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멜로 언덕
김조을해 지음 / 북인더갭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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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상깊은 구절

세상은 우리에게 부족함만을 가르쳐주었다.

당신이 이것을 처음 알았을 때, 자신의 이름이나 겨우 쓸 줄 아는 나이였다면 운이 좋았다. 

세상을 거의 마감하기 직전이었다면 차라리 속편했겠다.

그러나 숙덕이는 바람을 경계하던 시절에 그 사실을 깨달았다면 쉽지 않았겠다. (pg 181)



소설보다는 비소설을 좋아하는 취향상 소설 작가들을 많이 알고 있지는 못하다.

그래서 기억나는 소설가도 몇 없는데, '김조을해'라는 작가명이 보이는 순간 '어, 나 이 작가 알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름이 특이해서 그런 것일수도 있겠지만, 몇 년 전 읽었던 '힐'이라는 작품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읽을 당시에 굉장히 좋았던 작품으로 기억되서 이 책도 망설임없이 결재했다. 

('힐' 서평: https://blog.naver.com/qhrgkrtnsgud/220429352429)


이 책은 총 7개의 단편소설이 묶여있다. 

보통 단편들이 묶인 책들은 책에 대한 소감을 남기기가 쉽지 않은데 이 책은 다행히 작품들 사이를 흐르는 공통점들이 있었다.


다 읽고 느낀 점은 이 책은 우선 '사랑' 과 '상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의 대상이 그저 연인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부모와 자식에 대한 사랑, 음악이나 시에 대한 사랑, 절대자에 대한 사랑, 심지어는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등 

7가지 이야기가 모두 다른 인물들의 모두 다른 이야기지만 그 안에는 모두 '사랑'과 이를 둘러싼 '상실'의 감정이 잘 드러난다.


상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작품들의 분위기는 다소 어두운 편이다.

그 중 가장 밝은 편이라고 하는 '비교감상학 시간' 역시 수업 중 일어나는 대화와 상념들이 주제지만 그 속에는 음악에 대한 애정과 

그로 인한 아픔, 자신의 음악을 인정해주지 않았던 교수, 음악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 등이 담겨 있어서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특히 아이를 잃고 자신도 죽음을 앞둔 여인의 이야기를 담은 '겨울 순서'는 눈물을 불러오는 작품이었다. 

나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다 보니 아무래도 헤어진 연인의 상실 보다는 아이를 잃은 상실이 더 아프게 느껴진 모양이다. 

작품에 대한 해석은 내 나름의 생각이니 저자의 의도나 다른 독자들의 생각과는 다를수도 있겠다.

보통은 당연히 내 블로그에 쓰는 글이니 위와 같은 말을 남기지 않는데, 굳이 이런 쓰는 이유도 이 책의 특징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누군가가 '이 책이 독특한가? '를 물으면 난 그렇다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다.

사랑이라는 너무도 보편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참신하기 쉽지 않았을텐데, 

작가는 소외된(경제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계층의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을 둘러싼 상실을 담아내면서 신적인 존재나 환상 등 

비현실적인 요소들을 끌어와 서술하는 방법을 취함으로써 참신함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난 '그래서 이 책이 재미있었는가?'를 물으면 7가지 이야기가 모두 재밌지는 않았다고 대답하고 싶다. 

소설의 재미란 단순히 이야기가 즐겁고 유쾌하냐 수준이 아니라 비극을 다루더라도 소설 속 인물에 감정 이입되어 독자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책장을 넘기고 싶게 만드는 것을 의미할텐데 일부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그런 몰입감을 느끼기 어려웠다. 

특히 작가의 첫 출판 작품이었던 '힐'이 보여줬던 몰입감이 지금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어서, 

난 이 작가가 나와 스타일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책에서는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는 것 같아서 약간의 당혹감도 느껴졌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소설이든 영화든 난 현실성과 비현실성의 경계는 비교적 명확한 것이 좋다.

영화를 예를 들자면, 마블 영화들처럼 비현실을 말하고 싶으면 아예 비현실적으로 보여주고 

'똥파리' 같은 영화처럼 현실을 말하고 싶으면 아예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편을 선호한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다소 적응하기가 힘든 부분이 있었다.


예를 들면, 작품 '누군가'에서의 '누군가'는 모습을 계속해서 바꾸는 것으로 등장하는데, 

처음에는 이 누군가가 그저 외로움에 지친 주인공의 눈에만 보이는 허상이라고 생각했다. (허상이라면 현실적이다.)

