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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유시민의 항소이유서 알라딘 싱글즈 특별 기획 5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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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행동은 비겁하고 입만정의로운 사람이다. 결론은 비겁자의 정당화 개소리, 과연 이게 명문인가? 맹목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쓴 글이니까? 게다가 이렇게 이북으로도 나올 정도라 의심없이 좋은 글이라평가부터 내리고 시작하는건 아닐런지? 이성은 비이성에 근거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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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움베르트에코)

스토리적 측면에서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 장미의 이름』은 추리소설의 형식과 윌리엄의 입을 빌려 에코가 하고싶은 말과 기호학적 여러가지 의미들을 녹여낸 작품같다.

그래서 사실 이 책에서의 스토리는 그저 껍데기일 뿐이라 느껴졌고 그래서 영화또한 껍데기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스토리도 뛰어난 역사적 고증으로 당시대의 분위기 등이 온전히 느껴지는 수준으로까지 묘사를 해 놓았으므로 학문적 가치가 있지만, 여기저기 흔하게 소개하는 움베르트 에코에 대한 소개와 작품의 배경, 개괄적 줄거리 소개는 생략함
(읽으실 분이 아니라 읽으신분을 위한 불친절한 리뷰)



시대적 배경은 14세기는 중세와 근대의 과도기적 갈등의 시대이고, 교황과 왕의 알력다툼이 지겹도록 지속되던 시기였다.
특히 이때는 왕권이 교황보다 강해서 교황이 프랑스 아비뇽으로 쫒겨난 아비뇽유수 초기 (요한 22세) 시절로써 왕권과 교황권의 대립은 곧 신중심과 인간중심의 갈등으로 번진 시기다.

작품의 시작은 황제측과 교황측 수도사들이 만나 회담을 하는 배경이고 시작부터 대놓고 갈등의 멍석을 깔고있다.



주인공 윌리엄수도사를 영국 버스커빌가 출신으로 설정한 것은 영국의 근대적 합리주의를 부각한 캐릭터 설정같다.
동시에 코난도일을 아는 사람이라면 셜록홈즈의 대표작 『바스커빌가의 개』 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는데 작중에서 윌리엄 수도사 역시 탐정의 역할로 나온다. 이는 셜록홈즈의 오마쥬 같다.
게다가 움베르트 에코가 금자탑을 쌓은분야인 기호학에서 사용되는 개념중 가추법이 있는데 이것은 셜록홈즈가 사용하는 추리법과도 같다.
이 작품에서 윌리엄은 가추법에 의거한 추리의 단계를 밟는 과정을 적나라 하게 묘사하고있다.
(자세한 내용은 움베르트 에코의 또다른 저서 『셜록 홈스, 기호학자를 만나다』 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아드소는 처녀와 동침후 비로소 진정한 사랑이 싹트는데 이것은 결국 사랑이라는 감정을 단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아드소가 비로소 체험적 경험을 통해 사물이 다르게 보이고 진정한 사랑을 느끼는 과정이고 결국 인간에게 경험이 더 중요하다는 에코의 기본적 스탠스이다.

