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아트의 거장 백남준 청소년평전 40
김나정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청소년 시기에 꼭 만나야 할 훌륭하고 뛰어난 인물들의 이야기를

자음과모음 청소년평전을 통해서 알아가고 있는 썬양인데요

물론 초등 때에도 위인전집을 다양하게 읽긴 했지만

중학생이 되었으니 좀 더 깊이 있는 독서가 필요하기에

중등논술교육에도 도움 되는 청소년평전을 아주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집에 있는 25권의 자음과모음 청소년평전 중에서

거의 대부분의 책을 다 읽은 썬양인데요

무엇보다 그림이 없고, 내용이 풍성해서 마지막까지 읽는 재미가 있다는군요.

썬양은 초등 때부터 그림이 많은 책보다는 이야기가 많은 책을 좋아하더라고요.







중등논술교육 도움 되는 위인전집 청소년평전은

인물들의 삶을 조망하여 그들의 성공적인 삶 이면에 서려 있는

고통과 아픔, 심리적 혼란 등을 보여 주는 책인데요

다양한 분야의 인물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통찰할 수 있는 시야를 갖게 해주고

역사적 사실과 현실 문제에 대한 고민을 깊이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번에 소개해 드릴 인물은 청소년평전 제40권 <미디어 아트의 거장 백남준>인데요

1960년대 플럭서스 운동의 중심에서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공연과 전시로

예술계에 새로운 돌풍을 일으킨 백남준의 남다른 어린 시절부터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 세계를 펼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관객과의 소통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고

독특한 퍼포먼스로 사람들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미래를 사유하게 했던

기존 예술에 대한 정의와 표현의 범위를 확대시킨 창조적인 예술가 백남준의 정신을

중등논술교육에 도움 되는 위인전집

청소년평전 <미디어 아트의 거장 백남준>을 통해서 알아보도록 합시다.









백남준의 이야기는 1장부터 4장까지 나뉘어 진행되는데요

소 제목들만 읽어봐도 범상치 않았던 백남준의 일생이 느껴지네요.






<미디어 아트의 거장 백남준>을 읽기 시작하던 썬양이

"엄마, 백남준은 금수저였대~"

ㅎㅎ뭔 이야기인가 했더니 백남준의 집이 재력가였었네요.

백남준은 어릴 때 아이들과 뛰어놀면서 장난치기보다는

집에서 책을 읽는 걸 더 좋아했답니다.

중학교 때 남준은 학교에서는 아주 조용하고 내성적인 아이인데다

말수도 적고 차림새도 추레하여 반 아이들은 남준이 부잣집 아들인 걸 몰랐다가

갑자기 비가 오는 날 집에서 차를 보내 친구를 집에까지 데려다준 후

친구들은 남준이 부잣집 아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하네요.

그럼 남준이 음악에 빠지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요?

누나가 치는 피아노 소리에 빠져 자신도 피아노를 배우면서 음악에 관심을 가졌다가

경기 중학교 음악 교사인 유명한 작곡가 이건우 선생님을 통해 쇤베르크를 알게 되면서 부터랍니다.

쇤베르크의 반항적이고 진취적인 정신에 남준은 큰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죠.







백남준이 1936년도에 태어난 사람이니 당연히 6·25 전쟁을 겪었었겠죠?

홍콩에 건너가서 공부하다가 한국에 다니러 온 해에 전쟁이 터져

부산을 통해 일본으로 건너가 2년간 열심히 공부해서 도쿄 대학에 합격합니다.

사업가가 되어주길 바라는 아버지의 기대와는 달리

음악가가 되고 싶었던 남준은 도쿄 대학에서 쇤베르크에 대한 논문으로 대학 공부를 끝내고

독일의 뮌헨 대학에서 음악사를 공부하다가 보수적인 대학의 분위기가 남준과 맞지 않아서

다름슈타르에 가서 만난 작곡가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는 남준에게 돌파구를 열어 주었지요.








