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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文化史 第2版 (巖波新書 黃版 187) (新書)
家永 三郞 / 巖波書店 / 198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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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재판 등으로 유명한 이에나가 교수의 일본문화사이다. 유물사관에 기초하는 한편, 후세에 물려줄 진정한 일본 문화를 찾고자 하는데, 아직까지도 개설서로는 괜찮은 것 같다. 그러나 진보적 사학자라는 그가 임나일본부설을 지지한다는 점을 보면 그 역시 시대적 한계를 가졌을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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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文化史 第2版 (巖波新書 黃版 187) (新書)
家永 三郞 / 巖波書店 / 198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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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게는, 어쩌면 일본인에게도 이에나가 교수는 그의 전공보다 40년에 걸친 교과서 재판으로 유명한 듯싶다. 그는 진보적인 사학자, 일본의 양심으로 소개되었고 지금까지도 그렇게 기억되는 양이다. 그러나 그의 전공은 일본사상사, 그의 대표적인 저작이 바로 이 《일본문화사》이다. 기실 본서는 이미 90년대에 까치글방에서 역서가 나와 있고, 많은 분들이 글을 쓰셨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렴 어때, 나의 감상을 적어 본다.

  본서는 1982년, 그러니까 지금('26)으로부터 대략 40년 전에 출간된 도서이다. 보다 깊게 들어가면 82년의 것은 2판이니까, 1판의 날짜로 생각하면 60년('59년 1판 출간)도 더 된 책이다. 그러한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 진보적 사학자인 이에나가 교수가 유물사관에 기초한 상부구조로서의 문화론에 입각하는 한편, 80년대 기준으로도 오래된 임나일본부설에 기초하여 일본 고대 국가 형성을 주장하는 것도 다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일본사의 문화 역시 생산관계로서의 토대에 기초한 것이므로, 문화의 이해를 위하여는 생산관계의 변화를 알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그렇기에 매 챕터마다 생산관계의 변화가 등장하며, 그러한 변화의 근본적 주체가 민중임을 강조한다. 그렇기에 그는 귀족문화나 상인문화에 대하여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면서도, 그것이 민중으로부터 유리되었다든가 하는 점은 시종일관 비판하고 있다. 가부장제 역시 '일본의 전통이었던 남녀 평등적 세계관'이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로서 도입된 유교에 의하여 가부장제화하였음을 주장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에나가 교수는 일본 문화의 아름다움이나 정수 같은 말로서 상당한 애국심을 나타냄에 거리낌이 없다. 서론에서도 일본 문화사의 연구 자체가, 후세에 물려줄 진정한 일본 문화를 찾는 데에 이바지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인적으로 미묘한 느낌을 갖는 지점이다. 

  한편 그는 상술한 바와 같이, 80년대 기준으로도 오래된 축에 속하였던 고대 일본의 한반도 남부(가야, 신라, 백제) 지배설을 지지하고 있다. 그러한 점을 고대 국가 형성의 주 논거로 삼고 있었기에, 80년대의 개정에서도 이를 유지하였을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러한 점은 그에게 존재하였던 시대적 한계, 시대적 아이러니를 나타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역시 일본문화사의 개설서로서 이 책은 아직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여러 관점이 오래되긴 하였어도, 큰 흐름을 읽는 데에는 아쉬움이 없다. 단순히 지식을 얻는 목적이라면 더욱 괜찮은 것 같다. 아무튼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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沖繩 (岩波新書 靑版 100)
岩波書店 / 196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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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내용은 리뷰로 썼으니 참고해 주시기 바란다)
1963년에 초판이 나온 오래된 책으로, 읽기에 결코 쉽지는 않으나 오키나와의 문화�역사 등이 잘 망라되어 있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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沖繩 (岩波新書 靑版 100)
岩波書店 / 196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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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3년에 초판이 나왔으니, 자그마치 60년이 넘은 책이다. 그때 오키나와는 일본이 아니라 미국에 속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들의 입장은 '오키나와는 미국이 아니라 일본에 귀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관점 위에서 쓰인 책임을 유념하여야 한다. 더군다나 글씨도 작고, 문체는 고풍스럽다. 한문으로 된 글은 가에리텐이 전부이고, 문어로 된 것은 패전 이전의 표기법 그대로이다. 물론 그건 당연한 일이다. 30대 이상은 외려 그러한 편이 익숙하였을 테니.

  그러나, 그럼에도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있다. 현재에 와서는 많이 옅어졌지만, 일본 내에서 타자 취급을 받던 오키나와인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오키나와를 무슨 동남아시아에 있는 이국으로 생각하는 60년대의 고교생이라든가, 더 전으로 가면 그 민족의 불쌍함을 논하는 이들이 있다. 그뿐인가, 당시 기준으로 20년이 채 되지 않은 태평양 전쟁 당시 오키나와인들이 입은 피해, 그에 동반된 황국화 정책, 오키나와어 금지, 방언찰. 

  본서는 오키나와와 일본을 가족으로 묶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스스로의 문화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자랑스럽게 말한다. 오키나와의 음악, 무용, 종교, 무도, 문학 등이 여러 챕터에 걸쳐 소개되는 한편, 그 역사도 꽤나 흥미롭게 서술되어 있다. 비록 나는 읽은 적이 없지만, 1950년대에 나온 김달수 씨의 『조선』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하였다.

  이 책의 끝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쓰여 있다.