중세시대에서 이단을 칭하는 기준은 구세력의 정치적인 이유였으며 마녀사냥은 그 대리희생자였다.
이러한 마녀사냥 현상은 움베르트 에코의 저서 『적을 만들다』 에서 직접 밝히고있다.
˝「마녀신드롬의 연구는 심각한 사회적 위기에 빠졌을때의 희생양이나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영향, 전형의 영속적인 현상을 탐구하는 문제와 관련된다. 적을 만드는 과정애서 반복되는 모델이다.
즉 사회적 위기에서의 희생양 그리고 적을 만드는 과정의 반복은 결국 정치적 행위이다.」˝
칼슈미트가 그러지 않았던가 ‘정치란 적과 아군을 끊임없이 구분하는것‘ 이라고
이단심판관은 마녀 혹은 이단자를 색출하였다. 작중에 등장하는 악명높은 심판관 베르나르기는 실존인물이며 이단심문안내서를 저술하였는데 이단을 색출하는 논리적 근거는 없었다.
이단을 정의함에 있어서 갖가지 이유를 갖다붙였는데 그중에는 웃음도있었다.
이유인 즉슨 ‘현실은 항상 고통스러워야 하며 현실이 너무행복하다면 본세계(사후세계)에 갔을때 행복함을 덜 느끼게 된다.‘ 는 논리다.
작중 호르헤 또한 웃음을 반신적인 불경 행위로 규정하였고, 현존하지 않는 가상의 책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
(예로부터 소실되어 전해내려오지 않는 시학 2편이 존재했었을 것 이라는 이야기가 있으며 이를 모티브 삼아 구성한 설정이다)
의 주제인 희극을 웃음과 연관지어 불경한 신성모독 이라고 주장하며 금서로 지정함과 동시에 웃음을 배척하는 자세를 취한다.
반면 윌리엄은 이에 반박하며 호르헤와 대척관계로써 대립한다.
이런 갈등구도는 웃음을 배척하고 웃지 않으며 살아갔던 플라톤과, 웃음은 행복의 열쇠라 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대립을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이것은 중세시대 최대의 논쟁인 보편논쟁의 측면에서의 대립과도 같다.
호르헤는 실재론적 플라톤을 닮아있고 윌리엄은 유명론적 아리스토텔레스를 닮아있기도 하다.
이는 중세와 근대의 과도기 에서의 왕권과 교황권의 신구 대립이고, 정치적 좌우의 대립이며, 절대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대립이다.

많은 사도들이 스토아학파 주의의 금욕과 신성의 성스러운 가면안에서 실제로는 탐욕과 쾌락을 쫒고 부패와 독선을 저지르는 이중적 모습이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수도원 바깥 빈민들에게 가축에게 사료주듯 먹을것을 지급하는가 하면 처녀가 가축의 내장을 얻기위해 몸을 팔 정도로 굶주린 생활을 하는 모습을 묘사하며 빈민가의 생활고는 안중에도 없이 그 가난함을 이용하여 사욕을 추구한다.
수도사들의 각자의 이익에 기반한 정치적 활동은 기득권층의 이중성과 이기주의를 조명한다.
더 나아가 이런 부조리한 세상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듯한 신은
‘과연 전지전능과 도덕성을 겸비한 존재인가? 아니면 과연 존재하기라도 하는가? ‘
라고 묻는듯 에코의 무신론적 태도까지도 엿볼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세상의 중심이라고 묘사되는 도서관의 사서는 권력과 중요한 책임이 주어지는 자리이다.
그런데 차기 사서격인 보조사서 자리에 자격미달인 무능과 탐욕의 배렝가리오가 배치되어 있다는 것은 수도원 부패의 단면을 내비친 것이라 생각한다.

결국 에코는 현대사회에 적용해도 다를 바 없는 중세의 정치적 양태를 통해 사회의 부조리함을 꼬집는 것 이다.
그리고 이런 부조리한 세상이 도래한 책임에 대하여 대중들에게도 ‘너희도 잘한건 없어‘ 라고 일갈하듯 의미심장한 말을 하는데
에코는 작중 윌리엄의 입을 빌려 아드소에게 말한다.
˝진정한 앎이란 알아야 하는 것, 알수 있는 것만 알면 되는것이 아니라 알 수 있었던 것 알아서는 안되는 것 까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에코가 다른 저서에서 했던 말,
˝매스미디어에 길들여져 너무 쉽게 생각하는것에만 익숙해진 사람이 진짜 바보다˝
라는 말과 함께 연계하여 이해해 본다면,
이는 곧 매스미디어의 보이는 액면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판단의욕이 없는 바보같은 대중들을 향한 일침이라 생각한다.
여기서 윌리엄의 입을 통하여 에코가 강조하는 ‘알 수 있었던 것과 알아서는 안되는 것‘ 의 의미는 매스미디어의 부정적 측면을 말하는 것 일테다.
다시말해 권력자가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공개하지않는 정보와 언론조작 등이 이에 해당될것 이다.
이는 곧 작중 호르헤가 자신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금서로 지정한 시학 2권의 상징적 의미와도 동일하다.
대중들은 매스미디어의 보이는 것만 쉽게 믿지 말아야 할 것이며 ‘알 수 있었던것과 알면 안되는것‘(=시학2권)에 해당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능동적 탐구가 필요하다는 메세지를 전하고 있다.

