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3일의 불꽃 - 청년 전태일의 꿈 근현대사 100년 동화
윤자명 지음, 김규택 그림 / 풀빛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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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하종강 교수의 강의를 들었을 때 우리나라의 의무교육 제도 속에는 노동 교육이 전무하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실제로 나도 학창 시절에는 노동이니 인권이니 하는 얘기를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그나마 대학에서 관련 학회 생활을 하느라 관심을 가졌지 그렇지 않았다면 나도 노동문제에 대한 별다른 의식 없이 노동자 생활을 하고 있었을 것 같다.

그런 대한민국에서 어린이를 위한 노동 동화가, 그것도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가 담긴 동화가 나왔다는 말에 얼른 읽어보고 싶었다.

11월 13일은 전태일 열사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며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쳤던 날이다.

이날을 기리기 위해 책 발매일도 이 날짜에 맞춘 모양이다.

작품의 화자는 김순옥이라는 가상의 13세 여자 어린이다. (전태일 열사의 친동생 이름이 '순옥'이라 한다.)

그 시절 그리 잘 살지 못하는 시골집의 여자아이가 다 그랬듯, 최소한의 의무교육이 끝난 뒤 부모에 떠밀려 동네 언니를 따라 평화시장의 '시다'로 일하기 위해 상경하게 된다.

거기서 바보회를 만들어 노동 운동을 시작하던 전태일 오빠를 만난다는 이야기다.

작품은 남아선호사상이 아직 위세를 떨치던 시대, 오빠는 학업을 이어가는데 자신은 여성으로 태어난 죄로 어린 나이부터 생업에 시달려야 하는 부조리함에서 출발한다.

13세의 어린 몸으로 닭장 같은 공장에서 겪어내는 그 시절 노동자의 비인간적인 처우도 그리 길지 않은 분량 안에 잘 담아냈다.

그러면서도 전태일 열사가 겪어야만 했던 사회의 차가운 시선과 무수한 장애물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이어갈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을 동료 노동자들의 응원과 협력도 생생하게 보여준다.

물론 어린이용 책이니 분신이나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 장면까지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어린이의 시각에서 본 당시의 끔찍한 상황은 충분하게 전해진다.

"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아 줘."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전태일 열사.

그 이후로 대한민국의 노동 조건은 상당히 개선되었고 지금은 주 4일 근무 제도에 대한 논의까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젊은 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는가 하면, 이미 만들어진 주 52시간 근무제를 폐지한다고 공공연히 선언하는 자를 대통령으로 선출하기도 했다.

다른 사회문제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노동 문제 역시 한 걸음 진보하기는 어렵지만 두 걸음 후퇴하기는 쉽다.

자본의 힘은 언제나 노동 인권에 반하는 쪽으로 기울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삶의 대부분을 노동자 신분으로 살게 될 대다수의 사람들이 노동 인권 문제에 대한 시각을 갖추고 자본의 힘을 견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발간이 개인적으로도 너무 반갑게 느껴지고, 많은 학생들에게 널리 읽혔으면 좋겠다.

보통 다 읽은 책은 주변에 나누어주거나 폐기하는 편인데, 이 책만큼은 잘 소장하고 있다가 아이가 스스로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자라면 꼭 읽어보라고 권해줄 생각이다.

물론 어른이 읽어도 충분히 좋은 작품이다.

성인이라면 읽는데 20분이 채 걸리지 않을 테지만 다 읽고서 콧잔등이 시큰해지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전태일 평전이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대신 읽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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