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티시즘 위에 피어난 본격 추리

북의 유즈루, 저녁 하늘을 나는 학 ㅣ 요시키 형사 시리즈 2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 / 검은숲 / 2013년 8월

'북의 유즈루, 저녁 하늘을 나는 학'이라는 제목이 무슨 말인지 이해는 안 갔지만 (유즈루는 뭐고, 저녁 하늘을 나는 학은 뭘 뜻하는 거지? 하고...  결국 소설을 끝까지 읽었지만 여전히 그 의미는 모르겠다...;;), 왠지 멋져보이는 제목이었다.

또한 시마다 소지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기대로 두근거리며 작품을 읽기 시작했다.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에 이은 두 번째 '형사 요시키 시리즈.'

요시키 다케시 형사는 이혼한 전처 미치코로부터 5년 만에 전화를 받는다.  단순한 안부전화인 듯 하지만 뭔가 모르게 묘한 여운을 남기는 미치코에게 미안함과 불안함을 느낀 요시키는, 그녀를 배웅하기 위해 역으로 가서 열차 유즈루호에 탄 그녀를 창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다.  이후 열차 내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미치코 객실에 그녀 대신 다른 여자가 죽은 채로 발견되고 그 옆엔 미치코가 좋아했던 학 공예품이 놓여있음을 알게 되고 경악한다.  미치코에게 무슨 일이 생겼든 그녀는 범인이 아니라는 확신 하에 요시키는 남몰래 그녀의 누명을 벗기고자 그리고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고자 그녀가 사는 북쪽 지방으로 향한다.  이 곳에서 기묘한 살인사건을 마주치게 되는데, 바로 미치코의 집에서 두 명의 여성이 시체로 발견된 것.  관리인의 눈에 띄지 않고는 출입이 불가능한 아파트에다, 살인이 있던 시각에 우는 기괴한 전설이 서린 '밤에 우는 돌,'  그리고 혼자 움직이는 무사의 투구 갑옷까지.  기괴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이 살인사건은 요시키의 전처 미치코를 범인으로 몰고 있고, 그녀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요시키는 이 난해한 미스터리를 풀어야 하는데...

추리소설이 근간이긴 하지만, 그 밑면에는 전처에 대한 주인공의 애정과 후회가 깔린, 남녀간의 로맨스적인 요소도 짙게 배인 작품이었다.  시마다 소지 특유의 다소 현학적이고 (아무리 그래도 기요시 미타라이 시리즈만 할까...^^;) 난해한 본격 추리에, 환상적인 분위기가 가미된 복합적인 작품이었다. 

얼굴을 그리는 여경, 경찰조직 내에서 자신의 자리를 새기다

얼굴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9월

용의자의 몽타주를 그리는 업무를 맡은 여경, 히라노 미즈노.  남성 중심의 경찰조직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고자 애를 쓰나 만만치 않다.  몽타주를 그리는 과정에서 그릇된 선택을 강요받고 업무에서 도망치고 만다.  그러나 다시 몽타주 업무로 복귀하여 '여경'이 아닌 당당한 '경찰'로서의 임무를 해내고 싶어 하나 좀처럼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여전히 냉소적인 남자 경찰들의 시각과 비아냥 속에서 외로운 싸움을 헤쳐나간다.  그 과정에서 그녀가 겪게 되는 다섯 건의 사건들, 그 미스터리의 한 가운데서, 때로는 외곽에서, 진실을 꿰뚫는 날카로운 추리력을 발휘하며 경찰로서의 자신을 입증해내는 미즈호.

20대 여성의 여리고 연약해 보이면서도 강단있는 그녀는, 어렸을 적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간직하며 점차 날카롭고 예리한 경찰로서 성장해 간다.

경찰소설의 베테랑, 요코야마 히데오의 조금은 특색있는 작품.  20대 여경이라는, 그동안 전혀 다뤄지지 않았던 인물을 가지고, 철저한 남성 위주의 조직인 경찰 내에서 젊은 여경이 겪는 고충과 자기 성찰, 그리고 성장을 다루면서도 미스터리에 대한 날선 추리도 놓치지 않는 작품이었다.

적나라한 치명적 리얼리티, 그 불편한 그래서 더욱 매혹적인...

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7년의 밤'의 전율을 잊지 못하며 2년을 기다려온 정유정의 신작소설, "28."  인간과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생존을 향한 갈망과 뜨거운 구원에 관한 이야기라는 책 소개에 두근거리는 기대감으로 책장을 펼쳤다.

그런데...읽는 내내, 빨려들어갈 듯한 그 서사에도 불구하고, 그 잔혹하리만큼 적나라한 현실묘사에, 내리 읽어나가지를 못하고 중간중간 쉬어야만 했다, 다른 가벼운 이야기로 희석을 시키면서 그 진저리쳐지는 이야기에서 잠시 벗어나야만 했다.

무대는 수도권 인근 도시인 화양시.  이 곳에 사는 5명의 인간과 1마리의 개의 시점이 교차하며, 이 끔찍하고 처절한 이야기의 씨줄과 날줄이 엮어진다.  알래스카에서 개썰매 레이스 '아이디타로드'의 한국인 최초 머셔(개썰매꾼) 재형, 화양시 소방대를 이끄는 특전대 출신 팀장 기준, 성실하고 조용한 성격의 응급실 간호사 수진, 독실한 크리스천이면서 병원장인 아버지와 잘난 형제자매들 틈에서 치이며 성장한 사이코패스 동수, 가난한 시골 소녀에서 열혈 기자가 된 윤주, 그리고 투견으로 잔인하게 키워지며 인간에 대한 증오를 품은 팀버울프 피가 흐르는 늑대개 링고.  이들이 각자 자신의 시점으로 이 무간지옥 화양의 28일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펼쳐놓는다.