하지만 결말 부분에서 헤어진 전 남자친구의 눈에도 이 '누군가'가 똑같이 보인다는 것을 보고 '이건 뭐지?'하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전 남자친구가 방문한 것 역시 주인공이 헛걸을 본 게 아닐까도 생각했었다.)

갑자기 엑스맨의 미스틱 같은 존재가 나타난 것이다. (이것은 비현실적이다.)

엑스맨처럼 배경 자체가 뮤턴트가 등장하는 비현실 속이라면 이해할만 하지만 철저하게 현실적인 배경 속에서 철저하게 현실적인 이유로 사랑을 잃은 주인공에게 갑자기 나타난 미스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책 후미에 담긴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 부분이 '절대자'를 나름대로 형상화한 것이라고 하는데...글쎄...내 가슴속까지 와닿지는 않았다.

(절대자가 주인공에게 나타난 것은 충분히 이해되는데 왜 전 남자친구의 눈에도 똑같이 보여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주인공은 이 미스틱으로 인해 상처를 치유받으며 끝난다.

현실적인 이유로 생긴 문제를 비현실로 치유하는 결말이라니 다소 힘이 빠진다. 


정리하면, 배경과 인물은 너무도 현실적인데 반해 그들의 대사나 생각, 이야기의 전개에 비현실적인 것이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올 때가  

간혹 있었는데 이 때 느껴지는 이질감이 나에게는 작품에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었다. 

이것이 작가의 의도적인 장치라고 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수용할 수 있는 폭이 좁을 뿐이다. 

책의 첫 작품인 '연금술사에게'는 처음에 읽고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두 세번 읽어야했다. 

그런데 지금도 이 작품이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잘 모르겠다. 


물론 책 속에 실린 모든 이야기가 그런 것은 아니다.

특히 난 '겨울 순서'가 좋았다. 

삼대에 걸친 삶의 아픔을 정 가운데에서 느끼고 있는 최선생의 심정을 자장가 가사에 빗대어 아프지만 아름답게 표현했다.

혹시라도 이 책을 접해서 순서대로 '연금술사에게'를 읽고 나처럼 이해가 안되는 독자가 있다면 

'겨울 순서'를 먼저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어서 그런지 인상깊은 구절도 많았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배고팠던 순간만 기억하잖아요. 배불렀던 때는 다 잊어버리잖아요.

 기쁜 일은 오래 기억되지 않아요. 마찬가지로 기뻐서 부른 노래도 오래 기억되지 않아요." (pg 125)


"꼭 훌륭해야 해?"

"그래야 최고가 되거든."

"꼭 최고가 돼야 해?"

"그럼, 최고가 돼야 사람들이 널 우습게 보지 않아."

"우스운 사람이 되면 안 돼?"

아이들은 고통스럽게 또다시 묻는다.

"우스운 사람이 많아야 재밌지 않아?" (pg 139 -140)


"아마도 네가 없었다면, 엄마는 세상살이 순서를 아직도 몰랐을 거야. 순서를 모른다는 건 뜻을 모른다는 것과 같은 말이거든.

 뜻도 모른 채 너를 키우고, 공장엘 가고, 이빨을 닦고, 밤낮 찌개를 끓이면 얼마나 재미없을까, 그렇지?" -중략-

"근데, 뜻이 중요한거에요?" -중략-

"엄마처럼 밤에도 일해야 하는 사람에겐 뜻이 제일로 중요하지. 

 그래야 밀려오는 졸음을 참을 수 있거든. 참는 게 중요하거든." (pg 144)



사실 '일반적인 독자'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책은 누구나 볼 수 있고 누구나 가진 배경지식이 다르고 취향도 다르다.

이 책은 나에게는 이해나 공감의 측면에서 다소 어려웠던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하지만 작가의 전작인 '힐'의 팬으로서 다음 작품이 나온다면 또 사게 될 것 같긴 하다.   

작가 특유의 마음을 울리는 문장들은 여전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힐'이 악성재고로 쌓여있다며 자학했지만 난 그 작품은 꼭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


세상은 우리에게 부족함만을 가르쳐주었다.

당신이 이것을 처음 알았을 때, 자신의 이름이나 겨우 쓸 줄 아는 나이였다면 운이 좋았다. 

세상을 거의 마감하기 직전이었다면 차라리 속편했겠다.

그러나 숙덕이는 바람을 경계하던 시절에 그 사실을 깨달았다면 쉽지 않았겠다. (pg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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