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5구의 여인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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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밝은세상에서 빠른 속도로 더글라스 케네디의 작품을 출간해주고 있네요. 오늘 이야기할 책은 더글라스 케네디의 신작, 파리 5구의 여인입니다.

 


 미국에서 대학 교수를 하던 해리 릭스는 제자와 추문에 휩싸여 불명예스러운 퇴직을 한 후 파리로 떠나옵니다. 사랑하는 딸과 안정된 직장 모두를 잃은 그는 끔찍한 절망에 사로잡히지만 야간 경비 일을 하면서 틈틈이 소설을 쓰는 등 재기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요. 그러던 어느 날 해리는 미국의 동료 교수가 추천해준 살롱에서 마지트 카다르라는 여인을 만나게 되고, 어쩐지 알 수 없는 매력을 풍기는 이 여인에게 미친 듯이 매혹됩니다. 비록 직장과 가족은 잃었지만 소설 집필도 순조롭게 이어지고 사랑스런 연인도 얻은 해리. 앞으론 좋은 날들만 펼쳐질 것 같지만 야간 경비를 서는 건물은 어쩐지 수상쩍고, 특정 시간, 특정한 장소에서만 만나길 종용하는 연인도 무언가 미심쩍습니다. 그러던 도중 해리의 주변에 이상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기 시작하는데요….

 


 내용을 보면 아시겠지만, 더글라스 케네디의 이번 작품 역시 흥미로운 스토리를 담고 있습니다. 처음 파리로 옮겨온 해리를 그리는 부분에서는 어쩐지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온 빅 픽처의 벤을 떠올리게 하지만, 이내 독자들은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그가 찾은 새로운 삶은 벤의 것과는 달리 무언가 이상스러운 불안감이 감도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벤 역시 기존의 자신을 버리고 도망와 이전의 삶을 숨겨야만 하는 불안정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지만, 해리의 삶은 그가 미처 모르고 있는 어떤 불안 요소들을 주변에 잔뜩 두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독자들이 그것이 단순히 두고 온 삶에 대한 그리움과는 다른 어떤 것임을, 그리고 그것이 어디서 오는 불안감인가를 알게 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습니다. 해리에게 연달아 찾아드는 행운, 그것은 스스로의 자유를 댓가로 한 불완전한 행운이니까요. 해리는 그것을 원치 않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거부할 수도 없습니다. 선택한 적도 없고 원하지도 않았지만 주어진 행운, 그리고 그것을 거부할 수 없는 남자… 네, 더글라스 케네디가 파리 5구의 여인에 담은 화두는 이렇습니다. “자유를 저당잡힌 행복이란 존재할 수 있는가?”

 


 ‘자유를 댓가로 한 행운’이라, 어마어마한 행운을 거머쥘 수 있다면 자유 정도는 포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얼핏 해리의 행운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신을 잔인하게 배신하고 내연남과 내통해 해리의 모든 것을 빼앗아간 아내와 그 내연남이 혹독한 댓가를 치르고, 그를 이용하고 종내에는 죽이려 했던 암흑가의 사람들이 오히려 죄를 뒤집어쓰는 것을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낀 분들도 많을 겁니다. 하지만 호텔 종업원이 해리에게 비열하게 굴었다는 이유만으로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그를 협박하던 이웃들이 잔인하게 죽어나갈 때 우린 비로소 이 행운이 정말 행운인지, 해리에게 주어진 이 강제적인 행운이 과연 그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었을 때에도 그가 선택할 만한 것이었는지 고민하게 됩니다. 해리가 원한 것은 단지 새롭게 시작할 기회, 그것뿐이었으니까요.

 


 이렇게 더글라스 케네디는 해리 릭스라는 캐릭터를 통해 자유를 저당잡힌 행복은 완전하지 않으며, 누구도 그것에 만족하고 안주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해리가 아무리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더라도, 그가 자유를 저당잡힌 이후로 얻은 행복이 얼마나 크고 대단한 것일지라도 그가 마지트에게 자신의 자유를 헌납한 이후로 느끼는 절망감을 보상해주진 못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죠. 소설 마지막까지 다른 선택의 길이 있지 않을까 굳게 믿고 있는 것도 그렇구요….

 


 안타깝게도, 빅 픽처에서처럼, 해리는 결국 이전으로 돌아갈 기회를 얻지 못합니다. 죽음조차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는 안락한 새장에 갇혀서 주어지는 행운과 기회를 받아들이고 그녀가 설계한 삶을 살아가는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일이지요. 사랑하는 딸을 볼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그녀가 하라는대로 사는 것 말입니다. 그래도 원하는 성공과 부를 얻게 되지 않겠느냐, 라고 물으시면 이것이 해리가 원해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어요. 전 그래서 더더욱 해리가 치러야 하는 댓가는 너무나도 혹독한 것으로 보입니다. 벤과 달리 해리에게 동정심이 가는 이유는 아마 그래서일지도 모르겠어요.

 


 유독 기욤 뮈소와 더글라스 케네디를 많이 비교하게 되는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더글라스 케네디의 특장점은 기욤 뮈소와 달리 흘러가는 이야기에 한번 생각해볼 만한 거리를 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욤 뮈소의 책이 다소 동어반복의 느낌을 주는 데 비해 더글라스 케네디의 책은 장르도, 생각할 거리도 다양하게 던져주지요. 빅 픽처에서는 꿈꾸던 비일상의 모습에 대해, 위험한 관계에서는 모성과 모멘트에선 인생을 바꾸는 한 순간의 선택에 대해 이야기하던 더글라스 케네디가 이번 책에서 던져준 주제 역시 한번쯤 생각해볼 만하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그의 작품들 중 뛰어나달 만한 느낌은 받지 못했지만, 더글라스 케네디를 좋아하신다면 읽어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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