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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현실로 만든 몽상가 월트 디즈니 ㅣ 청소년평전 36
최영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2월
평점 :

개학을 앞둔 마지막 주말 썬양의 모습~
독서를 좋아하는 썬양은 평일에는 얼마 전에 들인 한국문학 100권 전집을 두 권씩 읽고,
주말에는 자음과모음 위인전집인 청소년평전을 한 권씩 읽고 있답니다.
꼭 그렇게 하라고 엄마가 시킨 건 아닌데 자신만의 룰을 정해서 하는 것 같아요.

지난 주말에는 중등전집 자음과모음 청소년평전 중에서
<꿈을 현실로 만든 몽상가 월트 디즈니>를 읽었답니다.
독후 활동에서부터 뭔가 디즈니스러움이 물씬 풍기죠~ㅋㅋ

자음과모음 청소년평전 세계위인전집이에요.
청소년 시기에는 교훈적인 내용이 담긴 위인전집을 읽어주는 것이 좋은데요
특히 개인의 일생에 대하여 평론을 곁들인 평전이라면
무조건 업적만을 나열한 위인 전기보다 읽는 아이들도 생각을 좀 더 해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자음과모음 청소년평전은 꽤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는데요
그중에서 오늘 썬양이 선택한 인물은
<꿈을 현실로 만든 몽상가 월트 디즈니>입니다.

유치원 시절에 봤던 미키마우스가 딱 생각이 나길래
미키마우스를 만든 월트 디즈니에 대한 인물도 궁금해져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는 썬양~~
그럼 많은 분들이 다 아시는 월트 디즈니는 우리가 모르는 어떤 일들을 경험했는지
월트 디즈니의 인생에 대해서 썬양과 함께 읽어보도록 할게요.

'미키마우스'를 비롯한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월트 디즈니의 인생이 결코 동화처럼 행복하지만은 않았다고 하네요.
하긴 성공한 사람 누군들 무조건 순탄하게 성공만 했을까요~
실패도 해보고 성공도 해보고 그러면서 단단해지면서 발전해 간 것이겠죠.

책의 내용을 보기 전에 짜잔~
예전에 제가 만들었던 캐릭터들과 월트 디즈니를 함께 찍어봤습니다.


중등전집 자음과모음 청소년평전 <꿈을 현실로 만든 몽상가 월트 디즈니>는
프롤로그로 시작해서
1장부터 4장까지 나누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작가의 말과 월트 디즈니 연보로 마무리를 하도록 되어있어요.

'미키마우스', '피노키오' 등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창조한 월트 디즈니는
전 세계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만화가이기도 하답니다.
월트 디즈니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수많은 좌절을 이겨낸 자수성가형 인물이라고 하는데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때
'할 수 있다'라는 생각과 노력이었다고 하네요.
역시 성공을 좌우하는 것에 노력이 빠질 수는 없는 것이었어요.
네 아이의 아버지이자 가장이었던 월트 디즈니의 아버지는 자식들의 인성 교육을 위해
이사를 할 정도로 독실한 교회 신자였지만 거듭되는 실패를 겪으면서 사람이 변하여
어린 자식들에게 돈을 벌게 하고, 월트 디즈니에게는 가혹한 채벌까지 가해 월트는 정말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었지요.