백남준에게 음악적 영향을 준 사람 중에 쇤베르크의 제자 존 케이지는

음악에 소음을 끌어들이고,

악기가 내는 소리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을 둘러싼 모든 소리가 음악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런 존 케이지의 음악은 남준에게 큰 충격을 주었으며

남준도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소리를 만들어 보고 싶어 했답니다.







관객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던 백남준의 공연 내용을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쾰른에서 <피아노포르테를 위한 습작> 공연을 했는데

남준은 무대에서 쇼팽의 피아노 곡을 치다가 갑자기 울면서 뛰어나갔고,

피아노를 부순 뒤, 부속품을 꺼내 내동댕이치고, 피아노를 엎어 버렸어요.

별안간 가위를 들고 무대 맨 앞줄로 달려가 존 케이지의 재킷과 넥타이를 자르고,

케이지와 데이비트 튜더의 머리에 샴푸를 들이붓고

객석 사이를 비집고 공연장 문을 향해 달려 나가 관객들을 놀라게 했지요.

그리고 얼마 후 공연장에서 전화벨이 울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고

"퍼포먼스는 끝났습니다."라는 남준의 전화가 걸려왔답니다.

이런 퍼포먼스가 공연이었다니 정말 놀랍네요.ㅋㅋ






남준은 1958년부터 텔레비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TV에 대한 연구에 몰두한 결과

2년 만에 자신이 개발한 기술에 대해 특허를 신청했답니다.

갑자기 형편이 어려워졌지만 전 재산으로 텔레비전 열세 대를 샀고,

이 열 세대의 텔레비전이 비디오 아트의 출발 지점이 되었던 것이죠.

1963년 남준은 첫 번째 텔레비전 전시회를 열어 음악가나 행위 예술가로 알려진 남준이

텔레비전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어요.

그저 바라만 보는 텔레비전이 아니라 보는 사람이 조작할 수 있는 텔레비전으로

관람객이 다이얼을 돌리면 화면이 변형될 수 있고,

관람객이 발판 스위치를 누르거나 확성기에 말을 해야 화면에 불꽃이 일어나는 등~

이 전시회는 비디오 아트의 출발점으로 기록되었다네요.







1964년 뉴욕으로 건너간 남준은 스튜디오를 얻어 가난한 뉴욕 예술가의 삶을 시작했어요.

뉴욕에서 무어먼과 단짝으로 공연을 했고,

무어먼과의 공연에서 남준은 '몸'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였으며

보수적인 미국 남부 출신의 무어먼은 비키니를 입고, 젖가슴을 드러내고,

급기야 누드로 연주를 하다가 경찰에 잡혀가기도 했었다네요.


1965년 남준은 미국에서 첫 개인전을 선보였는데요

텔레비전 앞에는 커다란 말굽자석을 매달아

관객이 말굽 자석을 브라운관에 갖다 대면 자석의 힘으로 화면 속 이미지가 변했고,

컬러텔레비전은 화면 앞 아래쪽 모서리에 자석을 놓아

적색, 청색, 녹색이 점과 같은 모양으로 선을 만들어 내고,

색은 무늬를 만들어 자석과 가까운 부분에서는 갈라지고

화면 가운데서는 둥글게 뭉치는 등 관객이 참여하는 전시회를 만들어 성공했답니다.

일방적으로 텔레비전을 보는 수동적 매체가 이니라

능동적 매체로 탈바꿈 시켰던 것이죠.






"비디오를 발명한 것은 미국인이고,

그것을 홈 비디오로 만든 것은 일본인이고,

그것을 다시 예술로 만든 것은 한국인이다."

백남준은 명성에 비해서 가난한 예술가였더라고요.

전시회를 준비할 돈이 없어서 부처 조각상, 텔레비전, 비디오카메라 세 가지로 <TV 부처>를 계획했는데

뜻밖에도 이 전시회가 호평을 받을 줄이야!

가부좌한 부처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고,

텔레비전 위의 비디오카메라는 부처의 모습을 찍고,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건 비디오카메라에 비친 부처상이며

부처는 TV에 나온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작품인데

서양의 과학 기술과 동양의 명상 세계가 결합된 작품이란 평을 받았답니다.

