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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쓸모없다 - 사노 요코 에세이
사노 요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8월
평점 :
📖 친구는 쓸모없다. 그래서 좋다.
사노 요코는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자마자, 평소 갖고 싶었던 재규어를 구입한다. 이 고급 외제차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주변의 말에 그녀는 “억울하면 너도 사면 되잖아. 빨리 죽으면 살 수 있다고!”라며 무심한 듯 시크하게 답한다. 그녀의 글에는 이런 까칠함과 쿨함이 곳곳에 배어 있다. 『친구는 쓸모없다』 역시 냉소적이고 까칠하지만, 사람을 끝내 미워하지 못하는 저자의 다정함이 무뚝뚝한 말투 뒤에 숨어 있다.
특히 자신을 괴롭혔던 친구를 떠올리는 방식이 사노 요코답다. 괴롭힘을 당한 일을 원망하기보다 그 아이가 그저 에너지가 넘쳤던 것 같다고 말하고, 전쟁이라는 힘든 시대를 함께 지나왔다는 사실까지 생각한다. 나라면 상처로 남았을 일을 이렇게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도 있구나 싶었다. 정작 그 아이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좋아한다고 말하는 마음이라니. 생각해 보면 좋아하는 면만으로 친구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까지도 그 사람의 한 부분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무뚝뚝하고 냉소적인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사람을 쉽게 미워하지 않는 넓은 마음이 있다. 내가 사노 요코의 글을 좋아했던 이유도 바로 이런 데 있을 것이다.
사노 요코와 다니카와 슌타로의 대화도 기가 막히게 재미있다. 두 사람은 친구에 대해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한쪽은 친구가 꼭 필요하다고 하고, 다른 한쪽은 친구가 많지 않아도 별 불편 없이 살아왔다고 한다. 서로의 말을 받아치다가도 어느 순간 엉뚱한 곳으로 이야기가 샌다. 그런데 그 빗나간 대화가 오히려 좋았다. 친구와의 대화라는 것이 원래 그렇지 않은가. 중요한 이야기를 하다가 별것 아닌 이야기에 한참 웃고, 어제 먹은 음식이나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건너뛰기도 한다. 목적 없이 이어지는 그 시간이야말로 친구와 나누는 시간의 본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책 제목이 『친구는 쓸모없다』인데도 나는 처음부터 ‘쓸모’라는 말을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이 제목이 말하는 묘한 역설을 알 것 같았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했던 일들을 떠올려보면 정말 쓸모없는 것투성이였다. 별것 아닌 일에 웃고,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바로 그 시간들이 내 기억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당시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생각했던 이야기와 놀이, 친구들과 나눈 취향과 농담이 조금씩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는 친구들도 많지만 그들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함께 보낸 시간은 기억 속 어딘가에 남아 지금의 나를 이루는 한 부분이 되어 있을 테니 말이다. 꼭 가까이에서 자주 만나야만 친구인 것도 아닐 것이다. 곁에서 함께 웃고 떠드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멀리 떨어져 있어도 문득 떠올릴 때마다 은은하게 빛나는 친구도 있다. 서로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그런 존재로 남아 있다는 것 역시 우정의 한 모습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정말 쓸모없는 것이 있을까 싶다. 당장 성과로 이어지지 않고 어디에 쓰일지 알 수 없었던 시간들이 오히려 삶을 풍성하게 만들기도 하니까. 그때의 쓸모없는 시간들이 사실은 하나도 쓸모없지 않았던 셈이다. 그렇다면 내가 지나온 시간도, 그 시간 속의 사람들도 함부로 쓸모없다고 부를 수 없을 것 같다.
친구는 쓸모없다. 그래서 좋다.
아무런 목적 없이 함께 낭비할 수 있었던 시간이 있었기에 우리의 지난날이 이토록 풍성해졌으니 말이다. 어쩌면 삶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쓸모 있는 관계가 아니라, 쓸모없는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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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받은 도서를 정성껏 읽은 후, 자유롭게 작성한 저의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