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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위에는 왜 멍청이가 많을까 - 세상을 위협하는 멍청함을 연구하다
장 프랑수아 마르미옹 지음, 이주영 옮김 / 시공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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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이나 유명인들이 단 한수앞을 못보는 멍청한 행동으로 인해 스스로 난처한 상황에 봉착하게 된 뉴스를 종종 접하곤 한다. 그럴때마다 저 사람은 도대체 왜 저렇게 멍청한 짓을 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곤한다. 하지만 그의 과거는 그가 정말로 멍청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의심의 여지없이 완벽히 증명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똑똑한(?) 멍청이를 보았을때 약간의 혼란과 함께 자연스런 의문을 품게 된다.
이렇게 막연히 느껴지던 의구심이 이 책을 다 읽고난 뒤 어떻게 해결 될까? 하는 기대감에 책을 펼쳤다.

사실 뒷표지에 ‘멍청함의 탐구에 대한 처음이자 마지막 시도‘ 라는 문구가 눈에 띄지만 <왜 똑똑한 사람이 멍청한 짓을 할까> 라는 비슷한 책이 이미 오래전에 나와있다.
두 책의 내용은 서로 제목도 길고 내용도 상당부분 겹치지만 <왜 똑똑한..>책은 심리학적 인지오류 중심으로 해석하는 반면 지금 소개하는 <내 주위에는 왜....>책은 더 광범위한 분야에서의 통찰이라고 보여진다.

이 책은 멍청함에 대한 여러가지 관점과 고찰에 관한 29인의 학자들의 다양한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멍청함 이라는 테마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먼저 멍청함이라는 개념의 정의부터 따져봐야한다.
그것은 단순히 지능지수가 평균이하인 사람을 뜻하는가? 그렇다면 서번트는 어떻게 판단 할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 행동의 관점에서 타인과의 관계에서 득보다는 실이 더 많은 이타적 성향의 사람을 뜻하는걸까? 혹은 눈앞의 이익만 쫒아 결국 손해를 보는 이기적인 성향을 뜻하는가? 아니면 조심성이 부족하거나 혹은 모험심이 강하여 스스로의 생존확률을 현저히 떨어뜨리는 성향을 뜻하는가? 혹은 예측지능의 부재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멍청함을 판단하는 기준은 학자마다 제각기 다르지만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
멍청한 행동과 지능은 생각보다 그리 큰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먼저 첫글은 세르주 시코티의 글로 시작하는데 처음엔 다소 난잡하게 멍청이의 종류에 대해 나열한다. 하지만 글을 읽으며 뜨끔하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이것은 우리가 떠올리는 일부 멍청이에 해당하는 내용이 아니라 나를 포함한 평범한 인간들의 비합리적인 행동에 대한 심리학적 관점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장자크 루소도 아이슈타인도 그리고 톨스토이도 모두 멍청이에 속한다.
두서없이 난잡하게 끝날것만 같던 첫 글에서 갑자기 이 책의 주제에 걸맞는 결론을 제시하며 마무리 한다.
내주변에 멍청한 사람이 많은 두가지 이유는
1.인간은 부정편향(negativity bias) 성향으로 인해 긍정적인것보다 부정적인 것을 먼저 포착한다.
(천재보다 멍청이를 빨리알아챈다. 장점보다 단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2. 인간은 귀인(attribution)의오류 성향에 의해 타인의 행동을 관찰할때 그 행동의 원인이 외부요인이아니라 타고난 성향에 있다고 판단한다.
(빠르게 지나가는 차를 보았을때 위급한 환자가 있을거라는 생각은 하지않고 상대방이 과격한 성격이라고 믿는다. 교수가 자신의 질문에 대답을 안하면 자신의 질문이 멍청해서가 아니라 교수가 멍청해서 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귀인의 오류로 인해 타인을 실제보다 더욱 멍청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에런제임스는 멍청함을 낮은 지적능력의 관점이 아니라 사회적 행동의 관점에서 바라봤다.
그의 관점에서 멍청이란 주변의 비난에도 아랑곳하지않고 뻔뻔하게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다.
이는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자만심에서 기인하며 이것이 바로 지성이 넘치는 사람도 멍청한 행동을 하게되는 이유다.
즉 멍청함은 사회적 행동에 관계된 것 이라고 보는 시각인데 이중 가장 최악의 멍청이는 자신의 멍청한 행동에 대하여 남탓을 하는 멍청이 라고 말한다.
이 내용을 바탕으로 조금 더 사고를 확장해보면,
자만심과 자기합리화 성향은 자기반성으로 인한 내면의 발전을 저해하는 주 요인이 된다.
이는 곧, 같은 실수의 반복을 초래하게 되며 그것은 멍청이의 주 속성중 하나이다.