작품을 한문장으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결국 ‘절대적 진리는 없다‘ 라고 해도 될것 같은데,
베르나르귀가 화형시킨 세사람에대해 사실은 베르나르귀 본인도 그들이 죄가없음을 알면서도 이단으로 몰아세워 처형하는 모습은 현대정치판에서 상대진영은 무조건적으로 이단취급하며 배척,비난하는 현대정치의 궁색한 모습을 비꼬는것 같기도 하다.
이는 양측의 청빈논쟁을 비아냥 거리듯이 우스꽝스럽게 표현한 것에서 그런느낌을 받았다.(작품중 거의 유일하게 웃으며 가볍게 볼수있는 부분)
또한 진리는 당시를 지배하는 권력의 기호에 따라 진리의 정의가 변한다는 메세지도 담고있다.

이는 곧 진리에관한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에코의 관점을 엿볼수있으며
진리의 상징인 도서관의 장서들이 불타는 모습은 마치 진리는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다시한번 말해주는듯 시각적 임팩트의 여운을 남긴다.

『장미의 이름』 이라는 제목이 함의하는 바를 계속염두에두고 읽어갔는데 결국 명확한 의미는 밝히지 않는다.
이는 저자가 의도한 바이며 실제로 독자들의 여러가지 다양한 해석을 장려하고 즐겼다.
이에 관하여 ˝작품이 끝나면 작가는 죽어야 한다˝며 작가가 작품의 해석을 방해하거나 정의 하는것은 잘못된것 이라고 직접 말하기도 하였다.
장미라는 표현은 상징적 기호학적 표현이다. 이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해석은 달라진다.

아래의 해석은 개인적인 견해이다.

1. 진리
에코가 작품에서 말하는 진리에관한 포스트모더니즘적 관점과 기호학적 의미로써의 연장선적인 관점에서 소설의마지막 문장(˝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의 ‘장미‘라는 상징적 표현을 진리라는 의미로 치환해 본다면 결국 ‘진리란 때론 없을수도 있습니다‘ 라는 작중 윌리엄의 말처럼 포스트모더니즘의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2. 그리스도

교회에서 장미가 상징하는 바는 그리스도이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작중 대부분의 사도들은 모두 광기를 안고있으며 그 것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해진다.
그리스도 라는 같은 지점을 향한 목적성을 가진 수도사들이 행하는 광기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라는 말로써 저마다의 해석으로써 정당화 된다.
장미는 아름답지만 가시를 품고있는 이중성을 가진 존재 라는 의미는 사도들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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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궁전. (스포포함입니다)

우리의 삶은 많은 부분이 우연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득 이런 삶의 속성을 아주 인상깊게 담아낸 「벤자민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https://www.youtube.com/watch?v=6rrbWrmWL_g
˝우린 살아가면서 끝없이 상호작용을 한다. 우연이든 고의든, 그걸 막을 방법은 없다.˝
라는 내용으로 시작되는데 많은 생각을 준다.

