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를 죽였다 (히가시노 게이고) - 내가 누군인지 안 알려줌...

내가 그를 죽였다 ㅣ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가가 형사 시리즈 중 한 작품. 

나름 성공한 소설가인 남자.  실제로는 바람둥이이자 지독히 이기적이고 속물적인 남자다.  그런 그와 결혼을 결심한 여자.  그녀는 유명 시인으로, 어릴 적 부모님이 사고로 숨지자 오빠와 헤어져 친척집에서 자라다가 성인이 되어서 오빠를 다시 만나 한 집에 살게 되나 두 사람은 금단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런 감정을 거부라도 하듯, 그녀는 소설가인 남자와 결혼을 결심하지만, 그녀의 오빠는 아직 그녀에 대한 마음을 거두지 못해 괴로워하며 연적으로서 소설가를 대하게 된다. 

한편 그녀의 편집자인 여자 또한 한때 소설가의 애인이었지만 곧 그의 실체를 깨닫게 되고 적의를 감춘 채 자신이 담당하는 시인과 소설가의 결혼을 지켜본다.  소설가의 대학 동기이자 현재는 그의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는 남자는, 사실상 거의 소설가의 개인비서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그가 저질러놓은 적자사업이며 복잡한 여자관계까지 그 뒤치닥거리를 해야 할 상황이다. 

결혼식을 하루 앞둔 날, 소설가에게 이용만 당한 채 버림받은 여자가 소설가의 집으로 찾아오고, 여느때처럼 매니저가 그녀를 달래고 돌려보내나 그녀는 곧 소설가 집 정원에서 자살한 채 발견되고, 소설가와 매니저는 서둘러 그녀의 시체를 그녀의 집으로 옮기며 이를 모른체 하려 한다.  여차한 경우, 매니저에게 차인 실연의 아픔으로 자살한 걸로 사건을 무마하기로 하고...

그러나 결혼식 날 소설가는 평소 자신이 먹던 약 캡슐안에 든 독을 먹고 살해되고 만다.  그를 죽이고 싶어했던 피의자가 쟁쟁한 가운데, 세 명의 용의자가 서로 번갈아가며 화자가 되어 자신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서술한다.  서로 내가 그를 죽였다고 은밀히 고백하면서...

이제 가가 형사가 나서고, 모두가 범행을 부인하고 비밀을 감춘 채 타인에게 의심을 돌리려 하나, 예리한 가가 형사의 수사와 추리력은 그들을 점차 옥죄어 오는데, 범행의 도구가 됐던 독약 캡슐을 둘러싸고 마치 폭탄 던지기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던진다.  마치 산수 문제를 풀 듯 캡슐 숫자를 맞춰가며 그 안에 든 독약이 어떻게 움직이고 마침내 소설가가 먹게 됐는지를 밝혀가는 과정은, 현란한 손기술과 눈속임을 자랑하는 야바위 게임 같기도 하고.  그러다가 결국 '당신이 그를 죽였다'고 최후의 한마디를 내뱉는 가가 형사.  그러나 그 이름은 끝내 작품에는 나오지 않고, 이후 해설 편에서도 설명과 힌트만 던져놓을 뿐 구체적인 범인의 이름은 밝히지 않은 채 작품은 끝난다.  독약이 든 캡슐의 행방을 그다지 따라가지 않고 설렁설렁 읽기만 하다가, 오잉? 하며 당황해 했다.  다시금 찬찬히 읽어볼 마음은 들지 않고, 그냥 인터넷으로 범인을 알려주는 블로그를 통해 확인했고,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좀 황당하면서도 재미나기도 했다.  그냥그냥 가볍게 읽을만한 페이지 터너였다.

히포크라테스 선서 (나카야마 시치리) - 죽은 자의 마지막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히포크라테스 선서 ㅣ 법의학 교실 시리즈 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7년 7월

의학 미스터리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 작품은 어떨까 싶어 한번 읽어보기로 했다.

나카야마 시치리의 우라와 의대 법의학 교실 시리즈 1편.  연수의인 마코토는 우라와 의대 법의학 교실에서 연수를 받게 되고, 괴팍하나 최고의 실력을 지닌 미쓰자키 교수와 그를 숭배하며 시신을 사랑(?)하는 미국인 조교수 캐시와 한 팀이 된다.  거기에 미쓰자키에게 매번 무시와 비아냥을 들으나 부검팀과 뜻을 같이하는 고테가와 형사까지 가세하여 관내에 병력있는 시신들을 해부하기 시작한다.

사인이 분명한 것으로 보였던 다섯 구의 시신을 우여곡절 끝에 부검하는 미쓰자키.  만취 상태로 동사한 중년남, 자전거를 타고 가다 차에 치여 죽은 젊은 여성, 경정 시합 도중 사고를 당해 죽은 선수, 폐렴으로 치료 중이다 급격히 상태가 나빠져 죽은 마코토의 친구, 복막염으로 입원하여 치료를 받다가 죽은 어린 아이까지, 각각의 이야기가 있었고 다섯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였던 다섯 건의 사건은, 미쓰자키의 부검을 통해 놀라운 하나의 사실을 드러낸다.  그가 부검을 통해 밝히려고 했던 진실은 죽은 자들의 소리없는 외침이었을 것이다.

이야기 자체는 그다지 대단한 반전이나 추리가 있는 건 아니다.  다만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제각각의 의지와 신념으로, 죽은 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진실을 탐구하며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에 담긴 정신을 구현하고자 애쓰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는 점에서 여타 추리소설과는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단델라이언 (가와이 간지) - 민들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의 꽃말

단델라이언 ㅣ 데드맨 시리즈
가와이 간지 지음, 신유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7월

데드맨 시리즈 세번째 작품.  이번엔 민들레이다.

