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이 설계한 사소하고 위대한 과학 - 슈퍼 히어로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세바스찬 알바라도 지음, 박지웅 옮김 / 하이픈 / 2019년 11월
평점 :
품절


인상깊은 구절

라쿤의 발에는 예민한 수염이 돋아 있는데 보통 '강모'라고 부르며 상황에 따라 만지기도 전에 물체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라쿤의 발은 180도로 돌릴 수 있어 머리를 아래로 둔 채 나무에서 내려올 수 있다.

유연성과 예민한 촉각만 생각해봐도 로켓이 스타로드보다 좋은 조종사인 건 명백한 사실이다. (pg 72)



마블이 MCU로 세계 영화계를 지배한지도 10년이 넘었다.

한물 간 약쟁이 이미지였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CG로 보강된 아이언맨 수트를 입고 처음 스크린에 등장했을 때만 해도

그가 같은 캐릭터를 10년간 연기할 거라고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마블 영화는 썩 말이 되는 영화는 아니다. 

중년의 남성이 철로 만든 갑옷을 입었다고 해서 탱크가 쏘는 미사일을 맞고도 멀쩡할리 없다는 걸, 

갑자기 말하는 라쿤이 다가와서 우주 가본 사람 있냐고 묻는 일이 일어날리 없다는 걸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리즈가 10년이 넘게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기대 어느 한켠에

'지금은 불가능하지만 언젠가는 가능한 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들이 숨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과학자와 마블 덕후라는 양쪽의 시각을 가지고 마블 영화 속 다양한 현상들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어떤 현상들은 과학적으로 가능하고, 어떤 현상들은 불가능하며, 어떤 현상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미 실현된 것도 있다. 

과학이라는 것이 단순하게만 나누어도 물리, 생물, 화학 등으로 나뉠텐데 이 책에서는 이런 구분들을 모두 넘나들면서 

엄청난 양의 과학 지식을 쏟아낸다. 

물론 저자 소개에 생물공학자라고 명시되어 있지만, 저자 소개를 읽지 않았어도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주 전공이 생물쪽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는 있다.(자신의 전공 분야에서는 후술할 '서술의 불친절함' 수준이 올라간다.)

하지만 생명공학 이외의 분야에서도 일반 독자 수준에서는 충분하다 못해 넘칠 정도의 과학 지식들이 담겨 있다. 


흥미로운 주제를 통해 과학 지식을 전달하고자 한 시도 자체는 매우 좋았다.

나도 제목을 보고서는 너무 읽고 싶었던 책이었는데 막상 읽고 보니 아쉬움도 많이 남았다.

특히나 나에게는 조금(많이?) 어렵게 느껴진 책이었다. 


우리 몸의 세포에는 전기 센서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 분포하고 있다. 

예를 들어 Kir4.2와 같은 칼륨 통로는 흥분을 전도하는 역할을 하는데, 조직과 세포에 존재하는 양전하를 띤 폴리아민에 반응한다.

약한 전기력도 폴리아민을 분극화하고 통로가 이온을 투과하게 만들어 전기 자극을 유도할 수 있다. (pg 94)


위 문단은 스파이더맨이 스파이더 센스를 어떻게 발휘하게 되는지를 설명한 문단이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난 위 문단이 도무지 무슨 의미인지 이해를 못하겠다.

설명이 다소 불친절하다는 것도 어려움을 더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일단 '양전하를 띤 폴리아민' 같은 과학 용어들을 별도의 설명 없이 당연히 독자가 알고 있을 것이라 간주한 채 서술하고 있다. 


물론 위 문단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서 책 전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상당량의 챕터에서 위와 같은 문단이 종종 등장하기 때문에 책의 많은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가야 하는 

독자 입장에서 그리 달가운 경험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물론 내 과학지식의 부족이 저자의 탓은 아니지만)

마블이라는 소재를 굳이 차용한 이유(심지어 책 표지에 마블의 정식 허가를 받지 않았다고도 표기되어 있는데도)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함이었다면 설명 역시도 친근하게 풀어쓰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다행한(?) 일이라면 책의 중반부인 기계공학쪽으로 넘어가면서부터는 저자의 전공 분야가 아니어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수준의 서술이 이어진다. (사실 자신의 전공분야일수록 더 쉽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긴 하지만)

굳이 순서대로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이니 초반이 읽다가 다소 어렵다면 기계공학쪽으로 넘겨볼 것을 추천하고 싶다.


이해가 가능하다면 상당한 재미를 주는 책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헐크처럼 지배자와 피지배자 모드를 변화시킬 수 있는 물고기가 있다거나, 크기가 동일하다는 가정 하에서라면 헐크의 펀치보다 

강력한 펀치를 내지를 수 있는 5센티짜리 새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다. 

팔콘의 레드윙이나 스타로드의 제트팩 같은 장비는 지금도 비교적 비슷하게 흉내낼 수 있다는 사실도 가슴을 설레게 하기 충분하다. 


마블이라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주제를 통해 과학이라는 비교적 어려운 주제에 접목하고자 한 시도는 정말 좋았으나, 

보다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조금만 더 쉽게 서술되었으면 정말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최선이었다면 문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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