실제로 현실은 소설처럼 딱딱 맞아떨어지지 않으며 물흐르듯 흘러가는 사소한 사건들의 연속이며 각 사건들은 대부분 큰 개연성이 없다.
즉, 삶은 수많은 변수와 우연성으로 잔가지를 치며 뻗어나간다. 그것이 현실이다.
나의 탄생만 보더라도 내가 잉태되던 날 우연히 부모님의 시간과 상황 몸컨디션 장소적조건등이 맞아떨어졌고
수많은 돌발적 장애물들과 남북한 인구수를 모두 합친것 이상의 경쟁률을 뚫고나서야 기적적으로 내가 태어났으며 이중에서 단 하나의 조건만 달랐더라도 난 이세상에 존재하지 않거나 나의 이름을 가진 내가아닌 다른 누군가가 이공간을 점유하고 있을지 모를일이다.
레비나스는 이런 맥락에서 미래의 외재성을 설파했을것이다.
나가르주나는 「중론」에서 삶은 필연적 요소인 ‘인‘과 우연적요소인 ‘연‘의 수없이 얽히고 섥힌 우연의 연속과 조합으로 이루어졌고 세상만사는 ‘공‘하다고 하였다.
필연적 요소에만 집착하면 ‘상견‘에 빠지고 우연적 요소에만 집착하면 ‘단견‘에 빠지며 이중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다면 그것은 지혜롭지 못한 것이라 하였다.
둘 사이를 적절히 오가는것이 지혜로운것이라 한 것이다.
한 개인이 상견에 빠져 낙관주의 성향을 갖고있다면 (인중유과)우리는 그의 과거에서 노력들이 성공으로 이어지는 경험이 많았을 것이라고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고, 반대로 어느 누군가가 인생의 우연성을 강조한다면(인중무과)그의 성향은 비관주의 혹은 허무주의라고 유추해 볼수 있겟다.

지금 소개할 소설 「달의궁전」의 저자 폴 오스터는 ‘우연성‘을 작법의 지론으로써 강력히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쓸모있는 스토리라고 평가받으려면 실화기반스토리의 경우 믿기힘든 우연성이 있어야 특별하고 픽션이라면 개연성이 있어야 올바르다.
즉 소설가인 폴 오스터는 우연성을 소설의 작법으로써 되도록 배제하여야 할 입장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소설내에서 우연성을 극단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유롭게 사용한다.
이는 폴 오스터가 비관,허무주의적 성향을 가졌다는 방증이 아닐까 생각도 들며 그의 삶과 경험이 궁금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마지막 페이지 결말에 가면 결국 허무주의적 성향을 드러내긴 한다.)
이런 특징은 작품감상의 관점에 따라 심각한 단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폴 오스터는 이를 차분히 잘 극복하여 힘있게 스토리를 이끌어나간다.

달의궁전은 지인의 추천으로 뒤늦게 읽게된 작품인데 참 독특하고 느껴지는것이 많은 소설인것 같다.
본작은 일반 소설과는 다르게 스토리 구성에 있어서 처음과 끝이 유기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있지 않고 여러 액자소설들이 개별적 작품으로써 존재하는 느낌이 든다.
그만큼 스토리의 측면에서 방대하고 장황하며 각기 다른장르의 성격들이 다채롭게 묻어난다.
또 초반이 지루하다는 말들이 많은것 같은데, 그것은 개인의 관점에 따라 다른것 같다.
초반부는 스토리적 전개위주가 아니라 상황과 사사로운 에피소드들의 나열이다.
스토리의 전개가 스펙터클하지않아서 스토리를 중점으로 보는 독자에게는 지루하게 다가올 것 같다는 생각이다.
나의 관점에서는 오히려 처음에도 지루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가독성이 좋다는 느낌까지도 받았다.
시각적인 그의 표현들은 또다른 의미의 스펙터클로써는 스펙터클하다.
즉 이 작품은 스펙터클한 표현력과 스펙터클하지 않은 스토리를 갖고있다.

