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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 팩 소녀 제니 2 ㅣ 사계절 1318 문고 74
캐롤라인 B.쿠니 지음, 고수미 옮김 / 사계절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1편보다 재미있는 2편은 처음이다.
우유 팩 소녀 제니 1권이 인물을 소개하고 갈등을 만드는 내용이었다면,
2권은 그 갈등을 다양한 인물들이 각각 어떻게 받아들이며 살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제이니가 사실은 유괴된 제니라는 사실을 몰랐던 존슨부부,
네 살 제니가 사라진 날부터 두려움에 지배 당한 채 살아온 스프링 부부,
스프링 가족의 일원이 되면 존슨 부부를 잃게 될거라 생각하는 제이니,
동생을 찾아서 기쁘고 설레는 동시에 강한 분노를 느끼는 스티븐과 조디 등등
그 누구도 어떻게 하는 게 옳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다양한 인물의 서로 다른 감정과 행동이 매우 흥미로웠다.
제니의 실종으로 12년이 넘도록 고통받아온 스프링 가족.
그들은 혹여 제니가 돌아올까봐 좁은 집을 떠나지도 못했다.
저녁 식사 때마다 항상 제니를 위해 기도를 올렸다.
아무리 행복하게 웃고 떠들어도, 마음 한 구석에 펴지지 않는 구김이 있었다.
캐롤라인 B. 쿠니는 이러한 스프링 가족의 마음을 일상에서 아주 정확하고 섬세하게 그려냈다.
제니는 수면 아래에서 가족의 모든 것을 조종했다.
이따금 스티븐은 어머니가 설거지를 하려고 식기세척기 쪽으로 가다가 가만히 멈춰 서는 모습을 보았다. 어머니는 눈을 거슴츠레하게 뜨고 뒤뜰로 난 작은 창문으로 밖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스티븐은 "무슨 생각하세요?"하고 물었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제니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어머니는 제니가 춥지는 않을지, 겁에 질려 있거나 다치지는 않았을지 걱정하고 있었다.
"비가 오나 안 오나 궁금해서."
어머니는 고개를 돌려 스티븐에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떨리는 미소, 뭔가를 숨기는 미소.
스티븐은 어머니의 말에 맞장구치며 대답했다.
"그 정도로 구름이 낀 것 같진 않아요."
이따금 스티븐은 상처를 드러내기도 했다.
"제니는 죽었어요. 그러니까 이제 걔는 잘 있는 거예요. 춥지도 않고 무서워하지도 않고 아파하지도 않아요."
나이를 더 먹고, 어머니보다 키가 더 커진 뒤에는 팔을 둘러 어머니를 말없이 껴안았다. 어머니의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P. 47)
그 동안 스프링 부부는 얼마나 많이 부질없는 죄책을 했을까.
왜 하필 그 날 그 쇼핑센터에 갔을까? 다른 쇼핑 센터를 갔다면 아무 일 없지 않았을까. 왜 그 아이를 더 잘 돌보지 않았을까? 아니아니, 왜 하필 그 날 쇼핑을 하겠다고 생각한걸까?
그러나 제니는 자신이 유괴된 지도 모르고, 가족의 걱정과 달리 유복한 집안에서 사랑 받으며 자라왔다. 우리는 너를 걱정하느라 십여 년을 고통 받아 왔는데! 분명 제니의 잘못은 아닌데도, 책을 읽는 내내나는 제니에 대한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제니는 마치 스프링 가족이 자신을 유괴했다는 듯이 스프링 가족을 평가하고, 원망하고, 상처주었다.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었다. 아침 식사마저 달랐다. 스프링 가족은 오렌지 주스가 아니라 사과 주스를 먹었다. 누구나 오렌지 주스로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거 아닌가. (...) 이 집엔 빵조차 없었다! 아무도 샌드위치를 먹지 않았다. 어떻게 샌드위치 없이 살 수가 있지?
제이니는 지금까지 혼자만 쓰는 화장실이 있었다.
화장실을 다른 여섯 사람과 같이 써야 한다니 믿을 수 없었다!
(P. 55-56)
머리로는 어린 제니의 혼란을 이해해야지, 하면서도 솔직히 나는 계속 제니가 미웠다. 만약 스프링 가족이 더 부자였다면, 그렇다면 좋아했을지도 몰라. 부자인 때로, 더 편하고 교양 있던 때로 돌아가고 싶은 거 아니야. 이런 고약한 생각도 들었다. 나는 특히 제니의 언니 조디의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시간이라고!"
