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평점 :
우리는 아버지에 대해 전부 알 수 없다. 내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 아버지는 이미 태어났다. 내가 겪은 출생과 성장을 아버지는 인생 선배로서 이미 겪었다. 어머니도 결혼 전 아버지의 일거수일투족을 알지는 못할 것이다. 아버지의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도 알지 못한다. 아버지나 남편이 아닌 집 밖에서 직장인으로서, 학창 시절 친구들 사이에서 그는 어떤 사람일까. 우리가 아는 아버지의 모습은 한 부분일 뿐이다.
기억과 기록은 아버지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예컨대 아버지와 어머니의 과거 회상,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 일기장, 비디오테이프 등. 그날을 기억하기 위해 남겨둔 것들이 과거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아버지의 과거는 갑자기 찾아오기도 한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는 그것이 죽음으로 온다.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현재가 아버지의 과거들을 불러온다. 집에서는 보지 못했고 볼 수 없었던 아버지의 모습들. 아버지의 친구, 동지, 원수, 은인들.
이들로 조금씩 채워지는 아버지라는 한 사람의 삶은 격동의 근현대사라는 역사의 압축판이기도 하다. 아버지만큼 익숙했던 빨치산이라는 명명. 저자의 아버지는 1948년 겨울부터 1952년 봄까지 빨치산으로 살았다. 저자가 장례식장에서 처음 만나는 인물인 황 사장의 아버지 황길수도 빨치산이었다. 부고를 전하기 전부터 아버지를 찾아온 박한우 선생은 아버지와 동기동창으로 그의 형이 아버지의 빨치산 동료였다. 아버지의 빨치산 전력은 가족을 갈라놓았다.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는 원수처럼 지냈고 큰집 길수오빠는 작은 아버지가 빨치산이라는 이유로 신원조회에 걸려 육사에 입학하지 못했다. 그런가 하면 아버지가 위장 자수를 했음을 알아달라는 전직 빨치산들의 추모제에 이르기까지 아버지의 과거부터 현재는 빨치산이라는 흔적으로 가득하다.
저자는 아버지의 평생을 지배했던 것은 아버지가 빨치산이었던 고작 사년이 아니라 남한이 사회주의를 금기하고 한번 사회주의자였던 사람은 다시는 세상으로 복귀할 수 없도록 막았기 때문이라고 썼다. 빨치산이기 전에 그는 아버지이자 구례 사람으로, 구례 사람의 이웃으로 살았다. 빨치산은 아버지라는 이름에 비해 협소하다. 저자는 아버지를 보낸 뒤에야 빨치산도 빨갱이도 아닌 아버지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빨치산을 빼고 아버지에 대해 얘기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딸의 시각이다.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사년이 가장 영광스러웠던 과거일 수 있다. 빨치산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 어머니도 빨치산이었고 정지아라는 이름에는 그들이 활동했던 ‘지’리산과 백‘아’산이 아로새겨져 있다. 빨치산은 아버지의 과거이자 현재였고 미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