그리고 주인공 스탠리포그는 폴오스터 자신과 겹치는 부분이 일정부분 보인다.
즉 자전적 성향이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어디까지가 소설이고 어디까지가 자전적 내용인지를 분간하기는 힘들다.
이 작품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음 기준에서의 메타포를 종합적으로 조합하여 바라봐야 할 것 같다.
1. 정복 이전의 달을찾아 헤메는 마르코의 여정 2. 미국역사와의 연계성 3. 작가가 되어가는 마르코의 성장과정

소설의 첫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인간이 달 위를 처음 걸었던 것은 그해 여름이었다.‘
이는 곧 1969년 닐 암스트롱이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에 착륙한 사건을 뜻하는데 이 사건은 인류가 태초로부터 달을 보며 가졌던 온갖 상상력이나 신화성이 한번에 무너지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즉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셀레네나 아르테미스는 죽었고 우리의 상상력과 신화는 해체되었다.
이는 리처드도킨스가 「무지개를 풀며」에서
상상력과 신비함의 상징이었던 무지개가 빛의 스펙트럼으로 해체되듯 과학기술로 인해 우리의 상상력과 감성은 점점 해체되는 중이라는 언급과 같은 맥락이다.
즉 작품내에서 등장하는 달 이라는 상징성은
‘정복 이전의 달‘‘정복 이후의 달‘으로 나누어 생각하여야 한다.
소설의 시작부는 달 착륙 이라는 과학기술의 가시적 성과가 달성된 시점에서의 고무적인 사회분위기와는 반대로 주인공 ‘ 신세다.
마르코는 당장 하루를 버틸 식량을 걱정해야 하는 절망에 빠져있는데, 달착륙으로 들떠서 떠들썩한 축제 분위기가 그리 썩 달갑지는 않았을테다.
작중 마르코는 끊임없이 정복 이전의 달의 모습을 찾아 헤메며 키티우를 처음만난 파티에서는 달의 신화성을 설파하기도 한다.
정복당하여 베일이 벗겨져 버린 달의 실체를 인정하고싶지 않는듯한 모습을 작품내내 보인다.

주인공 ‘마르코 스탠리 포그‘는 사생아로 아버지없이 어머니의 손에서 길러졌다. 어머니도 어린나이에 세상을 떠나게된다.
이후 마르코는 외삼촌 빅터의 보살핌으로 살아가게 되는데 빅터삼촌은 마르코의 이름속에서 기발한 의미를 찾아내어 그럴듯하게 부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것들은 이후 마르코의 작가수업에 중요한 자양분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스무살이 되던 해 삼촌이 죽어버려 외톨이가 된다.
마르코는 삼촌이 준 양복과 약간의 돈 그리고 수십개의 상자안에 담긴 책들을 쌓아올려 침대 식탁 의자등의 가구로 사용한다.
하지만 마르코는 곧 돈이 떨어져 궁핍해지고 삼촌이 물려준 책을 조금씩 팔수밖에 없게된다.
마르코는 삼촌의 책을 파는것에 죄책감이 들어서 책들을 읽고나서 팔기위해 닥치는대로 책을 읽기 시작한다.
마르코는 여기서 삼촌이 남겨준 1492권의 책들을 모두 읽으며 삼촌의 정신세계를 고스란히 계승한다.
여기서 1492의 숫자는 콜럼버스가 미대륙을 발견한 해이다. 미국이 1492년에 유럽의 문명을 고스란히 계승함을 의미하는것일까?
주인공 마르코는 삼촌의 책으로써 정신적 위안을 얻고 삼촌의 옷을 입음으로써 그에게 보호받고 있다는 심리적 위안을 얻는다.
마르코는 곧 노숙자 신세로 전락하게 되는데 굶주린 상태로 절친인 짐머를 찾아 그의 집으로 가게된다.
하지만 짐머는 이사를 간 상태고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파티를 하고있다.
그 사람들은 즉석에서 마르코에게 파티에 참석할 것을 권하고 굶주린 마르코는 파티에 참석하여 많은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다.
다 먹은후 멋쩍어진 마르코는 사람들 앞에서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달의 정복으로 인해 달의 신비로움이 낱낱이 벗겨진 이 시점에서 마르코는 이미 해체된 달의 신화성을 회복하려는 듯한 한물간 이야기만을 늘어놓는다. 마르코를 모두가 이상한 사람으로 여기지만 키티 우 라는 여자는 마르코에게서 매력을 느낀다.
여기서 키티우는 첫 인상에 대한 외형묘사에서 인디언 부족의 악세사리를 착용한 것으로 묘사된다.
이 작품에는 미국역사와 관계된 여러가지 암시가 등장하는데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마르코와 키티우는 백인과 인디언의 관계를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블레이크록의 문라이트를 감상하는 장면에서 인디언의 탄압에대하여 안타까워하는 내용이 나온다.
해당 그림을 검색하여 집접 감상하며 읽으시기를 추천함.)
여기서 마르코는 운명의 여인 키티우를 만나서 힘든시기를 극복한다.

