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모자 미스터리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이기원 옮김 / 검은숲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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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나라에서도 추리소설 시장의 파이가 넓어지면서 여러 출판사에서 속속들이 추리작가 선집, 혹은 전집을 내고 있는데요, 개인적으로 출간된 것이 가장 기뻤던 작가 선집은 열린책들에서 나온 매그레시리즈, 그리고 지금 말씀드리려는 엘러리 퀸 시리즈였습니다. 둘 모두 추리소설의 고전으로 뽑히지만 마땅한 완역본이 없어 국내 추리소설 마니아들의 원성을 샀던 시리즈지요. 특히 엘러리 퀸 같은 경우 1990년대 시그마북스에서 일부 출간된 시리즈가 절판된 이후로는 마땅한 선집조차도 존재하지 않아 안타깝기 그지없었는데, 이번에 시공사에서 시그마북스의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엘러리 퀸 선집을 재출간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이야기할 책은 이 엘러리 퀸 선집에서 첫 번째로 출간한 로마 모자 미스터리입니다.

 

 

 뉴욕의 로마극장에서 인기리에 공연중인 연극 <건플레이> 상영 도중 한 신사가 독살된 채로 발견됩니다. 좌석에 앉은 채로 발견된 이 시체는 변호사인 몬테 필드로 밝혀지는데요, 이 몬테 필드라는 변호사는 본업보다 협박과 공갈로 돈을 벌어온 악당이었습니다. 극장 안에는 그와 동업을 하다가 최악의 결말을 맞은 변호사 벤저민 모건과 피해자의 변호를 받았던 범죄자 목사 조니가 있었음이 밝혀지고, 몬테 필드의 주머니에서는 부호 프랭클린 아이브스 포프의 영양인 프랜시스 아이브스 포프 양의 핸드백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 수많은 의문점 중 리처드 퀸 경감과 아들 엘러리 퀸이 주목한 미스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 “몬테 필드의 모자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피해자의 복장 중엔 모자가 없습니다. 얼핏 그냥 스쳐지나갈 수 있는 작은 흠이지만 퀸 부자는 이 부조화를 놓치지 않고 모자의 행방을 추적합니다. 사라진 모자가 범죄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깨닫는거지요. 소설의 제목처럼 이 소설의 모든 추리는 이 ‘로마 모자의 행방’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로마 모자 미스터리의 미학은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고전 추리의 원형을 온전히 찾아볼 수 있다는 겁니다. 로마 모자 미스터리에선 고전 추리소설의 공식이랄 수 있는 연역적 추리 기법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얼핏 보기에는 어떠한 관련도 없어 보이는 단서를 모아서 사건과 관계된 전체적인 정황을 추리해내는 이 연역적 추리 기법은 오랫동안 미스터리 장르 전반을 이끄는 추리 기법으로 사용되어 왔지만, 최근 추리소설의 장르가 다양화되고 특화된 소재를 사용하는 추리소설들이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다소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복간된 이 로마 모자 미스터리는 차근차근 증거를 모아 범인의 뒤를 쫓는 연역적 추리 기법으로 고전 추리소설의 진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에요. 어떠한 사소한 행동에도 타당한 이유와 근거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논리적 전개는 오히려 현대 추리소설에서 찾아보기 힘든 고전 추리소설만의 미학이기도 하구요. 몬테 필드의 살인사건 이후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고 퀸 부자가 사건의 단서를 찾아서 추리하는 내용이 이어지므로 서스펜스는 약간 떨어지긴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더욱 연역적 추리의 미학에 집중할 수 있기도 합니다.

 

 

 또한 이 소설에서 특기할 만한 점 또 한가지는 현대 추리소설에서도 종종 쓰이곤 하는 ‘독자에의 도전장’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지요. 막간을 삽입해 독자에게 이제 모든 범인과 범행 수법에 대한 모든 증거가 제시되었으니 범인을 추리해 보아라! 라고 외치는 엘러리 퀸은 가끔 얄미워보이기도 하지만, 이 부분은 독자에게 공평한 게임을 제안하고 있다는 퀸 스스로의 자부심이 잘 보이는 대목이 아닌가 합니다. 퀸은 밴 다인이 그랬듯이 독자에게 탐정이 취할 수 있는 모든 증거를 쥐어주고 공정한 미스터리 게임을 벌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으니까요. 저 역시 독자에게 불공평한 게임을 제안하고 종장에서 이 문제는 명탐정인 OOO만이 풀 수 있는 문제였어! 라고 말하는 것만큼 재미없는 추리소설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사실 엘러리 퀸이 자부심을 가질만 하지 않나 해요.

 

 

 저는 언제나 추리소설 초심자에게 추리소설을 권할 때 고전부터 읽으시라고 권하곤 합니다. 추리소설의 경우 현대 스릴러물을 읽고 나면 고전 추리소설이 상대적으로 소재나 범행수법, 동기 등의 다양성이 떨어져서 밋밋해보일 수 있다는 것도 물론 한 가지의 이유가 되지만, 무엇보다 추리소설의 고전은 그것에서만 느낄 수 있는 풍미가 있기 때문이에요. 이 소설 역시 그러한 풍미를 가득 담고 있는 소설입니다. 1920년대 뉴욕을 종횡무진 뛰어다니던 엘러리 퀸의 그림자를 2012년 한국에서 다시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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