시골 목장의 탑 안에서 하늘을 나는 듯한 모습의 여자 시체가 발견되고, 이후 이는 16년 전 일어난 살인사건임이 밝혀진다.  서둘러 이 사건을 공안부로 떠넘기려는 상부의 지시에 맞서 가부라기 일행은 이 사건을 은밀히 조사하기 시작한다.  더구나 히메노의 어릴 적 추억과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되고, 수사에 박차를 가하는 가부라기 일행.  그러나 공안의 비협조 속에 제한된 단서 만으로 이 밀실살인의 수수께끼는 좀처럼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국회위원의 비서가 고층 호텔의 옥상에서 불에 타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고, 범인이 도망쳐 나갈 방법이 없는 이른바 개방형 밀실의 범행장소에서 경찰은 다시금 좌절하게 된다.

한편, 히나타 에미의 일기를 통해 독자들은, 16년 전 고에이 대학 환경활동 동아리 '민들레 모임'의 멤버들의 활동과 그 이면에 담긴 범행의 동기, 방법 등을 엿볼 수 있다.  과거와 현재, 두 가지 시점을 오가며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은 비교적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작가의 전편 "드래곤 플라이"에서는 잠자리를 통한 환경문제를 제시하였다면, 이번엔 민들레이다.  그러나 환경문제는 표면적인 이미지였을 뿐, 그 뒷면에 비친 인간의 악의가 벌이는 비극이 16여년의 세월을 관통해 이어진다. 

범인이 밝혀지는 과정이 다소 언페어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나름 재미나게 읽히는 작품이었고, 작가의 전작들보다는 더 낫다는 개인적인 느낌이다. 

속임수 (샤를로테 링크) - 피해자가 가해자로 밝혀지는 순간, 속임수는 풀어진다

속임수
샤를로테 링크 지음, 강명순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4월

은퇴한 경찰 리처드 린빌은 어느날 밤 자신의 집에 침입한 괴한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된다.  죽기 전 그는 자신을 폭행하면서 나를 기억 못하겠냐는 범인을 알아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며 과거의 일을 떠올린다. 

그의 딸이자 런던 경찰인 케이트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데 서툴고 소심하고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다.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휴가를 받아 고향으로 돌아온 그녀는케일럽 반장이 이끄는 현지 경찰의 수사와 별도로 독단적인 수사를 펼치며 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찾아내 단죄하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케일럽 반장과 미묘한 관계에 놓이게 되고, 제인 형사에게 호감을 느낀다.

리처드와 특별한 관계에 있었던 멜리사도 리처드 죽음 이후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나다 결국 살해되고 만다.  리처드가 폭행치사로 잡아넣은 데니스라는 범죄자가 최근 석방되었다가 그의 죽음 이후 사라지자 경찰은 데니스를 유력한 용의자로 생각했으나, 멜리사의 죽음으로 인해 두 피해자 사이의 연관성을 추적하게 된다.

한편, 시나리오 작가로 활약중인 조나스는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치료하기 위해 2주간 외딴 농장을 빌려 휴가를 보내기로 한다.  그와 아내 스텔라는 테리라는 미혼모로부터 새미를 입양하여 키우고 있는데, 휴가 직전 5년 만에 나타난 테리와 그녀의 남자친구 닐의 방문을 받고 불안감을 느낀다.

이야기는 한편으론 조나스 부부와 테리, 닐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또 한편으론 리처드, 멜리사의 죽음을 파헤치는 경찰과 케이트의 수사가 병렬 구조로 이어진다.  결국 약간의 반전을 거치며 결말을 맺게 되는데, 후반부에 이미 범인과 동기를 쉽게 추측할 수 있어 약간은 김이 빠지고 싱거운 느낌은 있다.  뭣보다, 내가 유럽 스릴러 물들을 너무(?) 많이 읽어선가 원래 그쪽이랑은 안 맞아선가 내게는 별다른 감흥이 없다는 점이 문제다.  샤를로테 링크 역시 독일에서는 아주 유명한 인기 작가라는데, 근래 읽었던 여타 유럽 스릴러물과 마찬가지로 별로 와닿거나 재미가 느껴지지 않고 다 그저그렇고그런 진부한 느낌 뿐이라 앞으로는 접하지 않게 될 듯 싶다.  혹시나 하면서, 이 작품은 정말 재밌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기대로 계속 읽어나갔는데 지금까지는 no-no...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김민식) - 포기하지 않으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김민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월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라는 제목에 뜨끔하여 읽게 된 책.  공대를 나와 통역사가 되고 PD로 전업하여 활발히 활동중인 저자가, 영어에 대한 자신의 경험에 기반하여 인생에 대한 여러 얘기를 해 주는 책이었다.  영어 공부에 대한 노하우나 관련 에피소드 등만이 언급될 줄 알았는데, 읽어보니 넓은 의미의 자기계발서였다.  비단 영어 공부 뿐만 아니라, 인생 전반에 걸친 노력과 태도 등을 영어라는 매개체를 통해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내 기준에 좀 질리기도 하고 오글거리기도 한 저자의 성실함은 영어 뿐 아니라 매사를 대하는 그의 자세이고, 그런 자세를 설파하는 책이었다.  유용한 충고도 있고 영어에 대한 도전도 느끼게 해주는 데에 의미가 있었다.  예를 들면, 포기하지 않는다고 다 그 길로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나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는 있게 해준다는 이야기.  생각해봐야 할 이슈를 던져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