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슨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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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주관적인 감상을 적었습니다.

롤런드의 아내 앨리사가 쪽지만 남겨두고 집을 떠나고, 롤런드는 어린 아들 로런스와 둘만 남겨지게 된다. 이 소설은 그 이후 롤런드의 삶과 과거의 기억을 담아냈다.

한 사람의 삶을 담은 소설이라, 조금 장황한 느낌은 있다. 소설의 시점이 과거와 현재를 왔다 갔다 하므로 집중력을 발휘해서 읽어야 한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으려면 병렬보다는 직렬 독서를 할 것을 추천한다.

그의 인생의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면, 역시 나는 피아노 선생 미리엄을 꼽을 수밖에 없다. 미리엄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너무 거북하고 불편했다. 열네 살의 미성숙한 청소년을 상대로 성적 욕망을 취하려 하다니 너무 충격적이었달까. 그와의 레슨이 어린 롤런드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고 생각한다. 그 일이 아니었다면 롤런드는 다른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았을까.

이 소설이 흥미로운 것은 자신의 예술적 성취를 위해 반려자와 자녀를 버리는 캐릭터가 남성이 아닌 여성이라는 점이다. 전자는 독자에게 굉장히 익숙하지만, 후자인 경우는 많지 않으니까. 그 진부한 패턴을 벗어난다는 점에서 조금은 새로웠다. 이 소설엔 미리엄을 포함하여 타인의 인생을 뒤흔드는 역할이 전복된 형태로 나타난다. 그건 어떻게 보면 고전 소설에 대한 도전처럼 보이기도 하고, 성적 고정관념을 뒤흔드는 시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같은 곡을 연주하더라도, 사람에 따라 다른 느낌을 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롤런드는 롤런드만의 인생을 연주하는 방식이 존재하는 것일 뿐. 그 방식이 옳다 그르다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삶의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후회로 점철되지 않는 삶이 과연 있을까. 인생의 끝자락에서 완전한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싶다. 롤런드의 삶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인생에서 배운 게 하나도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거라(p.685)’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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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다의 마지막 새
시빌 그랭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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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주관적인 감상을 적었습니다

오귀스트는 동물상을 연구하러 떠났다가 우연히 큰바다쇠오리를 만나게 된다. 소설은 오귀스트가 큰바다쇠오리를 기르며, 한 종을 보호한다는 것이 가능한가를 되묻는다.

오귀스트가 구한 큰바다쇠오리는 ‘프로스프’라는 이름을 얻어 오귀스트와 삶을 함께한다. 이것은 오늘날 인간이 멸종 위기 종을 대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종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동물원에서 사육하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다.

이 소설의 매력은 끝없이 질문을 던져 우리를 성찰하게 만든다는 것에 있다. 오귀스트는 프로스프와 함께하는 동안 끝없이 고민한다. ‘프로스트를 그냥 바다에 두는 게 맞았을까? 그랬다면 큰바다쇠오리라는 종은 사라지지 않았을까? 자신이 주는 먹이에 의존하게 되면서 야생성을 잃어가는 것이 옳은 것일까? 내가 한 일이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는 일을 한 게 아닐까?’

인간이 지구에 공존하는 한 야생 동물의 객체 보존이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인간의 오만함을 재확인하는 것 같았다. 삶을 영위하기 위한 무분별한 동물 사냥과 불법 거래, 연구 목적의 동물 박제는 모두 인간의 관점에서 행해지는 일이다. 지금도 여전히 동물은 인간의 관점에서 ‘보호’받는 것일 뿐. 그것이 정말 보호이고 보존인가는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

한 객체가 사라지는 모습을 그린 소설을 보며, 공존하는 삶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짧지만,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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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 구직자 - 그리고 소설가 정수정의 화요일 다소 시리즈 5
정수정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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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주관적인 감상을 적었습니다.

지수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후 결혼한다. 재취업이 쉬울 것 같던 기대와 달리 쉽지 않다. 왜 이토록 일자리를 찾기가 힘든 걸까.

제목부터 뭔가 감이 왔다. 이건 내가 공감할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역시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이 소설은 소설이 아니다. 현실 고증 그 자체다. 지수가 면접을 보러 다니는 장면을 보면서 내 생각을 들킨 것 같았다. ‘아니, 이런 현실을 어쩌면 이렇게 잘 담아냈지?’ 싶었는데 저자의 작업 일기를 보고 알게 됐다. 직장 생활을 했었고, 구직 활동도 하셨던 분이었다는 것을.

취업 시장에서 여성은 당사자의 결혼 유무와 상관없이 출산과 육아로 인한 공백을 고려해야 하는 대상이 된다. 사회가 인식하는 결혼 적령기의 여성이라면 더더욱 이런 인식은 견고해진다.