 90만 오키나와현 현민이 외국 사람들의 지배를 끊고 새로운 「낙도의 고통」에서 벗어나 조국 일본에 돌아갈 날도 그리 멀지는 않으리라.

  그리고 그날은 또한 「오키나와가, 어떠한 노력을 통하여 본래 점해야 할 위치를 일본의 내부에서 획득할 것인가 하는 역사적으로 뿌리 깊은 문제」가, 최종적으로 해결될 날임에 틀림없다.

  그 뒤로는 다만 저자들의 짧은 후기가 쓰여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책이 1990년대 재차 복간되었을 때, 작고한 히가 씨를 제외한 두 사람은 다음과 같은 글을 붙이고 있다. 

  주지의 사실과 같이, 우리가 다음과 같이 쓰고 9년 후인 1972년 5월에, 오키나와는 일본으로 복귀하여, 신생 오키나와 현이 되었다...(중략)...그러나 마지막 단락의 예상은 실현되지 않았다. 33년 전에는 오키나와의 일본 복귀가 실현되기만 하면, 앞서 말한 「역사적으로 뿌리 깊은 문제」는 최종적으로 해결되리라고, 우리는 생각하였고, 일반 대중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복귀 후 24년이 지난 오늘날 「일본 국토 면적의 고작 0.6%에 지나지 않는 협소한 현토 면적에, 전국의 미군 전용 시설의 약 75%가 집중되어 있고, 이들 미군 기지는, 현토 면적의 약 11%, 특히 인구, 산업이 집중된 (오키나와) 본도에 있어서는, 기실 20%를 점하는 이상한 상황 하에 있다」......우리들이 본서 제1쇄에서 고발한 오키나와에 대한 역사적 차별은, 지금도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고 할 수밖에 없다......본서가, 작년 9월의 소녀 폭행 사건, 동년 10월의 85,000여 명의 총궐기대회, 오타 오키나와현 지사의 대리 서명 거부 등 반기지 투쟁의 고양 속에서, 오키나와 문제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을 이해하고자 하는 새로운 독자를 얻을 수 있다면, 집필자들에게 있어 그보다 기쁜 일은 없으리라.

  끝으로 인터넷에서는 찾기 어려운 본서의 목차를 다음에 적어 둔다.

  

  1  일본 속의 오키나와

  2  오해된 「류큐인」

  3  오키나와사의 여명

  4  사쓰마번 치하의 류큐 왕국

  5  백성의 난이 없는 나라

  6  일본의 근대화와 오키나와

  7  오키나와 문화의 지방색

  8  노래와 춤의 섬

  9  전후의 오키나와

  참고문헌에 대하여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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加耶/任那 古代朝鮮に倭の據點
仁藤 敦史 / 中央公論新社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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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나 도서에 관한 정보가 부족하므로, 나의 감상에 앞서 그러한 정보를 일정 기입하겠다)


  우선 본서의 정확한 제목은 다음과 같다. 

  加耶/任那―古代朝鮮に倭の拠点はあったか

  (가야/임나 ― 고대 조선에 왜의 거점은 있었는가)


  저자는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 명예 교수인 니토 아쓰시(仁藤敦史) 氏이다. 氏는 1960년 시즈오카현(靜岡縣)에서 태어나, 1982년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제1문학부에서 일본사학 전공으로 졸업하였다. 1989년 와세다대 대학원 문학연구과 박사후기과정을 만기 퇴학하였고, 1998년 박사(문학)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국립역사민속박물관 조교수, 교수를 거쳐 현재는 정년퇴임 이후 동 박물관 명예 교수로 있다. 

  

  본서의 목차를 소개한다.


  서장  가야/임나 연구의 흐름

  제1장  단군 신화부터 금관·대가야까지

  제2장  변한으로부터의 발전 ― 4세기의 동향

  제3장  대가야의 성장과 왜신(倭臣) ― 5세기~6세기 초두

  제4장  백제·신라에 의한 잠식과 저항 ― 6세기

  제5장  멸망 후 ― 왜의 흔들리는 「임나」 인식

  종장  가야란 무엇인가 ― 국민 국가를 넘어


  본서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마치었으니, 나의 감상을 짧게 늘어놓겠다. 우선 氏는 종래 일본 학계의 임나일본부 해석에 반발을 표한다. 일본인 학자임을 고려할 때, 임나일본부의 해석을 최소화한 것이라 생각된다. 물론 일부 국내 학계와 다른 점이 있을 수 있겠으나, 임나일본부를 무슨 통치 기구라든가 출선 기관 따위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가야에 거주하던 왜인들이 토착하여, 백제의 가야 잠식에 저항하였고, 그들을 백제가 임나일본부라 칭하였다는 해석을 하고 있다. 아무래도 저자가 역사학자이다 보니, 문헌의 해석을 중심으로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고고학적인 관점을 취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본서에서는, 국가·국경이나 국적 등 현재의 국민 국가적인 입장을 전제로 한 해석이 아니라, 양속적(兩屬的), 혹은 보더리스(Borderless)한 입장의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사료로부터 실증·해석하여 강조하고 있다.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본서는 일본에서 나오는 가야 연구서의 대개와 유사하게 임나일본부라든가 하는 가야-일본 관계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관계사 내용의 전후로 적지 않은 분량의 가야 개설이 이루어져 있으므로, 일본에서의 가야 연구가 궁금하다면 일독을 권한다. 특히 사료가 그대로 제시된 것이 아니라, 현대 일어 역문이 실려 있는 등, 신서의 '읽기 쉬운' 특징을 잘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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