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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구를 죽이려고 ㅣ 네오픽션 ON시리즈 13
조선희 지음 / 네오픽션 / 2023년 8월
평점 :
👍이런 분에게 추천해요
민속괴담이 주는 아찔함과 서늘함 사이에서 줄타기 해보실 분
이야기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진 고등학생 이하가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의 고향인 매구면에 이사를 오면서 시작된다. 그런데 이사 온 첫 날 부터 기이한 경험을 하게되고 마을 주민들과 매구면 학교 친구들로부터 매구에 대한 오래된 괴담을 듣는다.
‘호수에 빠진 사람은 매구가 구해준다. 단, 구하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호수 옆 대숲을 지날 때 이름이 세번 불리기 전에 돌아보면 매구가 호수로 끌고 들어간다.’
‘매구의 얼굴을 본 자는 죽는다.’
제목에도 등장하는 ‘매구’는 천년 묵은 여우를 의미한다. 이하는 매구의 존재를 믿지 않으면서도 자꾸만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죽음들에 주목하며 매구의 흔적을 쫒으려 한다. 누군가는 진짜 매구를 봤다고도 하고, 누군가는 매구탈을 쓴 사람이 살인을 하고 다닌다고 믿는다. 소설은 미스터리와 스릴러 사이에서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며 극을 끌고 간다.
한량에다 실 없는 사람인데 무언가를 감추는 듯한 아버지, 이상한 소문의 주인공인 정 많은 슈퍼 아주머니, 매구의 아이라는 괴소문을 몰고 다니는 같은 반 친구 아리, 학창시절 모종의 사건으로 일말의 부채감을 가지고 있는 넉살 좋은 학교 선배 두산, 과거 사건으로 오명을 쓰고 폭력배가 된 길군 등 마을에서 지낼수록 저마다의 사연과 의뭉스러운데가 있는 인물들 투성이다.
마을 주민들은 매구는 없다고 입을 모아 말하다가도 막상 불길한 사건 앞에서는 매구의 짓이라고 입으로 전하기 바쁘다. 편하기 때문이다. 실체도 없고 사건과 연결되는 지점이 없어도 인간이 룰을 어겨 노한 매구가 그랬다고 생각하는 것이 마을에 살인자가 돌아다닌다는 것보다는 안전하다고, 나만 조심하면 타겟이 될 리 없을거라는 안일한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괴소문이란 그렇다. 여럿이 모여있을 때는 허무맹랑하다고 치부할 수 있는 소재라고 생각해도, 혼자 남겨진 순간에는 혹시 그 존재가 한 순간에 나를 삼켜버리지 아닐까하는 두려움을 온몸으로 감각한다. 작가는 그 지점을 잘 파고들어 등장인물들이 특정 순간을 맞닥뜨릴 때마다 독자에게 공연히 마른침을 삼키게 만든다. 챕터가 끝나는 꼭지마다 매구로 추정되는 존재가 독백을 하는데, 풍겨오는 분위기가 상당하다.
추리극으로 무게를 싣자면 떡밥 뿌리기가 조금 더 과감했어도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지만 이미 미스터리만으로도 훌륭하게 소화했다고 생각한다. 460 여쪽에 달하는 가볍다고는 할 수 없는 분량이지만 며칠 내내 통근 지하철에서 서서 읽었음에도 몰입이 잘 되는 소설이었다. 여름에 읽기 딱 좋은 작품이다. 천년을 살아남은 여우, 매구의 진짜 정체가 궁금한 분들은 소설로 확인해보시길!
✏️ 나는 나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부르는 이름으로 존재해. 이야기가 사라지지않는 한, 이야기 속에서 내가 불리면 나는 계속 살아 있는 거야.
*서평단 신청을 통해 도서를 받아 솔직하게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