나도 수차례 경험해 봐서 잘 안다. 작품 속의 지수라고 다르지 않다. 그녀는 여러 차례 면접을 다니며 ‘결혼했다는 게 싫으면서 애초에 먼저 결혼해도 쭉 오래 다녔으면 좋겠다는 말은 왜 했담? 아이를 가지지 않을 거라고 굳이 덧붙였다면 결과가 달라졌으려나?’(p.87) 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은 여성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그래서 여성이 설 자리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어느 정도 나이대의 여성들이 학벌과 관계없이 백화점, 마트,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게 되는 건 이런 현상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시간을 주는 회사는 많지 않고, 그마저도 경력이 중단되는 순간 재취업은 요원해진다.

소설은 이런 지수의 상황을 핍진하게 그려낸다. 지수는 대체 언제까지 구직 활동을 해야 하는 것일까. ‘연쇄 구직자’라는 말이 너무 쓰다. 이게 허구가 아니라는 걸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더 입이 쓰게 느껴진다.

경력 단절 여성 관련 정책으로 탁상공론만 펼치는 사람들이 이 소설을 읽어야 할 텐데. 참 씁쓸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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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시작한 불은 책으로 꺼야 한다 - 박지훈 독서 에세이
박지훈 지음 / 생각의힘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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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주관적인 감상을 적었습니다.

출판 담당 기자로 일했던 저자의 독서 에세이라고 해서 읽었다. 곽아람 기자의 추천사도 이 책을 읽게 하는 데 한몫했다고 볼 수 있다.

독서 에세이를 읽을 때마다 그들의 독서 내공에 놀란다. 어느 한 권의 책을 소개하며, 다른 책을 인용하고, 인용이 또 다른 책으로 이어져 결국 한 권의 독서 에세이를 읽고 나면 담겨 있는 내용의 두 배 혹은 세 배 이상의 책을 알게 된다. 그래서 이런 독서력을 가진 이들의 에세이는 놓칠 수 없다.

이동진 평론가의 책을 소개하며, 저자가 출판 기자로 일할 당시를 회고하는데 ‘당시 매일 사무실 책상에 쏟아지던 신간은 성경 속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으로 가다가 받아먹었다는 하늘에서 떨어진 만나와도 같았다’(p.15)라고 비유한다. 애서가들에게는 너무나 탐나는 직업이 아닐 수 없겠다. 저자는 매일 쏟아지는 신간의 축복 속에서도 분야를 가리지 않고 열독하는 것이 자신의 직업윤리였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독서 분야의 폭은 다채롭다. 이 책 한 권만으로도 다양한 분야의 책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에세이가 가진 장점이다.

이 독서 에세이에는 서른네 권의 책이 소개되어 있으나 꼬리를 잇는 책까지 포함하면 적어도 오십 권 이상은 소개가 됐을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할 당시에 미국에 있어서 전자책에 의지해야 했다는 점이 아쉽다고 했으나 충분히 다양한 책을 소개받은 느낌이라 좋았다. 소설부터 여러 분야의 논픽션까지 소개되므로, 독서 편식이 심해 독서의 폭을 넓히고 싶은 사람에게 권할 만한 에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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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 난바다
김멜라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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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주관적인 감상을 적었습니다.

화려한 꽃일수록 가시가 많은 것처럼 예쁜 표지와 달리 안에 담긴 내용은 가시가 많다. 특히 욕+받이 채널을 운영하는 장면이 그렇다. 소설 속 장면의 수많은 가시 돋친 댓글을 읽으면서 불편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묘사된 댓글들이 너무 적나라하고 현실적이었으니까. 익명에 기대어 타인에 대한 혐오를 거침없이 뱉어내는 현실을 텍스트로 재확인하고 있자니 환멸이 났다고 해야 할까.

게다가 나는 둘희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기 연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자기 파괴를 일삼는 인물을 내가 좋아하지 않아서 더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해 장면을 보면서 눈살을 여러 번 찌푸리게 됐다.

‘차별금지법’을 다루는 소설이라는 것은 알겠지만, 저자가 서사를 구축하는 방식을 온전하게 따라가진 못했다. 저자가 만든 파도에 휩쓸리고 휩쓸리다가 결말에 이르고 나서 한동안 멍했다. ‘내가 지금 읽은 게 맞을까? 나는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했을까?’ 머리에 물음표만 두둥실 떠 있었다. 코멘터리 북에 담긴 편집자의 편집 일기에 써진 대로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나 여러 번 나를 시험에 빠지게 만든 소설이었다. 나는 저자가 만든 파도 속에서 영영 길을 잃고 만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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