<TV 부처>는 <TV 로댕>, <TV 정원>, <TV 바다> 등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어 전시되었죠.






1980년대 남준의 작업은 인공위성으로 새로운 길을 찾았는데요

위성을 이용한 예술로 남준의 <우주 오페라>가 시작되었답니다.

하지만 위성을 통한 예술이란 전대미문의 작품이었기에

세계 각국의 문화계 스타를 한데 모으는 일도 수월하지 않았다네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각국의 언론이 격찬하는 작품을 만들어 명성을 안겨줬지만

불어난 경비로 엄청난 빚을 안겨주기도 했다는 사실!

1986년 아시안 게임을 위해 우주 오페라 2편 <바이바이 키플링>을 통해

동서양이 만나고 소통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위한 작품 <손에 손잡고>에서는

서울을 비롯해서 아메리카, 유럽, 아시아 등 세계 각지를 동시 중계로 연결하는

세계적인 위성 쇼를 제작했지요.






백남준은 전쟁이 났던 해에 한국을 떠나 35년 만에 고국을 방문하여

잡지 인터뷰도 하고 텔레비전에서는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세계>라는 특집 프로그램이 방영되었어요.

그때 우리나라가 백남준의 이야기로 떠들썩했던 기억이 나네요.

남준은 뒤셀도르프 대학의 교수로 임명되어 독일에서 활동하다가

1993년 독일의 대표 작가 두 명 중 한 명으로 선발되어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참가했답니다.

<전자 초고속 도로-베네치아에서 울란바토르까지>라는 작품에서

칭기즈칸, 마르코 폴로, 알렉산더 대왕 등 동서를 오갔던 인물들을 비디오 조각으로 만들었고,

<스키타이 왕 단군>이란 작품을 더해 한국인의 조상인 단군을

칭기즈칸과 알렉산더 대왕의 반열에 올려놓음으로써 한국인의 기상을 떨쳐 보이려고 했지요.

당뇨병을 심하게 앓아 각종 증상에 시달렸던 남준은 1996년 4월 9일 쓰러져 반신마비가 되었지만

병상에서도 최신 컴퓨터와 씨름하여 <전자 달>을 완성하였고,

1999년 12월 31일 자정, 세계 77개의 방송망을 통해

밀레니엄 이벤트에 <타이거 리브스>란 작품을 출품하여

"호랑이는 살아 있다"라고 외치기도 했답니다.

1996년 생일인 7월 20일을 맞아 남준은 침대 옆벽에다 소원을 적었어요.

"나는 예순네 살이다. 일흔네 살이 되고 싶다."

그런 그는 일흔네 살 생일을 다섯 달 앞두고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백남준은 사회와 문화의 변화를 이야기하고자 했고,

그것을 예술로 표현해 소통하고자 했죠.

늘 끊임없이 새로운 예술을 선보인 백남준은

기존 예술에 대한 정의와 그 표현의 범위를 확대시킨 창조적인 예술가로 남아있습니다.







중학교 1학년 썬양이 바라본 백남준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다른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괴상한 퍼포먼스로 공연을 해서

처음에는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았으면서도

자신의 예술 세계를 꿋꿋하게 이어나가기도 참 쉽지 않은데

백남준의 뇌는 일반적인 사람과는 구조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군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예술가가 되기까지 남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낸 백남준의 노력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고 하네요.






초등 때 학습만화 위인전집으로 처음 백남준을 알게 되었을 때는

평범하지 않은 독특한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했었는데

청소년평전 <미디어 아트의 거장 백남준>을 읽고

백남준의 어린 시절 에피소드부터 주변 인물, 사회적 배경 등도 제대로 알 수 있었다면서

독후 활동으로 간단하게 정리를 해봤다고 합니다.







오늘은 중등논술교육에 도움 되는 위인전집

자음과모음 청소년평전 <미디어 아트의 거장 백남준>을 소개해 드렸는데요

이렇게 또 한 사람의 인생이 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

썬양과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