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죄 없는 사과사회 - 조직의 운명을 바꾸는 진짜 사과와 거짓 사과
숀 오마라.케리 쿠퍼 지음, 엄창호 옮김 / 미래의창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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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사과할 때는 조직에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중략)

예를 들어 명성이 회복되거나, 소셜미디어의 반발이 누그러지거나, 아니면 소송을 방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pg 39)



삼성 공화국이라는 우리나라에서도 얼마전 이재용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가 있었다.

사과를 하게 된 배경이나 사과의 내용이 충실히 이행될지 여부도 보다 심층적인 판단이 필요한 일이겠지만, 

이러한 모습 자체가 기업의 탐욕이 당연시되던 시대에서 점차 기업도 사회적인 책임을 다 해야 한다는 의식이 지배적인 시대로 

발전해가는 상징적인 지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이렇듯 기업이 일반 대중을 향해 사과를 하는 일이 점점 잦아지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을 자세히 관찰한 책을 만났다.

제목만 봤을 때는 뭔가 진정성있는 사과가 부족한 사회를 꼬집는 책이라는 인상을 주지만, 

내용상으로는 기업의 측면에서 사과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SNS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소위 인플루언서라고 불리는 개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다양한 주제로 자신의 의견을 쏟아내는데 여기에는 특정 기업이나 제품에 대한 긍정적, 부정적 피드백들도 상당히 많다.

게다가 사람들에게 쉽고 빠르게 노출, 확산되기 때문에 기업에서도 신경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이 어떤 기업이나 제품을 바라보는 시각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예전에는 웃어 넘길 수 있던 것들이 요즘은 '불편함'이라는 이름으로 SNS에 올라오고 사람들은 이를 공유한다. 

그러다보니 기업들이 운영하는 SNS 계정에 사과문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게 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조직의 사과들을 분석해 효과적인 사과를 위해 조직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여러 사례와 사과 방법들이 등장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는 기업들이 '과도한 사과'를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터넷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기업들이 사소한 일에도 사과를 하려는 경향을 보이는데, 저자는 이를 '사과 충동'이라고 명명했다. 

(책의 원제도 'The apology impulse'이다.)

하지만 사과에도 비용이 들며 한번 한 사과는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신중하게 사용하는 카드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 책의 핵심 주제다.


사과할 때는 조직에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중략)

예를 들어 명성이 회복되거나, 소셜미디어의 반발이 누그러지거나, 아니면 소송을 방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pg 39)


즉, 철저하게 경영적인 시각에서 조직에 도움이 되는 경우에만 제대로 사과를 하라는 것이다. 

사과 역시 학습효과가 있어서 사무적이고 일상적으로 사과를 남발하게 되면 나중에 진짜 큰 사건이 터졌을 때 진정성있는 사과를 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사과를 해야 할 상황 역시 구분할 수 있는데, 이 책에서는 운영적인 문제와 문화적인 문제를 구분하고 있다.

운영적인 문제란 열차의 지연이나 상품의 하자 같은 기업의 일상적인 수익 창출 활동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말하는데

이런 문제들은 비교적 쉽게 사과할 수 있고 처리도 쉬운 편이다.


반면에 문화적인 문제는 광고나 SNS에 특정 성별, 인종, 종교 등에 대한 비하와 같이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있는 경우에 발생한다. 

보는 사람에 따라 수용하는 정도가 달라 발생하는 문제들을 말하는데 이 경우 사과의 대상을 특정하기도, 문제를 해결하기도 쉽지 않다. 

물론 기업에서 명백하게 실수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악의적인 편집이나 해석을 통해 문화적인 문제를 일부러 야기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고객의 불만에 소셜미디어로 대응하는 기업은 대체로 이미지가 좋아지며 매출도 늘어난다고 한다.

하지만 테스코의 사례처럼 어떤 조직이든 소셜미디어에 발을 담그면 사과에도 연루될 수밖에 없다. (pg 82)


2017년 한 익명의 바이럴 뉴스 저널리스트가 와이어드닷컴에 조회 수를 가장 많이 유도할 수 있는 뉴스 기사의 유형을 밝혔다. 

사람들이 공유하고 싶어 하는 기사는 보통 누군가가 사회의 악에 대항해서 싸우는 유형의 기사다.

사람들은 성적인 내용의 트윗 글을 비난하는 여성이나 인종차별 발언을 한 누군가를 비난하는 유명 인사나 사기꾼에게 복수하려고 

이를 가는 사람에 관한 기사를 즐겨 읽는다. 

다시 말해 바이럴 뉴스는 분노의 대상을 공개적인 장소로 호출하는 문화를 통해 돈을 버는 '분노 자본주의'에서 길을 찾아냈다. (pg 86)



이렇게 기업들에게 사과의 압박을 주는 주체는 역시나 미디어이다. 

개개인인 인플루언서들이야 아무리 자극적인 글을 올려 본 들 그들의 팔로워 정도에게만 노출될 뿐이지만,

이것이 미디어를 타기 시작하면 금새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르게 되기 때문이다. 


