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카이사르는 루비콘 강을 건넜을까? - 브루투스 vs 카이사르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 13
박재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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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학교와 다르게 세계사를 중1 때 배우게 되었는데요

다행히도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 덕분에

학교에서 배우는 중등세계사와 연계하여 책을 읽다 보니

안 그래도 좋아하는 역사가 더 재미있다는 썬양이에요.






세계사 속 인물들을 모아 재판을 벌이는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세계사 속 사건들을 재판 형식으로 재구성한 책인데요

세계사 속 인물들을 역사공화국의 세계사법정으로 데리고 와

원고와 피고, 증인으로 나누어 그들의 주장을 들어볼 수 있지요.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 13권

<왜 카이사르는 루비콘 강을 건넜을까?>에서는

새 시대에 맞는 로마의 정치 체제를 위해 고민했다고 주장하는 카이사르와

카이사르의 암살범으로 비난받던 브루투스가 세계사법정에 소장을 냈네요.







이 책에서는 원고는 로마 공화정의 창시자의 후손인 브루투스이며,

피고는 로마 공화정 말기 최고 권력자로

황제에 버금가는 권력을 누렸으며 브루투스의 손에 죽음을 당한 카이사르랍니다.

그 외 양쪽 변호사와 증인들, 그리고 판사가 등장하지요.







원고 브루투스는 후대의 사람들이 카이사르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진심은 몰라주고

배신자라 손가락질하는 것이 억울하며,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밝히고

실추된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며 소장을 냈는데요

책을 읽어보면서 역사적 사실과 재판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함께 확인해 보아요.







오늘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은 로마~~

고대 로마 사람들은 이탈리아 중부의 테베레 강 유역에서 작은 마을을 이루고

에트루리아 왕의 지배를 받으며 살다가

기원전 509년에 로마인은 에트루리아 왕을 내쫓고 귀족 중심의 공화정을 시작했는데요

공화정이란 공공의 이익과 공공선을 추구하는 국가로

이때 성립된 로마 공화정의 전통은 카이사르가 집권할 때까지

약 4백여 년이 넘는 시간에 걸쳐 서서히 발전해 나갔답니다.

왕이 사라지자 로마의 귀족은 최고의 지위를 상징하는 집정관을 민회에서 매년 두 명씩 뽑았는데요

집정관은 로마의 최고 권력자로 오늘날의 국무총리와 같은 것이었지요.

집정관의 임기는 1년으로 행정과 군사에 관한 권력을 갖고 있었으며

귀족 회의 집단인 원로원과 중요한 나랏일을 의논했다고 해요.







원로원은 오늘날의 국회의원과 비슷한데요

왕정 시대 때, 로마의 원로원은 왕을 위한 자문 위원회에서 출발한 것으로 추정되며

공화정 최고의 권력기관으로서 원로원의 충고는 집정관도 거부할 수 없게 되어 있었고

원로원 의원의 수는 일정하지 않았으나 공화정 초기에는 3백 명 정도였다고 하니

인원이 꽤 많았던 만큼 권력도 막강했겠어요.

로마의 최고 엘리트 귀족으로 이루어진 기구였다니 정말 어마어마하네요.

반면, 평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만든 관직인 '호민관'이 있었는데요

2백여 년이 넘는 신분 투쟁 끝에 평민은 겉으로 보기에는 귀족과 거의 동등해졌고

로마는 이를 통해 모든 시민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단결시킬 수 있었다고 하네요.

타협과 양보로 귀족과 평민 간의 단합이 이루어진 사실은

로마의 정치가 그만큼 발전했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당시 로마에서는 120년간 일어났던 포에니 전쟁이 끝나

이탈리아반도는 전쟁의 후유증으로 토지가 황폐화되고 전염병까지 돌아 인구가 크게 줄었으며,

전쟁을 마친 병사들은 고향에 돌아와 다시 농사를 지었지만

외국에서 값싼 곡물이 들어와 몰락하여 농민의 수가 심각하게 줄어들었죠.

로마는 계속되는 전쟁으로 풍부한 자본과 토지, 노예, 노동력을 얻었으나

귀족들이 차지하여 넓은 농장을 운영하면서 노예를 부리는 라티푼디움이 형성된 것이죠.

로마 농민의 반란이 생기면서 티베리우스 그라쿠스와 가이우스 그라쿠스 형제가 등장하여

귀족에게 몰려있던 토지를 농민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 토지 제도를 개혁했네요.