또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친숙한 노벨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의 파트가 있다.
‘대니얼카너먼‘ 하면 인간의 비합리적인 성향을 까발린 학자 아닌가? 카너먼은 누구보다도 이 책의 주제에관해 할말이 많기로써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인물이 아닐까 한다.
먼저 ‘두가지 시스템 이론‘ 에 대한 언급을 한다.
이 이론에대해 간략한 첨언을 하자면, 인간의 판단기준은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시스템1 - 빠른, 직관적인, 본능적인, 판단기준, 촉
2. 시스템2 - 느린, 분석적인, 이성적인, 판단기준, 심사숙고
이 책에서는 멍청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이 두가지 시스템이 편향 되지 않게 조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중용의 자세를 강조하고있다.
이 파트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우리의 정치적 신념을 결정하는것은 시스템1로써 좋아하는 인물을 따름으로 인해 신념이 종속되어 따라가는 것 이라고 한다.
이는 민주주의에서 상정되고있는 ‘합리적 인간‘ 이라는 모델이 주는 이미지, 그리고 이성적 영역 이라고 생각되는 정치적 신념까지도 결국엔 비이성에 근거한 것 이라는 통찰이다. 이는 결국 미셸푸코가 <광기의 역사> 에서 설파했던 철학과 정확히 맞물린다.

일일히 모두 소개할 순 없지만 멍청함에관한 다양하고도 기발한 분류 및 관점들이 많이 언급된다.
알고도 하는 멍청한 짓, 생각을 너무 많이 하여 일을 그르치는 멍청이, 뇌과학의 관점에서 전두엽의 기능성과의 관계성, 지능과 합리성을 별개로 나누어 바라보는 관점, 낙관주의에서 기인한 인지편향의 멍청한 행동결정패턴, 행동경제학의 관점에서 감정과 이성 사이의 간극을 주목하여 멍청이를 다루는 넛지(nudge)의 필요성에 대한 구조주의적 발상, 풍요의 역설개념, 자아도취, 그리고 어리석음과 멍청함의 구분, 현대 미디어의(언론조작, SNS, 텔레비전, 인터넷)정보의 질과양 사이의 관계성 등 여러 관점들이 소개된다.

책을 다 읽고나니 전체적으로 두서없이 장황하고 난잡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남는다. (구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겟지만..)
하지만 그동안 막연하고도 단편적으로만 생각했던 멍청함에대한 개괄적인 실루엣이 비로소 그려진다.
멍청함과 밀접한 키워드는 단정짓는성향, 거만함, 속물주의, 자기중심주의, 집단주의, 국수주의, 감정에의 호소, 자아도취, 자기맹신, 허세, 이기심, 무지, 절제없는본능, 사악함 등이며 상호 깊은 연관성을 느낀다.

