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겪어야 진짜 - 어른의 어른 후지와라 신야가 체득한 인생배짱
후지와라 신야.김윤덕 지음 / 푸른숲 / 2014년 5월
평점 :
책의 표지에 '김윤덕이 묻고 후지와라 신야가 답하다'라 적혀 있고,
띠지에는 '불혹의 기자가 묻고 칠순의 사부가 말하는 세상의 물음표들'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그 문구 그대로 한 여기자가 후지와라 신야라는 일본의 유명 작가를 인터뷰한 문답 형식의 책이다.
마치 '힐링캠프'라는 TV 프로그램을 보는 것처럼 두 사람의 문답이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담겨 있고,
중간중간 인터뷰어의 생각도 담고 있다.
보고 싶은 책을 선정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이 책은 인터뷰이 소개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책이 소개하는 후지와라 신야는 아래와 같다.
(아래부터 나오는 푸른 글씨는 모두 원문에서 발췌한 것임을 밝힌다.)
날것의 풍경을 건져 올리는 사진가, 무라카미 하루키, 시오노 나나미보다 더 사랑받는 작가,
시부야 한복판에서 먹물 묻힌 거대한 붓을 거침없이 휘두르는 예술가, 일본 정부가 미워하는 독설가. -후략
'일본 정부가 미워하는 독설가'라니. 독설가를 사랑하는 나로서는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신야는 젊은 시절 인도 여행을 하고서 쓴 '인도방랑'이라는 책으로 유명해졌고 이후에도 여행기를 몇 권 더 썼는데
여행으로 유명해진 작가이니만큼 여행에 대한 내용을 책은 시작된다.
보통 여행기가 엄청 유명해지기는 쉽지 않은 것 같은데 어떤 독특한 점이 있었기에 여행기로 유명해졌을까 싶었다.
신야의 책을 아직 접해보지 않아서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그의 여행에 대한 철학을 보면 이 책이 왜 유명해졌을지 어느 정도는 짐작이 간다.
정보화 사회란 정보를 모르면 불안감을 느끼는 사회를 말합니다.
정보를 섭취하는 행위로 인해 불안은 오히려 증폭되지요.
당신 말대로 정보를 일절 무시하고 여행하기는 굉장히 어려운 시대가 됐습니다.
문제는 그로 인해 사람들이 한없이 약해진다는 것입니다.
겁쟁이가 돼가고 있지요. -중략-
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모든 정보를 차단한 뒤에 무작정 여행을 떠나보라고. -중략-
일생에 한 번은 그냥 딱 지도만 보고 떠나는 여행을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은 이런 여행으로 성장합니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아주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크게 공감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뭔가 요즘 사람들의 여행이란 '나'를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서 말이다.
어딜 가면 꼭 어디어디를 가봐야 하고 어느 맛집에서 어떤 음식을 먹어봐야 하고 어디에서 인증샷을 찍어와야 하고 등등등.
어디론가 떠나고자 하면 이런 정보들이 쉴새없이 쏟아지고,
여기에서 벗어나면 사람들이 "거기가서 이것도 안해봤어?" 등등의 평가를 쏟아낸다.
그렇게 정해진 루트를 따라 다녀온 여행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에게는 그저 돈 주고 남의 추억을 사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신야만큼 치열하지는 않았지만 나도 일생에 단 한번, 위와 비슷한 여행을 한 적이 있다.
군 전역하고 친한 친구 두 녀석이랑 같이 캐나다를 기차로 한달 정도 여행을 했었는데,
그 전의 나와 그 이후의 나는 확연히 다른 삶의 태도를 갖게 되었다.
'삶의 태도'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이 책은 전반적으로 이 '삶의 태도'라는 것에 대한 책이다.
저마다 자신의 삶들을 살고 있지만 현대인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일 것이다.
'이렇게 살고 있어도 좋은걸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
후지와라 신야는 이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아무데도 소속되지 않은 사람의 아무것도 없는 상태의 불안, 그래서 느낄 수 있는 바닥이 없는 자유. -중략-
물론 엄청난 불안에 사로잡히지요. 두렵습니다.
하지만 불안을 한 장만 벗겨내고 보면 커다란 자유가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이 '소속'이라는 것을 떠나서 자신을 돌아보기 힘든 것이 아닌가 싶다.
한 곳에 소속되어 있다가 그 소속이 끝나는 순간 다른 소속을 찾지 않으면 실패한 삶이 되고 만다.
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다른 학교나 직장에 소속되어야 하고,
한 번 직장에 소속되고 나면, 직장이라는 소속이 없어지는 순간 실패라고 여기게 되지 않는가.
이 소속이라는 것은 삶의 상당 부분을 결정해 버린다.