이후 마르코는 전단지에서 일자리를 하나 얻게 되는데 그 일은 에핑이라는 노인에게 책을 읽어주는것 그리고 말벗과 수발이었다.
에핑은 종잡을 수 없는 괴팍한 인물이고 한번도 보지못한 아들을 위해 자신의 삶과 무용담을 전기로 정리하는 작업을 마르코에게 시키게된다.
이것은 마르코에대한 아주 훌륭한 작가수업이 되었으며 폴 오스터는 마르코의 입을 빌려 본인의 작법에관한 지론을 내비치기도 한다.
마르코는 이 작품 내에서 좋은 작가가 되기위해 필요한 일련의 과정을 모두 경험한다.
다독(삼촌으로 부터 물려받은 책), 고통(노숙자생활), 시각의 전환과 묘사훈련(에핑의 수발), 여러 방식의 작문(에핑의 이야기 작성), 경험(서쪽 바다를 향한 여정)
다음은 마르코가 에핑에게 꾸지람을 듣는 장면의 한 구절이다.
˝
˝나는 무엇을 보는가? 그리고 보이는 것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것인가?
세상은 눈을 통해 우리에게로 들어오지만, 우리는그 이미지가 입으로 내려가기 전에는뜻이 통하게 할 수 없다. 나는 그 거리가 얼마나 먼 지를 올바르게 인식하기 시작했고, 어떤 사물이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 가기 위해 얼마나 멀리 여행을 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실제적인 의미에서 그 거리는 6,7 센티미터에 불과했지만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고와 손실이 생겨나는지를 생각한다면 그것은 지구에서부터 달까지의 여행이 될 수도 있었다.˝
˝
이는 메를로퐁티의 현상학적 관점이다. ˝지각된 풍경은 그 자체로써 순수한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와 상통한다.
이 것은 작가가 되는 길을 달까지의 여행이라고 정의한 것이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에핑은 세상을 떠나고 마르코는 에핑의 아들 솔로몬 바버를 찾아 수소문하여 만난다.
그런데 알고보니 에핑의 아들 솔로몬은 바로 마르코의 아버지였다.
결국 에핑에게는 단한번의 동침으로 생긴 한번도 보지못한 아들 솔로몬이 있었고
솔도 에핑과 마찬가지로 단한번의 동침으로 생긴 한번도 보지못한 아들 마르코가 있었던 것이다.
우연으로 보이는 사건에 연속성을 부여 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라는 작가의 의도 일테다.
즉, 이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중 하나는 운명이다. 운명이라는 말은 우리의 일상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
보통 피할 수 없는 장애물이나 현실에 맞닥뜨렸을때 운명론적 자세를 취하곤한다.
즉 운명론적 사고가 우리에게 주는 영향력중 하나는 정신적 도피처의 효과다.
그것은 마르코에게 있어서의 문팰리스 중국집이고 정복 이전의 신화성을 간직한 허상의 달이다.
마르코가 동경하던 문팰리스 중국집은 아파트의 창 밖으로 보이는 평범한 중국집 이름이다.
마르코는 그 중국집의 간판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마음의 평안을 얻고 그곳이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은 헤테로토피아의 설정같이 보인다.
하지만 사실 같이살 집을 구하자는 절친인 짐머의 제안을 거절하고 혼자만의 아파트를 택한 결정을 후회하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기인한 합리화의 과정일 뿐이다.
그리고 그곳은 마치 마르코가 빅터삼촌의 옷을 입고 삼촌에게 보호받는 느낌을 가졌던 것 처럼, 심리적으로 의지하고싶은 감수성을 지닌 신비로운 표상의 장소이지만 현실의 그곳은 사실 그냥 식당일뿐 허상의 달이다.
실제로 마르코는 하루의 할당된 양식인 달걀2알을 실수로 깨먹고 현실적 절망에 빠졌을때 정신적 도피처인 문팰리스로 가서 남은돈을 모두 탕진한다.
그리고 마르코는 작품 내내 신비성을 잃어버린 달의 감수성을 회복하려 애쓰고 합리화 하는 모습을 많이 보인다.
마르코는 이후 에핑이 살던 동굴을 찾아 ‘물속의 달‘ 이라는 뜻을 가진 ‘올제토‘에서 수소문을 하였더니 에핑이 살던 동굴은 이미 물에 잠겨버렸다.
(물속의 동굴은 물속의 달이고 그것은 마르코가 찾던 허무한 문팰리스이다.)
결국 마르코는 서쪽끝 태평양에 다다르고 이렇게 말하며 끝이난다.
˝
˝나는 세상의 끝에 온 것이었고
그 너머로는
바람과 파도 중국해안까지 곧장 이어진 공허 외에는 아무것도 없엇다.˝
˝
마르코는 자신이 쫒던 달의 궁전이 결국 공허함 이었다는것을 느꼈고,
그와 동시에 끝까지 달을향해 전진함으로써 진정한 어른과 작가로 거듭났음을 표현한 이중적 은유가 아닐까?
마르코는 한없는 공허함을 느낀 서쪽끝에서 내 삶이 여기에서 다시 시작한다고 다짐하며 소설은 끝이난다.
달이 비워지면 다시 차오름을 비로소 깨달은듯이..