처음으로 되돌아가 책을 읽기전에 떠올렸던 의구심을 반추해보니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가 확실히 있음을 몸소 체감한다.
멍청함 이라는 테마는 선악의 기준으로 판단할 문제는 아니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멍청함은 ‘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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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타인을 바꿀 수 없다 -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적’이 아닌 ‘내 편’으로 만드는 법
코르넬리아 슈바르츠.슈테판 슈바르츠 지음, 서유리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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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은 이유는 간단하다. 제목에 이끌렸다.
사실 읽어보면 책 내용과 일치하는 제목은 아니다.
하지만 잘지은 제목이다. 내가 책을 사게 만들었으니.. 원제에 충실했다면 구매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용은 그리 어렵지 않고 너무나도 쉽게 읽히는 책이다. 사례중심의 설명방식이 일부 긍정적으로 작용한것 이겟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내용의 대부분이 상식적인 수준에서 무리없이 수용되기 때문일 것 이다.
‘상식적인 뻔한 내용이라면 읽지 않아야지‘ 라고 생각할지 모르겟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읽으면 분명 도움이 될것은 확실한 것 같다.

책을 덮고나니 너무나 간단한 이야기지만 내가 많은 사람들을 직접 겪으면서 느끼기에는 스스로 이를 스스로 깨닫고 실천하는 사람은 매우 적은듯 하다.
저자도 그런 현실을 인정하는데 그 이유를 개인이 각광받는, 그리고 여유없는 사회 분위기와 개인적인 선입견, 과거의기억등 여러가지 이유로써 복합적 원인을 제시한다.

먼저 책 표지에 걸린 여러 문구들의 슬로건들을 종합하면 ‘설득하려 하지말고 공감하라‘ 가 이 책의 주제라 할 수 있는데 사실 이것만으로도 책의 내용이 대충 짐작이 가능하다.
설득과 공감의 가장 큰 차이점은, 설득은 상대방을 나에게 끌고오는 것이고 공감은 내가 상대방에게 다가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이해심‘ 한줄로 요약하면 ‘남이 내게 다가오기를 바라지 말고 내가먼저 다가서라‘ 정도가 될 것 이다.

먼저 책의 도입부는 책의 주제격에 해당하는 화두를 던지며 시작한다.
˝서로의 말이 통하지 않고 겉도는 이유는 서로 호환이 불가능한 시스템에서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극복하는 방법으로써 미러링을 제시한다.
(이는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게임 이론과 일맥상통 한다. 비트겐슈타인도 서로의 소통을 위한다면 상대방의 게임세계의 룰 속으로 내가 맞추어 들어가라는 말을 하였다.)

진화심리학의 단골메뉴, 구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서 야생의 환경에서 개체별로 놓고 평가해 본다면 인간은 나약한 존재다. 무리를 이루는 집단에 속하지 못함은 생존의 위험이었다. 그래서 집단에서의 연대감, 소속감, 인정욕구에 항상 목마르며 외로움을 싫어하는 본성이 있다.
인간에게 있어서 원활한 감정교류는 생존과 직결되는.문제이며 상대의 표정 억양 자세등을 관찰 함으로써 상대의 감정을 읽는 능력이 발달하게 되었다.
이 특수한 인간의 능력을 가리켜 미러링 이라고 한다.

이 책의 핵심주제인 미러링은 거울뉴런의 반응현상인데, 반복할수록 익숙해지는 것이 뉴런의 주 속성이듯 거울뉴런도 마찬가지여서 미러링은 연습할수록 좋아지며 이 말은 곧, 사용하지 않을시 퇴화한다는 의미도 내포한다.

그리고 미러링에 익숙해지기위해 의식적으로 행하는 5단계 훈련법과 상대방을 대하는 자세등 자세한 방법들을 사례를 들어가며 꼼꼼하게 제시한다.
확실히 이런식으로 대처하면 대인간의 트러블 잠재요인들을 대부분 넘기고 솎아낼 수 있겟구나 라는 확신이 든다.