그럼, 월트 디즈니가 만화와 가까워진 것은 언제였을까요?
어릴 적 농장 일을 하면서부터 아버지가 종이와 팬을 사주지 않아서
바닥에 각종 동물 그림을 그리면서 그림 그리는 것을 시작하다가
다리를 다쳐 2주간 병원에 입원하면서 난생처음 일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 지내는 일이 생겨
신문에 나오는 연재만화와 삽화를 따라 그리면서 만화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이라고 하네요.
메킨리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학교 신문의 삽화를 맡아 그리고,
학교 신문의 미술 담당이 되기도 했으며,
시카고 예술 아카데미 야간반에 등록해 미술 강사의 지도를 받기도 했다는군요.
하지만 어머니와는 달리 월트에게 노동을 강요했던 아버지 때문에
아버지가 운영하는 젤리 공장에서 야간 근무를 해야 했던 월트 디즈니는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있던 당시 부모님의 사인을 위조해서 국제 적집자사에 들어가게 됩니다.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고 싶기도 했지만 좀 더 다른 세상을 구경하고 싶었거든요.
1년간 다양한 업무를 하고 부모님이 계신 시카고로 돌아왔지만
젤리 사업을 함께 하자는 아버지의 제안을 거절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를 그리기 위해 캔자스시티 스타라는 신문사에 입사 지원서를 냈지만 떨어지고,
'프레스먼루빈'이라는 광고 대행사 입사를 했지만 한 달 만에 해고를 당했네요.
같은 회사에서 일하던 동료 이워크스가 회사를 차리자는 제안에
두 사람은 '이워크스-디즈니 커머셜 아티스트'라는 첫 사업을 시작했지만
그것도 신통치 않아서 사업을 정리하고 '캔자스시티 영화 광고 회사'에 풍자만화가로 입사했다가
다시 회사를 나와 자신만의 회사를 차려 '후지스 교수'라는 캐릭터를 창조해 큰 인기를 얻어
인상된 제작비를 받게 되었으며, 예전의 동업자 이워크스를 다시 불러 일했지만
성공의 길은 멀고도 먼 것인지 다시 회사 문을 닫아야 했지요.
월트 디즈니는 포기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었군요.
형 로이에게 투자를 부탁하여 '앨리스 시리즈' 애니메이션을 제작하였고,
형 로이가 건강상의 이유로 회사 일을 못 하게 되자
회사 이름을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로 변경했고, 결혼 후 사업이 번창했다고 합니다.

디즈니는 '전차 사건'을 제작하여 격찬을 받으며 뉴욕의 애니메이션 제작사들로부터 주목받기 시작했지만
스튜디오를 넘기는 것과 다름없는 계약을 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1928년 3월 디즈니는 미키마우스 애니메이션 제작을 비밀리에 진행하다가
애니메이션에 음성을 넣은 <증기선 윌리>를 제작하여 기습 사사회에서 찬사를 받으며
사업가 월트 디즈니의 성공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고,
완성된 미키마우스는 모든 아이들이 사랑하는 캐릭터가 되어가고 있었답니다.

미국의 경제 불황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헐리우드 영화가 도덕성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으며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건전한 영화만이 할리우드에서 살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성적인 내용과 정치적인 주장이 전혀 없었던 월트 디즈니의 <증기선 윌리>는
이 기회에 더욱더 승승장구하여 과거에는 디즈니가 배급사를 구해야 했었지만
이제는 배급사들이 서로 디즈니와 계약을 하겠다고 줄을 서게 되었다는 말씀!
다른 배급사를 거쳐 콜롬비아 영화사와 계약 후 오스카상 후보로 지명되고
<미키의 고아들>이라는 작품은 특별상을 받는 명예를 누렸죠.
월트 디즈니는 컬러 애니메이션을 시도하여 제작한 <나무와 숲>으로 오스카상을 받게 되어
계약을 많이 하긴 했지만 수익이 높지 않아 걱정하게 됩니다.
중등전집 청소년평전 <꿈을 현실로 만든 몽상가 월트 디즈니>을 읽다 보니
월트 디즈니가 돈방석에 앉게 되고 미키마우스의 인기가 치솟은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더라고요.
바로 미키마우스 캐릭터 사업이었다는 사실!
한참 자금으로 힘들었던 시기에 뉴욕의 돈 많은 상인 조지 보그 펠트가
미키마우스를 좋아하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미키마우스 그림이 찍힌 장난감과 책, 옷을 선물해 주기 위해서
월트 디즈니에게 미키마우스의 디자인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제의를 해 왔답니다.
조지 보그 펠트는 미키마우스와 미니 마우스의 디자인이 새겨진 물건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고
그 물건은 만들어 내는 즉시 팔려나가 캐릭터 상품이 탄생한 것이죠.
80개가 넘는 미국의 주요 회사들이 디즈니와 캐릭터 상품권 계약을 했고
이익금이 수백만 달러가 되어 디즈니는 돈방석에 앉게 되었다고 하네요.

