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니발 장군은 알프스를 넘었을까? - 한니발 vs 스키피오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 12
박재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날씨도 춥고, 코로나 상황도 안 좋다 보니 빨리 겨울방학이나 했으면 좋겠네요.

다행히 수요일이 방학이라 그날만 기다리고 있는 엄마입니다.

정작 썬양은 친구들과 함께하는 학교생활이 너무 즐거워

방학을 기다리지는 않더라고요~~

방학을 해도 도서관에 2주간 매일 갈 거라나 뭐라나~ㅋㅋ









하루하루 열심히 보내고 있는 썬양~

주말에는 또 독서도 많이 하고 있는데요

이번 주말에는 중등세계사공부에 도움 되는 교과연계도서

자음과모음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 <왜 한니발 장군은 알프스 산맥을 넘었을까?>를 읽었답니다.










썬양이 세계사법정을 순서대로 읽다 보니 책을 읽으면서 시대적 흐름을 알 수 있는데요

지난 이야기까지 그리스의 이야기였다면 이번에는 로마 제국의 이야기를 담았네요.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1천 년간 이어진 동로마 제국 등

2천 년 동안의 기나긴 로마사를 통해 인류의 지혜와 교훈을 배울 수 있는데요

<왜 한니발 장군은 알프스 산맥을 넘었을까?>에서는

기나긴 로마의 역사 중에서 로마의 운명이 걸렸던 포에니 전쟁을 다루고 있답니다.







역사는 보통 승자에 의해 기록되기 때문에

카르타고의 역사와 한니발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역사의 승자인 로마 위주의 시각이 아닌

포에니 전쟁의 모습과 전쟁 이후 로마의 사회적 변화를 객관적이고 균형 있는 시각으로 다뤘답니다.

포에니 전쟁의 시작부터 전쟁 이후의 로마 사회는 어떤 혼란을 겪었는지

책을 통해서 확인해 보도록 할게요.






책을 펼치던 썬양이 학교에서 배운 내용이 나온다며

이렇게 역사 교과서까지 가져다 놓더라고요.

썬양의 교과서는 학교에 있는데 이건 여분으로 구입했던 교과서거든요.

학교에서 보는 교과서에는 필기를 빼곡하게 했다던데

집에 있는 교과서는 확인용이라 아주 깔끔해요.~~

암튼 이렇게 교과서와 비교를 해보니 확실히 교과연계도서라는 점 인정~~








<왜 한니발 장군은 알프스 산맥을 넘었을까?>에는 누가 나오는지

등장인물은 필수로 확인해 봐야죠~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이 책에서는 원고로 등장하는군요.

피고는 자마 전투에서 한니발을 물리친 스키피오~~

그 외 양쪽 변호사와 증인들, 판사가 등장하지요.








원고 한니발은 카르타고를 전쟁에 끌어들여 멸망시킨 후

지중해 세계를 지배하고자 했던 로마의 잔인함을 만천하에 알리고

로마인들에 의해 왜곡되어 있는 포에니 전쟁의 역사적 진실을 밝혀

실추된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스키피오를 소송했는데요

여기서 포에니 전쟁이란 당시 강력한 함대를 보유하며 지중해를 지배했던

해상 제국 카르타고와 이탈리아반도를 통일하고 새로운 강국으로 부상하던 로마가

국가의 운명을 걸고 치른 약 120년간의 치열한 전쟁을 말한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천2백 년 전에 전쟁을 치른 사이인 원고 한니발과 피고 스키피오~

한니발은 포에니 전쟁의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스키피오를 고소했는데요

포에니 전쟁 이야기를 다루기 전에 카르타고라는 나라에 대해서 먼저 알아보면,

카르타고는 팔레스타인 북부 지역에 살던 페니키아인이 북아프리카에 세운 식민 도시로

기원전 3세기경 카르타고는 지중해 세계의 초강대국이었답니다.

카르타고는 로마와의 포에니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해상무역으로 번영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밀이 많이 생산되어 무역을 따로 하지 않아도 자급자족이 가능하여 유럽 중서부에 수출할 정도로 농업도 발달했어요.

병사들에게 봉급을 주는 용병제도를 도입하여 군사력도 강력하여 시칠리아 전체를 얻으려고 노리고 있었답니다.

