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백꽃,봄봄,소나기,따라지,만무방,금따는 콩밭,가을,야앵 외 - 어문각 9
김유정 지음 / 어문각 / 1984년 4월
평점 :
절판
.. 제목 '만무방'은 '함부로 구는 자', '예의 염치가 없는 자들의 무리'라는 뜻을 가진 낱말이다. 뜻 그대로 이 소설의 주인공 응칠은 스스로 일하는 것을 포기하고 떠돌기를 작정한 인물이다. 이러한 당시의 농촌 사회의 모순은 당연히 응오와 같은 진실한 농부보다는 응칠과 같은 '만무방'을 만들어 내기에 알맞은 지도 모른다. 가난으로 인해 그의 도덕관은 타락하여, '이 땅 삼천리 강산에 늘어 놓인 곡식'은 '먼저 먹는 놈이 임자'라고 생각하는, 몇 번의 절도와 도박의 전과자이다. 응오는 순박하고 성실하지만 가혹한 지주의 착취에 맞서 추수를 거부한다. 이런 상황에서 응칠은 응오 논의 벼가 도둑질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안게 된다. 응칠은 전과 4범인 자신이 도둑으로 지목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범인을 잡으려고 논 근처에서 매복하여 밤을 세우게 되는데, 깊은 밤 격투 끝에 도둑을 잡고 보니 다름 아닌 바로 이 논의 주인이자 동생인 응오였다.
<만무방>은 식민지 현실에 대해 계몽적 이상주의나 감상적인 현실 중시의 피상적인 농민 문학이 아닌 당시 식민지 농촌에 가해지는 제도의 가혹함과 그 피해의 관계를 밝히는 한편, 제도가 야기시키고 있는 순진한 인간의 기본적인 반항과 불가피한 생존 양태의 문제 등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이 작품의 특징은 동시대의 많은 작품들이 지니고 있던 계급 투쟁적인 저항의 경직성을 드러내지 않고, 반어로써 처리하여 식민지하 농촌의 궁핍한 현실을 풍자적, 해학적으로 그려냈다는 데 있다. 절망적 현실 속에서도 실망낙담보다는 웃음을 유발시키는 작중 인물 응칠을 내세워 형상화한 토착적 유머는 고전 소설에서도 흔히 보이는 특징으로, 절망적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민중 특유의 건강성을 반영하고 있다.
김유정 소설의 인물들은 힘으로나 지성으로나 뛰어나지 못한 평균적 인간형들이다. 보편적 능력을 지닌 정상인이라는 점은 작가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는 중요한 요점이다. 이러한 인물들이 현실 속에서 희화적으로 파괴되고 있음은 그 원인이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역사적 모순에 근거하고 있음을 작가는 반어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산골 나그네>의 덕돌과 <총각과 맹꽁이>에서 덕만이가 겪는 혼사의 좌절, <금따는 콩밭>의 영식이 콩밭을 파헤치고 金줄을 잡으려다 1년 농사만 망치는 일, <땡볕>에서 아내의 병을 고치며 월급까지 타려하나 월급도 받지 못하고 아내만 잃게 된 덕순, 성실한 농군이 농사를 파작하고 전과범이 되는 응칠.응오 형제 등은 한결같이 아이러니의 양식 위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었다. 이러한 아이러니의 양식은 작가가 30년대의 피폐한 농촌사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제시하기 위해 선택한 것으로 파악되며, 도덕적 판단이나 이데올로기에 구속되지 않음으로써 정확한 30년대 농촌현실의 인식과 함께 완숙한 예술성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결국 김유정은 일제에 의해 감행된 식민지 농업정책으로 인해 신분의 전락을 경험하고 있는 농민들의 실상을 반어의 양식을 통해 인식함으로써 30년대의 뛰어난 사실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아울러 아이러니의 양식은 작가에게 있어 현실에 대응하는 예술적 인식의 방법이었으며 왜곡된 역사에 대한 항변의 도구였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