사 기일을 잘 지키지 않는 다는 사실도, 주술적이기는 하지만 과학적인 근거에 의해서도 고대인들이 도시를 건설했다는 점도, 공포 정치를 통해 전제 군주 처럼 군림하던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누군가가 뒤에서 칼을 뽑아도 알아챌 수 있게 벽면을 모두 거울 처럼 반들거리는 대리석으로 치장하고서도 황후의 사주를 맏은 자객에 의해 암살 당한 점도 하나 하나 로마를 새롭게 알아가는 재미를 더해 주었다.

이 책의 세 번째 매력은, 사진이나 그림으로는 완벽하게 담아 낼 수 없는 로마 건축물들의 독특한 공간감과 배치를 잘 묘사하고 설명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상하게도 로마 관광 후 찍어온 사진들은 다른 유럽의 관광지들의 사진과 달리 만족감이 떨어졌었다. 장엄하고 위풍 당당한 로마 건축물들의 위용과 그 건축물들 사이에 느껴지는 왠지모를 고즈넉하고 황량한 느낌들이 사진 속에 제대로 담겨져 있지 못한 느낌에 많이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이 책에는 이와 같은 실체적인 건축물의 공간감이나 배치들 까지도 세심하게 설명되어 있고, 각 건축물들 상호간의 위치나 거리감, 역사적 상관관계 및 영향 까지도 세심하게 묘사되고 있어 실제 로마를 여행하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이 책의 네 번째 매력은, 우리가 무심코 알고 있던 많은 단어들의 어원을 새롭게 알 수 있다는 점이다. 가장 멋지게 기억에 남는 단어는 물론 "로마"이다. 로마라는 지명은 에트루리아어로 '가슴이 강한 자'라는 뜻의 루마에서 왔다는 얘기도 있고, '테베레 강'을 의미하는 루몬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고 한다. 또한 로마가 태어난 유서 깊은 곳, 캄피돌리오 남쪽의 필라티노 언덕은 궁전을 뜻하는 palace의 어원이라고 한다. 또한 로마의 한 복판에 위치해 있는 캄피돌리오 언덕은 capital의 어원이 된다고 한다. 이 책 한 권을 통해 신기하게도 영어 단어의 어원도 많이 익히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다섯번째 매력 이 책을 통해 로마의 다양한 역사적 인물들을 만나고 또 문화와 역사적 유물을 소중히 다루는 이탈리아 사람들을 통해 인생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는 점 이다. 작가가 포로 로마노의 폐허에서 되뇌인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의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가 삶의 마지막 순간 남겼다는 아래 글이 가슴에 남는다. 

"나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다 이루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헛될 뿐이었다. 

아마도 이탈리아 사람들은 그들의 조상들보다는 훨씬 더 진화된 현명한 후손들이 아닐까 싶다. 그들 조상들에 비해 문화 유산을 더 소중히 잘 관리할 줄 알고 그것을 잘 활용할 줄 알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굳이 채우려 하지 않고 비워둘 줄 아는" 미덕까지 지녔다. 

 

이 책은 위와 같이 다양한 매력을 퐁기며 읽는 내내 나를 감동시켰다. 이 한권의 책을 통해 나는 로마의 역사를 깊게 음미하고, 이 책 속에 담겨진 유적지들에 대한 사진과 설명들을 통해 로마 역사의 발자취를 하나 하나 상상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구태여 이 책의 옥의 티를 언급하자면, 46쪽, 76쪽 등에 실린 사진과 각 유적지에 대한 설명이 완벽하게 일치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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