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이 바람 될 때 (100쇄 기념 리미티드 에디션)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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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쩌다 한 번씩 반성의 순간이 찾아오면 우리는 마음속으로 시체들에게 사과했다. 죄의식을 느껴서가 아니라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고 제일 먼저 한 일 중 하나가 전공의들에게 파업을 끝내라는 명령이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의사 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의사들의 주장과 다르게 의사에 대한 인식이 나빠진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걸 본인들도 알 것이다.

매일 환자를 대하고, '신체'를 침범하고 자본주의에 시달리면서 점점 의사로서의 소명이 아닌 돈 벌 목적으로 사람을 수단으로 대하고, 마음대로 범죄를 저지르고 범죄를 저지르고도 몇 년 뒤에 다시 의사를 할 수 있고...

그들 중 한 명이라도 저자, 폴 칼라니티처럼, 어느 날 '죄의식을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해 사과하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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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우리가 겪는 세상의 경험을 중재하기 때문에, 신경성 질환에 걸린 환자와 그 가족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해야 한다. '계속 살아갈 만큼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때부터 나는 환자를 서류처럼 대할 것이 아니라 모든 서류를 환자처럼 대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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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로 해결될 상황이 아니라면, 외과의가 선택할 수 있는 도구는 따뜻한 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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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를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 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저자의 '인간적인 고민과 다짐'들을 보면서 이 사람이 왜 암에 걸릴수밖에 없었는지 알았다.

저자는 신경외과 의사 일을 소명으로 받아들였고, 의사 대 치료해야 할 질병과 같은 수단적 대상이 아닌, 생사의 기로를 함께하면서 스스로의 존엄성과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역할을 고집했다.

즉 그는 그가 대하는 환자들에게 깊이 들어갔다. 죽음의 경계에 서있는 사람들에게서 '거리'를 두지 못한 댓가로 그는 당연히 훨씬 더 큰 책임감과 고통, 스트레스를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스트레스가 암세포가 되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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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다른 사람의 십자가를 대신 지려다가 때로는 그 무게를 못 이겨 스스로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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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 "폴, 내 삶이 의미있다고 생각해? 내가 옳은 선택을 한 것 같아?"

나는 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내가 도덕적으로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도 죽음에 직면하면 이런 의문이 드는 모양이었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결국 삶을 돌아볼 것이다. 그리고 물을 것이다. "내 삶이 의미가 있었나... 내가 잘 선택했던 것일까?" 주체적으로 선택하며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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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내가 맡았던 환자들처럼 나는 죽음과 마주한 채 내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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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시기에 내게 활기를 되찾아준 건 문학이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에 대한 응답이 떠올랐다. 그건 내가 오래전 학부 시절 배웠던 사뮈엘 베케트의 구절이기도 했다.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나는 침대에서 나와 한 걸음 앞으로 내딛고는 그 구절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I can't go on. I'll go on)."

...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회 방문객과도 같지만, 설사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읽으며 눈시울을 붉히게 하는 구절들이 많았다. 힘을 주는 문장들도.

위의 문장들은 '문학'의 의미를 되짚어볼수 있게 해줘서 많이 와닿았다.

누구나 마음 속에 자신을 지탱해주는 어떤 것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앞으로 나갈 수 있다. 동기부여 영상들이 참 많은데... 그런 것들은 정말 볼 때 말고는 효과가 없는 거 같다. 그보다는 내가 읽었던 이야기들이 늘 내 안에서 나를 구성하고 지탱해주고 있었다. 이 책도 아마,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버팀목이 되어줄 거 같다.

"Go on" 정신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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