결론​
‘다가올 미래의 긍적적 변화‘ 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춘 책을 자기계발서라고 부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는 사실상 통제가 불가능한 미래를 통제 가능한 것으로 둔갑시켜 우리를 유혹하며 다가온다.
레비나스는 사실상 미래가 우리의 통제권 밖에 있음을 강조하며 이를 가리켜 ‘미래의 외재성‘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논리를 전개시켜 미래는 곧 타자의 총합 이라는 표현까지도 했다.
이런 관점에서 타자와 대타성 이라는 테마는 미래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요인이며
삶에서 우리가 이렇게 노력하며 살아가는 이유가 긍정적 미래의 설계라고 한다면 타자와의 원활한 관계유지는 매우 중요한 테마다.

책이 인간에게 미치는 긍정적 영향은 책의 종류에 따라 여러가지가 있다.
이 책은 어떤 경지에 도달하기 쉽게끔 지름길을 제시하고 시행착오를 줄여준다는 측면에서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점을 꼽자면,
미러링 훈련에 의한 리액션과 공감훈련이 분명 대인관계에서 도움이 되겟지만 리액션의 습관화기 불러오는 가장큰 폐해는 스스로 페르소나에 갇히진 않을까 하는 우려다.
그리고 책에서 전하고자 하는 바는 사실상 책의초반 3분의1 지점에서 모두 끝난다고 봐도 되는데 후반부의 이야기들은 분량늘리기의 느낌도 없지않다.
특정 상황에서의 나쁜대화와 좋은대화의 예시에서 일부는 억지로 끼워맞춘 느낌이 심하게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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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 종족주의 - 대한민국 위기의 근원
이영훈 외 지음 / 미래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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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서평의 일부 발췌 입니다.)

나는 보수성향이다. 이 책의 논리에 마음껏 설득당할 준비가 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책의 억지논리 덕분에(?) 오히려 그 반대 방향으로 튕겨 나가버렸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자료들이 모두 잘못되었다고 말하는것이아니다. 다만 자료의 전체를 가져오지 않고 유리한 부분만 가져와서 일부가 전체인것 처럼 왜곡하기도 하고, 결과를 먼저 정해놓고 사후에 짜맞추기식의 궁색하고 편협한 해석이 문제인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나서 느낀점은 이 책의 주장이 일본 극우들의 주장과 일맥상통 하다는 것 이다. 본저는 일본에서도 출간된걸로 아는데 일본인들이 이걸 읽고 무슨 생각을 할지 한숨만 나올 노릇이다.
저자는 스스로가 학자로써 중립적인 기술을 한다고 강조 하지만 결국 결과적으로 보면 최극단에 해당된다는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 책의 별 다섯개짜리 독자평점들을 보고있노라면 어떻게 이런 편향적인 책을 읽고나서 저런 호평을 할 수가 있을까? 정말 제대로 읽은건 맞는지, 아니면 책의 내용은 무조건 진리라 믿는 무비판 맹신성 독서습관이 문제인건지 이해가 안갈 따름이다.
이 책을 호평한 사람들은 일본 극우들의 입에서 나온 똑같은 내용의 과격한 주장을 신문상에서 접했을때도 과연 그렇게 고개를 끄덕일까?

이 책에서 주장하는 핵심이 잘 나타난 책 중반부의 한 부분을 먼저 언급해 보자
저자는 페르낭 브로델의 ‘장기의 시간‘이라는 개념을 한국의 반일감정과 연관짓는다. (페르낭 브로델은 구조주의자다.)
즉 저자의 말을 일반적인 구조주의의 논리에 빗대어 해석 하자면,
반일주의의 근본은 결국 논리적 토대가 없는 사상누각이고 비이성의 감정적인 영역에 속하며 비합리적인 편견일뿐 이라는것을 함의한다.
이것이 결국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저자의 저작의도라고 볼수있다.
지구상의 어떤나라도 이웃나라와의 지정학적 대타성에의한 (브로델의 언어로써) ‘장기지속적 심성‘의 형성은 피할 수 없다. 게다가 이는 저자의 뉘앙스 처럼 부정적인면만 있는것도 아니다.
영민한 독자라면 저자의 주장에 그저 고개만 끄덕이지말고 악질적인 프레임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아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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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의 사생활 - 연애에서 식성까지 우리의 행동을 결정짓는 IQ의 맨얼굴
가나자와 사토시 지음, 김영선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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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능의 사생활>
가나자와 사토시
< ‘The Intelligence Paradox‘>

