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링, 어색하지만 괜찮아 - 시즌 2 엘링(Elling) 2
잉바르 암비에른센 지음, 한희진 옮김 / 푸른숲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주인공 엘링에게 어머니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잃어 버릴 수 있는 사람" 이었다. 서로에게 세상에 하나뿐인 버팀목 이었던 엘링과 그의 어머니 ! 하지만 엘링의 표현과 같이 어머니의 죽음 으로 인해 "그들만의 동화는 끝을 맺게 되고", 이로 인해 엘링은 냉혹한 현실과 맞서 세상을 홀로 배워가기 시작 한다. 처음엔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심한 스트레스를 겪지만, 이내 엘링은 "죽음이 삶의 일부이며, 어떤 식으로든 달라질 길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어머니와 삼십년 넘게 생활해 오던 엘링은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새로운 생활에 내몰리게 된다. 요양소로 보내진 엘링은, 그곳에서 뜻하지 않게 키엘이라는 친구와 한 방을 쓰게 된다. 처음 엘링은 먹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포르노 잡지 보는 것을 유일한 취미로 삼고 있는 키엘이 못마땅 하고 바보스럽게만 느껴진다. 사회 적응도를 따져 보면 엘링도 키엘과 별반 다를 것 없이 한 없이 부족해 보인다. 마치 우리 속담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 듯" 키엘을 바라보는 엘링의 첫 인상은 곱지 않았다. 우리 역시 알고 보면 별반 대수롭지 않은 차이를 지니고 있는 서로를 이런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 하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약점을 들춰 내며 자신의 우월감을 드러내고" 이로서 만족과 안정감을 찾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엔 흔치 않지 때문이다.


"엄마라는 존재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뭔가 문제가 발생하면 직감적으로 그것을 알아 차리는 능력이 있다."  

"다른 이들처럼 나 또한 어려운 일이 닥치면 그때마다 부모님의 어리석은 실수로 태어났기 때문에 이런 일을 겪는 거라고 생각했다."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자기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고 산다."

하지만 엘링의 경우 점차 키엘을 자기 자신을 이해 하는 만큼 어쩌면 자기 자신 보다 더많이 이해하고 그의 진면목에 눈을 뜨게 된다. 그리고 키엘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나약함을 거울에 비춰 보듯 바라 보게 되고 연민을 느낀다. 엘링은 30년 넘도록 변변한 연애 경험 하나 없는 키엘을 위해, 멋진 애인을 만들어주려고 키엘이 즐겨 보는 포르노 잡지에 구애의 편지를 올리게 된다. 하지만 포르노 잡지에 실린 이 애달픈 구애의 편지에는 어떤 답장도 오지 않는다. 이에 상심한 키엘을 위해 엘링은 가상의 여인을 가장 하여 키엘에게 답장의 편지를 보낸다. 이 가상의 여인 린다에 대한 키엘의 집착이 점차 커지게 되고 마침내 키엘은 린다를 직접 만날 결심을 하게 된다. 이 결심을 들은 엘링은 마침내 인생의 새로운 기쁨을 맛보게된 키엘이 진실을 알고 상처를 받게 될 까봐 가상의 여인 린다를 불치의 병으로 사망 하는 것으로 이 짤막한 로맨스를 마무리 짓게 된다. 조금은 엉뚱한 결과를 낳은 엘링의 이런 친구를 위한 배려는 얼핏 보면 당혹 스럽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평생 처음으로 사귀게 된 유일한 친구 키엘을 돕고자 하는 엘링의 순수한 마음을 차차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면서, 결코 엘링을 미워하고 비난 할 사람은 없을 것 이란 생각이 들었다. 

책 읽기를 통해 이 책만큼 다양한 감정을 동시에 느꼈던 적은 드물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은 후 엘링에게 가장 먼저 "엘링 ! 누구도 당신을 미워할 수 없을 거예요 !" 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때론 웃기기도 했고 때론 가슴 찡했고, 때론 작은 친절을 감사할 줄 아는 소박한 마음에 감동했다. 또 때론 이 세상의 부조리에 화가 치밀기도 하였다. 
 

엘링은 스스로 "인생의 감동을 놓치는 법이 없다" 말한다. 어쩌면 기쁨만이 인생에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마치 "노동을 한 후에 편안한 상태를 누려야 그 기쁜이 더 커진다"는 엘링의 말 처럼, 이 책 속에 공존하는 삶의 잔혹한 에피소드들은 인생의 그윽한 감동을 일깨워 주고, 자신의 고통을 관대하게 바라 볼 수 있도록 독자들을 격려하고 돕기 위한 작가의 배려가 아닐까 생각 해 본다.     


"나는 하루 하루 고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책이나 기사가 좋은 글이라고 믿는다. 예를 들어 헬게란트 해안의 어부를 생각해보자. 팔이 없는 그는 발가락을 이용해 낚싯줄에 미끼를 단다. 이런 사람에 관한 글과 그가 함께 사는 여동생과 개와 거실에서 찍은 사진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고통을 조금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된다. 어린 시정 나는 너무 쉽게 용기를 잃고 체념했다. 혼자 고통스러워 하고 누군가를 원망했다. 하지만 팔이 없는 어부의 인터뷰 기사를 읽은 후 나 자신을 진지하게 되돌아볼 수 있었다."  

 

엘링의 세상을 향한 서툴지만 용기 있는 날개짓을 통해 나 역시 많은 용기를 얻게 되었다. 내 자신의 "경계를 넘어서는 체험"을 통해 "세계가 나 자신을 향해 열리는" 기쁨을 최대한 만끽하고 싶어 졌다. 아래의 엘링의 다짐처럼 철학적이거나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매 순간 용기 있게 나를 향해 세상이 선사하는 다양한 경험들을 최대한 긍적적이고 적극적으로 맞이할 더 큰 힘을 얻었다.  


"좋은 산책길에서는 영혼의 안식을 얻을 있다. 나는 이제 부터 생명의 기운을 따라 살기로 작정 했다. 강가의 나뭇가지나 돌맹이를 손에 쥐려 하지 않고, 강물의 경이로운 흐름을 따라 살겠다고 다짐했다. 결국, 바로 이곳에서 나는 위대한 깨달음을 얻었다. 지금까지 겪은 모든 좋지 않은 일들은 내가 끊임없이 저항했기에 일어난 것이었다. 안에는 항상 반항의 기운이 도사리고 있었고, 나는 내가 저지른 잘못의 대가를 다른 사람에게 물었다. 나는 의심이 많고 어리석은 자기 학대를 일삼았다. 위대한 깨달음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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