하지만 정말 위와 같은 자유의 순간이 주어질 수 있다면 진지하게 자신이 살고자 하는 삶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가진 것도 없지만 그래서 잃을 것도 없는 순간, 내 자신이 원하는 삶은 어떤 것인가?
그렇다고 해서 신야가 엄청난 고행의 길이나 거룩한 삶을 택하라는건 아니다.
모든 형태의 죽음이 위대하고 멋진 것처럼.
어떤 삶이든 순간순간 최고의 아름다움과 행복이 빛나는 법이지요.
각자의 삶은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시한 삶이란 없습니다.
인간의 죽음은 어떤 죽음이어도 좋다! 멋 없는 죽음이든, 멋있는 죽음이든, 고통 속의 죽음이든,
죽음은 모든 것을 수용하고 받아들입니다. -중략-
오히려 이상적인 죽음을 상정한다면, 이상적이지 못한 방식으로 죽어간 사람들을 불쌍하게 만드는 꼴이 되니까요.
일기를 쓰지 않게 된 이유는 단지 피곤해서가 아니라,
본모습으로 살지 않았기에 '기록해야 하는, 기록하고 싶은 자신의 모습이 없었다'는 뜻이라고.
이게 무슨 말인가? 어떻게 살든 상관이 없다는 뜻일까?
책의 띠지에 그 답이 있었다.
"당신이 맞다면, 지지 마라. 두려워 해야 할 것은 너를 잃는 일"
두려워 해야 할 것은 직장을 잃는 것,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는 것 따위가 아니라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바 대로
살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의 제목이 '겪어야 진짜' 인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런 삶의 태도를 갖기 위해서는 직접 부딪혀 봐야 한다.
나는 책 속에 길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어서 책을 찾기는 하지만 사람을 찾지는 않는다.
그 책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사람이 쓴 것일텐데 말이다.
이런 나에게 신야의 한 마디는 조용한 울림을 주었다.
책을 읽고, 글을 통해 세상을 체험하는 것은, 조금 과장하자면, 신의 관점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것과 같아요.
덕분에 사물을 대단히 객관화해서 바라보게 되지요.
하지만 세상에 뛰어들어서 삶을 바라보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벌레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고 할까요?
신의 관점과 벌레의 관점 중 어느 하나가 좋다, 나쁘다의 개념이 아니라 둘 다 삶에서는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나에게는 지금 벌레의 시각이 좀 더 많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다.
결국 내 삶을 살아가는 주체는 나다.
인간은 다른 누군가를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습니다. 스스로 걷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요. -중략-
결국 질퍽거리면서도 살아가야 하는 것은 그 사람 자신이기 때문이에요. -중략-
하지만 이 '주체'라는 것에 집중하다보면 생각보다 자신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사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때가 많다.
이 책은 나에게 '주체적인 삶'이란 어떤 것인가를 되돌아보게 해 주었다.
인터뷰를 정리한 책이니만큼 전반적으로 짜여진 흐름이 있거나 일관된 주제를 말하고 있지는 않았다.
신야의 가족사에서부터 사랑, 책, 여행, 사진, 신야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등등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데,
중간중간 무릎을 탁 칠 정도로 신야의 통찰이 묻어나는 부분들이 많았다.
어머니의 애정을 우리는 무상의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요즘 부모들은 애초에 그런 마음을 점점 상실해가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았을 때 부끄럽지 않은 아이, 성적이 좋은 아이로만 키우려고 하지요.
그런 노력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겁니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애정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노화는 자각하는 순간 시작됩니다.
당신이 "아, 나는 마흔을 넘었다, 아, 나는 늙었다"라는 말을 내뱉는 순간 당신은 늙기 시작한 겁니다.
그걸 일본에서는 "어휘의 영혼"이라고 말하지요. 말에 담겨 있는 영혼.
한국으로 치면, 지금은 40대가 된 386 세대쯤에 해당하는 단카이 세대에 대한 비판도 거침없었다.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식으로 민주화를 이끌었던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가?
지금 세상은 그들이 원하던 세상인가?
신야는 행동하지 않는다면 변화도 없음을 강하게 지적한다.
세월호 이후 한국 사회에 감도는 슬픔과 침체의 분위기를 긍정적인 분노의 힘으로 바꾸어 의미있는 변화를 이끌어 낼 시점이다.
이 시점에 내가 취할 수 있는 행동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신야의 책도 더 찾아 읽고 싶어졌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전반적으로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듯 편안하게 읽히는 책이다.
출퇴근 길 지하철에서도 제격이지만, 중간중간 마음에 와닿는 문장들을 체크할 필기구 정도는 준비하고 보는게 좋을 것 같다.
책을 읽고, 글을 통해 세상을 체험하는 것은, 조금 과장하자면, 신의 관점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것과 같아요. 덕분에 사물을 대단히 객관화해서 바라보게 되지요. 하지만 세상에 뛰어들어서 삶을 바라보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벌레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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