독서를 하고나면 머릿속에 책마다 각각의 고유의 정체성이 부여된다.
그것은 빨간색 같은 어떠한 색깔일 수도있고 솜사탕같은 느낌일수도있고 아니면 물건값 잘깎는 깍쟁이 옆집 아주머니 같을수도 있다.
이건 뭔 헛소리 인가 하는 사람이 분명 있겟지만 심히 공감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거라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 본다면 <지능의 사생활> 은 사실 그리 좋은 기억이 있는 책은 아니다.
기발하긴 하지만 쓸모없는 일본산 발명품을 보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안좋은 기억으로 쳐박아놓은 이 책이 갑자기 유명세를 타더니 중고책 가격이 20만원대까지 천정부지로 치솟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자세한 연유는 모르지만 어떤 유튜버가 이 책을 추천 하여 수요가 몰린 것 같다.
(거품의 주속성은 사그라짐 인지라 재출간 이라도 되기전에 부랴부랴 찾아서 상한가에 냅따 팔아치웠다.
팔면서도 상대에게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실제로 며칠전 지능의 역설 이라는 제목으로 재출간이 되었다.)

사실 맨 처음 이 책을 읽었을당시 초반에 사바나효과라는 파트를 읽으며 흡인력이 대단하다고 느꼈고 굉장히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이후의 내용이 너무 기대가되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밤새 잠안자며 읽었던 기억이있다.
그러나 이 책은 초반의 임팩트 그게 전부였고 이후의 내용은 실망스러웠다.

먼저 저자는 인종별 지능차이는 존재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딱 봐도 어불성설이다.
설령 실제로 절대적 의미에서의 지능차이가 존재한다고 해도 저자가 저렇게 주장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프랑스의 현대철학자 미셀푸코는 이성은 비이성에 근거한다고 했다.
저자의 주장을 소크라테스식의 문답법으로 끝까지 파고들어가 보면 결국 저자의 이성은 비이성에 근거한 사상누각이다.
또한 저자는 인종차별주의자 라는 베이스가 깔려있는 사람 이라는 혐의(?)를 지울수 없고,
본인이 이 책에서 지적한 반드시 피해야 할 두가지 논리적 오류(자연주의적 오류, 도덕주의적 오류) 중에서 자연주의적 오류를 스스로 범하고있는 자증자박 꼴이다.
(저자는 몇년전에 ˝흑인여성은 다른인종의 여성에 비해 매력이 떨어진다˝ 라는 부적절한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사실도있다.)

소쉬르가 언어철학에서 말했듯이 인종마다 언어가 다르고 더불어 교육과 문화가 각기다르기때문에 각각 익숙한 사고방식이 다르게 형성되어있을텐데 어찌 공정하지 않은 하나의 규격화된 형식의 지능검사 테스트를 기준으로 도대체 무엇을 판단한단 말인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수학과 학생과 철학과 학생부터 비교해봐도 지능검사 테스트 방식에 대한 친밀도 자체부터 다를텐데 말이다.
아니 애초에 ‘지능이란 무엇인가?‘라는 용어의 정의 부터가 모호하다.
현대사회에서 돈 잘버는 행동결정이 고지능인가?
타인을 짓밟고 올라서는 이기심 혹은 소시오패스가 고지능인가?
단순히 눈앞의 산술적 문제해결에 능한것이 고지능인가?
아니면 넓게보아 눈앞의 손해를 감수하고 장기적으로 평판에 득이되는 이타적 의사결정이 고지능인가?
아니면 진화론적 사고방식을 강조하는 저자의 방식에 따라 결과적으로 자손번식에 유리한 행동결정을 하는 것이 고지능인가?
아니면 소뇌가 발달하여 평형감각이 뛰어난 쇼트트랙 선수들은 고지능이 아닌것인가?

