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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수첩>
2025-03-11
자살수첩 - 보통의 시선에서 벗어난 자살을 향한 대담한 사유
가스가 다케히코 지음, 황세정 옮김 / CRETA(크레타)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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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자살'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내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만으로 대충 40을 조금 넘게 살았는데 그중 30년을 맞이로 살아왔던 내가 2019년 이후로는 외동아들이 되었다.

같은 부모 아래에서 태어났지만 내 삶의 궤적이 동생의 그것보다 쉽고 평탄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삶을 끝낼 정도의 의지 차이가 날만한 궤적이었는지는 지금도 미스터리의 영역이다.

지금까지 읽었던 모든 과학 책들은 말한다.

DNA는 이기적이고 모든 생물은 자신의 DNA를 되도록 오래 남기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라고.

하지만 2025년 현재 대한민국의 자살률은 OECD 최고 수준임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작은 한반도에 누군가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궁금할 수밖에 없다.

살고자 함은 DNA에 새겨진 본능인데 무엇이 그들의 본능을 거스르게 하는지, 그들의 심리는 과연 어떤 것인지.

정신과 의사가 쓴 이론서가 아닌 에세이라고 해서 현학적인 접근 대신 무언가 솔직한 날것의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읽어보게 되었다.

어떤 관점에서 접근해 봐도 결국 자살은 불가해한 채로 우리를 비웃는다.

나는 이 책에서 조금이나마 자살에 관해 고찰해 보려고 한다.

무익한 시도가 되리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자살이 우리를 비웃고 농락하는 모습만 지켜보고 싶지 않다.

내가 자살을 자유자재로 다루어 주겠다는 태도로 마주해 보는 것도

하나의 작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pg 10)

저자는 자신이 경험한 환자와 자살을 다룬 여러 문학 작품들을 통해 자살의 원인을 아래와 같이 총 일곱 가지로 분류해 본다.

1. 미학, 철학에 따른 자살

2. 허무함 끝에 발생하는 자살

3. 동요나 충동에 이끌린 자살

4. 고뇌의 궁극으로서의 자살

5. 목숨과 맞바꾼 메시지로서의 자살

6. 완벽한 도망으로서의 자살

7. 정신질환이나 정신 상태 이상으로 인한 자살

(pg 115-116)

물론 논문용으로 철저하게 검증한 것이 아니라 본인의 느낌 대로 분류한 것이라서 자살에 이르는 원인이 딱 하나인 경우는 별로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각각의 원인별로 문학 작품이나 일본에서 실제로 있었던 유명한 자살 사건들을 예로 들며 설명하고 있다.

다 읽고 나서 동생은 어떤 유형이었을까를 한번 생각해 본다.

우울증이 심각했으니 7번은 당연히 포함될 것이고, 2번이나 4번 정도가 포함될 수 있지 않나 싶다.

책을 읽다가 녀석의 유서를 보관하지 않았다는 점이 문득 아쉬워졌다.

물론 당시에는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아서 다 태워버렸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사진이라도 찍어둘 걸 그랬나 싶다.

그때는 경황이 없기도 했고 감정도 좋지 않았으니 당시에는 안 보였지만, 지금이라면 읽을 수 있는 행간의 의미가 있었을지 모른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지금도 여러 장면들이 떠오른다.

잠든 아이를 억지로 차에 태워 고향 집으로 향했던 그날, 평소와 달리 꼭두새벽에 도착한 나를 의아하게 생각하시던 할머니, 연고도 없는 곳에서 발견된지라 경찰 조사를 받아야 했던 부모님, 예정보다 빨리 도착한 그 녀석의 시신을 굳이 내 두 눈으로 확인해야만 했던 행정 절차, 장례식 일정과 장소를 잡은 뒤 계단에 쭈그려 앉아 당시 직장 팀장님한테 전화했을 때의 목소리도...

자살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저런 장면들이 떠오르는 내 입장에서 저자는 어떤 마음으로 자살이라는 소재를 공부해 보고 싶었는지 예상하기는 어렵다.

다만 기대에 비해서 내용이 좀 표면적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1장의 사례처럼 정신과 의사로서 본인이 경험한 사례를 조금 더 많이 다뤄줬다면 훨씬 현실감이 있었을 텐데, 결국 남이 써놓은 문장일 뿐인 문학 작품이나 과거의 유명한 사건 속 사례들을 주로 다루다 보니 아무래도 겉만 핥는 느낌이 없지 않다.

물론 이는 내가 자살이라는 소재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는 사람이라는 점에 기인하므로 온전히 저자의 탓이라고 보기는 어렵겠다.

하지만 본래 자살이라는 개념이 다루기 어려운 주제라는 점에는 공감한다.

유서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이 유족들 외에 공개되는 것도 드문 일이고, 뉴스를 통해 접하는 기사에는 죽은 자들의 표면적인 이유들만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신과 의사인 저자의 책에 더 기대를 많이 가졌었는지도 모르겠다.

주변 사람들이 정확한 동기를 짐작하지 못하는 자살도 마찬가지다.

그 죽음에서 엄청난 인생의 비밀을 알아차리는 사례는 드물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을 우리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삶과 죽음에 깊은 의미가 숨어 있지 않으면 마치 모욕을 당한 기분에 빠지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다.

애초에 자살이란, 세상을 아무 미련 없이 놓아버리는 동시에

남겨진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그런 극적인 효과의 다른 이름이니까.

(pg 192)

후반부로 갈수록 저자 역시 직접 언급한 '자살 체질'을 가진 사람이 아닌가 싶은 부분이 간혹 눈에 들어온다.

정신과 의사도 그만두려고 한다는데, 자살 유족의 한 명으로서 저자가 심연을 바라보다 자신도 심연에 빠지고 마는 불상사를 겪지 않기만을 바란다.

('자살 체질'이라는 단어는 마음에 들지 않으나 저자가 사용한 용어여서 차용했다.)

어이없게도 이 책을 읽는 동안 유명 가수 한 명이 자살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이 책에서도 다루고 있지만, 유명인의 자살은 평소 '자살 체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실행력을 높이는 일종의 트리거로 작용하기 쉽다.

이번에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뒤를 따르게 될지, 자살 유족의 입장에서 순수하게 걱정이 된다.

미래가 없으니 아이를 낳지 않고, 현실이 괴로우니 자살률이 높은 것이라는 자조는 과연 언제쯤 사라질 수 있을까.

어찌 됐든 자살로 삶을 마감한 사람들을 이해해 보려는 시도는 이제 나를 위해서라도 그만하려고 한다.

이번 책을 마지막으로 자살이라는 단어와는 당분간 작별을 해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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