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나무의 파수꾼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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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작가의 책을 몇 권이나 읽게 될까 개인적으로도 궁금해지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다.

생일 기념으로 친구를 만난 자리에서 읽어보라며 건네받은 책인데 책의 발매일이 내 생일이라는 게 놀랍다.

물론 우연이겠지만 이런 우연들이 쌓여가는 것이 삶이라는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작품 역시 우연한 만남이 쌓여 개인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클럽의 호스티스인 엄마가 누군지도 모를 유부남과 사랑에 빠져 태어나게 된 주인공 레이토는 변변한 직업도 없이 인생을 허비하다 절도죄를 저지르고 만다.

징역도 살게 되는구나 자포자기하고 있을 무렵, 자신에게 상당한 재력을 가진 이복 이모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이모 덕분에 범죄 이력이 남지는 않게 된다.

그 대가로 한 사당에 있는 녹나무의 파수꾼 자리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데, 이 나무가 소원을 들어주는 신비로운 힘이 있다는 설정이다.

물론 알라딘의 요술램프처럼 소원을 직접적으로 들어주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 이 나무의 비밀을 파헤쳐 가는 것이 작품의 기본 뼈대라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감상을 어떻게 남기는 것이 좋을까 고민했는데 '인연'과 '기억'이라는 단어로 정리하면 어떨까 싶다.

가정을 꾸리며 어느덧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면서 깨달은 거지만 인생의 큰 줄기는 살면서 누구를 만나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사람과의 만남은 전적으로 우연한 일이지만 그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갈지는 오로지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

레이토 역시 녹나무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의 사연과 고민을 듣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도움을 주며 그 스스로도 내면적으로 성장해간다.

그 과정에서 그가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면면도 제법 흥미롭다.

부친의 외도를 의심해 뒷조사에 나서는 딸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자신에게 쏟아진 과도한 기대 때문에 자신의 재능을 포기해버린 한 천재 음악가와 그의 음악을 되살려보려는 동생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자신의 핏줄이 아님을 알면서도 최선을 다해 친자식처럼 키운 아버지와 그의 유지를 성실히 잇고자 하는 아들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이어주는 것은 세대를 넘나드는 '기억'이다.

누구나 자식을 키우게 된다면 자신의 좋은 점만을 전수해 주고 싶어 할 것이다.

자신의 약점과 단점들은 되도록이면 닮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하지만 자식의 기억 속 나와 내 기억 속 나는 다르다.

이 작품에서의 기억 역시 이런 양면성을 동시에 지닌다.

판타지적인 설정으로 한 사람의 기억을 온전히 전수할 수 있지만, 원하는 부분만 똑 떼어 전수할 수가 없다.

결국 나의 약점과 단점도 모조리 전수되는 셈이다.

생각해 보면 어릴 적 부모님의 모습도 그렇다.

그땐 그렇게 싫었던 모습이 나이가 들면 이해가 될 때도 있고, 어릴 땐 좋았던 부분이 크고 나면 부담스럽거나 귀찮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 모습들을 알게 모르게 모두 전수받아 우리는 또 살아가고 다음 세대를 키워내는 것이다.

스포일러 때문에 에둘러 쓰긴 했지만 550페이지에 이르는 짧지 않은 작품임에도 역시 흡입력도 있고 재미도 충분했다.

오랜만에 작가의 작품 중 누구도 살해되지 않은 작품을 읽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처럼 현실과 소소한 판타지가 만나 있으면서 재미와 감동 포인트가 있는 소설을 좋아한다면 이 작품도 재미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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