또한 인종별 지능의 차이를 체중과 체중계를 차이로 예를 들어 설명하는등 아무리 관대하고 열린 자세로 읽어도 도무지 설득 당할 수 없는 논리전개가 이어졌다.
(한두번도 아니고 자꾸 말도안되는 체중계를 반복하여 예로드는 억지는 중간에 책을 집어던지고 싶게 만들었다.)
뭐 아무래도 이쪽 자체가 통계나 자료에 추론적 원인을 끼워맞추는 해석학이라는 오명이 있는 학문이라지만 이건 너무 귀에걸면 귀걸이 코에걸면 코걸이식 이라는 생각만이 들 뿐이었다.
게다가 모든 인종을 대상으로한 통계도 아닌데 인류 전체에 대한 법착을 찾는것은 저자의 교만이 아닌가 생각했다.

더불어 이 책을 읽을때 논리적 오류도 유의해야 할 것 이다. A라는 결과를 놓고 B라는 원인을 추론으로 이끌어내는것은 항상 사각지대를 포함한다.
A->B 이므로 B->A 라는 논리전개는 옳지않다.
뇌출혈 환자들이 모두 머리가 아프다고하여 머리아프면 뇌출혈이라는 결론은 거짓이듯이, 지능높은사람중에 야행성이 많다고 하여 야행성이면 지능이 높은것도 아니고 지능이 높아서 야행성인지 야행성이어서 지능이 높은지 명확하지않다. 또 예술계종사자 집단에서는 지능에 관계없이 야행성이 고르게 분포할 수도있다.
결론적으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비교적 명확하지만 그것또한 역시 결국 추론일 뿐이다.
나에게 있어서 저자는 마치 고대 그리스 절대주의 철학자가 단 하나의 진리를 탐구하듯이 만인을 관통하는 하나의 법칙을 찾으려는 시도를 하는 것으로 비춰진다. 결국 이것은 또 하나의 극단이다.
애초에 지능이라는 요인 자체가 생물학적요인과 환경의 수많은 변수들의 영향을 모두 받는다는 점을 간과한한것이 이 연구의 패착이라 생각한다.
심지어 이빨보유갯수에 따라서도 지능지수와 인지능력이 달라진다는 연구도 있는 마당에
저마다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수십억의 그 수많은 케이스들을 싸잡아 하나의 법칙으로 정리 하려는 시도 자체가 무모하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학문적 가치 창출이 불가능해 보인다는 말이다. 저자 본인도 이 한계를 인식하였는지 결국 추후에 연구가 더 진행되어야 한다며 끝을 흐린다.
책을 다 읽고 저자가 참 헛일 했네 라는 생각을 했고 이렇게 헛점이 많은책 또한 보기드문데 말이야 하며 씁쓸히 책을 덮었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 책의 가치를 찾는다면
이 책에서 제시하는 고지능자에 관한 통계자료들은 그 자체로 어떠한 실체적 실루엣을 제시하는데 가볍게 참고할만 하며 이 책의 가치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특정 행동양식에 대한 과한 의미부여와 편향적 시각이 형성된다면 역효과로써 안읽은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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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의 길 -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진실 자유주의 시리즈 71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지음, 김이석 옮김 / 자유기업원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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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의 길>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노예의길> 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하이에크의 대표작이다.
이 책의 주제는 경제 자유주의를 지지하고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주장을 담고있으며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비판한다.
혼란한 시기에 집필되어 2차 세계대전이라는 혼란기에 많은이들의 자유주의 사상형성에 영향을 준 책이었다고 밀턴프리드먼이 서문에서 밝히고있다.
실제로 마거릿 대처의 자유주의 정책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여 영국전체의 변화에 영향을 많이 주었다. 미래와 세상을 바꾸는 영향력의 관점에서 본다면 어마어마한 책 이란것은 의심의여지가 없다.
이 책은 과거 독일과 영국등의 예를 들어가며 사회주의를 꽃피우다 무기력증이 도래하고 몰락해 가는 과정을 자세히 언급하며 사회주의의 문제점에대한 주장을 전개해 나간다.