그럼, 로마는 어떤 나라일까요?

기원전 753년 로물루스와 레무스에 의해 건국되어 티베르 강 남쪽 라티움 지방의 일곱 개 언덕을 중심으로 만들어져

2백 년 동안 에트루리아 왕들에게 지배 당하다가

기원전 509년 에트루리아 왕을 몰아내고 공화정을 세워

기원전 3세기경에는 마침내 이탈리아반도를 통일했지요.

로마와 동맹을 맺고 있던 시칠리아 동쪽의 도시들이 카르타고에 의해 침략당했을 때

로마 원로원의 고심 끝에 로마의 지원군이 시칠리아로 출발했고,

이리하여 카르타고와 로마 사이에 포에니 전쟁이 시작된 것이지요.











원고 측과 피고 측은 포에니 전쟁이 일어난 책임이 서로 상대방에게 있다고 주장하네요.

시칠리아 동쪽 지역에서는 그리스의 도시 국가 메시나와 시라쿠사가 서로 분쟁 중이었는데

메시나는 시라쿠사에 비해 군사력이 약해서 로마에 구원을 요청하였고,

로마는 메시나와 시라쿠사가 카르타고의 손에 넘어가면 로마에 위협이 될 수 있기에

메시나의 요청을 받아들여 지원군을 보내 카르타고와의 포에니 전쟁이 일어났다고 주장합니다.

로마가 메시나와 동맹을 맺자 위협을 느낀 시라쿠사는 카르타고와 동맹을 맺어 메시나를 향해 진격했으나

로마와 메시나 동맹군이 적은 숫자에도 불구하고 시라쿠사 군대를 물리치자

시라쿠사는 카르타고와의 동맹을 깨뜨리고 로마와 동맹을 체결하네요.

역사는 참 해석하기 나름인 것 같은데요

시라쿠사의 결정을 두고 원고 측 변호사는 기회주의자라고 하고,

피고 측 변호사는 시라쿠사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한 똑똑한 통치자라고 하니 말이죠.







로마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해군이 필요했기에

카르타고의 5단층 갤리선 한 척을 빼앗아 그 배를 모방하여 빠른 시일 내에 5단층 갤리선 1백 척을 만들었고,

배와 배를 연결하는 일종의 다리로 평상시에는 돛대에 고정시켰다가

전투가 벌어지면 적의 갑판 위에 떨어뜨리는 코르부스라는 새로운 무기를 만들었답니다.

코르부스의 끝에는 날카로운 철제 갈고리가 달려 있어서 갑판을 뚫고 들어가기도 했었거든요.

코르부스를 얕보던 카르타고는 해상 전투에서 로마에게 크게 패했다네요.

로마 군대가 카르타고의 본국을 공격하려고 하자

카르타고는 이집트와 시리아에서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크산티포스를 고용하였고,

크산티포스는 카르타고의 군대를 재정비하여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 다양한 전술을 개발하여

로마와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자 카르타고의 정치가들은 더 이상 크산티포스가 필요 없다고 판단하여 해고하였고,

이후 카르타고는 코끼리 부대까지 이끌고 시칠리아로 가서 로마와 싸웠지만 결국은 로마에게 함락당하고 맙니다.






이후 카르타고와 로마는 강화조약을 맺게 되는데요 그 내용으로는

'첫째, 로마는 카르타고의 독립과 자치를 보장한다.

둘째, 카르타고는 당장 시칠리아에서 떠나고, 시칠리아를 비롯한 주변의 성들을 로마의 영토로 인정한다.

셋째, 포로는 양국이 몸값에 대한 요구 없이 석방한다.

넷째, 카르타고는 로마에 3천2백 탈렌트를 전쟁 배상금으로 지불한다.'

근데 이 조약의 내용이 두 나라 모두 서로에게 불리한 강화라고 주장하니 누가 만든 조약인 걸까요?

암튼 이 강화조약으로 1차 포에니 전쟁은 막을 내린 것이죠.







2차 포에니 전쟁은 '한니발 전쟁'이라고 불릴 만큼 한니발의 활약이 대단했다고 하는데요

한니발은 에스파냐 지역에서 아버지의 군대를 따라다니며 수많은 전쟁을 겪으면서

26세의 건장한 청년이 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를 지도자로 여기며 따랐다고 합니다.