인구 29만의 이 도시에서 정체불명의 인수공통전염병이 발발하고, 사람과 개가 서로에게 병을 전염시키며 도시를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만든다.  감염 후 눈이 빨개지며 바로 죽음에 이르는 치명적인 이 전염병이 급속도로 퍼져나가자 국가에서는 화양을 폐쇄시키고, 이 죽음의 도시는 고립된 채 시민들은 무차별적으로 죽어나간다.  전염병의 파급을 막고자 하는 대책의 일환으로 화양시의 개들을 살수처분하고, 곳곳에 인간과 개들의 시체와 울부짖음이 도시를 채우고, 이 버려진 도시는 살육과 약탈이 자행되는 무법천지로 변해간다.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80년 5월의 광주도 연상되고, 전염병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망설임없이 살처분되는 가축들, 동물들, 평소에는 가족과 같이 여기다가도 쉽게 인간의 변덕에 의해 버려지는 유기견들, 공포를 직면한 극한의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악마적 본성, 폭력적인 국가공권력의 광기 등의 현실이 느껴지면서, 마치 소설 속 무대가 현실인 것으로 여겨지며 몸서리쳐지는 경험을 했다.

결코 친절하지 않은, 너무나 적나라한 현실을 풀어놓아서, 불편하고 불안하고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소설.  결말에 이르기까지도 결코 달콤한 위로나 위안 없이,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눈앞에 들이대며 직시하게 만드는 고통과도 같은 작품이었다. 

작품의 재미 자체는 오히려 "7년의 밤"이 더했던 것 같다, 한정된 공간 속에서 오롯이 이어지는 한줄기의 사건을 따라가며 읽는 맛이.  물론 마치 늪에 빠진 듯한 그 어둡고 답답하고 질척거리는 분위기에 허욱적대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건 우리 '이웃'의 이야기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바로

'우리'의 불편하고 끔찍한 이야기다, 눈 돌리고 싶은.  그래서 더 힘들고, 그래서 더 매혹적인. 

귀족 뒤에 숨은 진짜 탐정들

귀족탐정 한정판
마야 유타카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3년 5월

애꾸눈 소녀, 날개 달린 어둠에 이어 세번째로 읽은 마야 유타카의 작품, 귀족탐정.

탐정이라고 외치면서, 수사도 추리도 하지 않는 귀족탐정.  다소 우스꽝스러운 그의 캐릭터는 거만하고 잘난 척 하는 성격에도 밉지 않은 인물을 만들어냈고, 그의 충성스럽고 다소 만화적인 캐릭터의 능력자 하인들이 풀어내는 다섯 건의 명쾌한 사건 추리는 본격적인 미스터리에 충실하다.

에도시대의 화성남자 금성여자의 처절하고 눈물겨운 사랑 이야기...

웃는 이에몬
교고쿠 나쓰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11월

특이하고 기묘한 작풍의 교고쿠 나츠히코의 작품 "웃는 이에몬"은 일본의 전통 괴담을 소재로 하여 서투르면서도 처절한, 그래서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웃어 본 적이 없는 무뚝뚝한 무사, 이에몬.  아름다운 얼굴을 가졌으나 몹쓸 병으로 추한 외모로 변해버린, 그러나 심지가 굳고 강한 다미야 이와.  이와의 아버지인 무사 마타자에몬은, 죽기 전, 딸의 미래를 걱정하여 이에몬을 데릴사위로 들인다.  추한 얼굴에도 불구하고 이와를 사랑하는 이에몬은 그의 마음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이에몬의 진심을 알지 못하는 이와 역시 그를 사랑하면서도 그의 마음을 오해하고 자신의 마음도 알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두사람은 매일 싸우기만 하고, 이 가운데, 이에몬의 상사인 악당 이토 기헤이는 이 둘 사이를 갈라놓으려 하고, 이토 기헤이에게 능욕을 당하고 그의 집에 갇혀서 고통의 나날을 보내던 우메는 이에몬을 연모하게 된다.  끝내 기헤이의 계략에 빠진 부부는 갈라서게 되고, 서로의 마음을 외면한 채 각자의 삶을 사는데, 결국 중매쟁이 마타이치와 안마사 다쿠에쓰, 의원집 하인인 나오스케가 나서며 이를 밝히려 하는데...  여기서 파국은 일어나고 사건은 처절하나 눈물겨운 결말을 향해 달린다.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시대극이라는 점에서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들과도 비교가 되나, 그와는 또다른 맛이 느껴진다.  평소 현학적이고 기괴한 내용과 분위기의 교고쿠 나츠히코의 기존 작품들과도 조금 다르고.  뭣보다 강직한 성품들을 지녔으나, 마음을 열고 관계를 맺는데 서투른 두 남녀의 모습은 마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의 에도시대 버전과 같아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그러나 그 밑바닥엔 서로를 끔찍히 위하고 연모하는 강직한 마음이 있었기에, 또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 모습이 안타깝고 그들의 처절한 사랑이 눈물겨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