책을 읽던 썬양이 의외의 내용을 발견했다며 말해 주었는데요

왠지 전쟁이 일어나면 모든 농민이 동원되었을 것 같은데

로마의 군대는 조금이라도 땅을 갖고 있는 농민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해요.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 시민은 나라에 책임감을 느끼고 그에 알맞은 의무를 수행한다고 보았기에

재산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병영의 의무에서 제외되었다는 것이죠.

하지만 문제는 포에니 전쟁을 거치면서 전쟁 기간이 너무 길어 농토와 가족을 버려두고 전쟁을 치르다 보니

전쟁이 끝나고 돌아왔을 때 농토는 황폐해지고 가족은 굶어죽기 직전인 상태가 되어 있어

농민들이 헐값에 토지를 내놓으면 귀족이 사들여 빈부의 차이가 더욱 심하게 벌어졌다고 하네요.

그래서 그라쿠스의 형인 티베리우스가 중소 농민을 키우기 위해 원로원 귀족이 갖고 있던 땅을 제한하고

귀족들이 불법적으로 갖고 있던 땅을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눠 주장했으니

원로원 귀족들이 그냥 두고 보지는 않았겠지요?

호민관 선거가 있던 날 티베리우스가 머리 위로 손을 올려 뭔가 신호하는 걸 보고

왕관을 요구하는 몸짓을 했다며 사람들을 부추겨 노예들에게까지 몽둥이를 들게 해 맞아 죽었다고 하네요.






형의 비참한 죽음을 목격한 그라쿠스는 토지 개혁이 공화국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원로원 반대파에 맞서 다시 한번 개혁을 추진기 위해

티베리우스가 죽임을 당하고 10년 뒤, 호민관에 당선되어 농지 개혁법을 제안했답니다.

그라쿠스는 로마 시민의 권리를 넓히기 위해 시민권 개혁법을 만들어 로마 민중의 지지를 받자

원로원 귀족들은 그라쿠스와 그의 지지자들을 로마 공화국의 적으로 규정하여 가혹하게 죽였고,

그라쿠스는 울분을 참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하네요.

원로원은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한 후 자만심에 빠져

로마 시민을 위한 자신의 의무를 저버렸으며

공화정이 생길 때부터 전해져 왔던 그들의 전통적 가치와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적 미덕을 잃었기에

결국 로마 공화국에서 불행의 씨앗이 되었던 것입니다.






기원전 59년 일찍 가장이 되어 다양한 경험을 쌓은 카이사르가

로마 공화국의 최고 권력자인 집정관에 당선되어

크라수스, 폼페이우스와 함께 삼두 정치를 하게 됩니다.

삼두 정치란 세 사람의 우두머리가 로마를 좌우하게 되었음을 뜻하는데요

카이사르의 뛰어난 두뇌, 폼페이우스의 막강한 군사력, 로마 최고의 갑부 크라수스의 재력을 합쳐

로마의 강력한 실력자가 되었었 것이죠.

카이사르의 딸이자 폼페이우스의 아내인 율리아가 아기를 낳다가 죽자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를 묶는 끊은 더 이상 없었으며,

돈줄이 되었던 크라수스가 파르티아 원정에서 죽어버리자 삼두 정치는 무너졌지요.

하지만 카이사르는 8년 동안의 갈리아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답니다.






기원전 55년 폼페이우스가 주도하는 원로원은 집정관 임기가 끝나가는 카이사르에게

군대를 해산하고 로마로 돌아올 것을 명령했고,

원로원은 카이사르가 다음 번 집정관 선거에 또 출마하려 한다는 것을 알아채고

로마에 있지 않은 사람은 선거에 나올 수 없다고 말했답니다.

당시 로마에서는 속주에서 임무를 마치고 로마로 돌아오는 장군은 루비콘 강 앞에서

모든 군대는 무장을 해제하고 혼자 강을 건너야 한다는 법이 있었다고 해요.

아무와도 싸울 준비가 되지 않은 맨손으로 들어오는 것을 나라에 대한 충성으로 생각했던 것이죠.

하지만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와 원로원이 자신을 제거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결국 군대를 이끌고 무기를 버리지 않은 상태로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로 진격했다고 하네요.

