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픽처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어쨌든 그 옛날과 달리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싶은 충동은 많이 사라졌다.
가족의 덫에 걸렸다는 느낌도 없었다.
두 번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 사람에게는 달리 달아날 만한 곳도 없으니까.
 
<빅 픽처> 中, 더글라스 케네디 作

 

 

 읽으면 읽을수록 실망을 주는 작가가 있는 반면, 이와는 반대로 읽으면 읽을수록 만족을 주는 작가가 있는데요. 저에게 더글라스 케네디는 후자에 속하는 작가라고 이미 한 번 언급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오늘 이야기할 책은 더글라스 케네디의 작품 중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작품, 빅 픽처입니다.

 


 벤 브레드포드는 사진에 대한 열망을 품고 사는 변호사입니다. 사진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쳐 모든 꿈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소원대로 변호사로서 살아가고 있지요. 그의 지나간 꿈을 다시 찾아볼 수 있는 곳은 지하에 전시된 카메라들과 사진 뿐입니다. 어느 날 벤은 아내인 베스가 이웃인 게리 서머스와 외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게리와 언쟁을 벌이다 홧김에 그를 살해하고 맙니다. 절망해 자신의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벤은, 이내 이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두 번째 기회라고 여기고 새로운 삶을 위해 계획을 꾸밉니다. 게리를 자신으로 위장해 사망한 것으로 꾸미고 자신은 게리 서머스가 되어 멀리 떠나는 거지요.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에서 사진가 게리 서머스로서의 삶을 새롭게 시작하는 벤. 그의 두번째 기회는 과연 그에게 새로운 삶을, 희망을 가져가 줄까요…?

 


 주인공 벤 브래드포드는 ‘비일상으로의 탈주’에 대한 욕망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비일상으로의 탈출을 원한다는 점에서 현대인들의 욕망을 잘 보여주는 캐릭터지요. 그의 직업이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인 변호사라는 점은 그런 면에서 더욱 자유에의 욕망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 보여주고 있기도 해요. 그래서 처음 그가 이루지 못한 꿈에 목말라하고 예상 외의 사건으로 결국 또다른 기회를 갖게 되었을 때, 책을 읽는 독자들은 나름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지 않나 합니다.

 


 언뜻 보면 그 카타르시스는 합당한 근거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평생 꿈꿔오던 사진가로서의 삶은 만족스럽고, 부정한 아내 대신 다정하고 충실한 연인도 생기지요. 우연히 찍은 사진은 커다란 명성을 가져다주고요. 하지만 벤은 문득문득 차오르는 공허감을 이기지 못합니다. 아버지와 같았던 선임 변호사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아직도 아빠를 찾는 어린 아들의 소식을 들었을 때 자신이 포기한 삶에 대한 미칠 듯한 그리움이 벤을 찾아듭니다. 이젠 돌아갈 수 없는 일상에서 맛보던 작은 행복들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가를 벤 브래드포드가 아닌 게리 서머스로서 뒤늦게 알게 되는 거지요. 꿈꾸던 비일상이 일상이 되었을 때, 반복되던 삶을 탈출해 꿈꾸던 날들 속에서 살게 되었을 때에서야 그 일상조차도 자신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탈주하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던 아이러니가 벤을 더욱 괴롭게 합니다.

 


 물론 벤은 다시 돌아가지 않습니다. 더 이상 예전처럼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욕망에 시달리지도 않고 일상에서의 탈주를 꿈꾸지도 않아요. 하지만 그것은 그가 일상이 되어버린 비일상에 만족하고 안주해서는 아닙니다. 스스로가 깨달았듯이,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탈출하고자 하는 맹목적인 욕망이 일상의 모든 쾌락들을 스스로 앗아가 버렸기 때문이에요. 모멘트에서는 애달픈 로맨스로 인생의 어느 날 놓치고 만 순간에 대해 풀어놓던 더글라스 케네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인생은 가치있다고 강변했듯이, 빅 픽처에서도 더글라스 케네디는 지금 당신이 흘려보내고 있는 이 일상이 너무나도 소중한 것이며 이미 당신의 일부가 되어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소름끼치도록 잔인하게 보여주듯이 말이에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작정 일상을 탈주하고 싶은 욕망을 느껴보았을 겁니다. 이 곳을 벗어나면 무언가 긍정적인 미래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 본 적도 있을 겁니다. 다만 그 기로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이 내가 방금 이별하고 온 일상보다 밝은 미래일까요? 여기서 꿈꾸던 자유가 정말 당신이 그리던 모습일까요? 이런 낙관적인 상상에 조용히 의문을 제기하는 소설입니다. 읽지 않으셨다면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추천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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