디즈니는 또 다른 애니메이션으로 <아기 돼지 삼 형제>을 제작하여
미국 전역에서 2년간 총 25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고
아기 돼지 인형과 늑대 인형 캐릭터 수입으로 스튜디오 재정이 안정되자
80분 정도 되는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로 합니다.

장편 애니메이션은 제작비가 엄청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워했지만
디즈니는 개의치 않고 모든 단계를 관리 감독하면서 수많은 어려움에 부딪혔지만 포기하지 않고
드디어 장편 애니메이션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제작하여
할리우드 영화 사상 최고의 수익을 올린 작품이 되었고,
193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많은 상을 받았으며,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는 10여 개 언어로 번역되어 46개국에서 개봉됐다니 정말 대단하죠.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의 성공에 이어 장편 애니메이션 <피노키오>가 제작되어 큰 사랑을 받았는데요
「 <피노키오>는 숨을 멈추게 할 만큼 재미있는 작품으로,
애니메이션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고 평할 정도였답니다.
하지만 제작하는 애니메이션마다 모두 성공한 건 아니었어요.
대중성을 배제하고 작품의 예술성을 고집하여 만든 <판타지아>는 실패작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
또, 직원들의 노조 활동을 인정하지 않았던 디즈니 때문에 1000여 명의 직원들은 장기 파업을 했고,
급기야 디즈니는 정부의 권유로 남미에 미국의 친선 대사로 가게 되었죠.
디즈니가 해외여행을 하는 동안 형 로이가 노조와 합의를 했지만
디즈니가 돌아와서 파업을 주동했던 직원을 해고하면서 스튜디오를 떠나는 직원들이 생겨났지요.
그런 와중에 제작된 <덤보>는 짧은 단편 애니메이션이었지만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스튜디오의 위기를 이겨 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덤보>가 개봉한 지 일주일 만에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면서 제2차 세계 대전이 발생하였고,
정부에서는 디즈니의 스튜디오를 예고도 없이 군대 주둔지로 사용하기로 했어요.
그러면서 디즈니에게 군사 애니메이션 20편 제작을 의뢰하였고,
그 일로 예상치 못한 수익을 올리면서 여러 정부 기관들이 디즈니에게 애니메이션을 의뢰하기 시작했지요.
디즈니는 전쟁 중에도 수익을 올리는 유일한 제작자였답니다.
전쟁과 맞물려 미국 사회는 보수화되기 시작했는데요
1940년대 말부터 1950년대 미국 사회는 '매카시즘'으로 불리는 공포의 시대를 보내기 시작합니다.
미국 사회에 반공산주의 광풍이 불어 수많은 사람들이 확실한 증거도 없이 공산주의로 몰려 투옥되었거든요.
디즈니도 공산주의가 스튜디오에 스며들어 파업을 일으켰다고 믿었으며
디즈니의 말 한마디로 블랙리스트에 올라간 영화인들은 직장을 잃기도 했답니다.
전쟁 직 후 극장 관객 수가 확연히 줄어들자, 디즈니는 또 다른 생존 방법을 모색합니다.
바로 디즈니랜드의 구상을 하게 되었던 것이죠.
형 로이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은 디즈니랜드가 현실적이지 않아 실패할 것이라고 했지만
디즈니는 디즈니랜드의 성공을 확신했어요.

1955년 7월 17일 디즈니랜드의 개장식을 ABC 방송국에서 생방속을 하게 되었는데요
그 당시 디즈니랜드는 미완성이었지만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개장식을 진행하게 된 것이죠.
디즈니랜드를 찾은 여성의 하이힐 굽이 마르지 않은 아스팔트 포장도로 속에 박히고,
가짜 표를 만들어 입장하는 사람들까지 생기는 등 여러 가지 사건이 터졌답니다.
디즈니랜드의 입장료가 비싸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테마파크가 되어
현재 캘리포니아 주 애너하임, 플로리다 주 레이크 부에나 비스타,
프랑스 파리, 일본 도쿄의 지바 현, 홍콩 등에서 운영되고 있지요.