여기서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이 말 들어보신 적이 있으실 거예요.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후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이 칼이 해결해 줄 것이다!"






무장한 채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에 들어온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와 원로원에게는 국가 반역죄를 저지른 반역자일 수밖에 없기에

파르살루스 전투를 벌였지만 폼페이우스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기원전 44년 3월 15일 로마를 카이사르의 독재로부터 해방시켜야 하는 막중한 역사적 사명을 갖고 있던 브루투스는

원로원 회의장 입구에서 14명의 귀족들과 카이사르를 둘러싸고 단도를 휘둘러 카이사르를 암살했고,

로마의 시민들은 각자 자기 집 문을 걸어 잠그고 밖으로 나오지 않았으며

암살한 자들에게 등을 돌리고 침묵으로써 카이사르에게 애도를 표현했지요.






이제 중국 제일의 미녀 양귀비도 울고 간다는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가 등장하네요.

이집트로 도망간 폼페이우스를 잡기 위해 쫓아온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가 이미 살해당하자 원통해 했는데요

당시 동생이자 남편인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권력 다툼을 벌이며 위험한 상황에 있던 클레오파트라가

카이사르에게 찾아가 둘은 사랑에 빠져 아들을 낳았지만

카이사르가 브루투스의 손에 죽자 안토니우스와 다시 사랑에 빠졌고,

옥타비아누스에 의해 안토니우스도 클레오파트라도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더 이상 옥타비아누스를 견제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로마의 공화정이 무너지면서 황제가 나라를 다스리는 제정 시대로 넘어가게 되지요.







악티움 해전에서 승리하며 기원전 27년 로마에 평화가 찾아오자,

옥타비아누스는 자신의 권력을 원로원과 로마 시민에게 돌려줄 것을 선언했어요.

최고의 권력이 카이사르를 죽음으로 내몬 것을 거울삼아

옥타비아누스는 권력을 유지하면서 원로원 귀족의 견제를 받지 않기 위해 엄청나게 머리를 쓰면서 노력했지요.

로마군 최고 사령관과 호민관 특권을 가진 옥타비아누스가

로마의 초대 황제가 되었던 것이죠.






옥타비아누스가 첫 황제가 된 뒤, 로마를 평화롭게 다스린 훌륭한 황제들도 있었는데요

96년부터 180년까지 네르바, 트리야누스, 하드리아누스, 피우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를 가리켜

5현재 시대라고 부를 정도로 뛰어난 정치적 역량을 가진 사람들이기도 했답니다.

반면, 네로, 칼리굴라, 코모두스처럼 무능하고 광기 어린 인물이 황제가 되었을 땐

로마에 재앙이 닥쳤던 시대도 있었죠.

양쪽의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여러 증인들을 내세우며

자신이 역사의 진정한 승자임을 강조하는데

세계사법정은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 줄까요?

중등세계사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 <왜 카이사르는 루비콘 강을 건넜을까?>를 읽어보시고 확인해 보세요.







<한 걸음 더 역사 논술> 코너를 통해서

논리적 사고력도 키우고 대학입시의 논술시험에 대비도 열심히 해 보아요.







역사 시간에 로마시대를 배우면서 카이사르에 대해서는 살짝 설명을 해주셨다는데요

역시 책으로 보니 이렇게 복잡하고 많은 이야기가 숨겨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썬양~~

이래서 책을 읽어봐야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있다나요?ㅋㅋ

로마 원로원의 입장에서 보면 카이사르가 집권을 하게 될까 봐 제거하려고 했을 것이고,

카이사르의 입장에서는 오랜 세월 나라를 위해 열심히 싸운 자신을

환영은 못해줄망정 죽이려고 하니 살기 위해 당연히 무기를 들고 루비콘 강을 건널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니냐며.

양쪽의 입장이 모두 이해가 간다는군요.







엄마가 만보 걷기 운동을 다녀온 사이

휘리릭 독후 활동을 해놓았기에 완성 사진만 찍었답니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카이사르가 한 말이었군요~~







재판 형식을 통해 역사 속의 여러 인물들이 서로 치열한 공방을 펼치며

세계사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로마 공화정 말기

카이사르의 시대를 매우 흥미롭게 이해하기 쉽도록 전해 주는

세계사법정 <왜 카이사르는 루비콘 강을 건넜을까>를 읽어봤는데요

로마가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바뀌는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해당 도서를

해당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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