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의 유령
폴 크리스토퍼 지음, 하현길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한 편의 영화를 장시간 즐긴 느낌이다. 영화는 불과 두 시간 정도면 끝나지만, 이 책은 장장 400여 페이지의 분량으로 더 긴 시간 다양하고 오묘한 조합이 주는 복합적인 즐거움을 주었다. 마치 유명한 외국 레스토랑의 대표 매뉴들만 골라 만든 Sampler 코스를 즐긴 기분이었다. 비록 어느것 하나가 메인이 되어 강하게 뇌리에 남진 않지만, 여러 가지 음식을 간단 간단 맛을 볼 수있는 다소 실험적인 식사법을 선택한 기분이었다. 

 

영화로도 볼 수 있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영국에서 암스테르담 그리고 동남아시아의 보르네오 섬 까지 광대한 지리적 배경에 따른 다양한 지명들이 거론되었지만, 거론된 지명의 분위기나 느낌을 떠올리기엔 내 배경 지식과 상상력이 많이 부족함을 느끼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솔직히 이 흥미 진진한 소설이 어서 빨리 값비싼 해외 로케의 공정을 거쳐 영화로 만들어 져서 극장이나 안방에서 편하게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욕심도 들었다. 책을 읽으며 나 혼자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을 마음대로 캐스팅도 해 보았다.

 

이 책은 상상력을 많이 동원하면 할 수록 더욱 재밌다. 그래서 내 마음대로 배우들도 골라 보고 책속의 배경이 되는 곳도 마치 영화 촬영 감독인냥 맘대로 가져다 붙여가며 책을 읽었다. 책 앞 부분의 지도도 간간히 펴 보았다. 이 책 저자의 전작들에도 동명으로 등장했던 미술사학을 전공한 매력적인 여주인공 핀 라이언으로는 스칼렛 요한슨 (비록 키가 작지만) 이나 요즘 한창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미국 드라마 가십걸의 블레이크 라이블리를 떠올리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또한 미술품 감정이라는 거짓 명목으로 핀을 찾아온 젊고 미남인 영국 공작 필그림 역으로는 안경쓴 주드 로나 우리 배우 비(비록 영국인은 아니지만)를 떠올려 보기도 했다. 왠지 필그림은 안경을 꼭 씌워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의 첫 인상은 분명 메리언 키즈의 [처음 드시는 분들을 위한 초밥]이나 영화로도 만들어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나 [쇼퍼 홀릭] 등과 같은 칙릿의 느낌이 강했다. 멋진데다 외모도 출중한 남녀 주인공의 등장은 로맨스에 대한 기대심을 처음 부터 확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가끔 티격태격하는 이 둘의 모습도 재밌었다. 학구적인 제목에 상반되는 책의 첫 인상이 내게는 너무도 반가울 따름이었다. 그래서 인지 매우 가뿐한 기분으로 그리고 설레기 까지한 들뜬 마음으로 읽기 시작한 이 책은, 점점 복잡한 지리적 배경과 시대적 배경,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시간적 배경들로, 마치 초심자 과정에서 자연 스럽게 중급, 고급 과정으로 옮겨가는 전형적인 교육 방식을 연상시켰다. 과연 미국 아이비리그에서 근세사를 가르치고, 유엔과 뉴욕 경찰 미술관련 부서에서 자문역을 맡고 있으며,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 눈부셔 할 만큼의 박식한 작가의 지식이 빛을 발하는 소설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내 개인적으론 황새 따라 가려다 부상만 당한 뱁새의 처량한 기분이 가끔 들기도 했다. 바로 나의 무지 때문이었다. 이 책을 읽는다고 유럽 미술사의 박식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역사적 사건들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즉, 뱁새가 황새의 지적 수준에 이르게 되는 기적을 바랄수 있는 학술적인 내용은 없다. 하지만, 묘하게 어려운 구석이 있다. 그럼에도 그 묘하게 어려운 구석에 조금이라도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되기엔 충분하다. 이 책이 아니었더라면, 미술품 감정에 화가의 지문 인식기법이 도입되어 활용되고 있다는 식의 잔지식은 알지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책은 지적인 고매함 즉, 황새의 세계를 간접 경험하는 즐거움과 호사를 누리기엔 충분한 책 이다. 

 

지적 현란함과 낯설음 그리고 미스테리가 주는 호기심과 재미가 상상력을 마구 자극하는 책 이다. 한 마디로 책 소개 그대로 크로스오버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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