원고 측과 피고 측은 2차 포에니 전쟁 발발의 원인에 대해서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어요.








여기서 한니발 장군이 등장하게 되는데요

한니발은 29세의 나이로 10만여 명의 대군과 코끼리 37마리를 이끌고

카르타헤나에서 로마로 출정하였는데 바다가 아닌 육로를 선택했어요.

에스파냐에서 로마 북쪽으로 향하기 위해 자연이 만든 거대한 두 장애물인

피레네 산맥과 알프스 산맥을 넘어 드넓은 갈리아 지방을 지나면서 여러 부족과 싸움을 거친 끝에

프랑스 남부의 론 강까지 건넌 뒤에는 군사가 4만여 명으로 줄어있었지요.

험난한 길로 한니발이 이탈리아반도에 도착하는 데는 넉 달이나 걸렸고,

로마의 코르넬리우스는 티치노라는 평지에서 한니발 군대를 맞아 전투를 벌였지만 패하고 맙니다.

한니발과의 세 번의 전투에서 패한 로마는 32년 만에 막시무스를 독재관으로 임명하였고,

막시무스는 한니발과의 정면 대결을 벌여서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여

한니발의 군대를 쫓으면서도 전투에는 응하지 않으면서 한니발의 군대가 지쳐가는 걸 기다렸다고 하네요.

한니발을 물리치길 바랐던 로마는 막시무스의 소극적인 전략을 비판하여 막시무스는 해고되었지만

나중에는 막시무스의 판단이 옳았음을 인정했다고 해요.







기원전 216년 8월 2일 로마 군대와 한니발의 카르타고 군대는 칸나에 평원에서 운명적인 전투를 벌이게 되는데요

한니발은 보병의 정면에는 갈리아인으로 구성된 보병을 배치하고,

왼쪽에는 에스파냐와 갈리아 기병을, 오른쪽에는 아프리카에서 데려온 누미디아 기병을 배치했는데

로마군의 공격을 탄력적으로 흡수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하네요.

초반에는 로마의 군대가 우세한 듯했으나 7만 명의 로마 군이 한니발이 지휘하는

4만 명의 병사들에게 완벽하게 포위되어 한니발 군대가 승리를 거두었다고 합니다.








불과 2년 사이에 로마 공화국에서는 가장 우수한 전력의 3분의 1이 죽거나 디치거나 포로로 잡혔다는데요

한니발 군대의 병사가 로마보다 적었는데도 칸나에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기병을 적절하게 활용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한니발은 로마의 동맹국들을 포섭하기 위해 로마 동맹국 병사들을 몸값도 받지 않고 풀어 주어

세력이 강했던 도시 카푸아마저도 한니발의 편으로 돌아섰지요.






로마 원로원은 막시무스를 다시 집정관으로 선출하였고 막시무스는 한니발과의 정면 승부를 피하고

시간 끌기 전략을 유지하자 한니발은 4년 동안 로마군과 별 소득 없이 전쟁을 벌였다고 합니다.

로마 원로원은 당시 25세였던 청년 스키피오를 로마군 사령관으로 임명했는데요

스키피오는 2차 포에니 전쟁 초기부터 로마군 기병대에서 활약하면서

한니발의 전술을 훤히 꿰뚫고 있었기에 막시무스와 다르게 공격적인 전술을 펼쳐

한니발의 에스파냐 본거지인 카르타헤나를 무너뜨리는데 성공합니다.

스키피오 장군이 카르타고의 본거지인 북아프리카에 상륙하자

한니발은 카르타고를 지키기 위해 로마에서 카르타고로 돌아왔고,

기원전 202년 로마와 카르타고의 운명을 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으나 스키피오 장군의 완벽한 승리로 끝났답니다.

스키피오는 개선장군이 되어 로마에 입성하여 아프리카를 제압한 자라는 의미에서 '아프카누스'라는 존칭으로 불렸으나

한니발은 소아시아로 도망쳐 음독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하니

승자와 패자의 결말은 이렇게 다르군요.






이제 한니발 대 스키피오 사건의 마지막 재판인 세 번째 재판이 열렸습니다.