조디가 분노하며 말했다. 겨우 붙잡고 있던 분노가 터져 나왔다.
"우리는 제니를 그리워하며 십이 년을 보냈어! 그런데 이제는 제니가 가족으로 잘 정착하도록 도우면서 또다시 십이 년을 보내야 하는 거니?"
(P. 76)
스프링 가족은 분명 존슨 부부와 매우 다르다. 제니는 이런 부분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스프링 가족의 입장에서 본다면? 내 부모는 존슨 부부라며 엄마 아빠 호칭도 부르지 않는데다,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울고, 시험지에 '제니'가 아닌 '제이니'라는 이름을 쓰는 제니. 딸이자 동생이지만 너무나도 낯선 제니를 도대체 어떻게 대해야 맞나. 내가 만약 조디라면 어땠을까. 어렸을 때부터, 실종된 제니 때문에 '과잉보호' 받으며 살아야했다. 사랑하는 나의 부모가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옆에서 무기력하게 지켜보아야 했다. 동생을 찾았다는 소식에 누구보다 좋아하며 방을 치우고 준비했다. 그런데 그 동생은 부모에게 엄마 아빠라는 말을 하지도 않고, 심술난 표정으로 우리 가족을 무시한다. 내가 조디라면, 나는 그 무엇보다 우리의 엄마 아빠를 평생 괴롭히는 이 동생이 죽도록 미울 것 같다. 네 살때는 유괴되어 버려서 그렇게 엄마 아빠를 괴롭히더니 이제는 이렇게 나타나서 또 한번 엄마 아빠를 괴롭힌단 말야? 책을 읽는 내내 정말 씩씩거릴 정도로 화가 났다.
"넌 우리 가족에게 고통과 상처만 주고 있어! 네가 네 살 때부터."
조디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네가 무척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난 늘 여동생이 있으면 했단 말이야. 그리고 우린 이름도 비슷하잖아. 조디와 제니."
조디가 눈물을 닦고 다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파자마 파티를 하는 것처럼 옷도 갈아 입고, 같이 웃고, 같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넌 어둠 속에 나무토막처럼 누워 있거나 책을 읽는 게 다야. 나한테 이야기하는 걸 견딜 수 없어 하니까. 숙제에 이름도 다르게 쓰고 항상 그 사람들한테 전화를 걸지."
조디 말이 맞았고, 제이니도 그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인정할 수 없었다.
"그 사람들이 아니야! 내 부모님이라고!"
제이니가 사납게 말했다.
스티븐이 둘 사이를 가로막고 섰다.
조디가 다시 소리 질렀다.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건 엄마의 정육점 칼로 찌르는 거나 마찬가지야, 제니! 넌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잖아. 네가 미워! 넌 못됐어, 제멋대로에......"
조디가 마지막 말을 얼버무렸다.
스프링 부부가 퇴근해서 집 안에 막 들어온 것이다. 두 분은 무척이나 실망한 표정이었다.
(P. 120-121)
캐롤라인 B.쿠니는 정말 대단한 작가이다. 이렇게 등장인물에 감정이입하게 만들다니! 이 부분에서 나는 "작가는 감정 뿐만 아니라 감각을 이입해야 한다"던 김연수의 말이 생각났다. 캐롤라인 B. 쿠니는 감각적 표현을 통해 나를 조디로 만들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정말 울고 싶어졌다!
그 누구도 답을 알 수 없는 상황, 그 상황 속 다양한 인물과 갈등은 언제나 좋은 소설을 만든다.
인생이 그렇듯 이 책도 답을 내려주지는 않는다. 그래도 책을 읽는 동안 정말 진지하게 이 이야기가 나의 것인 듯 받아들이고 계속 고민할 수 있었다.
나라면 어땠을까? 그래, 제니에게도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닐까? 이 상황에서 존슨 부부는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니,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옳은거지?
1권에서도 감탄한 바 있는 신선한 소재가 2권에서 비로소 빛을 발하는 느낌이다.
혹여나 1권이 그냥 그랬더라도, 절대 2권을 빼먹지 마시기를.
이 책은 핵심적인 메시지는 바로 2권에 있으니까!
*이 후기는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