※문 팰리스의 포츈쿠키 안에는 이런 말이 씌여있었다.
˝태양은 과거고 세상은 현재고 달은 미래다.˝
이것은 사람마다 각기다른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폴 오스터는 독자들의 여러가지 해석을 유도하기위해 이런 문구를 넣은게 아닐까 한다.

※번외로 아래는 그동안의 주변의 인간관계들을 빗대어 생각해 볼 기회를 마련해준 인상깊었던 문장이다.
˝대화는 누군가와 함께 공 던지기 놀이를 하는 것이나 같다.
쓸만한 상대방은 공이 글러브 안으로 곧장 들어오도록 던짐으로써 여간해서는 놓치지 않게 하고
그가 받는 쪽일 때에는 자기에게로 던저진 모든 공을,. 아무리 서툴게 잘못 던져진 것일지라도, 능숙하게 다 잡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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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기술
유시민 지음, 정훈이 그림 / 생각의길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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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무조건 맹신하는 사람들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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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비아 페미니즘
박가분 지음 / 인간사랑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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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탁견이 여러곳에서 돋보인다.
정체성 정치의 발달과정과 그러한 맥락에서 페미니즘의 뿌리부터 날카롭게 뒤흔들어 놓는다.
읽고나면 페미니스트의 꽉막힌 공격을 받았을경우 반격용 총알이 무수히 장전되지만 다만 염려스러운건
그들이 과연 이런 고급 총알의 내용을 알아먹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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