1961년 디즈니가 60세가 되던 해부터 그는 죽음에 대한 고민과 강박관념으로 우울증이 깊어갔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인 영화를 만드는 일을 다시 하기로 했죠.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던 P. 패멀라 L. 트래버스의 원작 소설 <메리 포핀스>를 영화로 만들기로 하고
원작자 트래버스를 끊임없이 설득하여 실사와 만화가 혼합된 <메리 포핀스>가 탄생시켜
아카데미상에서 여러 개의 상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영화 제작의 지식을 후배들에게 전수하기 위해 칼 예술 대학을 탄생시켰으며,
제2, 제3의 디즈니랜드를 만들기 위한 계획을 세웠으나
몸이 많이 쇠약해진 디즈니는 1966년 세상을 떠나고 마네요.
아이들의 꿈과 희망이자, 미국의 영화 산업을 한 단계 드높인 미국의 영웅이 영원히 잠들어버린 것이죠.

디즈니가 인정받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기업인으로서 성공했다는 점인데요
항상 고난과 어려움이 있었지만 굴복하지 않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고,
성공에 자만하지 않고 항상 새로운 도전을 하고 변화에 민감했으며,
불안과 공포로 얼룩진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 시절에 애니메이션으로 사람들을 위로했지만
스튜디오 직원들이 파업을 한 이후 점차 보수주의 쪽으로 기울어 정치적 소용돌이에 말려
디즈니 때문에 고통을 겪은 영화계 인사들의 아픔을 초래한 것은 쉽사리 치유되지 못했지요.
하지만 디즈니는 현재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성공 모델이고,
무엇보다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준 마음씨 착한 아저씨의 이미지로 남아있다니 정말 다행이죠~

어릴 적 즐겨봤던 애니메이션인 <미키마우스>를 탄생시킨 월트 디즈니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정말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는 썬양.
특히 디즈니가 성공하기까지 그렇게 많은 시련들이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고,
보통 사람들이라면 포기했을 법도 한데 그 시련들을 모두 극복하다니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군요.
그리고, 이전에 읽었던 인물 스티브 잡스는 돈을 많이 벌어도 사회에 기부한 것이 없다고 하던데
월트 디즈니는 기부도 많이 하고, 심지어 TV 프로그램은 손해를 보더라도
아이들을 위해서 꾸준히 방송을 했다니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인물이라고 합니다.

한 평생을 애니메이션의 발전에 바친 월트 디즈니가 이루어낸 것들 중에서
대표적인 키워드를 몇 가지만 정리를 해봤다고 합니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의 상징이자 마스코트로
전 세계 대표 캐릭터 미키마우스,
월트 디즈니와 형 로이 디즈니가 공동 창업한
미국의 거대 미디어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디즈니 컴퍼니,
영국 BBC에서 죽기 전에 가봐야 할 곳 50곳 중 3위로 선정했던 디즈니랜드,
월트 디즈니 컴퍼니의 스튜디오 엔터테인먼트 부서인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이 중에서 썬양의 최고의 관심사는 역시 디즈니랜드~~ㅋㅋ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장편 애니메이션과 꿈의 동산 디즈니랜드를 결국 성공시킨 디즈니의 뚝심과 도전정신을
자음과모음 청소년평전 <꿈을 현실로 만든 몽상가 월트 디즈니>를 통해서 엿볼 수 있었는데요
이 책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다시 일어선 디즈니의 일생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자신의 인생과 작품을 통해 통념과 한계에 어떻게 도전하며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낼 수 있는지,
세상이 꿈꾸는 자들의 몫이라는 것을 실천으로 보여준 인물이라고 할 수 있죠.
아무리 사회가 변하고 발전하더라도 이런 인물들의 이야기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방향을 제시해 주기도 하는 것 같아요.
역량 있는 작가들의 필력과 평가를 겸해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한 생생함을 전해주는
중등전집, 자음과모음 청소년평전 시리즈를 우리 청소년들이 꼭 읽어봤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