먼저 제목이 굉장히 간결하면서도 강렬하고 잘지은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제목이 함축하는 바를 이야기 해보자면,
사회주의 추종자들은 자유의 의미를 왜곡하여 자유를 강조하는데 우리는 이에 선동당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말하는 자유란 기존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자유안에서의 평등‘의 의미가 아니라 제약과 예속 안에서의 평등을 의미한다.
그것은 결국 독재를 부르게 되고 노예가 되는 길이다. 라는 뜻을 함축한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써, 생시몽은 ˝노예를 넘어 가축같은 삶을 살게 된다˝ 라고 까지 표현한 바 있다.)
이는 결국 사회주의와 자유가 결합 할 수 있다는 환상과 착각을 일으킴 으로써 이는 악의적인 기망행위다.
가축과 노예가 함축하는 공통속성은 길들여짐과 자유의결여 이다.
즉 예속과 계획에 따르지 않는 사람은 솎아내거나 순종하도록 길들이는 것 그것이 바로 사회주의의 본질인 것이다.
즉 사회주의 체제를 가동시키는 에너지원은 결국 명령과 조련이다. (곁들여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역사적으로 악인이 출세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기존윤리체계를 벗어나 가혹하고 무자비하게 명령하는 자가 출세에 유리하다는 내용도 있다.)

요즘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유민주주의를 유지함에 있어서 법치(법의 지배 rule of law)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사람도 거의 없는듯 하다.
사람들이 이러한 사정을 제대로 모른채 선동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 책이 널리 읽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유행지난(?) 책이 현재 한국에서 다시금 고개를들어 새로이 출간이되고 여러 사람들에게 언급이되고 관심을 받는다는 것은 기뻐할 만한 일이지만,
현 정부의 시대를 역행하는 이념적 방향성에서 기인한 현상이 아닌가 싶어 한편 씁쓸한 노파심도 든다.

우리는 이상을 추구했으나 의도와는 전혀 다른결과를 초래하는 것을 종종 경험한다.
(이런 주제의 내용을 다룬 책 <#치명적 자만>이라는 책도 추천한다.)
그 가장 거대한 예가 맑시즘을 필두로 한 계획경제와 사회주의 라는 예다.
사실 계획경제와 사회주의는 사례적으로 실패가 증명이 된 이념이라 볼 수 있는데 그것을 다시금 채택한다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현재가 여의치 않다고 하여 완전하지 않은 다른것을 택하는꼴 밖에는 안된다.
하지만 왜 우리는 그 과정에 회의를 느끼며 참지 못하고 완전하지 못하다고 여겨지는 다른길로 가려하는가?


˝그 이유는 자유주의가 점진적으로 진행되기때문이다.
자유주의의 전리품은 당연한것으로 간주되고 자유주의이기에 얻은 것 이라는 인식은 점차 사라져버린다.
자유주의이기에 누리는것들을 사람들은 당연한 불멸의 것으로 여긴채 새로운 가치에 눈을 돌리고 이 새로운 가치획득의 장애물은 과거의 원칙이라는 인식으로 발전한다. ˝


결국 사람들은 자유주의에대한 불만만 남게된다.
하이에크는 이러한 사회주의 지지자들의 착각을 정확히 언급하고있고 이는 현재 한국의 상황에 대입하여도 유효하다.
이 책은 시대성의 관통 이라는 의미에서 보아도 진정한 고전이다.
한국의 미래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주의깊게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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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기술변화로인해 경쟁은 불가능해지지않는다 라는 파트의 내용은 과거에는 통용되었겠지만 현재로썬 다소 설득력이 떨어지는 파트같아 아쉬움이 있다.
실제로 현실에서 기술변화로인해 경쟁불능이 도래하여 제도적 장치가 불가피한 부분이 분명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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