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탐하다 (마이클 코리타) - 신예의 페이지 터너

밤을 탐하다 - 판타스틱 픽션 BLACK 14-3 ㅣ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4
마이클 코리타 지음, 최필원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6월

쟁쟁한 스릴러 작가들이 하나같이 차세대 주자로 극찬한다는, 물론 홍보성이겠지만, 문구를 보고 접한 작품이다.  원래는 '링컨 페리'라는 탐정을 내세운 시리즈물을 발표하고 있지만 이 작품은 스탠드 얼론이란다. 

연방보안관이면서 동시에 청부살인을 해왔던 아버지의 자살 이후 고향을 등지고 떠돌이처럼 살아가던 프랭크 템플 3세.  자신의 우상이었던 아버지의 이면에 감춰진 어두운 진실을 마주하게 되고, 또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 뒤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끔찍한 과거를 지닌 프랭크는, 동시에 어릴 적부터 아버지로부터 단련된 뛰어난 무술실력과 기술을 지닌 채 복수를 꿈꾸게 된다.  그러던 중, 아버지의 오랜 친구인 에즈라로부터, 아버지를 밀고한 데빈 매트슨의 귀향 소식을 듣고 복수를 다짐하며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 길에서 우연히 렉서스와 추돌사고를 만나고, 7년 만에 고향에서 조우하게 된 타켓이 모습을 드러내기도 전에, 마을을 찾아온 의문의 남자와 그를 쫓는 듯한 사내들과 엮이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동차 정비공 노라와 함께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젊은 작가의 작품답게, 뭔가 노련미나 매끄러움이 덜한 면은 있지만, 그래도 충실한 페이지 터너로서 제몫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당대 최고의 액션스릴러 작가들이 극찬을 하며 네오 누아르의 뉴 블러드라는 낯간지러운 칭찬만큼은 아니다.  뭔가 익숙한 듯한 클리셰로 잘 짜여진 작품을 접한 느낌이다.  그리고 초반에는 주인공의 무술실력 등을 거의 초인적인 수준으로 소개해놓은 게 무색할 정도로, 막상 위기 상황에 이르러서는 그의 활약은 그리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래도 이대로 바이,하며 끝낼 정도는 아니니, 그의 '링컨 페리' 시리즈도 접해봐야겠다.

모방살의 (나카마치 신) - 어쩌면 서술트릭...?

모방살의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5
나카마치 신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5년 9월

나카마치 신의 '살의 시리즈' 첫번째 작품.  작가가 유명을 달리한 이후에 빛을 발한 작품으로, 새로이 복간되면서 화제를 낳은 책인 모양이다.  그러나, 천재 작가의 천재적 걸작이라는 홍보문구는 좀 과장이 심하다는 생각이다...

줄거리는, '사카이 마사오'라는 신인 추리작가가 자신의 집에서 독살된 뒤 추락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밀폐된 실내를 근거로 자살설로 기울어지던 중에, 소설인 듯 유서인 듯한 작품이 등장하면서 타살의 의혹도 제기된다.  간단한 사건 전개를 담은 후, 그의 죽음을 쫓는 두 남녀의 서술이 교차되며 사건이 전개되는 구조이다.  두 남녀는 조사를 통해 저마다의 용의자를 특정하며 자신의 추리를 이어나가게 되는데, 어느 쪽이 진실인지 마지막 장에서 독자에게 도전을 청하는 엘러리 퀸식의 스타일도 선보인다.

결말까지 읽고나서 사건의 진상이 펼쳐지면서, 이른바 서술트릭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쟁쟁한 서술트릭의 대가들 작품같이, 아...! 하는 느낌은 아니고, 뭐야, 이것도 서술트릭이었어? 그렇다고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드는...  워낙 시대를 앞선 작품이라는 점에서는 당시로서는 파격이고 대단한 반전이라고는 할 수 있겠지만, 서술트릭의 정수(?)를 몇 편 맛본 입장에서는 기대에 좀 못미치는 느낌이다.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 (미야베 미유키) - 작은 사건, 깊은 고뇌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 ㅣ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5년 6월

오래간만에 접한 '행복한 탐정'시리즈 제3탄!  "누군가"와 "이름없는 독"에 이은 시리즈라는 것도 모른 채 읽기 시작했는데, 출판사 편집자였다가 재벌가의 딸과 결혼하면서 그룹의 사내 잡지를 만드는 일을 하는 스기무라 사부로라는 조용한 남자를 내세운 작품이다.