한니발 전쟁이 끝난 카르타고는 독립을 유지하고는 있었지만 이전과는 달리 이류 국가로 전락한 상태였지만

경제를 되살리는 데 성공하였고,

이웃 국가인 누미디아와의 국경 분쟁에 시달리다가 누미디아 군대가 계속 카르타고를 침범하자

카르타고도 군대를 누미디아 영토로 진격시켜 방어를 했죠.

로마는 조사단을 파견하여 중재에 나섰지만 카르타고가 누미디아를 계속 공격하자

로마 원로원은 조약 위반으로 규정하여 카르타고를 파괴하기로 하네요.

그리하여 기원전 146년, 3차 포에니 전쟁이 일어나 카르타고를 함락시키고 맙니다.








3차에 걸친 포에니 전쟁과 그리스 지역의 정복은 공화국 로마에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주었지만

정복지에서 유입된 엄청난 숫자의 노예와 막대한 세금, 광대한 토지와 값싼 밀 등이

대부분 원로원 귀족들과 신흥 기사 계급의 차지가 되어 귀족들에게는 축복이었지만

농민의 입장에서는 일종의 재앙이나 마찬가지였어요.

가진 재산은 모두 잃고 실업자가 되어 가난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죠.







로마는 포에니 전쟁 이후 자작농의 몰락, 부익부 빈익빈, 귀족과 평민의 대립 등

심각한 사회문제를 앓았는데요

그라쿠스 형제는 농민을 회생시켜 국가의 기반을 튼튼히 하기 위해 목숨을 바쳐 개혁을 이끌었지만

결국 실패하여 로마는 약 1백 년간 내전 상태에 빠져들어

포에니 전쟁 이후 로마인들은 결국 자기들끼리 죽고 죽이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게 된 것이죠.









마지막 원고와 피고의 최후 진술에서

한니발은 자신이 16년 동안 이탈리아반도에서 로마와 싸워 한 번도 패하지 않고

모든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는 점에서 스키피오보다 위대한 장군이라고 주장하고,

스키피오는 자신은 군대를 지휘하는 사령관으로서, 또 정치가로서

한니발 장군을 뛰어넘는다고 확신한다고 하는데

판사는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 줄지

교과연계도서 <왜 한니발 장군은 알프스 산맥을 넘었을까?>를

직접 읽어보신 후 확인해 보시고,

내가 판사라면 어떤 결정을 내릴지도 서로 이야기 나눠보면 좋겠죠~







책을 읽은 후 제시된 문제를 풀어 보면서 논술 실력을 기를 수 있는데요

포에니 전쟁 때 사용된 한니발의 작전과 스키피오의 작전 중 보다 효과적인 작전과 그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썬양은 한니발의 작전이 기발하긴 했으나 자신들의 피해도 만만찮았고

결국은 로마에게 패하게 되었으니 결과적으로는 스키피오의 작전이 더 훌륭했던 것 같다고 하네요.







포에니 전쟁은 로마의 승리로 끝났지만 역사의 승자인 로마 위주의 서술에서 벗어나

균형 있는 시각으로 포에니 전쟁과 전쟁 이후 공화국 로마의 사회적 변화를 알아봤는데요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과 로마의 장군 스키피오 둘 다 자국의 시각에서는 훌륭한 인물들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는 썬양.








엄마가 운동하러 갈 때 독후 활동을 시작하는 걸 봤는데

다녀오니 이렇게 다 정리를 해놨네요.

로마와 카르타고의 관계와 포에니 전쟁이 일어나게 된 계기, 그리고 전쟁의 결과~

갤라선이란 무엇이며,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를 이끈 로마의 군대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아주 상세하게 적어 놓았길래 저도 잘 읽었답니다.







역시 역사는 달달달 외우기만 하다가는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게 되는데요

원고와 피고, 그리고 그 시대를 함께했던 증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교과서 속 내용을 더욱 쉽게 이해하고 비판적 사고력을 키울 수 있는 것 같아요.

기원전 3세기 지중해를 배경으로 한 카르타고와 로마의 치열한 접전이 궁금하시다면

자음과모음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 <왜 한니발 장군은 알프스 산맥을 넘었을까?>를 읽어보시고

세 차례에 걸친 포에니 전쟁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시길 바랍니다. ^^*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