기업의 비리처럼 뉴스로서의 가치가 충분히 있고 공개 사과가 필요한 사건을 보도하는 일과, 

고객과 기업 사이의 사소한 다툼을 부추기는 일은 다르다. 

공개 사과의 증가 현상은 후자에 속한다. 

오늘날은 사과가 뉴스거리가 되고 클릭을 유도하며 돈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사과하고 있다. 

사과를 요구하고, 제공하고, 보도하는, 삐뚤어진 동기가 너무나 강력해서 이에 저항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pg 91)


미디어는 공정한 관찰자가 되어야 하지만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대게는 가장 먼저 만만한 희생자를 찾아내서 치명상을 입히며 어떻게든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pg 170)



이렇게 미디어는 기업들에게 사과를 강요하고 기업은 피해자에게 미안한 마음보다 여론이 나빠지는 것을 더 두려워하므로 

진정성이 담기지 않은 사과를 남발하게 되는데, 이는 결국 사과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피해자는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하며,

기업 역시 불필요한 비용만 지출하는 꼴이 된다.

결국 이를 선동하는 미디어만 이득을 취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조직은 사과가 고객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한 비결이 아님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소셜미디어에서 조직에 분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고객이 아니다. (pg 170)


사과는 사실 피해자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조직의 '청중'을 위한 것이다.

여기서 청중이란 충성스러운 고객뿐 아니라 조직의 의사소통 내용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일을 자신의 역할로 생각하는 

미디어 인플루언서와 고객이 아닌 사람을 모두 포함하는 말이다. (pg 207)


위기에 몰린 기업이 굽신거리며, 확인되지도 않았고 입증하기도 어려운 문화적 위기에 대해 사과하는 비용을 지불하게 되면,

경쟁사는 그 틈을 타서 성장의 기회를 노릴 수 있다.

그것이 가능한 온라인 기반이 있고, 미디어를 통해 다른 기업을 위기에 몰아넣고 모욕을 주려는 탐욕이 있는 한 

이러한 풍토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pg 269)


미디어는 공개 사과의 유포와 취득을 가능하게 하는 가치 교환의 오랜 통로였다.

이러한 현실을 안다면 사과가 거래의 성격을 띤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거래가 이루어지는 곳에는 가짜도 있을 수밖에 없다. (pg 274)



그렇다면 사과가 필요할 때는 언제고 어떻게 하는 사과가 좋은 사과인 것일까?

책에서는 아래와 같은 해결책을 전해준다. 


사과는 간단해서도 안 되지만, 복잡해서도 안 된다. (중략)

사과의 핵심 기능은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해명하고, 책임을 인정하고, 뉘우치고, 보상을 제시하고, 마지막에는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이 순서대로 사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pg 144)


사과 대응 계획은 복잡할 필요 없다.

계획을 세우기 시작할 때 다음 세 가지 질문을 던지기만 하면 된다.

당신의 잘못인가? 만약 그렇다면 얼마나 미안해해야 하는가? 사태를 바로잡으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 (pg 336)


개인적으로는 좋은 사과의 사례보다 안좋은 사과의 사례가 더 많이 등장하고 좋은 사과를 하기 위한 방법에 대한 서술이

다소 부족하게 느껴져 아쉬움이 남았다. 

또한 진정성 있는 사과가 부재한 사회 현상에 대한 분석이라기 보다는 기업의 마케팅 전략 차원에서의 사과를 다룬 책이어서 

기대한 바와는 좀 다른 책이었다. (물론 제목에 낚인 내 잘못이다.) 

그리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는 건 아닌데 문장이 너무 번역투여서 쉽게 읽히는 맛도 좀 부족한 편이었다.


하지만 흥미로운 사례들도 많고 인상적인 구절도 많았다.

기업을 운영하고 있거나 고객 불만 응대가 직업인 사람들에게는 참고할만한 좋은 사례들이 많이 등장한다.


또한 어떤 기업에 분노할 수는 있지만 그 분노의 해결을 위해 애쓰는 사람이 대체로는 그 분노를 야기한 직접적인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라는 마지막 메시지도 개인적으로는 아주 의미있는 메시지라고 생각했다.  


매뉴얼대로 수백 번쯤 사과하고 쏟아지는 분노의 댓글들을 처리하느라 허우적대면서 소비자의 불평에 대응하는 사람이,

정책을 수립하거나 광고를 승인하거나 그 불만과 관련된 제품을 고안한 사람과 동일 인물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중략)

모든 조직의 사과 뒤에는 한 사람, 혹은 몇 사람으로 구성된 하나의 팀이 자신의 업무를 처리하려고 애쓴다는 사실을 

소비자는 물론 바이럴 뉴스 미디어, 소셜미디어 업체, 커뮤니케이션 산업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이 기억했으면 한다. (pg 378-349)


아쉬움이 없진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특히 조직 입장에서 여론에 몰릴 때 무작정 사과하는 것만이 답이 아니라는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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