취재를 나섰다가 우연히 버스납치극의 인질이 되어버린 스기무라.  납치범은 연약한 노인이나 그의 현란한 말솜씨에 모두가 '조종'당하는 느낌이 가지며 인질극에 빠져든다.  결국 경찰의 진압으로 사건은 해결되고 범인은 자살을 하는데, 이후에 이 사건을 파헤쳐가는 스기무라와 당시 인질이 됐던 사람들의 합동 조사가 긴 호흡을 내달리며 이어진다. 

미미여사의 사회파 미스터리 답게, 그리고 이 시리즈의 첫편이었던 '누군가'에 대해 사건은 작지만 고뇌는 깊다는 일본 출판사의 홍보문구처럼, 이 작품 역시 사건 자체는 드라마틱하거나 대단하지 않다.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가는 과정 역시 그렇다.  일상의 모습을 유지한 채, 아마추어들끼리 조용히 조사를 진행할 뿐이라 장르적인 성격은 사실 거의 없고, 드라마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그런 조용한 드라마인데 가독성이 뛰어나다는 데 작가의 필력이 있을 것이다.

사족으로, 왜 해석판 표제가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인 지는 모르겠다, 전혀 연상되는 바가 없는데...

퇴마록 외전 : 마음의 칼 (이우혁) - 그리운 시간들을 추억하며...

퇴마록 외전 : 마음의 칼 ㅣ 퇴마록
이우혁 지음 / 엘릭시르 / 2014년 9월

"퇴마록"의 큰 줄기의 작은 가지라고나 할까, 그 주변의 이야기들과 인물들을 다룬 단편집이다.  그래서 '외전'이고, 외전으로서는 두번째 작품이다. 

예전 본편들을 열광하며 읽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면서도, 일부는 가물가물 잊혀지고, 그렇게 세월의 두께를 느껴가며 읽었다.  좀 오글거리고 좀 덜익은 것 같기도 하고, 그때도 그랬나, 본편도 그랬었나 하는 마음도 있고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당시의 기억과 느낌을 추억하며 재미있게 읽었다. 

구성은, 블랙 서클의 기원을 그린 작품과, 사이코매트리 능력을 지난 미국 형사 더글러스를 돕는 현암과 승희, 이반 교수의 한판 활약극, 자신이 저지른 죄의 유무를 놓고 고민하는 청홍검의 소유자 현정의 이야기, 그리고 모두 죽은 걸로 처리돈 채 은둔하며 살아가는 주인공 4인의 크리스마스 모습 등이 그려져 있다.  문득 그네들의 활약이, 그리고 거기에 열광했던 내가 그리워지는 시간이었다. 

엿드는 벽 (마거릿 밀러) - 벽장 너머의 진실

엿듣는 벽 ㅣ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마거릿 밀러 지음, 박현주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9월

1950년대 작품이라 다소 고전적이고 올드하다.  새롭게 출간되면서 홍보를 하길래 읽어보았는데, 아무래도 당시 시대상을 배경으로 한 만큼, 좀 올드한 느낌을 버릴 수가 없었다.  특히나 철저히 20세기 중반의 미국인들 시각에서 보는 여성과 외국인에 대한 인식 등은 좀 어이가 없긴 했지만, 그 당시 사회상을 드러냈다는 점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소심한 에이미가 제멋대로인 성격의 친구 윌마와 함께 멕시코로 여행을 떠나고, 호텔에서 그녀들의 방을 청소하는 현지 여성은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는다.  휴가지에서도 윌마는 성질을 부리고, 에이미의 남편에게 줄 선물을 산 것을 에이미에게 우연히 들키게 된다.  그러다 윌마가 객실에서 투신한 시체로 발견되고, 충격을 받아 현지 병원에 에이미를 데리러 그녀의 남편이 멕시코로 떠난다.  이후 홀로 돌아온 남편.  에이미의 오빠는 동생이 실종됐다고 여기며 그녀의 남편을 의심하여 사립탐정을 고용한다. 

사라진 아내와, 아내의 행방을 숨기려는 듯한 남편, 그런 그를 의심하는 주위 사람들 등은, 마치 길리언 플린의 "나를 찾아줘"를 연상케 한다.  물론 그 전개는 많이 달랐지만.  결말이 쉽게 예상되어서 좀 시시한 면은 있었지만, 당시로서는 꽤 센세이셔널 했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